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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2025.11.24. 서울뉴스통신)

 

법 앞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안고

불의한 입법을 바라보며 드리는 고백

 

나는 오래도록 국가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해해 왔다. 하나님께서 혼란을 미워하시고, 질서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은 내 신앙의 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국법을 존중했고, 공권력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세금과 국방, 교육의 의무를 다하는 일은 신앙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했고, 그들의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기에 쉽게 비난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요즘,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경험한다. 국회가 민주적 절차라는 이름으로, 합법이라는 외피를 두른 결정들을 반복할수록, 내 안의 평온은 조금씩 무너진다. 다수의 힘을 앞세운 입법 폭주, 정파적 목적의 탄핵의 반복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공의로운 질서인지, 아니면 질서의 언어를 빌린 파괴인지 묻게 된다. 나는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한다. 이런 길의 끝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실지 알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 불안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보다 훨씬 더 단호한 언어로 말한다.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는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10:1). 이사야의 이 문장은 내 마음을 정면으로 찌른다. 여기서 문제는 무법이 아니다. 법이 있는데, 그 법이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억압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가장 깊은 악으로 간주하고 심판한다는 사실이다. 합법성은 결코 정의의 보증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성경은 이미 오래전에 밝혀 두었다.

나는 이 구절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법이 정말 약자의 피난처로 기능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을 가두는 덫이 되고 있는가. 법은 본래 중립적인 기술이 아니라, 방향을 가진 행위다. 법은 언제나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어떤 얼굴을 보호할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국가의 입법은 도덕적 행위이며, 영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다수의 권력을 가진 이들이 법을 수단삼아 자신들의 목적을 밀어붙일 때, 그것은 정치적 판단을 넘어 양심의 붕괴로 이어진다.

 

예수님의 목소리가 여기서 다시 들린다. 그는 제도의 자리를 부정하지 않으셨다.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지도자들의 권위를 인정하셨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이 무거운 짐을 사람들의 어깨에 올려놓고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모습을 향해 분노하셨다. 예수의 분노는 혼란을 조장하는 선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이 본래의 목적을 잃었을 때 울려 퍼지는 예언자의 탄식이었다.

 

이 장면을 묵상할 때마다, 나는 법과 직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시 정리한다. 합법적으로 세워진 자리와 그 자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자리는 합법일 수 있지만, 행위는 얼마든지 불의할 수 있다. 예수는 바로 그 지점을 가리키셨다. 권위 자체가 아니라, 권위를 사용하는 방식이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수결을 절대적인 선으로 여기지 않는다. 성경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다수는 언제든 정의를 떠날 수 있고, 숫자는 언제든 양심을 마비시킬 수 있다. 국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질서이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타락의 위험에 노출된 존재다. 그렇기에 입법 권력이 언제나 하나님의 공의라는 더 높은 기준 앞에 놓이지 않으면 악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이사야와 예수는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합법적 권력이라 할지라도 공의를 파괴하면 악이 된다는 사실이다. 법은 국가를 살릴 수도 있고, 나라의 숨통을 조용히 조일 수도 있다. 판단의 기준은 단순하다. 이 법이 약자를 보호하는가, 공동선을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가.

 

나는 신학자로서, 설교자로서 이 질문을 외면할 수 없다. 합법이 곧 정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직위의 합법성과 직무의 정당성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싶다. 무엇보다, 불의 앞에서 침묵하는 것이 결코 중립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싶다. 침묵은 때로 가장 조용한 동조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말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떨린다. 내가 옳아서가 아니라, 이 문제 앞에서 누구도 쉽게 옳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선언이 아니라 고백이다. 분노와 사랑, 책임과 두려움이 뒤섞인 고백이다. 나라를 사랑하기에, 법을 존중하기에,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에, 나는 이 질문을 내려놓을 수 없다.

 

만약 내가 정치인이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법은 권력을 숨겨 주는 가면이 아니라, 약자를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정치는 보복의 기술이 아니라, 신뢰를 회복하는 섬김이어야 한다는 것을 외치고 싶다. 나는 다수의 힘 앞에서 스스로를 절제하며, 공의를 기준으로 나 자신을 제한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온 소망이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 땅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법이 다시 생명을 향하도록, 권력이 다시 섬김으로 돌아오도록,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합법보다 더 무거운 하나님의 정의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한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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