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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 국민의힘 당 대표

 

붓과 말 사이: 흔들리는 대한민국 정치 풍경

 

대한민국 정치는 흔들리는 풍경과 같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그 그림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평론가를  떠올려 본다. 두 사람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화가는 자신의 작업을 거쳐 세계를 드러내고, 평론가는 그 세계를 더 깊이 읽도록 돕는다. 그러나 평론가가 화가의 손목을 붙잡고 이렇게 그려야 한다고 명령하는 순간, 예술은 숨을 쉬지 못한다. 붓은 자유를 잃고, 미술계는 금세 소란으로 가득 찬다.

 

요즘 정치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이 오래된 비유가 자꾸 떠오른다. 정치를 하는 정당이 있고, 그 정치를 비평하는 언론이 있다. 이 또한 본래는 긴장 속의 동반자다. 정당은 선택과 책임의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고, 언론은 그 결정이 공공선을 향하고 있는지 묻는다. 그러나 비평이 통제를 꿈꾸고, 질문이 명령으로 변할 때, 그 관계는 급격히 병들기 시작한다.

 

최근 한 정당의 당원 출당이라는 내부 결정 이후, 그동안 그것에 반대 대토를 취해 오던 언론들이 일제히 지도부를 향해 공격을 퍼붓는 장면을 보며, 나는 깊은 피로를 느낀다. 그것은 분석이나 우려라기보다, 마치 분노의 감정이 앞선 처벌이 아닌가. 정치적 경쟁자보다 더 날 선 적대감이 언론의 언어에서 번뜩일 때, 나는 묻는다. 이것이 과연 언론 비평의 자리 아닌가, 또 하나의 권력 행위인 아닌가?

 

언론은 답하라. 언론의 소명이 정당을 대신하여 정치를 하는 것인가? 비평은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결정을 대신할 수는 없다. 만약 언론이 스스로의 주장과 노선을 실현하고 싶다면, 정당을 만들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길이 있다. 그러나 비평자의 자리에 서서, 자신들의 관점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정당을 몰아붙이는 것은, 책임 없는 권력 행위에 가깝다.

 

나는 한 정당이 특정 언론의 하수인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정당은 여론의 일부를 경청해야 하지만, 여론의 일부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 정치의 최종 책임은 언론이 아니라, 국민 앞에 있기 때문이다. 언론 또한 이 사실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평의 힘은 겸손에서 나오지, 조롱과 압박에서 나오지 않는다.

 

언론은 정당의 결정 하나가 선거를 망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미 권력 구도가 형성된 상황에서, 하나의 선택이 자동으로 승리나 패배로 이어진다는 방정식은 얼마나 취약한가. 정말로 그 한 사람을 지키면 승리하고, 정리하면 패배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내부의 갈등을 정리하고, 분열된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더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는 길이 남아 있는 것일까.

 

나는 정치가 계산의 기술이기 이전에, 인내와 방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고집을 부린다는 뜻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도부가 언론의 소음에 즉각 반응하기보다, 정당이 지켜야 할 가치와 지향점을 다시 붙드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주권자인 국민을 믿고, 국민을 향해 말하고, 국민 앞에서 책임지는 길 말이다.

 

상처 입은 자리에서 더 성숙한 선택이 나온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지금의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의 압박에 굴복하는 것은 빠른 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을 잃는 길일 수 있다. 때로는 침묵으로 대응하는 것이, 불필요한 소란에 생명을 공급하지 않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일 수도 있다.

 

지금은 어둡고 답답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정치가 완전히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고 믿고 싶지 않다. 비관도, 근거 없는 낙관도 경계하면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투쟁이란 반드시 고함과 분노를 뜻하지 않는다. 때로는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치열한 투쟁이 된다.

 

정치는 움직이는 시계추와 같다. 문은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린다. 그러나 그 두드림은 소음이 아니라 인내여야 한다. 붓은 화가의 손에 있어야 하고, 말은 비평의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그 질서가 다시 회복될 때, 정치도, 언론도, 그리고 이 나라의 공적 대화도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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