김재준의 예언자 사명과 교회 정치화
원제: 김재준 신학의 내재적 모순과 기장·NCCK의 정치신학
한국 기독교사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 김재준(1901-1987)의 신학 사상은 흥미로운 이중성을 보인다. 그는 정교분리 원칙을 명확히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했다. 이러한 이중적 접근은 언뜻 균형 잡힌 신학적 통찰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한 근본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김재준의 신학적 후예들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정치신학적 행보는 이러한 모순이 현실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김재준의 신학적 사유는 두 개의 상반된 축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는 《기독교와 사회문제》(1963)에서 "교회는 정치권력에 종속되어서는 안 되며, 국가는 교회의 선교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며 분명한 정교분리 원칙을 제시했다. 이는 교회의 독립성과 국가의 종교 자유 보장을 상호 전제로 하는 고전적인 정교분리 이론과 일치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김재준은 전혀 다른 방향의 논리를 전개했다. 그는 같은 저작에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이 땅에서 구현하는 책임은 신자들에게 있다"고 서술하며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신학적으로 의무화했다. 나아가 《믿음의 실천》(1971)에서는 이러한 사회참여를 '예언자적 사명'으로 규정하며, 개인 구원과 사회 변혁을 동시에 추구하는 복합적 사명을 기독교인에게 부여했다.
이러한 이중적 접근의 배경에는 김재준이 수용한 미국식 자유주의 신학과 사회복음주의의 영향이 있었다. 그는 월터 라우셴부시의 사회복음주의와 라인홀드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를 한국적 상황에 접목하려 했다. 또한 구약의 예언자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1960년대 한국의 급변하는 정치적 현실 속에서 교회의 역할을 모색하려는 현실적 고민도 이러한 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문제는 김재준이 이 두 가지 상반된 명제를 논리적으로 종합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정교분리 원칙과 적극적 사회참여는 본질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긴장을 해소할 만한 이론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의 신학은 상황에 따라 어느 쪽이든 선택적으로 강조될 수 있는 모호한 구조를 갖게 되었다.
김재준 신학의 모순은 단순한 이론적 미완성이 아니라 구조적 필연성을 갖는다. 첫째, 그가 제시한 '교회'와 '신자'의 구분은 현실적으로 적용 불가능하다. 교회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며, 신자들의 정치적 행동이 곧 교회의 정치적 성격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김재준이 아무리 개별 신자의 사회참여와 교회 기관의 정치 개입을 구분하려 해도, 실제로는 이 둘을 명확히 분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둘째, '예언자적 사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교분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논리적 함정이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정치권력을 비판했지만, 이를 현대적 맥락에서 그대로 적용할 경우 모든 정치적 입장이 종교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누가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지, 어떤 정치적 입장이 하나님 나라의 정의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구현한다"는 명분은 사실상 무제한적인 정치참여를 정당화하는 만능열쇠 역할을 했다. 이 명분 하에서는 어떤 정치적 행동도 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고, 정교분리 원칙은 형식적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김재준 자신도 이러한 논리적 딜레마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인식했더라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김재준 신학의 내재적 모순은 그의 신학적 후예들인 한국기독교장로회와 NCCK의 행보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1970년대부터 이들 교단과 기구는 김재준이 설정한 정교분리 원칙을 사실상 폐기하고 적극적인 정치참여의 길을 선택했다.1970년대 유신체제에 맞서 기장은 반정부 성명을 발표하고 민주화 운동에 직접 참여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예언자적 사명의 실천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김재준이 금기시했던 교회의 정치권력 개입이었다. 더 나아가 1980년대 NCCK 산하 사회선교협의회는 노동운동과의 연대, 통일운동 주도, 정치집회 참여 등 더욱 직접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정치참여가 더욱 체계화되었다. 기장과 NCCK는 특정 정치세력과 공개적으로 연대하고, 선거 시기에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며, 정부 정책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등 사실상 정치단체로 기능했다. 이러한 행보는 김재준이 그토록 강조했던 "교회는 정치권력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행동을 정당화할 때마다 김재준의 '예언자적 사명' 개념을 동원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 구현이라는 명분 하에 모든 정치적 입장이 종교적 정당성을 획득했고, 정치적 판단과 신학적 판단의 경계는 소멸되었다. 이는 김재준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의 신학적 프레임워크가 갖고 있던 구조적 취약성이 현실에서 폭로된 것이었다.
김재준 신학의 모순은 단순한 개인적 한계를 넘어서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그가 추구했던 미국식 자유주의 신학과 사회복음주의의 무비판적 수용은 한국적 상황에 대한 충분한 신학적 성찰 없이 이루어졌다. 서구의 정교분리 전통과 한국의 종교-정치 관계는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전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김재준은 이러한 차이를 간과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김재준이 종교적 가치와 정치적 가치의 관계를 명확히 설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라는 절대적 가치와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정치적 현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틀이 부재했기 때문에, 그의 신학은 현실에 적용될 때마다 일관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신학적 일관성의 실패는 한국 기독교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교회의 정치화가 가속화되었고, 종교적 권위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도구화되었으며, 교회의 진정한 예언자적 역할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었다. 무엇보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신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건전한 이해가 형성되지 못했다.
김재준 신학에 나타난 정교분리 원칙과 사회참여 독려 사이의 긴장은 해결되지 못한 본질적 모순이었다. 이는 이론적 미완성의 문제가 아니라 양립 불가능한 두 명제를 강제로 결합시키려 한 논리적 오류의 결과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와 NCCK의 정치신학적 행보는 이러한 모순이 현실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이다.
김재준이 추구했던 개인 구원과 사회 변혁의 복합적 사명은 신학적 야심에 불과했으며, 실제로는 정교분리 원칙을 무력화시키고 교회의 정치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예언자적 사명'이라는 명분은 모든 정치적 행동을 종교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만능 도구가 되었고, 그 결과 한국 기독교는 건전한 정교관계를 정립하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향후 한국 기독교가 신학적 일관성을 바탕으로 한 건전한 사회참여 모델을 모색해야 함을 시사한다. 김재준 신학의 모순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대안적 모델 개발이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기독교한국 | 2025. 8.12. 김요셉 페이스북 글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 개념의 본질적 모순
로잔운동의 핵심 개념인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는 김재준의 신학과 유사한 구조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1974년 로잔언약에서 시작된 이 신학적 프레임워크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통합하려는 야심찬 시도였지만, 실제로는 양립 불가능한 두 명제를 강제로 결합시킨 논리적 오류의 산물이었다.
로잔언약 제4조는 "전도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의 구주이시며 주님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명시하며, 개인 구원의 우선성을 천명했다. 이는 복음주의 전통의 핵심인 영혼 구원의 절대성을 반영한 것으로, 모든 기독교 활동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영적 회심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로잔운동의 초기 이론가로서 "교회의 일차적 사명은 복음전도이며, 사회 행동은 이에 종속되는 부차적 활동"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러한 위계적 사명관은 전통적 복음주의의 확고한 신학적 토대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로잔언약 제5조는 "그리스도인들은 정의와 화해를 위해 힘써야 하며, 인간을 모든 종류의 억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사회적 책임도 선언했다.
1982년 그랜드래피즈 회의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전도와 사회적 행동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에서 동등한 파트너"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1980년대 이후 더욱 급진화되어, 2010년 케이프타운 헌신에서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개인 구원과 사회 변혁을 포괄하는 총체적 복음을 요구한다"고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총체적 선교는 영혼 구원과 사회적 행동을 동시에 추구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어느 것이 우선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로잔운동의 핵심 이론가들조차 이 문제에 대해 일관된 답변을 제시하지 못했다. 르네 파디야(René Padilla)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상황에서 두 가지가 충돌할 때 어떤 선택 기준을 적용할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이는 단순한 이론적 미완성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 실현"이라는 명분 하에 모든 사회적 활동이 선교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면, 무엇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인지에 대한 객관적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로잔운동은 이러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총체적 선교는 선교사나 교회 지도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어떤 정치적, 사회적 입장도 "선교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만능 도구가 되었다. 남미의 해방신학과 구별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유사한 방법론적 취약성을 보인다.
개인의 영혼 구원이라는 복음의 핵심이 사회 변혁이라는 거대한 의제에 흡수되면서, 복음 자체의 고유성과 절대성이 상대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총체적 복음"이라는 명분 하에 전통적인 개인 구원 메시지는 사회 정의 담론의 한 부분으로 격하되었다. 이는 로잔운동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복음주의 신학의 근본 토대를 침식하는 결과를 낳았다.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의 정치화도 문제다. 세계복음주의연맹과 각국의 복음주의 연합기구들은 총체적 선교를 명분으로 적극적인 정치적 입장 표명에 나서고 있다. 기후변화, 이민정책, 경제정의 등 거의 모든 사회 이슈에 대해 "복음주의적 관점"이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제시한다. 이는 로잔운동 초기에 강조했던 "복음의 정치적 중립성"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현상이다. 총체적 선교라는 명분이 복음주의 진영의 정치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많은 선교 현장에서 복음전도와 사회 개발 사업 사이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총체적 선교를 표방하는 선교단체들조차 실제로는 명확한 사역 방향성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단체는 사회 개발에 치중하면서 전도 활동을 소홀히 하고, 다른 단체들은 여전히 개인 구원에만 집중하면서 총체적 선교를 형식적으로만 표방한다. 이는 총체적 선교의 이론적 모호성이 현실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이다.
총체적 선교를 둘러싼 신학적 논쟁은 전 세계 복음주의 교회 내부의 심각한 분열을 야기했다. 전통적 복음주의자들은 "사회복음주의의 복음주의적 변형"이라고 비판하고,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개인주의적 신앙"이라고 반박한다. 이러한 분열은 복음주의 운동의 신학적 일관성과 실천적 통일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총체적 선교신학은 이중적 명제의 강제적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김재준의 신학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김재준이 정교분리와 사회참여를 동시에 주장했던 것처럼, 로잔운동도 복음의 우선성과 사회적 책임의 동등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두 경우 모두 양립 불가능한 명제들을 논리적 종합 없이 강제로 결합시킨 구조적 문제를 보인다. 또, 상황적 해석의 자의성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도 그렇다. 김재준의 "예언자적 사명"이 모든 정치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만능열쇠가 된 것처럼, 로잔운동의 "하나님 나라 가치"도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입장을 선교적으로 포장하는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김재준의 신학적 후예들이 정교분리 원칙을 사실상 폐기하고 정치참여의 길을 선택한 것처럼, 로잔운동의 후예들도 복음의 우선성을 형식적으로만 인정하면서 실제로는 사회 변혁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총체적 선교신학의 근본적 문제는 첫째 서로 다른 차원의 개념들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려 한 방법론적 오류에 있다. 개인의 영적 구원과 사회 구조의 변혁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이를 단순히 "통합"하거나 "균형"시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다. 둘째 로잔운동이 제시하는 총체적 선교의 성경적 근거는 대부분 구약의 사회정의 본문이나 예수의 사회적 관심을 과도하게 확대 해석한 것이다. 신약 성경의 명확한 선교 명령들은 주로 복음 전파와 제자 양육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회 변혁으로 확장하는 해석학적 비약이 있다. 셋째 총체적 선교는 복음주의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라는 실용적 목적에 의해 추진된 측면이 강하다. 순수한 신학적 성찰보다는 해방신학이나 사회복음주의에 대한 복음주의적 대응 논리로 개발된 것이다. 이러한 실용주의적 동기는 신학적 엄밀성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신학적 일관성의 회복을 위한 과제 : 총체적 선교신학의 내재적 모순은 김재준 신학의 모순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 두 경우 모두 서로 다른 차원의 가치와 사명을 논리적 종합 없이 결합시키려 한 신학적 야심의 산물이다. 로잔운동이 추구하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통합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혼란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총체적"이라는 명분 하에 복음의 고유성은 희석되고, 선교의 우선순위는 모호해지며, 복음주의 운동의 신학적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건전한 복음주의 신학의 회복을 위해서는 총체적 선교라는 모호한 개념을 폐기하고, 복음 전파의 절대적 우선성을 바탕으로 한 명확한 선교 신학을 재정립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은 개인 구원의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지, 선교의 본질적 내용이 될 수는 없다. 로잔운동의 총체적 선교는 김재준 신학과 마찬가지로 양립 불가능한 명제들의 강제적 결합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으며, 이는 해결되지 못한 채 복음주의 운동에 지속적인 혼란을 가져다주고 있다. 이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대안적 모델 개발이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기독교한국 | 2025.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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