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리와 실천이 거세된 영성의 조용한 파산
최근 대한민국의 한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깊은 침묵 속에 머물렀다. 드러난 의혹과 추문들은 한 개인의 낙마로만 설명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그것은 한 사람의 실패라기보다, 우리가 오랫동안 길러온 어떤 영성의 초상이었고, 그 초상은 불편할 만큼 우리 자신을 닮아 있었다.
나는 그 장면들 속에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신앙’이라 불러왔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혹시 우리는 신앙의 이름으로 세속적 욕망을 단정히 분칠해 온 것은 아니었는가? 경건한 언어와 익숙한 표정 뒤에서, 탐욕과 편의가 신앙의 옷을 입고 자라난 것은 아니었는지 마음이 무겁다.
이 질문은 그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가 속한 교회 공동체 전체에게 던져진 물음이다. 더 참담한 것은, 그 인물이 한국 교회의 보수적 가치를 대표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가 속한 교단의 이름이, 내가 몸담아 온 교회와 신학 전통과 겹쳐 보일 때, 나는 피할 수 없는 자각 앞에 섰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되다’고 가르쳐 왔다. 정통 신학과 정통 실천의 균형을 강조해 왔다고 스스로를 평가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 앞에서 나는 묻게 된다. 우리가 그렇게 강조해 온 말들이, 삶의 현장에서는 왜 이토록 무력했는가?
나는 이 사건을 보며, 주일에는 경건한 예배자로 서고 평일에는 기득권을 지키려고 편법과 군림을 마다하지 않는 신자를 은근히 우대해 온 교회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얼굴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하다. 우리는 정통 교리를 지켰고, 바른 신앙을 가르쳤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그 신앙이 삶의 윤리로 내려오지 못했다면, 그것은 이미 길을 잃은 영성이 아니었을까?
윤리가 거세된 영성은 더 이상 영성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을 가리기 위한 장식이며, 신앙을 이용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얇은 가면일 뿐이다. 우리는 세상적 성공을 노골적으로 ‘축복’이라 가르치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오르고, 영향력을 확보하며, 공적 영역에서 ‘우리 편’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은근히 하나님의 영광으로 해석해 온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 과정에서의 도덕적 흠결에는 눈을 감고,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침묵을 선택해 온 것은 아니었는가?
권력을 쥐는 일이 곧 신앙의 성취인 것처럼 이야기될 때,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길러냈다. 교회는 검증하고 경책하기보다, 교회의 이해를 대변해 줄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지를 보냈다. 그렇게 교회는 한 사람의 신앙을 돌보지 못했고, 결국 괴물을 키워냈다. 이 책임은 특정 개인에게만 돌릴 수 없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고 공정의 가치를 훼손하는 삶에서 어떤 신앙의 향기가 날 수 있을까? 세상은 우리의 교리를 먼저 보지 않는다. 우리의 조직을 먼저 평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우리의 삶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그 냄새가 복음의 향기인지, 아니면 위선의 냄새인지를 본능적으로 구분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성경의 말은, 특정 인물을 겨냥한 돌이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를 향한 거울이다. 진영 논리와 기득권 수호에 갇혀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보지 못하는 교회, 보편적 시민 윤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교회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그 결과가 혐오와 냉소라면, 우리는 그 책임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신학자로서 나는 이제 교회를 향해 말하고 싶다. 껍데기뿐인 신앙을 내려놓고, 참회의 자리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정통 신학을 그렇게 사랑했다면, 정통 실천을 같은 열정으로 회복하자고 말하는 바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나는 깨닫는다. 그 사람의 윤리적 결함은 곧 나 자신의 결함이며, 우리의 가르침이 삶으로 이어지지 못한 결과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무너짐은 아프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철저한 자기부정과 회개가 따른다면, 이 상처는 은폐의 이유가 아니라 갱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번 사건은 우리에게 세상적인 ‘높은 곳’을 향한 종교적 야망을 멈추라고 말한다. 삶의 자리에서 정직과 공의를 실천하지 못하는 영성은 과감히 버려라고 외친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쌓아 올린 바벨탑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나는 세상 앞에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다시 다짐한다. 신앙과 삶의 불일치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고 각오한다. 윤리 없는 영성은 파산한다. 이제 남은 길은 하나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처절한 자기 갱신이다. 그리고 다시 삶으로 내려오는 믿음이다. 그 길이 느리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곳에서만 복음은 다시 살아 숨 쉴 수 있을 것이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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