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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펴기 전에, 경계를 생각하다

 

나는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부족함을 볼 때 마음이 먼저 반응하고, 그 마음이 움직이는 만큼 손도 자연스럽게 따라가기를 바란다. 나이가 들고 신앙의 시간이 쌓일수록 그런 마음은 더 자주, 더 깊이 찾아온다. 이전보다 타인의 아픔에 둔감해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민감해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배우게 되었다. 사랑은 언제나 선하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늘 지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선한 마음이 앞서 나갈 때, 정의가 지켜야 할 자리를 지나쳐 버리면 그 선의조차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되고 상처가 될 수 있다. 사랑이 성급해질수록, 그 결과는 반드시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여러 차례를 이를 경험했다.

 

성경은 처음부터 분명한 경계를 세운다. 이것은 네 것이고, 저것은 네 것이 아니라는 구별이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순한 도덕 규칙이 아니라, 서로의 삶과 자리를 존중하라는 요청이다. 탐내지 말라는 말 역시 마음속에서부터 이웃의 경계를 침범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경계가 있을 때에만 사람은 서로를 소유하려 들지 않고, 이용하지 않으며, 삼키지 않는다. 정의는 차갑기만 한 질서가 아니라, 관계를 보호하는 울타리로 기능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 경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경계를 세운 뒤에 다시 말한다. 손을 열라고, 마음을 닫지 말라고, 받은 것을 흘려보내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늘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어디까지가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자유인가. 성경은 이 질문에 계산이나 제도로 답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 앞에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이끈다.

 

나눔은 누군가의 요구에 밀려 억지로 감당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기억하며, 그 기억에서 흘러나오는 선택이다. 참 나눔은 강요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랑은 압박으로 실행될 수 없다. 사랑이 강요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짐이 된다.

 

나는 종종 사랑이라는 말이 정의를 대신하려는 장면들을 보아 왔다. 약자를 위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책임과 선택의 결과가 가볍게 취급될 때, 마음 한편이 불편해진다. 정의는 차갑고 사랑은 따뜻하다는 단순한 구도 속에서, 성경이 세워 둔 균형은 쉽게 무너진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정의를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의 위에서만 비로소 제대로 숨을 쉰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나눔의 공동체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한 마음으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던 그 모습은 교회가 꿈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장면의 깊은 곳에는 분명한 전제가 놓여 있다. 그들의 소유는 여전히 각자의 것이었고, 나눔은 강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에 대한 자발적인 응답이었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나눈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유롭게 내려놓은 것이었다.

 

이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점점 더 절실히 느낀다. 사랑이 제도가 되고, 긍휼이 규칙이 될수록 공동체는 더 바빠지지만 마음은 거칠어진다. 얼굴을 가진 섬김은 사라지고, 구호와 입장만 남는다. 그때 사랑은 더 이상 따뜻한 손길이 아니라, 방향을 요구하는 언어로 변한다.

 

예수님은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을 곧 당신에게 하는 일로 받아들이셨다. 그 말씀 앞에서 나는 변명할 수 없다. 동시에 성경은 책임을 회피하는 삶과 노동을 거부하는 태도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돌봄의 왜곡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들려준다. 성경은 이 두 가지를 나누지 않고, 동시에 붙든다.

 

나는 이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 소유를 지키는 정의와, 소유를 내려놓는 사랑 사이에서 매일 선택한다. 무엇을 보호해야 하고, 무엇을 자발적으로 제한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을 피하지 않을 때, 사랑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결단이 되고, 정의는 차가운 규칙이 아니라 이웃을 살리는 울타리가 된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더 큰 구호와 급진적인 주장일 것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가진 것을 몽땅 속히 내놓으라는 구호 말이다. 그러나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경계를 존중하고, 그 위에서 손을 펴는 질서이다. 정의를 세운 뒤에야 가능한 베품과 사랑을 존중하는 태도다. 그 느리고 조심스러운 길 위에서, 사랑은 더 오래 남는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베푸는 것은 자유에서 나온 은혜인가, 아니면 압박에서 비롯된 의무인가. 나는 누군가의 삶을 대신 결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본다. 모든 것의 주인이시면서도 강제로 빼앗지 않으시는 분, 먼저 질서를 세우시고 그 안에서 사랑을 부르시는 분. 그분의 방식이 내가 사랑을 배워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최덕성, 고백명상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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