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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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앞에서 침묵을 배운다

 

나는 오랫동안 진리를 이해하려 애써 왔다. 잘 정리된 설명과 설득력 있는 논지와 논증, 세련된 표현이 진리에 가까이 가는 길이라고 믿었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수록,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을수록 그것이 더 탁월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분명해진 것이 있다. 진리는 종종 화려한 언어 속에서 흐려지고, 장식된 말들 사이에서 오히려 그 모습을 감춘다는 사실이다.

 

진리에 대해 많은 말을 듣는다고 반드시 진리를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말이 많아질수록 내 마음은 분주해졌고, 생각은 산만해졌으며, 삶의 방향은 흐릿해졌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진리는 떠들썩한 논쟁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오히려 침묵 속에서 더 또렷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의 일들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자주 영혼에 꼭 필요한 것들은 뒤로 미룬 채, 지적 호기심이나 당장의 쓸모를 앞세운 지식에 많은 시간을 쏟아 왔다. 우리의 시대와 교회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눈은 있었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귀는 열려 있었지만 정작 들어야 할 음성은 지나쳐 보냈다. 알려고 애쓰는 동안, 제대로 살아야 할 방향을 놓치고 있었던 셈이다.

 

학문과 학문적 논쟁은 끝이 없다. 무엇이 속()이고 무엇이 종()인지, 개념과 체계에 대한 말들은 계속 이어졌다. 무엇이 논지이고 무엇이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인지를 따졌다. 그것들은 지적으로는 흥미로웠지만, 내 삶을 더 사랑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논지와 논거로 이루어진 명료한 논증을 확인할 때 나는 점점 더 메말라 가고 있었다. 이해는 늘어났지만, 내면은 조용히 고갈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말씀과 영이 조용히 다가왔다. 그때 나는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이는 법을 재현했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말씀과 영이면 충분했다. 그 말씀과 영 안에서 흩어져 있던 말들은 제자리를 찾았다. 나는 진리는 설명의 결과가 아니라 영의 인도 따라 말씀과 만나는 사건이라는 사실을 재차 깨달았다.

 

영의 인도 안에서 말씀과 만나면, 만물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통찰을 얻는다. 그것이 삶의 체험으로 다가온다. 하나님의 영 안에 머무를 때, 나는 더 이상 진리를 붙잡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미 그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점점 단순해지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 말들은 사라진다. 오직 하나님 자신을 바라는 마음만 남았다.

 

내면이 단순해질수록 이해는 오히려 깊어진다. 정리되지 않은 욕망들이 잠잠해질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그 일들은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한다.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배우고 있다.

 

가장 치열한 싸움은 언제나 내 안에서 벌어진다. 다른 사람을 이기는 일보다, 내 욕망을 다스리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날마다 경험한다. 그래서 영적 성장은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확인한다. 하루하루의 작은 선택들이 방향을 만들고, 그 방향이 결국 삶을 구성한다.

 

나는 배움을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다. 지식은 여전히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양심과 삶 위에 올라서는 순간, 지식은 나를 살리기보다 오히려 무겁게 만든다. 많이 알려고 애쓴 만큼, 악덕을 뽑아내고 미덕을 심지 못한 시간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때, 그분이 묻지 않을 질문들이 분명해졌다.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얼마나 유창하게 말했는지, 몇 개의 외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어떻게 살았는지,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정직했는지를 물으실 것이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더이상 지식으로 나를 방어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깨닫는다.

 

한때 존경받던 학자들과 스승들이 시간이 지나 잊혀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의 영광이 얼마나 빠르게 사라지는지 실감한다. 내게서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강단을 주릅잡는 것을 보면서, 세월이 유수같다는 말을 생각한다. 빠르게 변하는 그 속에서 진정한 위대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도 달라진다. 그것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자유이다.

 

모든 것을 잃어도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 세상의 명예를 대수롭지 않게 내려놓을 수 있는 태도, 자기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행동. 그런 삶이야말로 가장 고상한 학문을 터득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향으로 다가온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다. 그러나 더 이상 입술의 말로 진리를 붙잡으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계시 진리 앞에 서서 잠잠히 머무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필요할 만큼만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항상 그러했듯이, 그 말씀이, 내 삶을 조금씩 조금씩 바꾸고 있다.

 

최덕성, 고백명상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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