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때늦은 타령
원제: NCCK, 이제 와서 "중도"라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임 총무로 취임한 박승렬 목사가 “교회협은 진보가 아니라 중도”라고 밝혀 화제다. 그는 “교회협이 너무 진보적이었다는 평가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과의 협력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언뜻 보기엔 포용성과 조정 능력을 드러낸 듯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 발언이 시사하는 바는 오히려 심각하다. 이것은 단순한 이미지 조정이 아니라 NCCK의 정체성 혼란이자, 생존 위기의 자각이라 할 수 있다.
NCCK는 지난 수십 년간 민중신학, 해방신학, JPIC(정의·평화·창조질서 보전) 신학에 기초하여 사회복음주의적 활동을 해온 대표적 교회연합기구였다. 그들의 선언문, 성명서, 연대활동은 대부분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진보적 입장을 담고 있었고, 이는 다수 보수 교단이 “좌편향”, “정치적 교회”로 비판해 온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NCCK가 이제 와서 스스로를 “중도”라고 포지셔닝하려 한다면, 그것은 외부의 비판 때문만이 아니라, 내부에서조차 기존 정체성으로는 더 이상 존립조차 어렵다는 위기의식의 표출이 된다. 즉, 교회협 내부는 이미 ‘진보라는 이름’ 아래에서 더 이상 연합의 정당성과 공감마저 얻지 못하고 있으며, 그 신학적 기반도 흔들리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신임 총무의 발언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이것이다. “교회협은 결코 진보적이지 않다... 표준적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이 말은 곧, 과거의 신학과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중도’라는 간판으로 정리하려는 전략적 수사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두 가지 문제를 드러낸다.
첫째, 신학적 자기 인식의 부재이다. NCCK는 오랫동안 사회복음주의와 민중신학의 길을 걸어왔다. 그것은 신학적 선택이었으며, 단순한 정치적 입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 입장을 포장만 바꾸어 중도로 재구성하겠다는 시도는, 본질을 바꾸지 않고 외양만 조정하겠다는 얕은 전략이다. 둘째, 대중성과 정당성의 동시 상실이다. NCCK가 지금 중도로 자신을 재정의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더 이상 진보 교회라는 정체성으로는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내부의 대중적 신뢰는 줄었고, 신학적 권위는 흔들리고 있으며, 연합운동의 효능감조차 약화되었다.
박승렬 총무는 해당 인터뷰에서 “교회 연합운동 자체를 악마화하는 풍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보다 정직한 자기진단이 필요하다. 지금 교회 연합운동이 외면받는 이유는 단지 보수 진영의 ‘왜곡’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편향된 선언, 정치적 이념화, 복음의 주변화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이슈에 대해서 “논의는 하지만 입장은 내지 않겠다”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이 쟁점에 있어서도 교회협은 한국교회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이 NCCK가 중도라는 이름을 내걸겠다는 것은, 그들이 ‘진보’라는 정체성의 종말을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를 버린다고 해서 교회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복음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진보든 중도든 모든 정치적 정체성은 결국 교회를 더 깊은 자기모순으로 이끌 뿐이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이미지 조정이 아니라, 신학적 반성과 회개다. 지금까지 교회협이 추구해온 ‘정의’가 복음을 대체한 것은 아니었는지, ‘연합’이 복음의 진리를 희생시킨 것은 아니었는지, ‘화해’라는 이름으로 북한 세습우상 독재체제에 침묵한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반성이 선행되지 않는 한, 아무리 진보를 버리고 중도 옷을 입어도 그 정체성의 위기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NCCK가 진보의 옷을 벗고 중도의 옷을 입는다고 해도, 속사람이 바뀌지 않았다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교회는 레토릭으로 살아남는 조직이 아니다. 교회는 오직 진리 위에 설 때만 존재 이유를 갖는다. 그리고 그 진리는, 다수의 목소리나 문화적 표준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복음이어야 할 것이다.
김요셉 목사 | 2025.12.18. (페이스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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