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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감정이 아니라 전쟁은 냉혹한 계산이다

 

무적 이스라엘군, 현대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맞닥뜨린 거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스라엘군의 전승 신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전쟁에 관한 통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전쟁을 감정의 폭발로 본다. 침략자에 대한 집단적 증오, 복수심, 민족 감정, 역사적 트라우마,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국가들의 충돌을 떠올릴 때 이러한 감정의 레토릭은 더욱 강화된다.

 

그러나 실제로 중동전쟁들에서 전장을 지배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계산이었다. 특히 이스라엘 측은 감정을 전면에 드러내기보다, 감정을 구조 속으로 밀어 넣고 전쟁을 체제 운영과 발전의 도구로 활용했다.

 

감정은 아랍 국가들이 드러냈고, 그 감정을 이스라엘은 이용했다. 중동전쟁에서 승패를 가른 것은 누가 더욱 격렬하게 증오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감정을 통제하여 전략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는가였다.

 

이스라엘 국가 엘리트들에게 있어서 아랍 국가들은 박멸해야 할 절대악이 아니었다. 지도부의 목표는 단순한 영토 확장이나 단기적 군사적 쾌감, 혹은 한 번에 끝장내는 단판 승부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안보 전략은 단순하고 일관되었다. 국가 생존 확률을 최대치로 유지하는 체제 구축. 그리고 그 목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아랍이 아니라 이스라엘 내부의 분열이었다. 광범위한 이민 배경, 다양한 언어와 문화, 종교적 차이, 경제적 격차, 세속주의와 정통파 유대인의 가치 충돌. 이 내부의 이질성은 설득이나 캠페인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는 외부의 지속적 위협이 필요했고,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적대 환경을 국가 결속의 장치로 사용하는 것.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중동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국가 체제를 고도화하는 방책이었다.

 

이스라엘군이 수행한 작전 또한 감정의 미학이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 아랍군을 증오했기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라, 아랍군이 더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겼다.

 

동원 체계는 군사력을 감정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속도와 방향의 물리 수학으로 환산했고, 기동력은 강렬한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임무형 지휘체계에 기반한 전술적 자율성의 산물이었다. 공군과 기갑, 정보 자산의 조합은 전장의 승리를 넘어, 다음 전쟁에서 더 빠르게 승리할 수 있는 구조를 축적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적을 압도하는 군사력은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군사와 기술과 사회 시스템의 장기적 누적에서 나왔다. 전쟁은 상대를 말살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상대가 기능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냉정한 설계의 과학이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골란고원 방어전의 핵심 지휘관이었던 이스라엘국방군 제7기갑여단 77전차대대장 아비그도르 카할라니 중령의 사례는 이 감정 관리의 구조를 잘 드러낸다. 그는 전선에서 최전방 전차부대를 지휘하며 극단적인 공포와 피로, 전우의 전사와 철수, 방어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압박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의 회고록(골란고원의 영웅들 The heights of courage)을 펼쳐 보면 전쟁의 잔혹함과 상실의 무게는 매우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시리아군을 향한 증오나, 경멸, 복수의 언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서술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악마화가 아니라, 어느 지점을 지켜야 하는가, 어느 시점에 전차를 재배치해야 하는가, 어디까지 후퇴하고 어디서 다시 맞서야 하는가와 같은 전술적 질문들이다.

 

그는 적은 증오해야 할 악마가 아니라 돌파를 막아야 할 군사적 대상으로만 다뤄진다. 오히려 시리아군의 과감한 돌파와 불굴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기까지 한다. 카할라니의 글은 감정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을 전술과 임무 수행의 언어로 번역하며, 또 그것을 체계적으로 학습한 군대가 어떤 방식으로 전쟁을 기억하고 기록하는지를 보여준다.

 

감정은 개인의 내면에서 강렬하게 작동하지만, 공식 언어로 올라올 때는 증오가 아니라 임무와 설계로 정제된다. 이 지점에서 중동전쟁의 이스라엘은, 프랑스의 미움을 이용해 독일 통일을 설계한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과 겹쳐져 보인다.

 

정치적 명분 또한 동일한 논리구조를 따른다. 이스라엘은 아랍과 팔레스타인을 자극하여 적들로 하여금 전쟁의 문을 열게 했던 적도 있고, 반대로 먼저 기습에 나섰던 적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내부적으로 중요한 것은 패배의 책임을 국가 전체가 감당할 수 있는가를 중시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무기만 다룬 것이 아니다. 기억과 수치, 희생과 결속, 책임과 면책까지 관리했다. 전쟁을 장악하는 자는 물리적 공간을 점령하는 자가 아니라 정신적 공간을 점령하는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쟁이 종결되는 시점에도 감정과 이성의 차이는 끝까지 유지되었다. 이스라엘 개인들은 무거운 상실과 분노를 느꼈고, 전투 기록 속에는 죽음과 충격의 묘사가 넘친다. 그러나 국가 지도부는 감정의 복수심에 빠지지 않았다. 적을 완전히 끝장낼 때까지 몰아붙이는 식의 과잉적 접근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전쟁의 목적은 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적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내부의 결속이 약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적이 남아 있어야 위협이 유지되고, 위협이 있어야 체제와 군대가 고도로 정비된다. 적은 파괴해야 할 표적이 아니라 생존 체제의 구조적 재료였다.

 

전쟁을 감정으로 보면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냉혹한 인물들로 보인다. 그러나 전쟁을 체제 설계의 일환으로 보면 그들은 명철한 인물들이다. 무서운 것은 증오가 아니다. 증오는 방향을 흐린다. 가장 무서운 전쟁은 감정이 사라지고 이성만 남는 순간이다. 파괴의 본능이 아니라 설계의 의지가 전쟁을 이끌 때, 전쟁은 광기가 아니라 사회공학이 된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그랬듯, 중동전쟁에서의 이스라엘도 감정의 전쟁이 아니라 구조의 전쟁을 치렀다. 감정은 아랍을 움직였고, 계산은 이스라엘을 움직였다. 그리고 역사의 승자는 언제나 감정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전쟁은 미쳐 날뛰는 순간이 아니라 차분해진 순간 가장 위험하다. 증오는 폭발한다. 그러나 설계는 작동한다. 전쟁이 복수의 무대가 아니라 체제 공학의 수단이 될 때, 전쟁은 가장 냉혹한 형태를 띠고, 그 냉혹함은 곧 무적 신화의 기초가 된다.

 

이스라엘군의 전승신화는 더 불타올랐기 때문이 아니라, 더 차가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감정으로 전쟁을 말하는 국가가 패했고, 전쟁을 계산으로 사용하는 국가가 승리했다. 이것이 중동전쟁이 남긴 불편한 진실이다.

 

 

김요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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