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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교회사관

 

 최덕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역사신학)

 

역사연구는 역사적 사실(事實)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건전 타당한 사관(史觀)을 요구한다. 사관에 따라 특정 사건이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선과 악, 의와 불의, ()과 사()의 자리가 뒤바뀌기도 한다. 교회사도 예외가 아니다. 관점과 기준에 따라 사건의 중요성이 결정되고 해석이 달라진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역사적 기독교 또는 개혁신학 전통과 궤를 같이 한다. 실증주의적 탐색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진리성을 기준으로 기독교신앙고백공동체의 역사를 평가하고 기술한다.1 바깥세계로부터 온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역사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특정 시대의 교회와 기독인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믿고 고백했으며 또 하나님께서 요구한 것에 무슨 반응을 보였는가에 주목한다. 성경을 교회사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동시에 교회가 처한 다양한 역사적 국면들을 포괄적으로 관찰하고 그 교회와 기독인들의 신앙고백적 실천에 주목한다. , , 행동으로 머리, 가슴, , 발로 표현한 신앙고백 행위들을 주시한다. 당대의 교회가 얼마나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충실했는가를 살핀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을 이해하려면 비교할 수 있는 교회사관들을 살펴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실증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객관적 역사연구가 과연 가능한가? 역사의 본질이 무엇인가? 신앙고백교회사관과 종교개혁시대의 고백주의 교회사 편찬 방법은 어느 정도로 다른가?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한국교회사 연구에 동원된 사관들을 살펴보고 세계교회사 편찬 흐름을 소개하려고 한다.

 

1. 한국교회 사관의 유형들

 

한국교회사관의 효시는 백낙준 교수(연세대학교)선교사관이다. 예일대학교의 교회사가 라토우레트(Kenneth Scott Latourette???)가 표방한 사관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선교의 역사라는 것이다. 선교사들의 활동에 초점을 둔다.2 바야흐로 교회가 조직되고 노회, 대회, 연회, 총회가 결성되고, 무슨 일을 했는가에 주목한다. 복음전파, 교회조직, 집회, 예배, 세례, 성찬 등을 우선시 한다. 19세기에 유행한 선교운동을 기술하는 방식이다. 피선교지 기독인들의 시각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은연 중 서양 기독교 세계의 정복주의 관점을 반영한다. 이 사관에 따르면 아시아의 교회사는 유럽/북미교회사의 마지막 장이다.

 

민경배 교수(연세대학교)민족교회사관을 제시한다.3 기독교가 민족이라는 토양에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가를 민족의 주체적 관점으로 파악하는 사관이다. 선교사관의 약점과 서양기독교의 팽창주의적 관점을 탈피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복음을 민족이라는 범위 안에 제한시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복음이 무엇이며 교회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통찰을 가지고 접근하지 못한다. 민족교회에 대한 강조는 타민족 교회와의 단절을 의미할 수도 있다. 다민족사회에 부합한 교회사관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의 보편성에 저촉된다. “민족교회라는 개념도 모호하다.

 

민경배의 사관은 일본 동지사대학교 교회사학부가 지향해 온 일본민족주의교회사관의 복사판이다. 민경배는 이 학교의 도히 아키오(土肥昭夫) 교수의 지도를 받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일본민족교회사관이 일본교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복음을 일본화 시킨 주범이라고 비판한다. 이 사관은 복음이 특정 민족을 복음화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이 복음을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한다. 복음이 일본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일본기독교가 일본 민족주의에 의해 변화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4

 

이만열 교수(숙명여자대학교)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학파는 실증주의와 문헌고증 방식으로 교회사를 연구한다.5 이만열은 민경배의 사관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기독교의 역사를 민경배와 동일한 민족, 민족주의라는 우산 아래서 연구한다.6

 

민족을 앞세우는 사관은 민족의 고유성을 부각하지만 그리스도의 교회의 보편적 특징을 간과한다. 교회가 무엇이며,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이 결여된다.

 

이만열은 객관성을 담보할 목적으로 문헌고증을 강조한다. 19세기에 유행하던 실증주의 역사연구방법에 따른다. 실증주의 역사연구 방식은 독일에서 출발하여 일본을 경유하여 한국에 들어왔다. 사학계는 실증주의 역사연구를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로 간주한지 오래 되었다. 실증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실증주의적 역사연구가 실제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주재용 교수(한신대학교)민중교회사관으로 교회사를 기술한다.7 민족을 앞세우는 사관이 민중부재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난의 역사에서 민족에 의해 싹이 튼 기독교의 역사에 초점을 모은다. 민중 저항운동적 상황을 강조하고 소외계층, 수난계층에 관심을 둔다.

 

민중교회사관은 교회와 복음에 두어야 할 교회사의 초점을 민중에게 이동시킨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오합지졸의 오클로스를 교회 역사의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교회사 평가 기준의 주객을 전도시키는 현상을 보인다.

 

이덕주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토착교회사관은 기독교의 복음이 한국이라는 민족 상황에서 어떻게 수용, 해석, 적용되었으며, 그 결과로 어떻게 토착교회가 형성되었는가에 주목한다.8 기독교가 한국이라는 토양에 닻을 내리는 순간부터 토착화 과정을 거쳤다고 본다. 이 사관은 민족이라고 하는 상황에 초점을 두는 점에서 민경배의 민족교회사관의 범주에 머물러 있다.

 

박용규 교수(총신대학교)는 교회사를 사상사관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9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복음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는 세계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복음의 일차적 목표는 개인구원이다. 영적인 유기체인 교회는 손에 성서를 쥐고 있다. 따라서 교회사 연구는 신학사상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텍스트가 콘텍스트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회, 신앙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은 신학사상만이 아니다. 교회는 기구, 제도, 고백, 활동, 심리, 정치, 문화, 민족, 사회, 수량 측면을 가지고 있다. 선교, 수난, 예배, 기독교 생활도 교회사의 중요한 몫이다. 박용규의 사관은 포괄적인 교회사 연구 사관으로 적합하지 않다.

 

김영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한국교회의 전통과 한국인의 교회가 그리스도를 믿고 높이며 고백하는 교회, 고백하는 신학을 고려한 교회사 연구 방법을 언급한다.10 종교개혁 시대의 고백주의 역사편찬 방법과 비슷하다. 그러나 심도 있는 논의가 없는 탓으로 그가 주장하는 사관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다.

 

2. 교회사 사관의 흐름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사학자들은 교회를 조직체계로 이해하면서 교황이 통치하는 교회라는 제도의 발전과정에 주목한다. 교황 또는 감독이 무엇을 결정하고 어떤 일을 했는가 등에 주목한다. 교회 안에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을 다루지만, 궁극적 관심은 교황이 통치하는 로마교회의 사도좌(使徒座)의 수장권과 그것의 권위 확보에 있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의 교회사 정의는 다양하다. 독일 신학자 에벨링(Gehard Ebeling)은 교회사를 성경해석의 역사로 본다. 성경해석은 일차적으로 예배시간에 선포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사건이다. 교회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들은 모두 이 말씀 사건에 포함된다. 말씀선포를 중심으로 예배와 성만찬, 신학사상과 교리, 그리고 교직제도가 동심원을 그리듯이 발전했다. 이 발전의 역사가 쌓여서 교회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11

 

유럽교회의 역사는 에벨링의 독특한 이론과 다르게 진행되어 왔다. 유럽 교회사에서 말씀 사건에 상응하는 교회발전은 찾기 어렵다. 말씀 중심의 교회 확장은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틴 시대 곧 4세기에 이르러 시들해지고 교회는 제도적 성격을 지녔다.

 

유럽 기독교의 역사는 대부분 사도시대의 교회 모습 곧 말씀사건 중심의 역사와 일치하지 않다. 더욱이 유럽바깥 지역의 교회사가들의 눈으로 볼 때 동심원적 교회사 이해는 유럽중심 세계관에 부합하는 일방통행적 발상이라고 이해된다. 유럽의 기독교가 다른 대륙으로 전파되고, 곳곳에 유럽 개념의 교회가 세워지는 데 초점을 두는 시각이다.

 

보른캄(Heinrich Bornkamm)은 교회사를 세계 복음화의 역사로 규정한다. 라토우레트(Kenneth Latourette)선교의 역사, 칼빈 신학의 영향을 받은 생봉은 지상신국의 역사, 루터의 교회관에 영향을 받은 슈미트는 세계 안에서 항구적으로 활동하는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감화로 진리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정의한다. 독일인 판넨베르크(W. Pannenberg)는 기독교사를 종교사로 이해한다.12

 

미국의 시카고 학파는 교회사를 사회학적 관점으로 연구했다. 기독교를 사회현상으로 보고, 교회를 사회기구(social organ)로 이해했다. 이 학파는 1920년대부터 교회 안에서 일어난 사건과 교리가 동시대의 정황과 무관하게 또는 독립적으로 해명될 수 없다는 가정을 가지고 출범했다. 신학 외적 요인들 곧 사회학적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리차드 니버(Richard Niebuhr)는 이 맥락에서 교회분열조차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본다.13 기독인들의 순교도 신앙적 동기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동경”(libido moriendi)이라는 당대의 사회적 확신과 관련짓는다. 노예제도, 여성의 지위, 가난과 부의 문제 등을 사회과학 방법을 따라 동시대의 사회 안목으로 조망하고 분석한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유럽인들은 기존의 교회사 서술이 각 지역, 교파의 전통, 교리, 신조의 좁은 울타리 안에서 맴돌았다고 하는 자성과 함께 서로 간의 특징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는 교회사 서술이 강조했다. 윈프리드 젤러(Winfried Zeller)1949년에 세계교회사를 보편성(Universalitat)과 유일성(Originalitat)이라고 하는 두 개의 중심축을 중심으로 기술해야 함을 강조했다. 전 세계에 분포된 교회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각 지역의 특성을 부각시켜야 균형 있는 교회사 기술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3세계의 교회사학자들은 젤러의 주장에 걸맞게 교회사를 서양인의 관점으로 기술하는 방식을 배격하고 수평적 교회사, 각 지역 교회의 독특성과 유일성을 인정하는 교회사이면서도 세계교회와 일치하는 보편성을 가진 역사 연구를 강조한다.14

 

어른스트 벤쯔(Ernst Benz)에큐메니즘의 관점에서 본 교회사(Kirchengeschichte in O¨kumenischer Sicht)(1981)는 젤러의 사관에 부합하는 관점으로 쓰여진 책이다. 서로 다른 전통과 역사 배경을 가진 교회들의 역사를 하나로 묶는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교회를 포괄적으로 그려낸다.15 교회의 다양성, 특수성, 유일성을 강조하는 근대의 교회사 편찬 움직임은 에큐메니즘(Ecumenism) 정신에 입각하여 변천했다. 상대주의 관점 중심의 역사연구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 사관은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복음과 영혼구원과 진리성을 소외시킨다.

 

루카스 피셔(Lucas Vischer)1970년대에 여러 대륙의 교회사가들이 함께 다양한 전통을 대변하는 교회사 연구 작업을 하고, 보편성을 담아내는 세계교회사를 구상할 것을 천명했다. “근세 이후 변화된 기독교 세계의 현실은 오랫동안 각 교회들이 저마다 전통으로 간직해 오던 것을 신중히 재고하도록 하므로 이제부터는 다 함께 각자 자기 것을 절대화시켜서 지켜오던 신조(Konfession)와 자기 것으로 지켜오던 것들을 허물어 버리고 세계 보편적 교회공동체(universale Gemeinschaft)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16고 한다.

다양한 전통을 가진 교회들의 역사를 하나로 통합시켜 기술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시도는 포괄적이고 중립적인 교회사 편찬을 도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탈기독교적인 방향으로 치달았다. 교회가 전통적으로 신앙해 온 진리나 교리를 걸림돌로 여기는 상대주의 시각으로 교회사를 파악한다. 교회의 기구적 일치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는 시도이다. 그 결과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사 편찬 방법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공동 교회사 집필이 가능해졌다.

 

스위스의 프로테스탄트교회 역사가들과 로마가톨릭교회 역사가들은 1988년에 베른대학교에 모여 공동 연구를 하여 스위스에큐메니칼교회사17를 저술, 출간했다. 프로테스탄트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가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상대편의 전통과 교리를 상호 존중한다는 원칙에 따랐다. 복음과 영혼구원과 진리성에서 너무 거리가 먼 교회사를 만들어 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교회사관은 상대주의 시각에 기초해 있다. 전통적 기독교의 진리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성경이 제시하는 기독교의 중추적 교리의 가치를 상대화시킨다. 이렇게 나아가면 종교다원주의 시각으로 기술된 교회사가 등장할 수도 있다.18 불교교회사와 이슬람교회사와 기독교회사를 통합한 세계교회사 또는 세계에큐메니칼교회사가 저술될 수도 있다. 중추적 기독교 진리를 고백하지 않거나 포기한 교회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가 아니다. 문선명의 통일교회가 교회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진정한 교회가 아닌 것과 같다.

 

교회사 해석과 재구성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관과 역사연구를 수행하는 자의 시대 조건과 삶과 사회 환경의 지배를 반영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다. 교회사는 여러 가지 시각으로 연구될 수 있다. 역사주의사관, 경제사관, 정치사관, 문화사관, 이상사관, 사회사관, 수량(數量)사관, 심리사관, 언어사관, 민족사관, 민중사관, 이야기사관(Narrative View of History)으로 접근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눈으로 수행하는 역사평가는 상호보완적이고 호혜적(互惠的)일 수 있다. 선교사관이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민족교회사관이 밝힐 수 있고, 민족주의 교회사관이 간과한 것을 사상사관이 드러낼 수 있다.

 

모든 관점이 다 타당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교회사를 공산주의 사관, 칼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으로 연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느 저명한 신학대학교의 교회사 교수는 순환사관(循環史觀)으로 본 한국교회사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교회의 기초인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인 성경이 말하는 복음, 교회, 진리에 충실한 해석, 평가, 재구성 작업이 보편타당한 교회사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3. 고백주의 교회사 편찬

 

종교개혁 시대에 유행하던 고백주의 교회사 편찬은 복음과 진리성의 관점으로 교회사를 평가하는 신앙고백교회사관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후자는 전자가 지닌 호교성(護敎性)을 배제한다. 현대 역사연구 방법론을 중요하게 여기고 실증주의적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초기 기독교회사 편찬은 사건을 시대별로 혹은 사건별로 소개하는 식으로 수행되어 왔다. 로마제국 치하에서 기독교가 어떻게 확산되었고, 그것이 프랑크족과 앵글로 색슨족에게 어떻게 확산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중세기에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신학적 관점이 교회사 연구를 지배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의 시각으로 기술한 교회사를 정사(正史)로 여겼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관과 일치하지 않는 교회사 연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종교개혁자들은 복음적 신앙과 종교개혁 신학의 정당성을 성경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호소하면서 로마가톨릭교회가 성경에서 이탈한 것을 밝혔다. 개혁교회가 사도들의 교회에서 연원(淵源)한 신앙과 고백을 갖고 있으며 교회개혁운동이 사도적 신앙운동임을 논증했다. 개신교 신학의 정통성과 개신교의 역사성을 입증했다. 성경과 교부들의 신학에 호소하면서 신앙과 교리와 신학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고백주의 눈으로 역사를 파악했다.

 

고백주의 역사 편찬 방법은 호교적 특징을 지녔다.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사 연구가 모두 다 호교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인문주의 영향 아래서 역사본문 또는 문헌에 대한 비평적 접근을 시도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로렌조 발라(Lorenzo Valla, 1406-1457)콘스탄틴의 증여라고 하는 문서가 가짜임을 밝혀낸 것과 같은 방법으로 교회사를 편찬했다.19 일차자료를 중요하게 여기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교회사가 신학의 독립된 한 분과로 간주된 것은 마르틴 루터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옥스버그신앙고백서를 만든 멜랑톤(Melanchton, 1497-1560) 시대부터였다. 프로테스탄트와 로마가톨릭 사이의 신학 논쟁이 역사해석에 영향을 미치자 프로테스탄드들은 성경의 관점에서 멀어진 로마가톨릭교회의 역사해석과 편찬에 이의를 제기했다.

 

존 폭스(John Foxe, 1516-1587)가 저술한 순교자 열전20은 고백주의 관점으로 쓰여진 대표적인 역사서이다. 교황이 성경적 신앙을 가진 기독인들을 어떻게 탄압했는가를 기술한다. 영국의 메리여왕 치하에서 박해를 당한 프로테스탄트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수 집단이며 거대한 조직체계를 가진 로마가톨릭교회의 구성원들보다 성경적 시각과 삶을 가진 반교황주의 인물물을 진리의 증인으로 부각시킨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역사관점의 차이를 드러낸다.

 

독일인 마티아스 플라치우스(Matthias Flacius, 1520-1575)진리의 증인들 목록21에서 여러 세기 동안 교황의 지배 아래서도 끊임없이 진리의 증인이 있었음을 밝혔다. 교황이 지배하는 거짓교회 아래에도 신앙고백적으로 올바른 참 교회가 존재했다. 이 교회들이야말로 진정한 진리의 증인이었다. 이탈리아의 왈도파, 영국의 존 위클리프, 보헤미아의 얀 후스는 로마가톨릭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당한 자들이다.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진리의 증인이다. 다수집단의 시각 또는 조직체의 관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밝혔다.

비텐베르크대학교의 플라치우스는 여러 명의 루터교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불후의 명작 막데부르크 세기사(Magdeburg Centuries, 1559-1574)22를 집필했다. 13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교회의 출범에서 종교개혁시대까지의 역사를 기술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제도, 의식, 사건을 열거하면서 프로테스탄트의 시각을 변호한다. 교황은 적그리스도이며 성경적 진리를 왜곡한 자이다. 종교개혁교회는 고대교회의 연장이다. 교회개혁운동은 새로운 종파 운동이 아니라 사도적 교회가 견지했던 본래의 복음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레네우스, 암브로스, 어거스틴과 같은 부류의 교부들이라고 했다.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John Knox, 1505-1572)스코틀랜드종교개혁사23는 플라치우스의 교회사 편찬과 같은 방법으로 저술된 책이다. 하나님께서 스코틀랜드교회를 어떤 방식으로 교황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교회사를 힘의 논리로 파악하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시각을 거부하고, 진리성에 입각하여 기술했다. 로마가톨릭 교회사가들은 낙스의 역사 해석과 편찬이 주관적이고 편파적이라고 비판했다. “주관적이다,” “편파적이다는 판단은 어느 한 집단의 시각이나 평가기준을 전제하고 있다. 어떤 류의 판단기준을 가진 평가이다.

 

이 무렵에 저술된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사들도 고백주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시이저 바로니우스(Cesare Baronio, 1538-1607)가 저술한 교회의 연대기24는 플라치우스의 교회사 편찬에 도전하려고 저술된 것이다. 바로니우스는 바티칸 도서관 관장이다. 기독교회의 출범에서 천하를 지배하는 듯했던 인노센트 3세의 통치(1198)까지를 총 12권의 책으로 편찬했다. 30년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19년에 걸쳐 저술을 완료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정통성과 합법성을 변호하고, 그 교회가 복음자체와 동일함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이 책은 플라치우스의 교회사 편찬보다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종교개혁시대 직후의 교회사가들은 역사를 당대에 등장한 경건주의 운동에 맞추어 기술했다. 독일 경건주의는 신자들을 교리의 속박에서 해방시킨다는 기치를 들었다. 정통교리에서 탈출을 추구하고 교회의 외형적 체제, 성경, 정통신학의 상대적 가치만 인정했다. 개인적이고 신비적인 것에 무게를 두었다. 제도와 교리에서 해방된 시각은 경건주의라고 하는 또다른 고백주의를 만들어냈다.

 

경건주의자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170111일 설교에서 교회가 출범한 이후 당대까지의 교회사를 개괄적으로 소개한다. 1300년까지, 2600년까지, 3900년까지, 41200년까지, 51500년까지, 61500년부터 그 이후로 구분했다. 아놀드(Gottfried Arnold)비당파적 교회사와 이단사(Unparteiische Kirchen und Ketzerhistorie, 1699-1700)는 경건주의 시각으로 쓴 최초의 본격적 교회사이다. 아놀드가 루터파, 개혁파, 로마가톨릭교회 등을 구분했지만 신앙고백적 중립을 견지하려고 했다. 그는 편파적이지 않은 역사기술, 중립적인 교회사 연구를 한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경건주의 시각에 대한 호교적 역사해석을 넘어서지 못했다.

 

고백주의 교회사 편찬의 약점은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점이다. 자기가 신봉하는 교리를 정당화하려고 역사에서 유리한 근거와 이념을 찾아내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연구 태도는 호교적이다. 호교적 태도가 필요할 경우도 있다.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 신앙고백, 교리, 신학을 변호하고 그것을 기준삼아 역사를 해석하면 성경에 준하는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계몽주의(17-18세기)와 낭만주의(18-19세기)는 시대의 교회사가들은 역사 사건의 시대적 정황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사료에 대한 비평적 분석과 과학적 역사연구에 힘썼다. 이성에 대한 강조와 과학방법론을 중요하게 여긴 시대의 교회사는 인간 중심적이고 낙관주의적인 특성을 지녔다. 역사관점을 수직적 시각에서 수평적 시각으로 이동시켰다. 그 결과로 당대의 역사연구는 사회와 문화의 성격에 초점을 맞추었다. 모스하임(Johann L. Mosheim, 1694-1755)25은 교회를 인간 집단으로 이해하면서 그 안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여 교회사를 일종의 문화사로 엮었다.26

 

4. 객관적 역사연구는 가능한가?

 

실증주의 역사관은 역사가가 중립적 자세로 사건을 있는 그대로제시하고 가치판단은 독자가 하게 하는 역사연구 방법이다. 19세기에 독일에서 유해했고, 일본을 거쳐 한국에도 알려졌다. 역사가는 자기 견해를 드러내지 않아야 하고, “객관적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하므로, 사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실증주의 오리엔테이션을 가진 역사가에게 고백주의 교회사 편찬이나 성경을 판단기준으로 삼는 신앙고백교회사관은 달갑지 않다. 역사연구가 객관적으로, 중립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연 실증주의자들이 말하는 객관적역사연구가 가능한가? 사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가?

 

사물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항상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역사와 문화의 정황과 관련을 갖고 있으며 그것의 영향을 받는다. 무오(無誤)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 상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초역사적이고 초인간적인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절대적인 어떤 것이나 명제적으로 무오한 지식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의 특별계시 같은 것은 예외적이지만 일반적인 인간의 방법으로는 완전한 지식, 객관적인 지식을 가지기 어렵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역사적 사건이다. 역사가가 그것이 지적인 형태의 기록으로 또는 구전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 사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독인들은 하나님의 성육(成肉)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다. 하나님이 인간이 된 이 사건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과 글을 거쳐 사람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에 곧 역사가가 그 사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지적인 형태로 해석하여 전해 준 덕분에 우리가 그것을 역사 사실로 알고 믿는다.

 

역사적인 사건들은 그 자체가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역사가가 그것을 중요한 사건으로 파악하여 알려주어야 우리가 그것을 역사로 인식한다. 역사 지식은 역사가의 해석과 평가를 거쳐 알려진다. 역사가의 판단에 따라 어떤 사건이 역사가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한다. 역사는 역사가가 만든다.

 

역사가 자기가 이해하여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역사로 기술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가의 사관이 작용한다. 가치관, 입장, 관점에 부합하게, 자기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술한다. 역사가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실을 손안에 넣으려 한다.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평가하고 해석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역사가는 자신의 경험, 선호도, 취향, 입지, 사회적 환경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과거에 일어난 일을 평가하고 재구성한다.

 

역사작업에는 역사가의 관점과 주관성이 개입된다. 시대적, 문화적, 사회적 조건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다. 같은 역사 사건이라도 역사가의 관점과 전제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특정 역사가가 옳다고 판단하는 것을 다른 역사가는 그릇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학란(東學亂)을 오늘날 동학혁명(東學革命)으로 일컬어진다. 광주폭동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기술된다. 프로테스탄트 역사가들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를 위대한 종교개혁가, 영웅적인 인물, 인류 문화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은 역사적인 인물로 평가한다. 하나님의 사람, 신앙의 용장으로 추앙한다. 그러나 로마가톨릭교회 역사가들은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 교회의 질서를 더럽힌 파계승, 수녀와 결혼하려고 수도사 신분을 버린 파렴치한 자, 이단자로 평가한다. 역사평가는 역사가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는가에 달려 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19세기에 유럽에서 풍미했던 실증주의 역사연구는 객관성,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면서 마치 역사를 생물이나 화학과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역사적 사실들(historical facts)을 확인하여 있는 그대로기술한다. 평가와 결론은 독자가 내리게 했다.

 

실중주의는 역사의 의미가 역사 자체에 내재해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가는 중립적 관찰자이다. ‘객관적사실을 독자에게 알려줄 뿐이다. 정치적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역사해석과 기술에 개입시키지 않아야 한다. 자연과학자가 자연을 연구하듯이 역사 사실을 실증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역사 연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역사적 사실과 사물을 객관적으로 편견 없이 중립적인 자세로 평가하고 해석하는 것은 역사가의 기본 태도이다. 그러나 역사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그러한 역사연구가 실제로 가능한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실증주의에 기초하여 역사연구에 임하는 자들은 객관성과 아울러 사료(史料)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사료를 객관적인 것으로 여기며 그것에 기초한 객관적이고도 중립적인 역사연구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로 사료는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지 관찰자, 보고자의 주관적 프리즘(Prism)을 거쳐 생산된 것이다.

 

역사는 중립적인 실체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s)은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형태로, 검증 또는 실험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문 밖에서나 실험실 창고에서 우리의 검증을 기다리고 있지 않다. 사람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시간은 한쪽으로만 흘러가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사건이 일어난 시점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한 과거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사실은 있는 그대로검토할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현재의 창문을 통해서만 다가오고 제한된 이성의 창문을 통해 펼쳐진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인간의 지식이 능동적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근대 역사 이해에 변혁을 가져 왔다. 칸트는 철학계의 흐름을 존재론적 질문에서 인식론적 질문으로 바꾸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지식은 사물이 전달하는 지식을 사람이 수동적으로 수납한 결과가 아니다. 선험적 오성(Understanding)과 범주들(Categories)이 무형의 인지덩어리를 분석해 낸 결과이다. 인간 오성과 범주로 구성된 인식기능이 우리가 지식이라고 일컫는 내용을 결정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역사적 사실에 순수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지식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사람이 과거에 일어난 사실들(facts)을 능동적으로 이해한 결과이다. 학자는 자기가 처한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과 환경에서 선이해, 전제, 가치판단을 가지고 사실에 접근한다. 자기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자기의 관점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무게를 달고 재구성한다.

 

칸트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 역사가, 신학자들은 주관주의(Subjectivism)의 늪에 빠진다. 진리는 주관적 해석활동의 결괴이고, 인문과학은 제한된 이성의 사변적 벽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주관주의는 상대주의(Relativism)라는 아들을 낳는다. 진보신학계 역사 연구가들과 신학자들은 역사의 상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역사 주관주의에 빠졌다. 역사연구는 주관적 해석활동이며, 인간이 객관적 지식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칸트 이후로 지식인들은 객관적 지식 추구에 대한 열의를 상실했다. 맥없이 역사연구, 신학연구를 하고 있다. 칸트의 영향은 진보계 신학자들이 신앙과 합리적 지식 사이에 공통적인 것이 없다는 주장으로 나타난다.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토대를 의심한다. 역사에 대한 객관적 접근을 불신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성육신, 동정녀 탄생, 초자연적 기적 등을 사실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케리그마(Kerygma)를 거치는 성령의 현재적 활동의 열매이며, 역사 사실에 대한 합리적 지식의 결과가 아니라고 본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불신하고 성령의 역사를 강조한다.

 

주관주의, 상대주의 개념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사람은 기독교 신앙의 토대, 근거인 역사적 사실을 불신하고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 사건들을 신화로 간주한다. 유대교와 기독교 초대교회의 맹신적 종교심이 무의식적 신화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성경을 만들어 냈다. 성경은 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재구성된 역사이다. 따라서 이 역사적 사실들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 작업으로 신화의 허상을 벗겨내야 한다. 사도신경이 담고 있는 신앙 고백 내용은 바울이 헬라화 작업을 거쳐 만들어낸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 고백들이 아니다. 사랑을 핵심으로 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 곧 도덕훈이 본질이다. 기독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대속적 죽음, 육체적 부활 등의 역사에 근거한 고백 종교가 아니라 그분이 가르친 원수 사랑을 실천하는 보편적 윤리공동체(universal community of love) 또는 사회적 기구(social organization)이다.

 

5. 신앙고백교회사관

 

기독교 역사학자 김승태 목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원)는 일제말기의 신사참배거부운동을 교회분립운동,’ ‘반교회운동,’ ‘교회 밖에서의 운동’27으로 해석한다. 성경과 개혁신학과 진리성의 관점에서 보면 그 운동은 교회의 기본 속성인 사도성, 거룩성, 보편성, 단일성에 충실한 교회운동이었다. 개혁교회론에 충실한 교회였다. 김승태의 역사왜곡은 신학적, 교회론적 함의를 지닌 사건을 실증주의적으로, 문헌고증 방법으로 접근한 데서 생긴 오류이다.28

 

민경배 교수(연세대학교)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이었던 홍택기 목사가 광복 직후, 과거사를 참회고백과 자숙으로 정리 청산하고자 하는 출옥성도들의 제안를 비판한다. 각자가 하나님과 직접 관계에서 해결할 성질의 사안이라고 판단한다. 홍택기의 말에는 반박 못할 정연한 논리와 신학이 있었다”29고 예찬한다. 출옥성도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무시하고 그것보다 윤리적 정결과 신앙적 영광을 더 앞세운다고 질책한다. “자책과 통회의 요청은 심판의 인상이 짙었고, 그것은 자기의 무한한 의와 결백을 전제하면서 신의(神意) 대행을 자처했던 이단심문의 중세기를 상기케 했다”30고 한다. 은총의 객관성의 모체인 교회의 힘에 윤리적 정결과 신앙적 영광을 앞세웠다고 하는 모순을 가졌다. [] 그 당사자의 심령에 겸손과 공동체 의식이 없고, 은총의 편만과 교회의 신비, 약한 세정에 함께 목메우는 참여의 사랑이 없을 때, 영광의 수난이 자랑의 정죄의 자리가 되었던 것이다”31라고 평가한다.

 

민경배는 친일파 교화사가이다. 그가 제시한 민족교회사관은 일본민족교회사관과 맥을 같이 한다. 성경의 관점으로, 신학적으로 평가해야 할 교회사 사건을 친일파의 시각으로 판단한 결과로 역사왜곡에 빠진다.

 

호남교회사가 김수진·주명준은 광복 후 출옥성도들이 우상숭배 전력을 가진 목회자들을 정죄했다고 기술한다. 순천노회 수난사건 관련 목회자들은 재건파나 고려파처럼, 신사참배를 하고 일제에 적극 협력했던 목회자들을 정죄하지 않고 오직 교회 재건과 순천노회 재건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32고 한다. “순천노회 교역자들이 그만큼 성숙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33고 한다. 이러한 역사왜곡은 성경을 기준삼아 신학적으로, 교회론적으로 접근해야 할 사건을 친일파의 당파적으로 판단한 결과이다.

 

민경배, 김수진, 주명준의 역사왜곡은 아리러니하게도 객관적역사연구라는 이름으로 수행되었다. 교회와 진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역사가들의 당파적 선이해와 친일파 평가기준이 가져온 결과이다. 이처럼 역사평가의 기준이 불분명하거나 그릇된 기준을 가지고 접근하면 악과 선의 자리가 뒤바뀐다. 진리를 비진리라고 하고 비진리를 진리라고 한다. 흑을 백이라고 하고 백을 흑이라고 평가한다.

 

역사는 객관적으로 기술해야 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기술해야 한다. 포괄적이면서도 중립적으로 그리고 초연한 자세로, 3자의 관점으로, 냉철히 공평하게 기술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엄격한 의미의 객관적 또는 중립적 역사연구가 가능한가? 선이해, 전제, 조건, 사관과 무관한 역사연구는 존재할 수 없다.

 

역사가의 신념,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등은 역사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역사 사실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역사가의 주관적 인식기관, 프리즘을 거쳐 알려진 어떤 것이다. 역사가가 확실한 것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접고 맥없이 역사연구를 하거나 주관주의, 상대주의의 포로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혁신학 전통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고백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담고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면, 그것은 인간의 지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객관적 역사평가와 건전하고 타당한 판단의 기준이다. 인본주의 관점, 힘의 논리, 당파적 시각을 배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다. 하나님께서 계시한 성경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해석된 역사는 상식적 의미의 객관성’(mild objectivity)을 가질 수 있다.

 

성경은 인간 인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담고 있다. 교회는 성경을 신행의 표준으로 가진 규범공동체이다. 교회 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시종일관 신학적, 신앙고백적 함의(含意)를 가지고 있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교회하나님의 백성이 말과 글과 행동으로 또는 머리, 가슴, , 발로 고백한 신앙 이야기에 초점을 둔다. 성경과 진리성을 중심으로 역사를 파악한다. 진리의 보고(寶庫)인 성경을 기준으로 역사를 파악하고 평가한다.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최종 표준인 동시에 교회사 평가의 기준이라고 본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가장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이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믿어야 할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본분이라고 생각한다.34 하나님의 백성 또는 특정 신앙공동체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믿고 고백했으며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에 주목한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의 신앙고백은 교회가 채택한 신앙고백문, 교리, 신학과 직결되어 있지만 그것에만 제한되지는 않는다. 손과 발과 행동으로 고백한 신앙행위를 포함한다. 한국교회가 새벽기도회를 하고, 여자 성도들이 성미(誠米) 주머니를 들고 교회에 가고, 갈급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 금요일 밤 철야기도회에 모이는 것은 한국교회의 독특한 신앙고백적 표현이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교회의 다양한 역사적 국면들, 민족, 사회, 문화, 공해, 핵무기, 전쟁, 인권, 도시화, 산업화, 사회참여 등 인간 사회의 전 영역(1:22)에 관심을 가진다.

 

신앙고백적이라 하여 모두 다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기독교 신앙에 충실한 것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고 불의와 야합하고 배교하는 신앙고백도 있다. 이단자들은 그릇된 신념과 사상을 신앙고백으로 천명한다. 한국교회가 일제말기에 배교하고 우상숭배를 행하고 전향성명서-개종고백문을 발표하는 등 백귀난행을 저지른 것은 일종의 신앙고백 행동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에 주목한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하나님의 존재보다 그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했는가에 역점을 둔다. 역사를 하나님의 활동무대로 여긴다. 성경은 창세기 첫 장에서부터 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을 수록하고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행적기이다. 교회가 세워진 이후의 교회사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서 역사한 데 하나님의 활동 이야기다. 하나님이 세상을 어느 정도로 사랑했으며 자기 백성이 무엇으로 그 사랑에 반응했는가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반응에 초점을 모은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진다. 특정 교회가 교회의 본질과 주어진 사명에 충실했는가에 주목한다. 그런데 교회마다 교회관이 다르다. 자유주의, 정통주의, 신정통주의, 복음주의의 교회관이 다르다. 로마가톨릭교회와 성공회와 감리교회의 감독정치,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장로회 정치, 침례교회와 회중교회의 회중정치, 퀘이커교도, 형제단 등의 무조직교회정치로 대별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가 제시하는 교회론적 교회사관’35은 기독교를 포괄적으로 평가하는 통사(統史) 사관으로 적합하지 않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시작한다. 성경과 신앙고백적 활동 그리고 진리성의 관점으로 역사를 파악한다. 성령께서 신앙고백공동체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또 교회사가를 지도하는 사실에 주목한다. 교회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온 성령은 지금도 신앙공동체의 발전과 쇄신을 지도한다. 교회가 이단적인 단체로 전락하거나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되었을 때 성령은 남겨진 사람들을 통해 역사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할 때, 하나님은 일부 백성들이 신앙을 보존하도록 그들에게 부흥을 가져다주었다(1:9; 33:9ff.). 중세교회가 우상숭배를 행하고 타락했을 때 성령은 종교개혁자들을 사용하여 교회와 신학을 개혁시켰다. 배교하던 한국교회 안에 남겨진 소수의 신사참배거부운동자들을 거쳐 복음 역사의 물줄기를 잇게 했다.

 

성령사역은 기독교회나 기독인들에게 제한되지 않는다.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유지하고 섭리한다. 성령은 사회 활동 가운데서도 역사한다. 비기독교인의 사고와 활동, 복음에 대적하는 자들 안에서도 활동하여 교회가 자기의 사명을 깨닫도록 자극하게 한다. 하나님은 세속사를 안에서도 역사한다. 이런 점에서 성사(聖史)와 속사(俗史)를 엄격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성령은 개인적, 집단적, 우주적으로 역사한다. 신자들에게 신앙을 심고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복음 증거의 힘을 제공한다. 복음전파자들에게 은사와 능력을 부여한다. 교회사를 해석하고 재구성하고 편찬하는 교회사가와 함께 하여 건전한 판단을 내리게 한다. 교회사 연구는 신학자의 몫이다. 역사방법을 터득한 신학자가 성령의 인도 아래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가질 때 바람직한 역사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시인은 광야교회사를 아래와 같이 기술한다. 역사 안에서 활동하고 그 역사에 개재(介在)하는 하나님을 주목하고, 전율(戰慄)을 느낀다.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의 손길을 본다. 광야교회사는 신앙고백교회사관과 맥을 같이 한다.

 

하나님, 우리는 두 귀로 들었습니다.

그 옛날 우리 조상이 살던 그 때에,

하나님께서 하신 그 일들을,

우리의 조상이 우리에게 낱낱이 일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뭇 나라들을 손수 몰아내시고,

우리 조상을 이 땅에 뿌리박게 하셨습니다.

뭇 민족을 재앙으로 치시고,

우리 조상을 번창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조상이 이 땅을 차지한 것은

그들의 칼로 차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상이 얻은 승리도 그들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오른손과 오른팔과

하나님의 빛나는 얼굴이 이루어 주셨으니,

참으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야말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야곱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우리의 적을 쳐부수었으며,

우리를 공격하여 오는 자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짓밟았습니다.

 

내가 의지한 것은 내 활이 아닙니다.

나에게 승리를 안겨 준 것은 내 칼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로 하여금 적에게서 승리를 얻게 하셨으며,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셨기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하나님만 자랑합니다.

주님의 이름만 끊임없이 찬양하렵니다. (시편 44:1-8)

 

역사교육은 이스라엘 민족공동체의 주 과업이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이 퇴색되어 갈 때마다 역사를 가르쳤다. 자기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를 기억하라고 외쳤다.

 

내 백성아, [...] 이것은 우리가 들어서 이미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숨기지 않고 우리 자손에게 전하여 줄 것이니,

곧 주님의 영광스러운 행적과 능력과 그가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미래의 세대에게 전하여 줄 것이다. (중략).


그들이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어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잊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게 하셨다.

조상처럼, 반역하며 고집만 부리는 세대가 되지 말며,

마음이 견고하지 못한 세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세대가 되지 말라고 하셨다.

(78:1-8).

 

뉴욕 부르클린에서 집단촌을 형성하고 사는 오늘날의 유대인들의 정신은 홍해를 기적으로 건너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살던 모세 시대의 유대인의 정신과 큰 차이가 없다. 신앙 역사에 대한 민족차원의 교육이 세대 차이를 철폐시킨 것이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역사연구의 기본 과정을 간과하지 않는다. 비평적인 접근과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한다. 이성의 시대,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발달된 역사학의 결과를 수용한다. 인간 삶의 다양한 국면들을 통시적으로 파악한다. 교회의 공문서, 공의회 문헌, 신앙고백문, 예배문헌, 헌법, 성명서, 교부와 감독과 목사들의 설교와 편지, 신자들의 개인 저작물들, 이단자들의 문헌, 신학논쟁 자료, 역사가들의 해석, 묘비, 비문, 구전, 증언 등 이른바 객관적자료와 사실(史實)을 중요하게 여긴다.

 

신앙고백사관은 현장을 탐사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그것의 순수성, 통일성, 의도, 가치를 파악한다. 사건이 발생한 삶의 정황(Sit im Leben) 속에 뛰어들어 그것을 동시대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전체의 조망 하에서 부분을 파악하고,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추정한다. 통합성, 상상력, 직관을 사용하기도 하고 가정을 세워 사건을 유추하여 상관성을 밝힌다. 보편적 개념을 찾아내고 그것을 지적인 형태로 기술한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각 지역의 교회가 처한 독특한 상황, 특성, 기질, 전통 등 특수성(Particularity)을 중요하게 여긴다. 유럽-북미 교회의 눈으로 세계교회사와 한국교회사를 파악하는 시도를 반기지 않는다. 서양신학과 서양교리의 눈으로 교회의 신앙고백을 분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사회상황, 정치상황, 민족상황을 총괄한다. ·서양인이 수평적인 차원에서 대화하며, 상호존중의 태도로 접근한다. 특수성을 역사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배격한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사건, 사상, 신앙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유기적으로 상호 관련지어 포괄적으로 평가한다. 특정 시대의 교회의 독창적 움직임과 사상의 변화를 사회, 문화, 정치, 자연, 환경, 정신, 지식, 가치, 감수성, 강박관념, 헌신, 영혼의 갈망, 제도의 관련성 안에서 고찰한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 곧 하나님께 대해 믿고 고백한 것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평적 관계 곧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이웃사랑, 문화적 사회적 책임 이행 등에 주목한다. 교회나 기독인이 과연 어느 정도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했는가, 과연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했는가에 주목한다.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두 가지 계명’(22:37-40)을 어느 정도로 어떻게 실천했는가에 주목한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십자가 형태의 교회사관이다.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지평을 포괄한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진지한 이해와 애정을 가지고 역사연구에 임한다.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백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업이므로 사랑, 수용성, 존중, 관용, 겸손, 절제, 매사에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수행한다. 선입견, 반감, 증오, 냉소적인 자세, 배타성을 경계한다. 중생한 그리스도인다운 눈과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본다. 어거스틴은 말했다.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이 함부로 취급당하거나 비판을 받아서는 안 되며, 인간의 과거는 우애나 친교를 통하여 인지되어야 한다.”

 

독일고백교회는 나치치하에서 바르멘신학선언’(1934)이라는 신앙고백 문서를 만들고 나치정권과 기존의 독일교회에 항거했다. 독일고백교회가 독일민족교회보다 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했다. 일제말기의 한국교회는 배교, 야합, 우상숭배, 민족배신, 백귀난행을 일삼던 껍데기 교회이다. 신사참배거부운동 중심의 저항하던 교회가 진리성과 교회의 속성들 곧 사도성, 보편성, 단일성, 거룩성에 부합했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이와 같은 가치판단을 주저하지 않는다. 만약 전쟁 후에 독일교회가 권력을 잡고, 친일파가 한국교회의 권력을 주도하는 경우에도 옳고 그름에 대한 단호한 판단을 내린다. 우리에게는 성경이라는 규범이 있다. 판단의 옳고 그름은 역사평가의 기준에 달렸다.

 

맺음말: 신앙고백교회사관 모델

 

역사가는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하며 해석학적 조건을 초월할 수 없는 존재이다. 역사는 의존적 지식 영역이다. 사람은 자기의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역사연구에는 역사가의 관점이 불가피하게 개입된다. 사관에 따라 특정 사건이 역사로 채택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판단되기도 한다. 교회사는 여러 가지 관점으로 연구될 수 있지만 모든 관점들이 타당성과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인본주의 역사관점은 교회사 연구에 올바른 해석을 제공하지 못한다. 역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역사적 사건 그 자체에서 얻을 수 없다. 인간의 죄와 패역(悖逆)이 하나님께 어느 정도로 모독적인가 하는 것에 대한 답은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것이나 인간이 일으킨 사건이 줄 수 없다.

 

예컨대, 일반 역사가는 왜 하나님이 교회 성장의 암적 존재인 이단을 허용했는가에 답할 수 없다. 성령 하나님이 교회를 항상 지도한다면 왜 이단이 등장했는가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도 없다. 성경은 답한다. “이런 자들은 본래 우리의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의 사람들이었다면 우리와 함께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그것으로 그들이 우리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났습니다”(요일 2:19). 장로 요한은 하나님께서 이단을 허용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을 드러내려는 목적이라고 해석한다.

 

비기독인 역사가는 광활한 하늘과 궁창이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까닭,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시편 기자는 하늘과 행성들이 기능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일러 줍니다”(19:1)고 해석한다.

 

교회 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모두 신학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존재와 역사와 그것들의 의미는 다만 하나님이 주신 특별계시의 빛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종속된 역사과학만이 인간역사에 대한 타당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죄인을 구원하며 의를 이루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와 섭리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할 때 하나님의 시간 창조, 만물 창조, 인간의 타락과 구원, 그리고 종말사건으로 이어지는 구원역사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교회사 해석, 평가, 편찬의 기준으로 삼는다. 교회사는 신학(Theological Science)이며 교회사가는 신학자이다. 교회사 연구와 해석은 신학자의 몫이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실증주의적 역사연구 방식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성경을 역사평가의 기준으로 삼아 특정 신앙고백공동체와 기독인들이 하나님께 대해 무엇을 믿고 고백했으며, 하나님께서 요구한 것 곧 하나님이 그들에게 부여한 본분(本分), 임무 수행에 어느 정도로 성실했는가를,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충실했는가를 살핀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의 타당성과 효용성(Validity)은 성경의 권위에 직결되어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담은 진리의 말씀이면, 성경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신앙고백교회사관은 성경의 권위에 준하는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신앙고백교회사관은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 권위로 여기는 개혁신학, 개혁신앙의 신념체계와 일치한다.

 

신앙고백교회사관신앙고백사관은 같지 않다. 후자는 교회의 교리, 사상, 신앙고백 문헌을 다루는 데 초점이 있다. 전자는 후자의 제반 요소들을 포함하면서 신앙고백공동체의 모든 역사를 성경과 진리성의 관점에서, 그 공동체가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어떻게 믿고 고백했으며 하나님께서 요구한 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충실했는가에 주목한다.

 

사도행전은 신앙고백교회사관으로 기술된 교회사의 전형(典型)이다. 초기 교회와 기독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한 과제들을 어떻게 수행했는가를 다룬다. 그리스도의 도성인신, 대속적 죽음, 육체적 부활, 하나님의 나라 등 신앙고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도들의 주 사역이 입을 열어 예수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성령이 교회를 이끌고 있었다는 사실과 교회가 성령충만, 복음에 대한 확신, 하나님 나라의 희망, 사랑의 열기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36 복음의 화산, 증복음전도, 증언, 교회건설, 말씀전파에 역점을 두고 있다.

 

 주석

 

1최덕성,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서울: 지식산업사, 2006)은 신앙고백교회사관으로 기술된 대표적인 책이다.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 참회고백과 역사의식, 종교개혁전야, 쌍두마차시대, KOREAN CHRISTIANITY 그리고 출간 예정인 신사참배거부운동도 신앙고백교회사관으로 기술된 책이다.

2백낙준, 한국개신교사: 1832-1910(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93).

3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9).

4최덕성,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00), 125-194.

5이만열, 한국기독교수용사 연구(서울: 두레시대, 1998); 한국교회사 특강(서울: 성경읽기사, 1987); 한국기독교와 민족통일운동: 한국기독교사연구(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1).

6단제 신채호, 백암 박은식, 위당 정인보, 호암 문일평이 시도한 사관을 교회사 연구에 도입한다. 박은식은 역사가 존재하는 곳에 국혼(國魂)이 존재한다고 했다. 박은식, 한국통사, 이장희 역 (서울: 박영사, 1974) 결론을 보라.

7한국기독교장로회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주재용), 한국기독교100년사(서울: 한국기독교장로회출판사, 1992); 주재용, “한국기독교백년사: 민중사관의 입장에서의 분석과 비판,” 신학연구21 (1979. 12.).

8이덕주, “최근 한국교회사 연구 흐름: 사관과 방법론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간행, 한국교회사, 어떻게 볼 것인가?(학술심포지엄 자료, 2000. 10. 5.) p. 35-49.

9박용규, 한국장로교사사상사(서울: 총신대학출판부, 1992), 378-379. 부록으로 실린 한국교회사 사관 정립에 관한 소고에서 설명하고 있다.

10김영재, 한국교회사(서울: 개혁주의신학협회, 1992).

11Gehard Ebeling, Word Gottes und Tradition, Studien zu einer Hermeneutik der Konfessionen 2. Aufl. (KiKonf 7, 1960), 9-27; W. Werbeck, Bibliographie G. Ebeling (in E. Jungel, Verifikationen. Festschrift fur G. Ebeling zum 70, Geburtstag, 1982), 523-542.

12W. Pannenberg, Grudfragen Systematischer Theologie, 3 Aufl., (GAufs, Go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79).

13Richard Niebuhr, The Social Sources of Denominationalism, 교회분열의 사회적 배경, 노치준 역 (서울: 종로서적, 1989), 3-24.

14W. Zeller, Kirchengeschichte als Theologisches Problem (1949), in Ders., Theologie und Fro¨mmigkeit, GAugs.1, Hg. B. Jaspert (MThSt 8, 1971), 1-8.

15F. W. Kantzenbach, Ernst Benz. “Die allgemeine Kirchengeschichte und das Programm ‘Kirchengeschichte in o¨kumenischer Sicht’” (in R. Flasche/ E. Geldbach(Hg.) in Momoriam Ernst Benz, Religione, Geschichte, o¨kumene (Leiden, 1981), 45-48.

16Lucas Vischer, “Kircheneschichte in o¨kumenischer Perspektive. Ein Memoradum,” in Theologische Zeitschrift 38 (jg. Heft 5, 1982), 263-271.

17O¨kumenische Kirchengeschichte der Schweiz (Freiburg: Basel, 1994).

18종교다원주의의 이단성, 배교성, 적그리스성은, 김경재, 이름없는 하느님: 유일신 신앙에 대한 김경재 교수의 본격비판(서울: 삼인, 2002)을 보라.

19Lorenzo Valla, De falso credita et ementita Constantini donatione (Weimar: H. Blaus Nachfolger, 1976). 이상규, “고백주의적 교회사 편찬,” 목회와 신학(1996.12.), 178-183을 참고하라.

20John Foxe, Acts and Monuments (London: John Dayne, 1570).

21Matthias Flacius, Catalogus Testium Vertatis, in Wilhelm Eisengrein, Catalogus testium veritatis locupletissimus (Dilingae: Excudebat Sebaldvs Mayer, 1565).

22Matthias Flacius, Historia Ecclesiastica (old title: Magdeburg Centuries) (Basukeae: Typis & expensis Ludovici Regis, 1624).

23History of the Reformation in Scotland, 1644 (London: Adam and Charles Black, 1898).

24Annales Ecclesiastici, 1588-1605 (Cologne: Sumptius vidu A. Hierat, 1640).

25Historia Michaelis Serveti (Helmstadii: Stanno Bucholtziano, 1727).

26미국 유니온신학교의 필립 샤프(Philip Schaff) 박사는 교회사의 역사(history of church history)를 기술한 책에서 교회사 편찬의 시대별 특징들을 소개한다. [Phillip Schaff, History of the Apostolic Church with a General Introduction to Church History (New York: 1854), 55, 63, 69-72; id. The Principle of Protestantism: What is Church History (New York: Garland Publication Company, 1987)를 참고하라. 이 책의 초판은 1845년에 출간(Chambersburg, PA: Publication Office of the German Reformed Church, 1845)되었다. 고신대학교의 이상규는 교회사 편찬의 역사를 소개하는 글 고백주의적 교회사 편찬,” 목회와 신학(1996. 12.), 178-183; “교회사 연구와 편찬에 관한 사적 고찰: 종교개혁기와 계몽주의 시대(16-18C)를 중심으로,” 역사신학 논총3 (2001), 277-294을 발표했다.

27김승태, “1940년대 일제의 종교탄압과 한국교회의 대응의 한 유형: 전남순천노회 박해사건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의 역사적 반성(서울: 다산글방, 1994), 112-113. 최덕성, “‘순천노회 교역자 수난사건 재평가에 대한 김승태의 반론을 읽고,” 한국기독교와 역사20(2004 ), 239-241.

28최덕성, “문헌고증적 교회사연구의 한계: 순천노회 교역자 수난사건 재평가에 대한 김승태의 반론을 읽고,”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한국기독교와 역사에 게재되어 있다. 신사참배거부운동(잠정제목)에 수록할 예정이다.

29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2 개정판,) 454.

30민경배, “한국교회 25년사: 1945-1970,” 한국기독교연감 1972(서울: 한국교회협의회, 1972), 22.

31민경배, “한국교회 25년사: 1945-1970,” 22.

32김수진·주명준, 일제의 종교탄압과 한국교회의 저항: 순천노회 수난사건을 중심으로(서울: 쿰란출판사, 1996), 162. 장로교 통합측 교단 총회의 이 사건에 대한 연구위원회의 보고서를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의 문제점과 김승태의 논문에 대한 비평적 분석은 졸고 순천노회 교역자 수난사건 재평가,” 한국기독교와 역사10 (1999), 171-203를 보라.

33김수진·주명준, 163.

34“What human being is to believe concerning God and what duty God requires of man/women.”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소교리문답3문답을 참조하라.

35최덕성, “민족교회사관은 조종을 울릴 것인가?”(고려신학대학원 개교기념일 발표논문, 2000. 3. 9.)가 천명한다.

36성령이 주인공인 사도행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기도, 환상, 기적, 치유, 성령의 임재. (2) 우상숭배, 유대인과 이방족속에 대한 복음전도, 전도인 파송, 복음을 들은 주민들의 반응, 선교보고, 헌금, 개척교회, 회개, 개종 등 선교활동. (3) 박해, 피신, 수난, 투옥, 순교 등 교회의 대 사회 관계. (4) 교회조직, 집사선발, 정치권력, 예루살렘공회, 교회갈등 등 교회의 외형적 요소와 특징들. (5) 물건통용, 민족, 구제, 치유 등 대 사회문제. (6) 소동, 고발, 상소, 재판, 변론, 압송 등 교회관련 이야기 등이다.



위 글은 2004-2009년 사이의 어느 날  <리포르만다> '목회와 신학' 제48항에 게재한 것이다. 2013년에 새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그 전 홈피 호스팅 회사가사라지면서 모든 자료가 분실되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다행히 이 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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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새롬 2015.08.12 21:08
    교회사관의 류형과 적절한 귀중한 신앙고백 교회사관,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읽혀져야 하는 증거자의 성경적 역사의식의 결론적 답에 귀한 영감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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