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를 국가가 결정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에는 특정 역사적 사건에 관하여 국가가 일정한 역사 인식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그에 반하는 표현이나 주장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이 존재한다. 역사적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피해자의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에 일정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그러나 국가가 특정 사건에 대한 하나의 역사 이해를 사실상 ‘정사’(正史)로 확정하고, 그것과 다른 해석이나 평가와 비판까지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사안은 크게 달라진다. 그것은 단순한 역사 보호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역사는 어용역사일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가와 역사학의 관계, 더 근본적으로는 학문의 자유에 관한 문제가 된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옮겨놓은 ‘객관적 기록’이 아니다. 과거의 사건 자체와 역사 서술은 동일하지 않다. 과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건이 일어났지만 역사가는 그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 무엇이 중요한 사건인가를 선택하고, 사료의 신빙성을 판단하고, 사건과 사건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고, 원인과 결과를 추적하며, 그것이 지닌 의미를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가의 문제의식과 역사관 그리고 호불호가 작용한다. 역사 서술은 과거의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사료와 증거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과거의 재구성(reconstruction)이다.
그렇다고 역사학이 역사가의 자의적인 상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역사가에게는 사료가 있고 증거가 있으며, 다른 연구자들의 비판과 검증이 있다. 역사가는 자기 마음대로 과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남아 있는 증거 앞에서 자신의 해석을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역사학에는 자유로운 주장과 반론, 검증과 재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역사학의 생명은 ‘열림’(openness)에 있다. 한 역사가가 어떤 사건을 이렇게 해석하면 다른 역사가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문서, 증거, 평가가 발견되면 기존의 통설도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한 세대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역사 이해를 다음 세대가 새로운 관점에서 질문할 수도 있어야 한다. 주장과 반론, 비판과 재비판이 거듭될수록 우리는 과거의 진실에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간다. 역사학에서 수정 가능성은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학문이라는 증거이다.
그런데 국가가 이 열린 공간에 들어와 “이것이 올바른 역사이며 이것만이 정사이다”라고 선언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더 나아가 그 정사와 다른 해석을 제시한 사람에게 형벌을 가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 순간 역사적 논쟁의 최종 심판자는 역사적 증거와 학문 공동체가 아니라 국가권력이 된다. 사료보다 법률이 앞서고, 논증보다 처벌의 가능성이 연구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역사를 닫힌 공간으로 이해하고, 국가가 그것을 결정하고, 나아가 그것과 다른 관점을 가진 자를 처벌하는 법을 가진 국가는 매우 ‘좀스러운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좀스럽다는 말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다. 거대한 국가권력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역사의 공간은 허용하지 않고 하나의 주장만을 정사로 표방함을 일컫는다. 역사적 이견 하나까지 견디지 못하고 형벌권을 동원하여 통제하는 역설을 가리킨다. 국가가 강하다면 오히려 다른 역사 해석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받아들이는 역사 이해가 진실에 가깝다고 확신한다면 그것을 법률의 힘으로 보호하기보다 더 풍부한 사료와 더 설득력 있는 논증으로 입증하는 것이 옳다. 학문적 오류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은 국가의 형벌이 아니라 더 좋은 학문이다.
국가가 정사를 만들고 그것과 불일치하는 견해를 처벌하기 시작하면 역사학은 쉽게 어용학문으로 전락한다. 어용학문이란 학자가 국가나 정치성향이나 지역이 요구하는 결론을 먼저 받아들인 뒤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아내는 학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가는 결론을 국가로부터 받아서는 안 된다. 사료가 자신이 믿어왔던 것과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면 자신의 기존 견해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좋아하지 않는 결론이라도 증거가 그곳으로 인도한다면 그것을 말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학문의 자유이다.
학문의 자유가 역사적 사실을 마음대로 조작할 자유를 뜻하지는 않는다. 존재하는 사료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없는 자료를 만들어 내고, 명백한 증거를 고의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역사 연구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이 사실의 조작이고 무엇이 정당한 재해석인가를 구별하는 과정에서도 공개적인 증거 제시와 학문적 검증이 우선되어야 한다. 역사적 사건의 원인, 책임, 성격, 의미에 관한 평가는 본질적으로 토론과 비판의 영역에 속한다.
특정 사건에 대한 역사 기술과 평가는 따라서 ‘열려 있는 공간’의 결실이어야 한다. 역사는 한 번 내려진 국가의 판정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역사가들이 사료를 찾고, 기존 연구를 비판하고, 서로의 주장을 검증하고, 토론하고 비판하는 학문적 활동, 곧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여야 한다. 오늘의 통설이 내일 새로운 자료에 의해 수정될 가능성을 인정하는 겸손이 역사학에는 필요하다.
국가는 역사 연구의 조건을 보호할 수 있다. 사료를 보존하고 공개하며 연구기관을 지원하고 학자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역사의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역사의 심판자이기보다 역사가들이 자유롭게 논쟁할 수 있는 공간의 보호자여야 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지만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과거의 사건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새로운 사료와 새로운 질문을 만나면서 계속 깊어진다. 그러므로 역사는 닫힌 정답지가 아니라 열린 탐구의 공간이다.
국가는 역사를 소유하지 않는다. 역사는 국가의 명령으로 확정되는 정답이 아니라, 증거와 논증과 비판을 통해 끊임없이 진실에 접근해 가는 인간의 학문적 작업이다. 국가가 보호해야 할 것은 하나의 ‘정사’가 아니라, 바로 그 진실을 찾아갈 자유이다.
브니엘신학교 총장, 최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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