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조회 수 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560687757_1333819768113925_7084020250575316084_n.jpg

 

 

그분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하루

 

 

비 갠 뒤의 숲길을 걷듯, 나의 신앙은 자주 질척거리고 무겁다. 오랫동안 나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문장을 딘순화 하는 법을 익혀왔다. 개혁주의 신학 전통의 특성애 충실한 셈이다. 이  명료한 문장은 잘 정돈된 서가처럼 단정하지만, 그것은 정작 그 길을 걷는 나의 거친 숨소리는 담아내지 못했다. 언어는 비대하고, 영혼은 그 언어의 무게에 눌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숲의 속도, 기도의 호흡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정교한 지도를 분석하는 작업이 아니라, 자욱한 안개 속에서 앞서가신 분의 희미한 발자국에 내 발을 포개는 일임을 깨닫는다. 나는 자꾸만 내 삶에서 어둠이 걷히기만을 기도했지만, 그분은 어둠 한복판에서도, 사방이 우겨쌈을 당한 현장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법을 조용히 가르쳐주셨다. 그것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신비였다.

 

그리스도의 영은 나의 서두르는 마음을 조용히 비켜 가신다. 명사(名詞, noun)로 굳어진 하나님을 분석하느라 분주할 때, 정작 동사(動詞, verb)로 일하며 내 곁을 앞서 걷고 계신 하나님을 놓치곤 했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지식을 삼키는 시간이 아니라, 앞서가시는 그분의 호흡이 내 폐부에 닿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어야 했다. 말씀이 내 삶의 결을 따라 천천히 스며들 때, 비로소 나의 거칠었던 숨이 고르게 펴졌다. 그것은 장악이 아니라 그분의 보폭에 나를 맞추는 항복이었다.

 

 

거룩이라는 조용한 반복

 

 

나는 예수님의 신비를 포함한 기독교 진리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하나님이 진정 바라시는 것은 논리적인 정합성 못지 않게 정직하게 떨리는 심정으로 그분을 뒤따르는 나의 입술이다. 거창한 신학적 주제들이 겸손이라는 그릇에 담기지 않을 때, 그것은 영혼을 풍요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공허하게 만든다. 참된 거룩은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무대 위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길 위에서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이웃의 먼지 묻은 발을 닦아주는 조용한 반복 속에 머물러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내게 더 많이, 더 높이, 더 깊게를 요구하며 시선을 앗아간다. 손에 쥔 명예는 아침 안개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쾌락은 잠시 웃음을 빌려준 뒤 긴 공허를 이자로 받아간다. 나는 유익한 그리스도인으로, 시대와 교회의 요청에 답하는 신학자이기를 갈구해 왔다. 그것이 나를 부르신 분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그분과 함께 걷는 일에는 서툴다. 영원을 사모하기보다 현실의 난제와 씨름하고,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교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신학적인 주제들을 해결하는 데 더 재빠르다. 그런 것에 시간 대부분을 쏟고 마음을 고정하는 사이, 나의 삶이 주께서 원하는 만큼 철저한 깊이를 지닌 상태인지 의문이다.  

 

 

설명이 아닌, 동행의 신비

 

 

이제 나는 그분을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설명하려던 자리에서 그분의 뒤를 쫓는 순례자의 자리로 옮겨간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지혜라 믿었으나, 이제는 사라질 것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멀리서 나를 부르시는 그분의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진짜 지혜임을 배운다.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보다 그분의 뒤에서 내뱉는 진심 어린 뉘우침 한 번이 내게는 더 귀하다. 은혜가 스며들지 않은 지식은 마음을 차갑게 식히지만, 그분을 따르며 내딛는 서툰 발걸음은 누군가의 언 땅을 녹일 수 있음을 믿는다. 나는 여전히 자주 빗나가고, 여전히 온전히 거리를 좁히지 못한 부서진 존재다. 그러나 넘어질 때마다 그분이 걸어가신 방향으로 다시 몸을 돌린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위대한 성취의 탑을 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하루, 어제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그분의 발자국 위에 내 발을 얹는 용기다. 방향을 틀어 그분과 함께 걷는 일, 그 단순한 돌이킴이 오늘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예배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분의 발자욱을 따라, 그 분의 발등만 바라보고 걷는 것만으로도 나의 오늘은 충분히 눈부시다.

 

 

최덕성 고백명상록 1-1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

 

 

?

  1. 부서진 단단함 너머, 비어 있는 넉넉함으로

      부서진 단단함 너머, 비어 있는 넉넉함으로   한동안 나는 신학의 언어들과 신앙의 문장들을 정교하게 세공하는 일에 몰두했다. 어떤 질문 앞에서도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언어, 신학적 모호함을 허용하지 않는 또렷한 개념들이야말로 내 영혼의 안전망...
    Date2026.01.10 Byreformanda Reply0 Views5 newfile
    Read More
  2. 그분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하루

        그분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하루     비 갠 뒤의 숲길을 걷듯, 나의 신앙은 자주 질척거리고 무겁다. 오랫동안 나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문장을 딘순화 하는 법을 익혀왔다. 개혁주의 신학 전통의 특성애 충실한 셈이다. 이  명료한 문장은 잘 정돈된 서...
    Date2026.01.10 Byreformanda Reply0 Views4 newfile
    Read More
  3. 바울의 식탁 신학 — 절제의 복음, 은혜의 맛

      식탐 3, 바울 바울의 식탁 신학 — 절제의 복음, 은혜의 맛✝️   로마제국의 거리마다 향신료의 냄새가 흘러나오던 시대,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빵과 포도주의 식탁(성찬식)을 넘어, 은혜와 절제의 식탁을 가르쳤다. 그의 서신 곳곳에는 음식과 절제...
    Date2025.10.30 Byreformanda Reply0 Views202 file
    Read More
  4. 예수의 식탐 거부와 절제의 신학

      운보 김기창 작, 최후의 만찬   예수의 식탐 거부와 절제의 신학 식탐 2    예수 그리스도는 식탐(食貪, gluttony)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 말씀, 활동은 빵 냄새 가득한 현실 속에서 주어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Date2025.10.30 Byreformanda Reply0 Views193 file
    Read More
  5. 문학 속의 탐식: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예스키

      문학 속의 탐식: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 문학 거장들의 식탐 이해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6-1)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의 문학 세계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했지만 그들의 인간학은 하나의 축을 공유한다. 자기...
    Date2025.10.30 Byreformanda Reply0 Views163 file
    Read More
  6. 자족과 감사, 단순함과 관대함의 영성

      가벼운 마음, 열린 손: 자족과 감사, 단순함과 관대함의 영성   --탐욕에 대한 한 편의 묵상(칠거지악, 5-5)   1. 들꽃의 철학, 하늘의 언어   하늘은 아무 대가 없이 새들을 먹이고, 들판은 아무 장식 없이 꽃을 피운다. 그들의 삶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
    Date2025.10.29 Byreformanda Reply0 Views171 file
    Read More
  7. 닫힌 주머니, 굳은 심장: 탐욕을 이기는 길

          닫힌 주머니, 굳은 심장: 탐욕을 이기는 길   --탐욕을 이기는 길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3-4)     1. 야시장에서   도시는 밤에도 문을 닫지 않는다. 유리 진열창 속 물건들은 불빛을 받아 작은 별처럼 반짝이고, 마음은 그 별을 따라 창가까...
    Date2025.10.29 Byreformanda Reply0 Views140 file
    Read More
  8. 성경이 지적하는 탐욕의 징후들

        서울 조계사 불상, 2023년 소제관욕의식(. News1 기자 이승배 사진     성경이 지적하는 탐욕의 징후들   ―탐욕의 본질에 대한 한 편의 묵상(칠거지약, 5-6)   1. 탐욕의 표지   성경은 탐욕을 단순히 돈을 좋아하는 습성으로 보지 않는다. 영혼의 병리, ...
    Date2025.10.29 Byreformanda Reply0 Views140 file
    Read More
  9. 성경의 거울로 본 ‘더 많이’의 신학

    성경의 거울로 본 ‘더 많이’의 신학   --탐욕의 본질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5-4)   1. 벌어진 손, 닫힌 심장   한밤에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처럼, 탐욕은 조용히 들어와 의자를 끌어다 앉는다. 손바닥은 벌어지는데, 심장은 닫힌다. 더 가벼워지려...
    Date2025.10.29 Byreformanda Reply0 Views113 file
    Read More
  10. 은혜의 비와 계약의 피: 셰익스피어의 탐욕의 신학 2

        은혜의 비와 계약의 피: 셰익스피어의 탐욕의 신학 2   --탐욕에 대한 한 편의 묵상(칠거지악, 3-3)   1. 황금빛 도시, 어두운 마음   베니스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다. 상업과 계약의 거리, 황금의 피가 흐르는 곳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 빛...
    Date2025.10.28 Byreformanda Reply0 Views125 file
    Read More
  11. 왕관의 피: 셰익스피어의 탐욕의 신학

        왕관의 피: 셰익스피어의 탐욕의 신학 1   --탐욕에 대한 한 편의 묵상(칠거지악, 3-3)   1. 피로 물든 야망의 새벽   스코틀랜드의 안개 낀 황야, 천둥소리와 함께 세 명의 마녀가 등장한다. 그들의 음성은 한낮의 공기보다 어둡고, 그그들의 목소리는 ...
    Date2025.10.28 Byreformanda Reply0 Views130 file
    Read More
  12.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 — 톨스토이가 말한 탐욕의 신학   탐욕에 대한 한 편의 묵상(칠거지악, 3-10)   1. 끝없는 초원의 유혹   러시아의 광활한 초원, 새벽의 이슬이 아직 말굽을 적시고 있을 때, 한 농부가 땅을 바라본다. 그의 이름은 파홈이다....
    Date2025.10.28 Byreformanda Reply0 Views135 file
    Read More
  13. 분노신학: 죄, 불, 사랑을 통과한 영혼의 이야기

      분노신학: 죄, 불, 사랑을 통과한 영혼의 이야기  ―분노에 대한 한 편의 묵상(칠거지악, 3-10)   1. 분노의 영적 해부학 ― 창세기에서 시편까지   분노는 성경의 첫 살인자와 함께 등장했다. 가인의 얼굴이 무겁게 떨어졌을 때(창 4:5), 인류의 감정사는 불...
    Date2025.10.26 Byreformanda Reply0 Views140 file
    Read More
  14. 사랑으로 분노를 이기라

        사랑으로 분노를 이기라  ―분노에 대한 한 편의 묵상(칠거지악, 3-8)   분노는 영혼의 용광로다. 상처와 억울함, 무너진 기대와 흔들리는 자존이 녹아내리며 뜨겁게 끓어오르는 자리. 성경은 이 불길을 악으로만 단정하지도, 무조건 방치하지도 않는다. ...
    Date2025.10.26 Byreformanda Reply0 Views117 file
    Read More
  15. 분노 길들이기

      분노 길들이기   ―분노에 대한 한 편의 묵상(칠거지악, 3-8)     분노, 인간의 가슴 속에 놓인 작은 화로,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는 방 안에서도, 그 화로는 은근하게 붉은 숨을 내쉰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갑작스런 모욕, 기대가 무너지는 소리, 인정받고...
    Date2025.10.26 Byreformanda Reply0 Views91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 Nex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