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셰익스피어는 아직도 우리를 흔드는가?
햄릿: 인간의 질문, 하나님의 대답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존재할 것인가,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는 그의 희곡 『햄릿』 제3막 제1장에서 주인공 햄릿이 홀로 자신의 운명을 성찰하며 내뱉는 독백의 첫 구절이다. 이 한 문장은 단순히 삶과 죽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과 불의가 가득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모든 고통을 끝내는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이다.
햄릿은 권력자의 횡포와 사회의 부조리, 사랑의 배신과 인간의 모욕을 견디는 것이 더 나은지, 아니면 죽음을 통해 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나은지를 깊이 숙고한다. 그러나 그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라는 사실 때문에 누구도 쉽게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셰익스피어는 한 왕자의 내면 독백을 통해 모든 시대의 인간이 마주하는 실존적 갈등을 보편적 언어로 형상화하였다.
이처럼 『햄릿』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독백은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인간은 시대와 문명이 달라져도 삶의 의미를 묻고, 고통의 이유를 질문하며, 현실에 맞서 행동해야 하는지 인내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죽음이 끝인지 또 다른 시작인지에 대한 물음 또한 모든 시대의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보편적 인간 경험을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문학적 언어로 승화시켰다.
그의 다른 비극 작품들인 『오셀로』, 『맥베스』, 『리어 왕』 역시 마찬가지이다. 망설이다가 모든 것을 잃는 햄릿, 질투 때문에 사랑을 파괴하는 오셀로, 권력욕을 좇다가 양심과 생명을 함께 잃는 맥베스, 사랑을 오해하여 끝내 깊은 고독 속에 무너지는 리어 왕은 모두 인간 내면의 보편적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공연되고 읽히는 이유는 인간의 본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망설이고, 질투하며, 권력을 탐하고, 사랑을 갈망하며, 늙음과 상실 앞에서 외로움을 경험한다. 햄릿의 망설임이 어느새 우리의 고민이 되고, 리어 왕의 고독이 부모 세대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며, 맥베스의 욕망 속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우리는 셰익스피어가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이처럼 깊은 통찰을 남길 수 있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는 1564년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평범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문법학교에서 라틴어와 고전 문학, 수사학과 논리학을 배웠다. 그러나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그의 학문은 대학 강의실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계속되었다. 세익스피어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역사와 신화, 성경을 폭넓게 읽었고, 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하면서 왕과 귀족, 상인과 군인,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였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권력 투쟁, 전염병과 사회적 불안이 이어지던 시대를 살아가며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사랑과 배신, 권력과 죽음을 몸소 경험하였다. 이러한 폭넓은 독서와 예리한 인간 관찰, 시대적 경험 위에 비범한 상상력과 언어적 천재성이 더해져 『햄릿』을 비롯한 불후의 명작들이 탄생했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은 인간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들여다본 데 있다. 그는 인간을 영웅이나 악인으로 단순화하지 않았다. 그의 인물들은 선과 악, 용기와 두려움, 신념과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존재들이다. 그는 인간 내면의 가장 은밀한 동기와 갈등을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바로 이러한 통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시대가 바뀌고 언어와 문화가 달라져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셰익스피어의 통찰에도 한계가 있다. 『햄릿』의 독백은 인간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실존적 성찰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는 그 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햄릿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눈앞에는 죽음이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미지의 나라'로 남아 있다. 이 지점에서 문학과 계시는 갈라진다. 문학은 질문을 던지고 인간의 내면을 해부하지만, 복음은 그 질문에 하나님의 계시로 응답한다. 성경은 인간의 삶과 죽음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죽음 이후에는 심판과 영생이 있음을 분명히 선포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은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부활과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인간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성찰을 보여 준다. 그러나 성경은 그 성찰이 끝나는 자리에서 새로운 빛을 비춘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이 누구인지를 탁월하게 묘사했지만,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죄와 욕망, 고통과 죽음의 현실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그려 냈지만,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구속의 길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 길은 오직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존재할 것인가,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To be, or not to be)는 인간 실존의 가장 깊은 고민을 표현한 문학사의 명언인 동시에,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계시를 갈망하도록 이끄는 질문으로 읽을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위대하며, 동시에 복음은 그 문학을 완성하는 궁극의 해답이 된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