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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네 눈 속의 들보를 빼라

 

산상보훈은 단순한 도덕 교훈이 아니라, 인간 인식 구조와 자기의식의 왜곡을 단도직입적으로 드러내는 급진적 통찰이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7:5). 이 말씀은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정당화하고, 타인을 판단하며,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는지를 꿰뚫어 본다. 판단을 금지하는 명령이 아니라, 판단의 구조를 해부하는 선언이다.

 

이 관점으로 최근 어느 목사의 욕설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과 이를 보도하는 언론과 유튜버들의 태도와 어조를 바라보면, 우리는 단순한 윤리 비판을 넘어 인간 인식의 비대칭성과 도덕 권력의 작동 방식을 목격한다.

 

사람은 타인의 행위를 쉽게 객관화한다. 욕설은 녹음되고, 영상은 편집되며, 자막은 강조된다. 타인의 말은 명확한 사실로 포착된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의 동기, 의도, 감정을 그처럼 대상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을 객체로 보고, 자신을 주체로 경험한다. 사건 인식의 비대칭성을 드러낸다.

 

어느 목사의 욕설은 우리에게 선명한 로 인식되지만, 그 사건을 소비하고 확대하며 정죄의 언어를 생산하는 우리 자신의 태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인식의 비대칭성이다. 타인은 투명하지만, 자신은 불투명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들보는 바로 이 자기 인식의 왜곡을 상징한다.

 

타인을 정죄하는 행위는 단순한 평가가 아니다. 그것은 위계적 행위다. 이 사건에 대한 어느 목사의 보도 영상의 제목은 이게 목사입니까?”이다. 이 표현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판단자의 위치를 선언하는 문장이다. 판단하는 자는 위에 서고, 판단 받는 자는 아래에 놓인다. 목사를 물건과 동격으로 보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도덕적 판단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그 언어에는 강력한 권력의 행사의 모습이 드러난다.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권력 행사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선한 존재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확인은 자주 타인을 낮춤으로써 이루어진다. 타인의 결함을 크게 만들수록, 나는 상대적으로 정당해 보인다. 한 개인의 잘못을 한국교회의 민낯으로 확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 순간, 판단은 단순한 윤리 검토가 아니라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행위로 전환될 위험이 있다.

 

예수께서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이 권력 구조를 해체한다.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것이요,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되어서 주실 것이다”(새번역 성경). 판단은 한 방향이 아니다. 자신이 세운 기준은 되질로 돌아온다.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 판단의 자리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불안과 결핍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의 잘못은 내 안의 불편한 그림자를 가려주는 장치로 작동한다. 유명 인사의 실패 소식은 도덕적 흥분을 자아낸다. 공적 인물의 실패는 집단적 정화 의식을 촉발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실패 소식을 듣는 사람들은 도덕적 흥분을 공유한다.

 

이때 비판은 회복을 위한 분석이 아니라, 정서적 배출의 통로로 작동하기 쉽다. 자극적인 프레임과 반복적 노출은 사실 규명보다 감정의 증폭에 이바지한다. 타인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들여다보는 동안, 우리는 자기 성찰의 고통을 회피한다. 예수께서는 순서를 바꾸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먼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않으면, 타인의 눈 속의 티를 제거하겠다는 행위 자체가 또 다른 왜곡이 된다.

 

예수께서 외식하는 자여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위선을 비난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기만을 폭로하는 말이다. 자신은 정의롭다고 확신하면서, 실제로는 동일한 판단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상태에 이른다. 바로 이것이 예수께서 지적한 외식이다.

 

위선과 자기기만은 언제나 정의와 윤리의 탈을 쓰고 자기를 감춘다. 타인의 거친 언어는 정죄하면서, 자신의 공격적 표현은 정의로운 분노로 정당화하는 이중 구조가 작동한다.

 

이때 우리는 이미 들보를 가진 채 티를 제거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판단과 삶이 불일치하고, 기준과 태도가 분열될 때, 도덕적 언어는 쉽게 위선으로 전환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 존재다. 우리는 자신을 기준으로 세계를 해석한다. 나는 정상이고 그는 사고뭉치이며, 나는 합리적이고 그는 왜곡되었다는 전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욕설 사건을 바라보는 많은 언론사와 유튜브 영상의 논평 속에서도, 이 자기중심적 구조는 아주 쉽게 발견된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는 예수의 말씀은 중심을 이동시킨다. 판단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심판자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법 아래에 선 존재다. 마태복음 7장은 판단의 특권을 해체하고, 우리 모두를 동일 위치로 끌어내린다.

 

어느 목사의 욕설은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입에서 욕이 나오는 것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회집 인원이 많은 교회를 이끌려면 자극적인 언어 필요하다는 말은 터무니없다. 언어폭력은 분명히 교정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그 사건 이야기를 전하고 그 소식을 이해하는 우리의 인식 방식 에 드러난 정죄의식과 자기 성찰의 결여도 동일한 복음의 빛 아래 서야 한다. 자기 성찰을 통과하지 않은 정의는 항상 왜곡된다. 왜곡된 시선은 쉽게 폭력으로 변질된다. 그 눈은 곧장 공적 언어폭력으로 이어진다.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는 말씀은 비판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비판의 전제 조건을 제시한다. 판단의 칼을 들기 전에, 그 칼이 먼저 자신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윤리는 복음이 아니라 이념이 되고, 정의는 회복이 아니라 공격이 된다.

 

예수님의 들보와 티끌 비유 말씀은 인간 인식의 비대칭성과 도덕 권력의 작동 방식을 꼬집는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정말 형제를 돕고 있는가, 아니면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고 있는가? 우리는 정의를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판단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인간 이해와 사랑의 마음을 담은 언어인가, 아니면 정죄의식을 가진 인간 본성의 규탄인가?

 

욕설, 언어 폭력 때문에 교회를 사직하고 물러나는 어느 목사에게 우리는 얼마나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는가? 그것이 우리 자신의 자기반성의 거울로 작동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한 목사의 거취에 대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 상태를 묻는 심문이다.

 

욕설과 언어 폭력은 분명히 가볍지 않다. 목사의 언어는 강단에서만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를 형성하는 공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직과 물러남은 책임의 한 형태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

 

언어폭력으로 그가 물러나는 모습을 보며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안도하는가? 아니면 한 사람의 실패 앞에서 슬픔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가? 만일 우리의 반응이 후자라면, 그 사건은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라 거울이다. 그러나 전자라면, 그 사건은 소비된 뉴스에 머문다.

 

인간은 타인의 추락을 거쳐 은밀한 안도감을 느끼는 존재다.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다라는 비교의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경계하신 인간 인식의 비대칭 사고 구조다. 타인의 티를 보며 자신을 위로하는 순간, 우리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잃는다.

 

어느 목사가 언어 폭력으로 물러났다면, 우리는 그 장면을 거쳐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그의 거친 말 속에서 우리 자신의 언어 습관을 보지 못한다면, 그 사건은 외부의 이야기로 끝난다. 그러나 그 장면이 우리의 말, 우리의 분노, 우리의 냉소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면, 그때 비로소 사건은 영적 통로가 된다.

 

언어폭력은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났고, 신중함이 철저히 결여된 것이 밝혀 졌다. 그 뿌리는 우리 모두 안에 있다. 분노가 통제되지 않을 때, 관계가 소모품처럼 취급될 때, 상대를 도구화할 때, 우리는 이미 작은 형태의 폭력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할 뿐이다.

 

안타까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연대의 감각이다. “저 사람이 저 자리에서 밀려난 조건은 무엇인가를 묻는 동시에, “나는 어떤 조건 속에서 동일한 위험을 안고 있는가를 묻는 태도다. 이런 질문이 없다면, 우리는 사건을 거쳐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다.

 

어느 목사가 물러나는 장면은 성과와 성장, 영향력과 이미지가 과도하게 강조되는 구조 속에서, 언어와 감정이 소모되기 쉽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구조에 대해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가? 우리 안에서 작동하는 강력한 인간 인식의 비대칭성과 도덕 권력의 모순적인 작동 방식을 자각하고 있는가?

 

자기반성은 욕설 목사를 용서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책임은 책임이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우리가 자신을 면제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정직함이다.

 

한 사람이 무너질 때,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한다. 하나는 돌을 내려놓지 않은 채 정의를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무너짐을 거울삼아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후자의 선택만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어느 목사의 목사직 사직이 우리에게 안타까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심장이 굳어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이 우리 자신의 언어와 태도를 점검하게 만든다면, 그 사건은 이미 우리 안에서 구원 받은 자의 성숙의 통로로 기능하고 있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그의 소식을 접하면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 목사의 죄인가, 아니면 우리의 얼굴인가? 자기 눈의 들보를 직면할 때에만 우리는 밝히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밝음은 정죄의 빛이 아니라, 진실과 자비가 함께하는 빛이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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