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적 정치신학
국가는 교회의 신앙의 자유를 지켜주는 보호막이다 - 루터의 두 왕국론에 기반한 복음주의적 정치신학
현대 한국교회는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세속화의 압력과 이념적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며, 국가 권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마르틴 루터의 두 왕국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루터의 정치신학은 교회와 국가가 각각 하나님께서 세우신 고유한 영역을 가지며, 상호 보완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간다는 통찰을 제공한다.
"국가는 교회의 신앙의 자유를 지켜주는 보호막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이다"라는 명제는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성경적 세계관에 근거한 신학적 고백이다. 이는 국가를 신격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정부주의적으로
부정하지도 않는 균형 잡힌 관점을 제시한다. 오히려 국가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해하되, 그 궁극적 목적이 교회의 사명 완수를 위한 환경 조성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두 개의 서로 다른 왕국으로 다스리신다고 보았다. 이는 이원론적 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방식의 차이를 설명하는 신학적 구분이다. 좌편 왕국은 세속 권세의 영역으로,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시기 위해 세우신 제도이다. 이 왕국은 칼, 즉 강제력을 통해 다스려진다. 국가는 이 좌편 왕국의 대표적 기관으로서, 법과 제도를 통해 악을 억제하고 선을 장려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로마서 13장 1-7절이 이를 명확히 증거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우편 왕국은 복음과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영적 영역이다.
이 왕국에서는 말씀과 성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교회는 이 우편 왕국의 핵심 기관으로서, 복음 선포와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한다. 여기서는 강제가 아닌 설득과 감화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다. 이 두 왕국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좌편 왕국은 우편 왕국이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평화롭고 안정된 환경을 제공하며, 우편 왕국은 좌편 왕국에 도덕적 기초와 정신적 토대를 공급한다.
루터의 두 왕국론에 따르면, 국가는 단순한 인간적 계약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이다. 이는 국가가 신적 권위를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세워졌다는 뜻이다. 그 목적은 바로 질서 보전과 정의 실현을 통해 인간 사회가 최소한의 평화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별히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핵심적 사명 중 하나이다. 이는 국가가 종교에 개입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세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는 교회가 복음을 자유롭게 선포하고, 신자들이 양심에 따라 신앙을 고백하며, 교회 공동체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틀을 제공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는 교회의 보호막이다. 마치 성전의 외벽이 성소를 보호하듯이, 국가의 법질서는 교회의 거룩한 사명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교회가 세상과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교회가 세상 속에서 그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적 조건을 의미한다.
교회는 국가의 보호를 받지만, 동시에 국가로부터 독립된 영역을 유지해야 한다. 이는 교회가 국가의 하위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께 직접 책임을 지는 독립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독립성은 몇 가지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첫째, 교리적 독립성이다. 교회는 성경에 근거한 교리와 신앙고백을 국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천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교회가 무엇을 믿고 가르칠지에 대해 지시할 권한이 없다. 둘째, 조직적 독립성이다. 교회는 목회자 선출, 교회 운영, 예배 형식 등에 관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이러한 교회의 내부 사안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셋째, 선교적 독립성이다. 교회는 복음 전파와 선교 활동을 국가의 허가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독립성은 사회적 무관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왕과 권력자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듯이, 현대 교회도 국가 권력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날 때 이를 비판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정치적 개입이 아니라 영적 사명의 일부이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 않는다. 한쪽이 강해지면 다른 쪽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고유한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때 전체적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국가가 교회에 제공해야 할 것들 : 국가는 무엇보다 종교의 자유를 헌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예배의 자유만이 아니라, 선교의 자유, 종교 교육의 자유, 종교적 출판의 자유 등을 포괄한다. 또한 교회의 재산권과 운영의 자율성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국가는 교회 간의 갈등이나 이단 문제에 개입하기보다는, 교회가 스스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자율적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교회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것들 : 교회는 시민들의 도덕성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성경적 가치관에 기반한 윤리 교육은 건전한 시민 사회 형성에 도움이 된다. 또한 교회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정의와 공의를 추구하며, 화해와 용서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국가가 추구하는 사회 통합과 안정에 기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은 교회가 국가의 도구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최우선이며, 국가의 정책이 성경적 가치와 충돌할 때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사도행전 5장 29절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원칙이 여기에 적용된다.
모든 국가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어떤 국가는 교회의 사명을 지원하고, 어떤 국가는 이를 방해한다. 복음주의적 정치신학은 국가 체제를 분별하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교회가 수용 가능한 체제의 특징 :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구조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체제이다. 이는 국가가 기독교 국가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최소한 종교적 신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둘째,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이다. 이는 법적 보장뿐만 아니라 실질적 보장을 포함한다. 셋째, 권력 분산과 견제 장치가 존재하는 체제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며, 이는 결국 교회의 자유도 위협하게 된다. 넷째, 법치주의가 확립된 체제이다. 자의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권력 행사는 교회의 안정적 사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교회가 거부해야 할 체제의 특징 : 첫째, 국가나 특정 이념을 신격화하는 전체주의 체제이다. 이는 하나님의 자리를 국가나 지도자로 대체하려는 우상숭배이다. 둘째, 종교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체제이다. 이는 교회의 존재 자체를 위협한다. 셋째, 교회를 국가의 도구로 만들려는 체제이다. 이는 교회의 독립성을 파괴하고 복음의 순수성을 훼손한다. 넷째, 복음 전파를 금지하거나 탄압하는 체제이다. 이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루터의 두 왕국론 관점에서 평가해보면, 상당한 긍정적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국교 설립 금지 조항은 교회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한국교회는 지난 수십 년간 상당한 자율성을 누리며 복음 전파와 선교 사역을 자유롭게 펼쳐왔다. 그러나 동시에 주의해야 할 위험 요소들도 존재한다. 급진적 세속주의의 확산은 종교의 자유를 사적 영역으로 축소시키려 한다.
일부 이념적 세력들은 교회의 사회적 발언 자체를 정교분리 원칙 위반으로 몰아가려 한다. 또한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같은 입법 시도들은 교회의 교리적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를 미화하거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사회 주요 부문에 침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내부에서 해체하려 한다. 만약 이들이 성공한다면, 한국교회가 누려온 자유는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몇 가지 실천적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신학적 정체성의 확립이다. 교회는 루터의 두 왕국론과 같은 견고한 신학적 토대 위에서 정치 현실을 바라보아야 한다. 감정적 반응이나 당파적 편견이 아니라, 성경적 원리에 근거한 분별력을 길러야 한다. 둘째, 예언자적 사명의 회복이다. 교회는 권력의 부패와 불의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비판은 복음에 근거해야 하며, 특정 정치 세력의 이익에 봉사해서는 안 된다.
셋째, 시민 의식의 함양이다. 교회는 성도들이 건전한 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는 정치적 무관심도 정치적 광신도 아닌, 성숙한 시민 정신을 의미한다. 넷째, 종교의 자유 수호이다. 교회는 자신의 자유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 이는 관용의 정신뿐만 아니라 전략적 지혜이기도 하다. 다섯째, 국가 정체성의 수호이다. 교회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가치를 지켜야 한다. 이는 정치적 편향이 아니라 복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 과제이다.
"국가는 교회의 신앙의 자유를 지켜주는 보호막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이다"라는 명제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압축한다. 이는 국가를 신격화하지도 않고 무시하지도 않는 균형 잡힌 관점이다. 국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로서 질서 보전과 정의 실현의 사명을 갖는다. 특히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교회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국가는 절대적 권위가 아니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하는 상대적 존재이다. 교회는 국가의 보호를 받지만 동시에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교회는 복음 선포와 영혼 구원이라는 고유한 사명에 집중하되, 사회적 불의와 권력의 부패에 대해서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사회의 도덕적 기초를 제공하고, 화해와 사랑의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현재 한국교회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세속화와 이념적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루터의 두 왕국론과 같은 견고한 신학적 토대가 필요하며, 이를 현대적 상황에 지혜롭게 적용하는 실천적 지혜가 요구된다.
결국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대립이 아니라 협력의 관계여야 한다. 각자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고유한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더욱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루터의 두 왕국론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며, 복음주의적 정치신학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이다.
김요셉 목사, 기독교한국 | 2025. 8.19.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