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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JPIC 신학과 사회주의

 

 

[WCC] JPIC 신학은 기독교와 사회주의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기독교와 사회주의는 겉으로 보기에는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 평등한 사회의 이상, 공동체적 삶이라는 공통된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유사성은 극히 표면적일 뿐이며, 실제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 구원의 방식, 역사의 흐름, 죄의 본질, 권력에 대한 관점 등 거의 모든 핵심 영역에서 본질적으로 충돌한다. 이 충돌은 단순히 교리적 차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 전체의 전면적 충돌이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 신적 중심의 세계관이라면, 사회주의는 철저하게 인간 중심의 철학 체계이며, 그 출발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로 보지만, 동시에 타락하여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죄인으로 이해한다. 이에 반해 사회주의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중립적인 존재로 간주하며, 죄의 문제는 개인의 부패가 아니라 불의한 사회 구조, 특히 계급과 사유재산 제도 같은 제도적 억압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구원에 대한 이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독교는 죄에서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롯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회개와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반면 사회주의는 구원을 사회적 해방, 즉 불평등한 체제의 해체와 평등한 물질 분배를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역사관 역시 완전히 상반된다. 기독교는 역사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서 이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이라는 구속사의 중심 축을 따라 완성되어 갈 것으로 믿는다. 이에 비해 사회주의는 계급투쟁과 생산수단의 변화라는 유물론적 사관에 따라, 인간의 손으로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실현해나간다고 본다. 기독교는 역사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며, 역사의 완성도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온다고 보지만, 사회주의는 역사의 주체를 인간 집단으로 간주하며,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대체한다.

 

 

기독교와 사회주의는 결국 구원, 역사, 인간, 죄에 대한 근본 전제부터 충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양자의 공존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기독교가 사회주의와의 공존을 시도하려 한다면, 반드시 복음의 핵심을 양보하거나 타협해야 한다. 그 타협이란 곧 복음을 사회윤리나 구조개혁의 수단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며, 이는 성경이 증거하는 구원의 본질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따라서 진정한 기독교는 사회주의와의 철학적·신학적 공존이 불가능하다. 복음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사회주의와는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맥락에서 JPIC 신학은 기독교와 사회주의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JPIC는 정의(Justice), 평화(Peace), 창조질서 보전(Integrity of Creation)을 내세우며, 겉으로는 기독교적 윤리 실천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JPIC 신학은 실질적으로 사회주의적 철학, 특히 해방신학 및 민중신학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억압받는 자의 현실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사회적 약자의 경험과 해방을 우선시한다. 이는 죄의 본질을 개인의 내적 타락으로 보기보다, 불의한 사회 구조에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와 동일한 관점을 공유한다.

 

 

또한 JPIC 신학은 성경이 말하는 정의와 평화를 하나님의 성품과 구속사적 맥락에서 해석하지 않고, 주로 사회적 평등과 구조 개혁, 또는 갈등 없는 인권 친화적 체제로 환원한다. 성경적 의미의 샬롬이 아니라, 전쟁 없는 질서, 차별 없는 구조, 불균형 없는 분배를 추구한다. 나아가 복음은 정치적 해방과 인권 실현, 생태 운동의 수단으로 기능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죄 사함과 영생이라는 복음의 핵심은 주변부로 밀려난다.

 

 

결론적으로 JPIC는 기독교의 언어를 차용하고는 있지만, 그 내용과 방향은 실질적으로 사회주의적 윤리철학과 구조개혁론에 훨씬 더 가깝다. 따라서 JPIC는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중간에 있는 혼합물이 아니라, 기독교의 탈을 쓴 사회주의적 신학 운동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기독교는 사회주의와 철학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 그리고 JPIC는 기독교보다 사회주의의 철학에 더 근접해 있다. 복음은 그 자체로 완전하며, 어떤 이념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 그리고 복음이 충실하게 선포되는 곳에서는 사회주의는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이며, 인간의 손으로 쟁취하는 유토피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요셉 목사, 페이스북 글 (202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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