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끗해지면 막을 수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들판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교회의 숨은 점점 더 가빠진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흔들려는 흐름 속에서 여러 법과 제도들이 반복해서 제안되고 있다. 교회는 그 앞에서 물러서지 않으려 애써 왔다. 어떤 이들은 기도하며, 어떤 이들은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며, 또 어떤 이들은 조용히 말씀을 붙들고 서 있었다.
그러나 길은 늘 하나로만 오지 않는다. 정면으로 오던 흐름이 어느 날 다른 이름을 달고 돌아오기도 한다. 이름은 달라도 방향은 비슷한 여러 법안들이 이어서 등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깊은 우려를 느끼는 몇 가지 법안들이 있다.
먼저, 국회에 다시 발의된 차별금지 관련 법안이다. 이미 여러 차례 논의되었다가 사라졌던 법안이지만, 이번에 등정헌 법안은 더 강한 제재와 처벌을 담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만일 이러한 법이 제정된다면 교회가 동성애 문제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자유롭게 설교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염려한다. 복음을 전하는 일조차 오해와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설교자는 양심과 법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다. 낙태와 관련된 제도의 방향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언제나 사회 전체가 고민해 온 어려운 주제였다. 그러나 일부 개정안은 낙태 허용 범위를 크게 넓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많은 신앙인들에게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교회는 태아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이해해 왔기에, 생명의 문제 앞에서 더욱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을 가진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를 단지 정치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양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다른 논의는 종교단체에 대한 행정적 감독과 관련된 민법 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종교단체에 대한 조사와 해산 절차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이단이나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단체를 규제하기 위한 장치라고 보지만, 다른 이들은 이 권한이 넓게 적용될 경우 종교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교회는 언제나 권력 앞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기도회와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에서도, 광주에서도, 오산리에서도, 부산에서도, 서울에서도 사람들은 모여 기도하고 외치고 있다. 어떤 이는 깃발을 들고 소리치고 있고, 어떤 이는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있다. 모두가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 “주님,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도 가운데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또 하나의 질문이 있다. “세상이 강해서 교회가 흔들리는 것일까, 아니면 교회가 먼저 약해진 것일까.”
성경은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루살렘이 무너졌던 날, 사람들은 바벨론이 너무 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다른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넘겨주셨다고 했다. 바벨론은 다만 하나님의 손에 들린 막대기였을 뿐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우리는 쉽게 남을 탓할 수 없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길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회 앞에 다가오는 위기는 언제나 하나의 초대일지도 모른다. 돌아오라는 초대, 다시 거룩을 배우라는 초대다.
기도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혹시 한국교회가 지금 공격을 받는 이유가 단지 세상이 악하기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공격받기 쉬운 모습이 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어쩌면 교회가 먼저 해야 할 가장 깊은 일은 마음을 씻는 일, 하나님 앞에서 다시 무릎을 꿇는 일일지도 모른다.
창조 질서를 지키려는 목소리와 함께, 교회의 안전을 보장받는 정치 질서 복귀와 별도로, 다시 거룩해지는 교회 운동이 필요해 보인다. 설교자가 먼저 하나님 앞에 서고, 교회가 다시 빛을 회복함이 어둠을 꾸짖는 것보다 더 강한 길이다. 빛이 되는 것이다. 어둠을 밝히려는 교회의 문지방은 언제나 회개다.
브니엘신학교 총장, 최덕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