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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신뢰의 자리에서

사법부를 바라보며 드리는 조용한 탄식

 

그래도 나는 사법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러한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비판의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도, 나는 먼저 한숨부터 쉰다.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법원이 얼마나 많은 순간 국가 공동체를 붙들어 주었는지 나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판결을 두고 사람들이 크게 흔들릴 때,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묻는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단지 한 사건의 결론인지, 아니면 더 깊은 신뢰의 균열인지. 요즘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형량의 크기 자체보다, 법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빛이 점점 피로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법이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요건과 증명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배워 왔다. 어떤 범죄가 성립하려면 그에 맞는 엄밀한 판단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이 투명하게 납득될 때 비로소 판결은 공동체의 신뢰를 얻는다. 그러나 현실의 법정이 정치적 해석과 사회적 긴장 속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많은 시민들이 공유하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문제는 단순한 유무죄를 넘어선다.

 

나는 단정적인 말로 법원을 재단하고 싶지 않다. 법정 안에서 실제로 어떤 증거와 논리가 다루어졌는지, 우리는 결국 제한된 정보로만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 대통령에 대한 판결을 둘러싼 공기 자체가 이미 심하게 갈라져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신뢰는 판결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신뢰는 사람들이 그 과정을 공정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공동체가 무너질 때 가장 먼저 약해지는 것은 신뢰의 근육이다. 법원이 정치의 소음 한가운데 서게 될수록, 판결 하나하나가 필요 이상으로 정치적 의미를 뒤집어쓰게 될수록, 법의 고유한 언어는 점점 더 힘을 잃는다.

 

상처 입은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환호나 절망이 아니라, 무엇이 우리 사법 신뢰를 이 지경까지 흔들어 놓았는지에 대한 정직한 성찰일지도 모른다. 법원 내부의 문제든, 정치권의 압박이든, 혹은 사회 전체의 극단화든 우리는 그 복합적인 현실을 외면한 채 어느 한쪽만을 악으로 단정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는 눈에 보이지 않게 빠르게 몰락한다. 서로 다른 판단을 가진 사람들이 끝내 법정의 결론 앞에서는 멈출 수 있기 때문에 공동체는 유지되어 왔다. 그 마지막 신뢰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사회는 각자의 확신만 들고 서로를 향해 서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아주 느리고 조심스럽게, 사법부가 스스로 자신의 신뢰를 회복해 가기를 바란다. 법관들이 어떤 외부의 소음보다도 기록과 양심 앞에 더 오래 머무르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시민들 역시, 분노만으로 법을 소비하기보다, 법이 다시 신뢰를 얻으려고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묻는 성숙함을 배우게 되기를 바란다.

 

이론적으로는 사법부의 신뢰 상실이 나라의 종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나라의 법치가 끝났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지금은 분명히, 깊은 회복이 필요한 시간이라고 고백하고 싶다. 자유와 법치는 한 번의 판결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시간, 수많은 양심의 선택 위에 천천히 세워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기도한다. 대한민국이 다시 법을 믿을 수 있는 나라로 남아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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