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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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아 아이린 교회당(현 이스탄불, 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열린 장소, 화재 후 원형대로 복구한 건물)

 

카파도키아 신학자들과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원제: 카파도키아 삼 교부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1.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와 카파도키아 신학세계

 

 

4세기 교회의 삼위일체 논쟁은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플 사이를 오가면서 벌어졌다. 로마제국의 주도권을 장악한 전쟁에서 승리한 콘스탄틴 대제는 이탈리아에서 발칸으로 천도하였다.

 

 

로마 대교구는 중심에서 밀려나고 콘스탄티노플은 신로마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기독교의 권력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Partriach 족장)가 쥐고 있었고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행사하고 있었다.

 

 

로마의 영광은 콘스탄티노플로 몰려들었고 지중해와 흑해가 마주하는 발칸반도의 끝은 유럽과 아시아가 맞닿아 있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로 촉발된 삼위일체 논쟁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교회는 본질상 하나님과 동질이고 위격상 상이점이 없는 신성의 영역에 예수 그리스도를 세웠다. 단성론자인 아리우스파의 주장은 이단이 되었고 아타나시우스의 정통교회는 이들을 단죄하였다.

 

 

그러나 단성론자들의 극성에 황제의 권력을 이용한 세력들과의 투쟁이 56년이나 걸린다. 381년 교부들의 논쟁이 종식된다. 기독교는 공인되었고 황제의 권력은 교회정치에 개입하였다.

 

 

네스토리우스파의 기독교론 논쟁은 다시 70년을 보내야만 하였다. 이것이 431년 에베소 공의회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라는 교회의 고백이 선포되었고 네스토리우스파는 이단이 되었다.

 

 

이 역시 알렉산드리아파와 안타오키아파간의 갈등구조에서 빚어진 사건이었다. 45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가까운 칼케돈 공의회를 열면서 교회의 30가지 행정수칙이 통과되었다. 1조 성직을 매매하지 말라는 규정이 오늘날까지 치리의 근간이 된다.

 

 

네스토리우스파는 중동과 시리아로 밀려나갔고 마침내 7세기초에 중국 당나라로 진출한다. 동서교회를 벗어나 글로벌 기독교가 된 것이다.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라는 교회의 신앙고백이 완성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역사와 전통안에서 호흡하는 신앙고백이 되는 것은 치밀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진 것임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초대교회는 정통과 이단이라는 상극의 관계를 청산하고 제도권교회로서의 공교회성을 확립하는데 황제의 권력이 깊숙히 개입하고 있었다.

 

 

제도권에 편입한 교회는 권력의 맛을 알고 있었고 내부서열을 확실하게 챙기고 있었다. 주교자리는 권력과 이권이 보장되었고 세속권력이 개입되어 있었다. 니케아 공의회는 이러한 공교회의 변신을 보장하면서 제국의 종교가 된다. 그리고 공교회는 본연의 임무인 선교보다는 교권투쟁에 매몰되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니케아 신경은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몰았으나 현실정치는 아리우스의 반격으로 펼쳐졌다. 제국의 통치자를 움직여 복권하였고 제국의 고문으로 영입한 유세비오스를 통하여 정통파인 아타나시우스는 유배를 갔다. 전세는 역전되었다. 현실은 니케아 공의회의 결의를 무색케 하였다.

 

 

이제는 교회에는 새로운 이단인 양태론의 주인공 사벨리우스가 있었다. 사벨리우스는 250년에 태어났던 인물로서 가현설 곧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가면을 쓴 신의 아들의 죽음이었다는 설을 가지고 교인들을 현혹하였다.

 

 

그의 주장대로 하나님은 3번에 걸쳐서 가면을 쓰고 역사 속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숨어있는 신이 인간 역사에 개입하여 아들 예수와 성령이 역사한다는 삼신론을 펼쳤다. 이것은 스토익 사상이 빚어낸 수사학적 발상이었다.

 

 

당시 기독교는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 우파가 압도적으로 나와 있는 형편이었다. 반면에 소아시아의 안티오키아는 반 오리겐 파가 활동하고 있었다. 로마교회는 멀리 떨어져 천하는 삼분되어 있었다.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황제 콘스탄티우스도 여기에 가세한다. 양대세력이 대립하는 가운데 교회정치는 아리우스를 지지하는 중도파의 거두 니코메디아 유세비우스 주교가 황제의 고문이 되어 영향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세속의 황제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과 태양신의 영향력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황제는 듣기 좋은 아리우스파를 지지하고 있었다. 337년 황제는 사망한다.

 

 

제국은 3분되어 버렸다. 후계자들은 분할 통치를 시작한다. 콘스탄틴 2세는 영국, 갈리아, 스페인을 차지하였고 콘스타티우스는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를 차지하였다. 콘스탄스는 북아프리카와 제국의 중앙부를 차지하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콘스탄틴 2세와 콘스탄스가 서방교회의 입장을 따랐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하였다. 그렇지만 제국의 중앙부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한 콘스탄스는 아리우스를 지지하고 있었다.

 

 

2년 유배를 마친 아타나시우스는 복직하기를 원했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고 있었다. 338년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복직되었다. 그러나 2년도 못 되어 로마로 피신하였다. 정치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다시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타나시우스가 복귀하였으나 콘스탄스는 암살당했다.

 

 

353-3 61년 기간동안 아타나시우스파는 암흑기를 맞는다. 한편 콘스탄티우스는 아리우스파 발렌스(무르사의 주교)를 황제의 고문으로 영입한다. 그러면서 니케아파 주교들은 폐위되었고 반 아리우스파 주교들은 착착 등용된다. 이만큼 진리를 수호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361년 콘스탄스는 사망한다. 황제의 후계자 줄리안은 2년을 지배하고 요절하고 이어서 조비안도 2년을 하고 요절한다.

 

 

그렇게 하여 발렌스 황제(363-373)가 즉위한 이후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하는 황제가 등장한다. 그라티안(375-383) 황제치하에서 데오도시우스 1(379-395)가 나타난 것이다.

 

 

구름속에서 햇님이 방끗 웃었다. 데오도시우스 1세가 등극하면서 380년 기독교를 제국의 국교로 선포한다. 그리고 그동안 문제시되고 있던 니케아 후속조처를 위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개최한다. 이것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인 것이다. 역사의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부터는 제국 내의 정통을 바로 세우고 이단을 박멸한 것이다.

 

 

니케아 신조가 제정된 지 56년 만에 일이었다. 고난의 종 아타나시우스는 이미 8년 전인 373년에 사망한다. 데오도시우스 1세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하여 니케아 신조를 가다듬는다. 여기에 하나님은 카파토키아 출신 교부들을 동원하여 정통신앙을 세운다.

 

 

오늘날 튀르키예 중남부 카이세리에서 출생한 카파도키아 세 교부는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 유학을 마쳤던 이들이었다. 또한 카파도키아의 주도인 카이세리에서 바질리우스의 누이 마카리나 수도원장 밑에서 수도원 생활을 거친 이들이 신학자요 주교로 성장하였다. 그중에 나지안주스 그레고리는 콘스탄티노플 총대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나지안주스 그레고리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의장이 되어 삼위일체 신론을 확립시키고 공의회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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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세 교부 그림:  템페라, 90 x 58cm, 17세기 중반, 빈 미술사박물관, , 오스트리아. 촛대를 들고 있는 분은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 긴 수염은 대 바실리우스, 둥근 수염은 나지안주스 그레고리우스다.

 

 

먼저 카이사리 바질리우스는 카이사리 주교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던 그는 일찍이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로 유학을 다녀왔다. 신학보다는 신지학이라 불리던 시대였다. 신학적 무게보다는 수사학에 강조점이 얹어진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질리우스 집안은 주교집안으로서 기독교 영성의 탯줄인 수도원 생활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기도하던 딸 마크리나가 수도원 원장으로 있었다. 바질리우스 역시 엄격한 수도원 생활을 고집하고 수도사로 살았다. 나눔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바질레이드 라 불리는 사회복지 서비스활동을 펼쳤던 것이다.

 

 

가난한 환자들과 나그네들을 섬겼고 선교사들 숙소도 운영하였다. 이들이 바로 카파도키아 삼교부인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요 니사의 그레고리 주교였다. 이들이 삼위일체 신학을 정립한다.

 

 

카이세리는 오늘날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이다. 대학교가 있으며 지금은 없어졌지만 신학교와 수도원이 있었다. 지금은 흰 눈이 덮힌 에르치에스(3916)산이 있고 스키장으로 유명하다. 하산(2963)산과 멜렌디드 산도 있어 3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개구쟁이 스머프가 연상되는 카파도키아 화산지대는 카이세리 서쪽 네브세히르 근처에 관광의 중심인 괴레매도 있다. 기암괴석의 고장 괴레매에는 우치히사르가 커다란 아파트 처럼 솟아나 있는가 하면 지하도시 데린쿠유 킬막이 있어 기괴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마치도 로마의 카타콤베처럼 무덤위에 세운 동굴들이 무수히 많다. 당시에는 지하도시에 신학교도 있었고 교회도 있었다 한다. 웅장한 토러스 산맥을 넘어가면 지중해의 휴양지 안탈리아가 있다.

 

 

그런가하면 카파도키아에서 멀지않은 곳에는 바울의 후계자 디모데가 태어난 루스트라도 있다. 과거에는 이코니온이라 불리었던 오늘날의 코냐는 더욱 흥미로운 고장이다. 무슬림 신비주의 수피즘의 창시자 마블라나 루미의 영묘가 있다.

 

 

푸른색 도는 거대 첨탑이 있는 코냐는 루미의 가르침을 따르는 마블라나 교단이 있다. 이들은 세마춤으로도 유명하다. 각진 감색 모자는 비석이고 검은색 망토는 무덤이라 하면서 속옷은 수의라 부른다. 세마춤은 이들이 추는 춤이다.

 

 

오늘날에는 항아리 케밥과 도자기 그리고 카펫도 유명하지만 과거에는 정통기독교의 머릿돌을 놓았던 이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금은 관광목적의 열기구를 띠우고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카파도키아 삼교부는 당대를 휩쓸고 지나갔던 영지주의를 거부하고 아리우스의 단성론을 무찔렀다. 정통신앙의 꽃인 삼위일체신론을 확립하여 예수의 신성을 하나님 아버지와 같다는 동일본질론을 펼쳤던 것이다.

 

 

나지안주스 그레고리 역시 나지안주스 주교의 아들이었다. 그레고리 역시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로 유학을 떠났다가 356년에 귀환한다. 361년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374년 부친이 사망하자 나지안주스의 주교에 오른다. 378년 데오도시우스 1세는 콘스탄티노플 주교로 임명한다. 381년 열린 공의회 의장이 되었다.

 

 

니사의 그레고리는 특이하다. 그는 신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의 깊이를 더하는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특별하였다. 특히 마크리나 누이와 바실리우스 주교의 깊은 영향을받았다. 그가 편지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누이는 우리 삶의 스승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다. 그녀는 솔직하게 하나님과의 대화하기를 즐겼고 그녀는 우리에게 힘을 솟게 하는 성곽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무기로 둘러쌓여 있는 성채와도 같았다고 하였다(서한 19:6).

 

 

그러나 그는 교양정서도 깊었다. 그리스 문학을 포함하여 당당대의 플라톤 철학이나 스토아 철학 오리게네스와 필론의 사상까지 두루 섭렵하였다. 그는 372년 바질리우스 주교가 신설한 교구의 주교가 된다. 그는 천재였지만 바질리우스가 지니고 있던 행정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대신 니케아파를 지지하여 반대파의 공격을 당했다. 바로 그 때문에 고초를 당했다.

 

 

아리우스 지지파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2년 유배형을 받았다. 378년 주교로 복귀한 그는 마침내 381년에 모인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하게 된다. 그는 바질리우스나 나지안주스 그레고리가 세상을 떠난 후 동방교회에서는 가장 신뢰받는 정통신학자가 된다.

 

이상윤 목사, 페이스북 글(2025.08.25.), <웨슬리안타임즈>, 202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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