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조회 수 17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Chimney Rock1.jpg

 

Chimney Rock, NC

 

아케다와 성탄절 사이에서, 아들을 생각하며

 

성탄절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기쁨보다 무게를 먼저 느낀다. 거리의 불빛과 캐럴은 밝지만, 내 안에는 쉽게 밝아지지 않는 방 하나가 남아 있다. 그 방에는 오래 묶여 있는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의 이름은 아들이다. 그리고 성경 속 오래된 단어 하나가 그 기억과 겹쳐진다. ‘아케다’(결박).

 

아케다는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예루살렘, 모리아 산, 제단, 장작, , 그리고 침묵. 그러나 나에게 아케다는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상태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결박된 아들을 떠올리며 성탄절을 맞이한다. 그는 자신이 묶여 있다고 생각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확실하다. 나는 그 끈을 풀 지혜를 알지 못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했을 때, 성경은 그의 내면을 설명하지 않는다. 눈물도, 흔들림도, 밤의 고독도 기록하지 않는다. 그 침묵이 오히려 나를 더 아프게 한다. 왜냐하면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설명되지 않는 선택들, 말해지지 않은 희생들, 그리고 결과로 남은 거리로 이어진다.

 

키에르케고르는 그 침묵을 공포와 전율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윤리로 설명할 수 없는 자리, 타인에게 정당화될 수 없는 결단의 자리였다. 나는 그 철학적 언어를 읽으며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어떤 결단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고통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학문의 길을 걸었다. 부름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오랜 학문의 길 위에서 나는 아들을 충분히 안아주지 못했다. 나는 그를 직접 제단에 올려놓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늘 다음에’, ‘조금만 더 지나서’, ‘이번 학기만 끝나면이라는 말 아래 묶여 있었다하나님의 부름과 삶의 절박한 현장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뿐, 할 말이 없다. 아들은 아직도 자신이 풀려나지 않은 듯하다. 나의 느낌은 틀리지 않다.

 

성탄은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사건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보내심이 아니라, 스스로 결박되기로 하신 선택의 시작이었다. 하늘의 영광이 육신에 묶였고, 무한이 유한에 갇혔으며, 자유가 연약함 안으로 들어왔다. 말구유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신성이 스스로를 제한한 자리였다.

 

교부들은 모리아와 골고다를 하나의 직선으로 보았다. 나는 이제 거기에 베들레헴을 더한다. 모리아에서는 아들이 풀려났고, 골고다에서는 아들이 풀려나지 않았다. 그리고 베들레헴에서는, 그 풀리지 않을 결박을 향해 하나님이 스스로 내려오셨다. 성탄은 해방의 축제이기 이전에, 구속을 위한 결박의 수락이다.

 

이삭은 칼 아래서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 차이가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풀어내지 않으셨고, 나는 내 아들이 묶인 채로 살아왔다. 물론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의 고통 앞에서, 그 변명은 충분하지 않다.

 

성탄절에 나는 기도하지만, 그 기도는 온전하지 않다. 감사와 찬양 사이에 회한이 끼어들고, 희망과 기쁨 사이에 후회가 스민다. 나는 하나님이 독생자를 내어주신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내가 내어주지 말았어야 할 것을 내어주었고, 붙들어야 할 것을 놓쳤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들은 아직도 결박된 상태인 듯하다. 풀어줄 수 있는 방법도, 지혜도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성탄은 나에게 해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 앞에 서는 자리이다.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하나님은 결박된 아들의 곁에 계셨다는 사실이다. 말구유의 아기는 결박된 자의 하나님이었고,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풀려나지 못한 이들의 형제였다. 성탄은 모든 결박을 즉시 푸는 사건이 아니라, 결박당한 자리로 하나님이 오신 사건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성탄을 축하하기보다, 조용히 지킨다. 아브라함처럼 아무 말 없이 산을 오르지는 않지만, 적어도 침묵을 배우려 한다. 아들의 상처를 설명하지 않고, 정당화하지 않고, 그 곁에 머무는 법을 배우려 한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로서 실패한 자리 위에 서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한 아버지의 자리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성탄은 말없이 증언한다. 그 증언 하나로, 나는 오늘을 견딘다. 아케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탄은, 결박이 마지막 말이 아님을 조용히 속삭인다.

 

 2025년 성탄절에

 

최덕성, 고백명상 1-3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

 

 

?

  1. 무너지는 신뢰의 자리에서

      무너지는 신뢰의 자리에서 — 사법부를 바라보며 드리는 조용한 탄식   그래도 나는 사법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러한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비판의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도, 나는 먼저 한숨부터 쉰다.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
    Date2026.02.20 Byreformanda Reply0 Views78 file
    Read More
  2. 나는 여전히 법원을 바라본다

      나는 여전히 법원을 바라본다 — 흔들리는 신뢰의 문 앞에서 드리는 기도   “나는 사법부를 신뢰하고 싶다.” 오늘 하루도 이 문장을 마음속에서 여러 번 되뇐다. 이것을 확신처럼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소망에 더 가깝다. 믿고 싶다는 마음과, 흔들리는 현...
    Date2026.02.15 Byreformanda Reply0 Views99 file
    Read More
  3. 붓과 말 사이: 흔들리는 대한민국 정치 풍경

    장동혁 국민의힘 당 대표   붓과 말 사이: 흔들리는 대한민국 정치 풍경   대한민국 정치는 흔들리는 풍경과 같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그 그림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평론가를  떠올려 본다. 두 사람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화가는 자신의 작업을 거쳐 세...
    Date2026.02.03 Byreformanda Reply0 Views122 file
    Read More
  4. 법 앞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달래면서

    조국,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2025.11.24. 서울뉴스통신)   법 앞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달래면서 — 불의한 입법을 바라보며 드리는 고백   나는 오래도록 국가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해해 왔다. 하나님께서 혼란을 미워하시고, 질...
    Date2026.02.02 Byreformanda Reply0 Views105 file
    Read More
  5. ​​​​​​​ 윤리와 실천이 거세된 영성의 조용한 파산

      윤리와 실천이 거세된 영성의 조용한 파산   최근 대한민국의 한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깊은 침묵 속에 머물렀다. 드러난 의혹과 추문들은 한 개인의 낙마로만 설명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그것은 한 사람의 실패라기보다, 우리가 ...
    Date2026.02.01 Byreformanda Reply0 Views138 file
    Read More
  6. 교회 안의 언어를 떠나 광장으로

        교회 안의 언어를 떠나 광장으로   나는 오랫동안 ‘목사’라는 직함과 ‘신학자’라는 성채 속에 은거해 왔다. 그 성벽 안에서 나의 세계는 평온했다. 성경을 인용할 때마다 나의 문장은 신성한 정당성을 획득했고, 거장 신학자들의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무...
    Date2026.01.31 Byreformanda Reply0 Views106 file
    Read More
  7. 숫자보다 무거운 것: 다수의 소음 속에서 공의를 기다리며

      숫자보다 무거운 것: 다수의 소음 속에서 공의를 기다리며   요즘 나는 정치 뉴스를 접하면 피로가 몰려든다. 다수가 결정했다는 말이 너무 쉽게 정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숫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다수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했다는 까...
    Date2026.01.15 Byreformanda Reply0 Views175 file
    Read More
  8. 손을 펴기 전에, 경계를 생각하다

      손을 펴기 전에, 경계를 생각하다   나는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부족함을 볼 때 마음이 먼저 반응하고, 그 마음이 움직이는 만큼 손도 자연스럽게 따라가기를 바란다. 나이가 들고 신앙의 시간이 쌓일수록 그런 마음은 더 자주, 더 깊이 찾...
    Date2026.01.14 Byreformanda Reply0 Views174 file
    Read More
  9. 사회주의의 유토피아 약속을 접하면서

      사회주의의 유토피아 약속을 접하면서    사회주의의 유토피아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의 숨결 사이에서, 완성되지 않을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나는 종종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꾼다. 조금만 제도가 정교해지면, 조금만 사람들이 각성하면, ...
    Date2026.01.12 Byreformanda Reply0 Views194 file
    Read More
  10. 경계하면서도 마음을 열어 둔다

        경계하면서도 마음을 열어 둔다     나는 나를 지키려고 선을 긋는다. 관계 속에서 무작정 가까워지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감정은 쉽게 소모된다. 어떤 사람들은 관계를 이용한다. 친절을 베풀면 그것을 이용하여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그래서 나는...
    Date2026.01.12 Byreformanda Reply0 Views175 file
    Read More
  11. 모르는 자의 복, 비워진 자의 노래

      히말라야의 소금덩이   모르는 자의 복, 비워진 자의 노래   오랜 시간 나는 가르치고 설명하고 지도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책장에 쌓인 수만 권의 책은 지식의 견고한 성벽이었고, 명료한 언어와 논리는 내가 세상에 빛을 줄 수 있다는 근사한 착각을 선...
    Date2026.01.11 Byreformanda Reply0 Views137 file
    Read More
  12. 아케다와 성탄절 사이에서, 아들을 생각하며

      Chimney Rock, NC   아케다와 성탄절 사이에서, 아들을 생각하며   성탄절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기쁨보다 무게를 먼저 느낀다. 거리의 불빛과 캐럴은 밝지만, 내 안에는 쉽게 밝아지지 않는 방 하나가 남아 있다. 그 방에는 오래 묶여 있는 기억이 있고, 그...
    Date2026.01.11 Byreformanda Reply0 Views173 file
    Read More
  13. 진리 앞에서 침묵을 배운다

      진리 앞에서 침묵을 배운다   나는 오랫동안 진리를 이해하려 애써 왔다. 잘 정리된 설명과 설득력 있는 논지와 논증, 세련된 표현이 진리에 가까이 가는 길이라고 믿었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수록,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을수록 그것이 더 탁월하다고 느...
    Date2026.01.10 Byreformanda Reply0 Views154 file
    Read More
  14. 그분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하루

        그분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하루     비 갠 뒤의 숲길을 걷듯, 나의 신앙은 자주 질척거리고 무겁다. 오랫동안 나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문장을 딘순화 하는 법을 익혀왔다. 개혁주의 신학 전통의 특성애 충실한 셈이다. 이  명료한 문장은 잘 정돈된 서...
    Date2026.01.10 Byreformanda Reply0 Views135 file
    Read More
  15. 바울의 식탁 신학 — 절제의 복음, 은혜의 맛

      식탐 3, 바울 바울의 식탁 신학 — 절제의 복음, 은혜의 맛✝️   로마제국의 거리마다 향신료의 냄새가 흘러나오던 시대,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빵과 포도주의 식탁(성찬식)을 넘어, 은혜와 절제의 식탁을 가르쳤다. 그의 서신 곳곳에는 음식과 절제...
    Date2025.10.30 Byreformanda Reply0 Views318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 Next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