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리가 교회를 살린다
"신학함"의 목적에 대하여
신학자는 책상에 앉아 학문을 즐기는 연구자가 아니다. 신학교는 지식을 파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이들은 교회의 생존과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최전방 진지다. 교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신학자들을 전장 한복판에 불러내셨다. 그들이 세운 것은 논문이 아니라 교회의 운명을 지탱하는 교리였다. 이것이 신학함의 본질이자, 변함없는 첫 번째 사명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단호했다. “다른 복음은 없다.” 천사라도 심지어 바울 자신이라 할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 두 번이나 외쳤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부활 교리가 무너지면 믿음도, 구원도 무너진다고 했다. 바울이 “먼저” 전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었다. 교리의 정확성이 구원의 생사를 가른다. 사도적 전통은 한결같다. 교리 먼저, 그다음이 모든 사역이다.
이레니우스, 아타나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그들은 모두 이단과 비진리에 맞서 싸운 장수였다. 영지주의를 무너뜨린 변증, 아리우스주의를 꺾은 삼위일체론, 펠라기우스주의를 막은 은총론, 중세의 오류를 깨뜨린 칭의론. 모든 주요 교리는 전쟁터에서 태어났다. 니케아와 칼케돈의 결의는 학문이 아니라 생존의 선언이었다. 삼위일체와 양성론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복음의 심장부를 지키는 방패였다.
교리 → 믿음 → 구원. 순서는 바뀌지 않는다. 건물의 기초가 무너지면 건물이 무너지듯, 교리 기초가 무너지면 선교, 목회, 영성, 윤리도 무너진다. 교리 없는 선교는 방향을 잃고, 교리 없는 목회는 기초가 부서진다. 영성도 체험주의로 변질된다. 고린도교회,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다. 갈라디아교회, 바울을 천사처럼 영접했다. 그러나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부정과 다른 복음이 그들을 무너뜨렸다. 바울은 은사 확장이나 체험 강화로 대응하지 않았다. 교리를 세웠다. 부활의 논거, 칭의의 원리, 복음의 본질을 성경과 논리로 변증했다. 그 결과물은 지금까지도 교회의 표준 교리서다.
신사도운동, 번영신학, 포스트모던 진리 상대주의, 자유주의 신학. 외양은 세련됐고, 논리는 지적이다. 그러나 속은 거짓이다. 고린도와 갈라디아의 패턴이 반복된다. 성장하는 교회, 은사 넘치는 교회도 속수무책이다. 신학교에서 교리 교육을 놓치면, 잘못된 교리를 든 목회자가 수백, 수천을 오염시킨다. 영성, 실천, 사회 참여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기초는 교리다. 삼위일체 이해 없는 영성은 허상이고, 교회론 없는 목회는 표류다. 성경적 인간론 없는 사회참여는 공허하다. 예수님과 바울은 진리와 사랑, 교리와 관계를 결코 분리하지 않았다.
“바른 교리가 교회를 살리고, 잘못된 교리가 교회를 죽인다.” 은사와 열정이 넘쳐도, 기초가 흔들리면 무너진다. 바른 교리가 서면, 교회는 방향을 얻고 복음은 순수하게 전해진다. 신학자여, 성경 연구와 교리 체계화에 생명을 걸라. 신학교여, 장래의 목회자들에게 견고한 기초를 심어라. 바울처럼 변증하라. 감정이 아니라, 체험이 아니라, 성경과 논리로 거짓을 꿰뚫고 꺾어라. 바른 교리가 서야 교회가 서고, 교회가 서야 세상이 복음을 듣는다. 이것이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신학함”의 목적이다.
김요셉 목사, 기독교한국, 페이스북 글 2025.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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