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저널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abd921175615edc62e53e9c3bfdf73da.jpg

 

 

장진호 전투와 '고토리의 별'

 

장진호 전투는 지금부터 70년 전에 발생한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였다. 북한군이 유엔군에게 계속 밀리면서 임시 수도를 평양에서 압록강 근처의 강계로 옮기게 된다. 미해병 1사단은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장진호 지역까지 북진을 한다.

 

19501114, 장진호 근처의 하갈우리에 미군이 들어와서 하갈우리장로교회에서 감사예배를 드렸다. 해방 후 공산치하에서 몰래 숨어서 예배드리던 하갈우리장로교회 교인들이 숨겨 놓았던 교회 종을 가지고 나왔다. 교인들은 1123일 주일에는 추수감사주일로 미군들과 함께 지켰는데, 1130일에 장진호 지역에 미군 병력의 10배가 넘는 중공군 6개 사단의 12만의 포위망이 구축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1131일 주일에 미군은 퇴각하기 전 철수 예배를 드렸는데,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피난민들이 함께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신분이 완전히 노출되어서 공산군이 다시 들어오면 처형 1순위가 될 것이기에 미군을 따라서 남한으로 내려가고자 했다.

 

맥아더 장군은 스미스 사단장에게 비행기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비행기로 철수할 경우 활주로를 지키는 최후의 병력과 함께 자신들을 따라 남한으로 가겠다고 하는 기독교인들과 피난민들은 함께 갈 수 없으니 육로로 퇴각하기로 결정한다. 그 유명한 장진호 전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장진호는 북한에서도 가장 추운 개마고원에 위치해 있다. 전투가 진행되었던 2주간 동안 평균기온은 영하11, 가장 추운 날의 오전 기온은 영하 45도까지 내려갔다. 물도 얼고 전투식량도 얼고, 기관총의 노리쇠도 얼려버리는 강추위였다. 중공군은 미군 하나만 죽일 수 있다면 열 명이 죽어도 괜찮다면서 제일 앞에서 공격하는 군인들은 총도 없이 막대기수류탄 2개씩 양 손에 들고 달려왔다고 한다.

 

하갈우리에서 출발한 미해군 병력은 고토리까지 왔다. 고토리와 진흥리 사이를 잇는 수문교가 끊어진 상태였다. 다리를 연결해야 하는데, 장비가 없어서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다. 비행기로 장비를 보급 받아야 하는데, 기상 여건은 도저히 비행기가 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 미군과 함께 있던 기독교인들이 무릎 꿇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별 하나가 떠오른다.

 

이 별로 인하여 다음 날 맑은 날씨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그 다음 날 미군은 비행기가 떠서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과 미군이 함께 기도하는 장면이 미 해병대 박물관에 고토리의 별”(The Star of Kotori)이란 제목의 그림으로 전시 돼 있다. 그리고 이 별은 장진호전투에 참전했던 미해군 1사단 전우회의 공식마크가 된다. 절망적인 상황에 모든 것을 주께 맡긴 성도들은 주께서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해방 후 5년간 공산치하에서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켰고 또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타지로 향하는 성도들 앞에 나타난 끊어진 다리는 실로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에 모든 것을 맡겼다. 그날 밤 떠오른 고토리의 별은 그들에게 주님의 인도하시는 손을 바라보게 했다.

 

이 전투에서 미해군 1사단은 중공군 7개 사단을 궤멸시킴으로 중공군의 함흥진출을 2주간 지연시켰고 그 결과 흥남철수작전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

 

이 때 장진호를 철수하는 미해군 1사단을 따라 흥남까지 온 기독교인들과 피난민이 4,500여명이었다. 흥남 부두에 모였던 10만 명의 피난민 중 기독교인이 무려 95,000명이나 되었다. 자신들의 신분이 완전히 노출되었기 때문에 유엔군과 국군을 따라서 함께 흥남으로 왔던 것이다.

 

그리고 장진호 전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국군 부대가 있었으니, 경찰로 구성된 화랑부대였다. 한국 경찰은 유엔군에 배속되어 함께 전투에 참여했었는데, 장진호 전투에도 화랑부대의 1개 소대가 기관총부대로 참전하여 미해군 1사단의 철수작전에 큰 공을 세웠다.

 

1127일부터 시작된 장진호전투에서 미해병 1사단을 비롯한 유엔군은 17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다. 사망자 1,029, 실종자 4,894, 부상자 4,582, 동상 등 비전투요인에 의한 사상자 7,328명이다.

 

장진호 전투는 미군의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입은 전투였다. 그래서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가리켜 Chosin Few로 부른다(당시 유엔군이 사용한 지도가 일제 치하에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일본식 발음으로 장진을 초신으로 불렀다). 살아 돌아온 자가 극히 적었다는 의미다. 특별히 선택된 자만 살아남았다는 의미로 Chosen Few로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고 만날 때마다 너 이제 몸 좀 녹았냐?”라는 말로 서로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미군은 장진호전투를 계기로 일명 스키파카로 불리는 방한복을 개발, 보급했다고 한다.

 

장진호전투의 극적인 승리와 고토리의 별은 이 땅을 향한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보여준다. 해방 후 북한에서 5년 동안 숨어서 신앙을 지켜온 신자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한국교회의 부흥의 초석이 되어주었다.

 

김대운 목사(경성교회)

 

Star of Koto-ri: Symbol of Chosin Few

By Sgt. Richard W. Holtgraver Jr. | | December 7, 2001/ MARINES

 

MCB HAWAII, Kaneohe Bay, Hawaii --From the time they enter boot camp, until the day they die, Marines are bombarded with stories of great battles the Marine Corps has been involved in, and arguably one of the greatest battles of American military history was the Chosin Reservoir.

 

 

The Marines who participated in that two-week struggle for survival, in the freezing North Korean landscape, faced overwhelming odds highlighted by minus-40 degree temperatures and surrounded by an enemy who outnumbered them almost 8 to 1.Many stories surround the epic 14-day battle, but one stood out clearly in the minds of the Marines from the 1st, 5th and 7th Regiments of the First Marine Division.So inspirational was the event that the surviving members, who would later form The Chosin Few, would incorporate it as their logo.

 

 

It's the story of a lone, tiny star in a cloud-filled sky.That lonely star would provide hope and inspiration, just when the Marines would need it most. Good weather helped the Marines of the 5th and 7th Regiments by providing clear skies the previous 12 days, so close air support was provided during their withdraw from Yudam-ni and Hagaru-ri down the only road out of the Chosin Reservoir.

 

 

When the Marines joined the 1st Regiment in Koto-ri on Dec. 6, 1950, they were three quarters of the way to completing an epic journey.One major obstacle lay in front of the Marines in the form of a destroyed section of bridge at Changjin Power Plant, which needed to be replaced.

 

 

Then, Mother Nature decided she wasn't going to cooperate. A thick, blinding snow began to fall at dusk. The Air Force was going to air drop eight 2,000-pound bridge sections that could be easily built and put into place, but the skies would need to clear up if the planes were going to see the drop zone at a makeshift airstrip at Koto-ri so, the bridge sections could be loaded onto trucks and taken south to the power plant. On Dec. 7 and 8, it snowed and the temperatures hovered around minus-40 degrees Fahrenheit with the windchill factor around minus 60 degrees.

 

 

When dusk fell on Dec. 8, the storm had not abated. The situation did not look good for the Marines. They needed the bridge sections. They needed close air support. They needed clear skies in order to get them.As the evening wore on, the snow kept falling. Marines still looked to the skies in hopes of seeing a break in the clouds.Just when it looked like all hope for the storm to subside was about to disappear, a faint, little, white dot could be seen through the falling snowflakes around 2145. The small star provided a big beacon of hope for the Marines at Koto-ri.

 

 

A short time later Col. Alpha L. Bowser Jr. was taking a short walk around the camp when he heard a noise coming from a tent.He quickly recognized it as singing. The Marines inside the tent weren't singing just any old song.The Marines Hymn resonated from inside the propped up frozen piece of canvas, and the Leathernecks inside were giving it their all.

 

 

The music spread like a virus throughout the encampment. From almost every tent could be heard the singing of the beloved tune.When Col. Bowser returned to the tent of Maj. Gen. Oliver P. Smith, commanding general of 1st Marine Division, Bowser asked Smith if he could hear the Marines. Smith said he did." When our Marines have spirit like this, the Chinese Army doesn't have a chance," said Col. Bowser.General Smith took his unlit pipe out of his mouth, smiled and replied, "Bowser, the Chinese never did stand a chance to begin with." That tiny star meant a lot to many of the Marines who saw it.

 

 

To some, it meant that God loved the Marine Corps, and he wouldn't let a little thing like bad weather defeat them after fighting so valiantly against insurmountable odds.To others, it meant nothing more than luck. The timing was just a coincidence. The Marines were fortunate to have good weather appear the next morning.To the men of the Chosin Few, that tiny, little star shined so brightly when they needed it most, that it would become the organization's logo in 1983.

 

 

It was drawn by Anna C. Urband, in memory of a carrier pilot and dear friend who was lost while on a mission at the Chosin Reservoir. Within the star, the letters CF can be clearly seen."That was a symbol of what the men in the Division went through there," said Robert E. Talmadge, vice president for the Aloha Chapter of the Chosin Few. "It was a key turning point in the event, or at least a psychological turn for all the Marines. "Because they saw this star up there in the sky, that meant they could get their bridge sections and air cover the next day.

 

 

"Talmadge was a 20-year-old Buck Sergeant (E-4) during the battle. He remembers that many people in the rear, even the headquarters in Tokyo, thought the 1st Marine Division would be lost at the Chosin Reservoir."There was never any doubt in our minds," said Talmadge. "We knew the Division was going to make it out of there."While Talmadge says that morale was never an issue for the Marines, it sure was nice to have a little speck of light appear on Dec. 8, in that snow filled sky over Koto-ri.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

 

 

 


  1. 고백성사 70 퍼센트 성(性) 관련 죄

    고백성사 70 퍼센트 성(性) 관련 죄   프랑스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이 엄숙한 고해성사실 안에서 신부에게 사죄를 받으려고 고백하는 내용 가운데 약 70 페센트가 성과 관련된 죄라고 한다.   최근, 프랑스 로마가톨릭교회의 익명의 신부 40명이 지난 3년 동...
    Date2021.03.14 Byreformanda Reply0 Views799 file
    Read More
  2. 장진호 전투와 '고토리의 별'

        장진호 전투와 '고토리의 별'   장진호 전투는 지금부터 70년 전에 발생한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였다. 북한군이 유엔군에게 계속 밀리면서 임시 수도를 평양에서 압록강 근처의 강계로 옮기게 된다. 미해병 1사단은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장진...
    Date2021.03.03 Byreformanda Reply0 Views1046 file
    Read More
  3. 예수님의 터치

    메리린 몬로   예수님의 터치   미국의 전설적 여배우 메리린 몬로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미혼모인 어머니의 버림을 받고 대리 양육하는 포스터 홈(Foster Home)을 전전하며 자랐다. 신문 기자가 그에게 “힘든 성장과정을 거치는 동안 사랑을 받아 본적이 ...
    Date2021.03.03 Byreformanda Reply0 Views365 file
    Read More
  4.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이것도 찬송인가?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이것도 찬송인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 때문에 홀로 집에서 지내는 동안 <찬송가>(한국찬송가공회, 2006)에 담긴 노래들을 열심히 불렀다. 성경을 통독하듯이 찬송가를 큰 목소리로 통송했다. 찬송은 언제나 나에게 은혜 ...
    Date2021.02.06 Byreformanda Reply0 Views2755 file
    Read More
  5. 교회는 케리그마 사명에 충실하라

        교회는 케리그마 사명에 충실하라     나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친인척들에게 전도하는 사명을 받았다. 이 사명을 성공적으로 이루려고 본격적인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고, 어느덧 2년 차 수업을 마...
    Date2021.01.23 Byreformanda Reply0 Views627 file
    Read More
  6. 교회와 유비쿼터스 세상

        교회와 유비쿼터스 세상   나는 ‘386 세대’ 이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 한 때에 컴퓨터에 관한 아무런 지식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는 컴퓨터 실행 능력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선천적으로 기계와 친하지 않았다. 그래서 컴퓨터에 ...
    Date2021.01.14 Byreformanda Reply0 Views335 file
    Read More
  7. 왜 예수는 간음녀를 정죄하지 않았는가?

        왜 예수는 간음녀를 정죄하지 않았는가?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 8::11)   많은 고대사본에 이 부분이 없습니다. 특히 이른바 이집트 본문 그룹이 그러...
    Date2020.10.24 Byreformanda Reply0 Views1241 file
    Read More
  8. 코로나19와 교회의 혁명적 변화

      일식 코로나   코로나19와 교회의 혁명적 변화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이러스들 중에서 최강의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바늘로 100번을 찔러도,90도 이상의 열을 10분 이상을 가해도, 파괴되거나 찌그러지지 않고 원상을 유지하는 괴력을 보...
    Date2020.09.21 Byreformanda Reply0 Views537 file
    Read More
  9. 개혁교회는 어떻게 예배당을 확보하는가?

        개혁교회들은 어떻게 예배당 건물을 확보하는가?   신원균 교수(대신총회신학연구원, 조직신학)   장로교회의 교회법 원리에서는 교회 건물을 사용하는 순서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재정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나 어려움을 전제로 소개합니다.   1. 목사님 ...
    Date2020.08.07 Byreformanda Reply0 Views392 file
    Read More
  10. 레슬리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

    WCC 부산총회(2013) 개회식   레슬리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   레슬리 뉴비긴이 기독교에 기여한 점과 해악을 끼친 점, 오판과 자기비판, 복음적 노선과 에큐메니칼 사상의 이중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비평적 논의가 필요하다. 아래의 글은 '선교적 ...
    Date2020.07.30 Byreformanda Reply0 Views1105 file
    Read More
  11. 최덕성 교수의 성령론―방언 강의를 듣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성채와 성령교회당 (하이델베르크신앙문답과 관련된 장소)   최덕성 교수의 성령론―방언 강의를 듣고   박재의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 2학년)   브니엘신학교 2020 봄 학기 수업은 코로나19의 위협으로 불편한 조건에서도 은혜롭...
    Date2020.07.05 Byreformanda Reply0 Views1091 file
    Read More
  12. 온라인 예배, 세례, 성찬

    온라인 예배, 세례, 성찬      코로나 19와 더불어 온라인교회가 출범했다. 온라인 목사, 온라인 사도가 등장하고 있다. 온라인 예배, 온라인 성찬, 온라인 세례가 가능할뿐 아니라 필요한 시대에 진입했다. 온라인 교회는 온라인을 거쳐 사람들에게 복음을 ...
    Date2020.06.22 Byreformanda Reply0 Views820 file
    Read More
  13. 뉴 노멀 온라인교회 시대 열리다

        브레드채플 동영상 캡쳐     뉴 노멀 온라인교회  시대 열리다   1. 온라인교회의 등장   온라인교회, 네트워크교회 시대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 교회는 유비쿼터스(Ubiouitious) 기술과 세계적인 대점염병이 가져온 새로운 일상(new normal)의 만...
    Date2020.06.12 Byreformanda Reply0 Views545 file
    Read More
  14. 미모의 여인 유디스의 선의의 거짓말

    안젤리아 왕 (중국계 예술단 션원 무용수)   미모의 여인 유디스의 선의의 거짓말 악성 코비드19 '덕분'에 로마가톨릭교회가 성경에 포함시키는 위경 <유디스>(Judith, BC 100경 추정)를 정독했다. 왜 신학자가 위경을 읽느냐고 따질 독자가 있을 법하다. 나...
    Date2020.05.03 Byreformanda Reply0 Views977 file
    Read More
  15. 마사다(Masada)를 아시나요?

    마사다(Masada)를 아시나요?   예루살렘 동남쪽 100㎞ 지점의 마사다(Masada). 형태가 기묘하다. 사해(死海) 부근의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았어도 정상 부분은 평평한 바위산. 탈무드, 선민의식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정신적 지주의 하나다. 마사다가...
    Date2020.04.20 Byreformanda Reply0 Views788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 Next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