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정치: 두 왕국론과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
기독교한국 (페이스북 김요셉에서 옮겨 옴) 2025. 5.26.
요약 : 교회가 세속 국가에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은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보장, 명백한 도덕적 악에 대한 제재, 교회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 유지, 교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체제나 이념에 대한 적극적 저항, 복음 선포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 체제의 수호가 있습니다. 위험한 선 넘기로는 기독교 국가 건설, 교회법의 국법화, 정치적 권력 장악, 경제나 외교, 국방 등 세속 영역의 직접 통제, 특정 정치 세력과의 과도한 결탁, 정치적 이념을 복음과 동일시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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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교회는 정치 참여의 범위와 방식을 둘러싸고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일부는 차별금지법 반대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있으며, 다른 일부는 사회정의 실현을 명목으로 진보 정당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반된 접근들이 모두 "기독교적 가치"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성경적 관점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 글은 루터와 캘빈의 두 왕국론에 근거하여, 현재 세상 체제의 영적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교회가 세속 국가에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논하고자 합니다. 나아가 한국 교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정치 참여 양상들을 이 기준으로 평가하고, 성경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현재 세상의 영적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이 계시하는 세상 권력의 본질을 파악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4:6에서 사탄이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게 넘겨준 바 되었다"고 주장한 것과, 요한복음 14:30에서 예수님이 언급하신 "이 세상의 임금", 그리고 에베소서 6:12가 계시하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은 현재 세속 권력이 단순히 중립적 영역이 아니라 영적 전쟁의 격전지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성경적 증언은 세속 정치가 본질적으로 영적 세력들의 각축장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이 영역에 개입할 때는 극도의 신중함과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우주적 주권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하지만 이 주권의 실현에는 "이미 그러나 아직"의 종말론적 긴장이 존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승리하셨지만, 그 승리의 완전한 실현은 재림 때까지 연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하되, 현재 "이 세상의 임금"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단순한 정교분리 이론이 아니라, 타락한 세상의 영적 현실에 대한 신학적 통찰이었습니다. 루터는 사탄이 현재 세상의 권위를 넘겨받았다는 성경적 증언의 의미를 깊이 이해했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교회가 세속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는 종교의 자유 보장과 교회의 복음 선포 자유 확보, 그리고 명백한 도덕적 악에 대한 제재만을 허용했습니다. 반면 기독교 국가 건설, 교회법의 국법화, 정치적 권력 장악, 세속 정책에 대한 직접적 개입 등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루터에게 있어 교회의 진정한 무기는 말씀과 성령이지 정치적 권력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임금"이 지배하는 영역에서 진정한 변화는 복음의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캘빈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론은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강조에서 나온 것이지만, 에베소서 6:12의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이라는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캘빈은 국가의 기독교적 통치 촉구, 공공 도덕의 기독교적 기준 적용 요구,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적극적 개입 등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영적 전쟁의 본질을 간과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세속 권력 구조 자체가 악한 영적 세력의 영향 하에 있을 때, 교회가 그 구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교회를 세상과 타협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 교회의 사명을 살펴보면, 에베소서 6:12의 교훈에 따라 교회의 진정한 전투는 영적 차원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세속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합니다. 교회의 우선적 무기는 기도와 중보, 복음 선포, 영적 분별, 거룩한 삶을 통한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적 증거입니다. 반면 정치적 권력 추구는 "이 세상의 임금"의 영역에서 싸우는 것이며, 세속적 방법론은 영적 전쟁에서 무력하고, 과도한 정치 참여는 교회의 예언자적 목소리를 약화시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세상과 구별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복음의 능력으로만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정치적 권력을 통한 변화 추구는 결국 "이 세상의 임금"의 영역에서 싸우는 것이며, 이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왜곡시킬 위험이 큽니다.
한국 교회의 정치 참여 현실에서 진보적 정치 참여의 심각한 문제점은 교회 존립에 대한 치명적 위협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은 중국 공산당의 초한전에 의한 침략이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깊숙하게 진행되어 중국의 세력권에 포섭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동시에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호전적인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더불어 그들의 사상전에도 밀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중국과 북한은 모두 강력한 기독교 탄압국가입니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정권 하에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극도로 심화되어 교회당이 파괴되고, 목회자들이 구금되며, 신도들이 감시받고 있습니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 신앙 자체를 반체제 활동으로 규정하여 극형으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이들 국가의 세력권에 편입되는 것은 한국교회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합니다. 이는 추상적 우려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실존적 위기입니다.
한국의 진보 정당들은 명백히 친중국 친북한적 성향을 보이며, 동시에 반미 반일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정책 방향은 중국과의 경제적 종속 심화,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유화정책, 한미동맹 약화, 자유민주주의 체제 약화 등입니다. 이러한 정책들이 관철될 경우, 한국은 필연적으로 중국 북한 세력권으로 편입되고, 그 결과 한국교회는 존립 기반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이런 명백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일부 목회자들이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교회의 생존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살행위와 다름없습니다. 이들의 문제점은 현실 인식의 심각한 결여, 신학적 기초의 혼란, 역사적 교훈에 대한 무시로 나타납니다. 중국 북한의 기독교 탄압 실상에 대한 무지 또는 의도적 외면, 지정학적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적 접근, 한국교회의 생존 위기에 대한 심각성 인식 부족이 현실 인식의 결여를 보여줍니다. 복음보다 정치적 이념을 우선시하는 전도된 가치관, "사회정의"라는 명분으로 교회의 존립 기반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 마르크스주의적 계급투쟁 논리를 기독교적 가치로 포장하는 것이 신학적 기초의 혼란을 나타냅니다.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교회가 겪은 참혹한 탄압사를 외면하고, 구소련, 동유럽, 중국, 북한 등에서 벌어진 기독교 말살 정책을 무시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만 교회가 번영할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역사적 교훈에 대한 무시를 보여줍니다.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목회자들은 목회자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인 교회와 성도들의 안전 보호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양떼를 늑대에게 내주는 행위이며, 신앙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성도들에 대한 배신이며,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 방기입니다. 이들 목회자들의 행위는 영적 분별력의 완전한 상실을 보여줍니다. 사탄의 전략에 속아 넘어가고, 적그리스도적 세력에 대한 무분별한 지지를 하며, 거짓 선지자의 특징을 보입니다. 이들의 접근은 루터의 두 왕국론을 완전히 왜곡한 것으로, 교회의 생존권을 포기하고, 복음과 반기독교 이념을 혼동하며, "이 세상의 임금"에게 협력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정치 참여를 평가할 때 반드시 구분해야 할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교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과 일반적 사회 정책에 대한 의견 개진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반공산주의 활동은 교회의 생존과 복음 선포의 자유에 직결되는 문제이며, 역사적으로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교회가 체계적으로 탄압받은 현실과 북한의 극심한 기독교 박해라는 현재 진행형 위협, 그리고 교회의 본질적 사명 수행을 위한 필수적 조건과 관련됩니다. 이러한 영역에서는 교회가 적극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고 행동하는 것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입니다.
반면 진보 정당 지지나 기타 사회 정책의 경우 교회의 존립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영역이며, 복음과 특정 정치 이념을 혼동할 위험성과 교회 공동체의 분열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영역에서는 두 왕국론의 원칙에 따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일반적 정치 참여에서의 위험성을 살펴보면, 특정 정당이나 이념과의 과도한 결탁은 교회의 예언자적 목소리를 약화시킵니다. 단, 교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예외입니다. 해당 정당이나 이념의 부정의를 지적하기 어려워지고, 복음보다 정치적 이익을 우선시하게 될 위험이 있으며, 교회의 독립성과 초월성이 상실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편향은 필연적으로 교회 공동체의 분열을 야기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생존 자체가 걸린 문제에서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교회의 일치를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경적 대안을 모색하면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 재정립된 두 왕국론에 따라, 교회가 세속 국가에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을 구분해야 합니다. 허용 가능한 선으로는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보장, 명백한 도덕적 악에 대한 제재, 교회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 유지, 교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체제나 이념에 대한 적극적 저항, 복음 선포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 체제의 수호가 있습니다. 위험한 선 넘기로는 기독교 국가 건설, 교회법의 국법화, 정치적 권력 장악, 경제나 외교, 국방 등 세속 영역의 직접 통제, 특정 정치 세력과의 과도한 결탁, 정치적 이념을 복음과 동일시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의 올바른 전략으로는 기도 중심적 대응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정치적 로비보다는 중보기도를 통한 영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며, 사회 지도층을 위한 중보기도, 국가와 정부를 위한 기도, 영적 각성과 부흥을 통한 사회 변화 추구가 포함됩니다. 복음 중심적 증거 역시 중요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통한 사회 변화를 추구해야 하며, 개인의 회심과 성화를 통한 사회 변화, 교회 공동체 내에서의 나눔과 섬김 실천, 사랑의 실천을 통한 사회적 증거가 필요합니다.
예언자적 목소리 유지도 필수적입니다. 모든 권력과 체제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는 독립적 입장을 유지해야 하며, 정치적 중립성 유지, 모든 권력에 대한 비판적 거리 두기, 복음적 가치에 근거한 일관된 입장이 요구됩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 적대감 조장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한 사회 치유가 필요하며, 화해와 용서의 사역, 섬김과 희생을 통한 증거, 공동체적 사랑의 실천이 포함됩니다.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는 교회 내부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정치적 편향성 제거, 복음 중심의 설교와 교육, 영적 성숙을 통한 사회 참여, 교회 공동체 내에서의 사회정의 실천이 포함됩니다. 사회를 향한 증거 역시 중요합니다. 말씀에 근거한 도덕적 입장 표명, 사회 약자에 대한 실질적 돌봄, 화해와 치유의 사역, 복음 전파를 통한 근본적 변화 추구가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복음의 능력으로 사회의 어둠에 맞서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이러한 영적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지혜를 제공합니다.
한국 교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정치 참여 양상들 중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와 반공산주의 활동은 교회의 본질적 존립과 복음 선포의 자유에 직결되는 문제로서,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필수적 영역입니다. 특히 중국 북한의 세력 확장과 그에 따른 한국교회 존립 위기라는 현실 앞에서,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입니다.
반면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목회자들의 행위는 단순한 정치적 편향을 넘어 교회의 존립 기반을 스스로 파괴하는 치명적 오류입니다. 이들은 기독교 탄압국가의 세력 확장에 협력함으로써 한국교회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으며, 이는 목회자로서의 기본 사명을 완전히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적 사회참여는 복음의 능력과 영적 차원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치적 권력이나 제도적 강제력에 의존하는 것은 결국 "이 세상의 임금"의 영역에서 싸우는 것이며, 이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왜곡시킬 위험이 큽니다.
교회는 기도와 중보, 복음 선포, 영적 분별, 거룩한 삶을 통한 구별된 공동체적 증거라는 영적 무기로 무장하여, 모든 권력과 체제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지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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