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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3.jpg

 

철사로 꿰매진 눈: 어둠이 시기를 치유한다

 

시기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2)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는 이탤리 피렌체의 하늘 아래 태어나, 인간의 영혼이 하늘과 지옥 사이를 오가던 중세 말의 시인이다. 그는 단순한 문필가가 아니라, 언어와 신앙, 인간과 신을 잇는 다리를 세운 사람이었다.

 

피렌체의 아들, 추방된 시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여명기에 피렌체에서 태어난 단테는 젊은 시절 정치와 철학, 신학에 깊이 몰두했다. 아름다운 여인 베아트리체(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를 향한 사랑을 평생의 상징으로 삼았다


단테의 생은 평탄하지 않았다. 피렌체의 정쟁 속에서 추방자가 되었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 채 방랑의 세월을 보냈다. 그 방랑은 단순한 정치적 추방이 아니라, 영혼의 추방이었다.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죄를 목격한 그는, 시를 통해 영혼의 귀향길을 찾고자 했다.

 

단테는 신과 인간 사이의 시인이었다. 중세의 마지막 시인이자, 근대의 첫 철학자라 불린다. 그의 시는 신학의 언어로 쓰였으나, 인간의 눈물과 땀으로 번역된다. 그에게 시는 단지 아름다운 말의 장식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순례였다. 단테는 고백한다.

 

시란 인간의 영혼이 신의 질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신곡(La Divina Commedia)은 단테가 1308년경부터 1321년까지 집필했다. 그가 사망한 해에 완성된 서사시이다. 이 작품은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뒤 망명 생활을 하던 시기에 쓰여졌다.

 

단테는 인간의 모든 감정과 욕망, 죄와 구원을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여행으로 그려냈다. 지옥의 불길 속에서 인간의 어둠을 보고, 연옥의 눈물 속에서 정화를 배우며, 천국의 빛 속에서 사랑이 모든 것의 원리임을 노래했다.

 

그는 혁명가였으며, 영혼의 어설픈 지도자였다. 당시 지식인들은 라틴어로 글을 썼다. 그러나 단테는 피렌체 방언으로 신의 세계를 노래했다.

 

라틴어가 천국 공용어 이며, 하나님은 라틴어 예배만 받으시며, 나무 위의 새조차 라틴어로 노래한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단테는 라틴어의 벽을 넘어, 평범한 사람의 언어로 천상의 신비를 말했다. 이로써 이탈리아어는 문학의 언어로 태어났고, 단테는 이탈리아어의 아버지가 되었다.

단테의 문장은 철학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신학적이면서도 인간적이다. 하늘의 질서를 말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눈물 냄새를 잊지 않았다.

 

단테의 작품은 인간 존재의 지형도이다. 인간의 신곡, 코메디 안에는 교만, 시기, 탐욕과 절망이 있고, 그 끝에는 자비와 용서, 그리고 사랑이 있다.
그의 여정은 한 인간이 어둠에서 빛으로,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가는 내면의 순례이다.

 

단테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그의 시는 7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질문을 던진다.

 

단테는 영원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1321년 라벤나에서 숨을 거두고 우리를 떠났지만, 그의 언어는 영원을 걸었다. 그의 시는 시간의 옷을 입은 천사의 노래, 인간의 언어로 번역된 천국의 서사였다.

 

단테의 이름을 부르면, 바람 속에서 그 목소리가 들린다. “모든 길은 사랑으로 끝난다. 그 사랑이 바로, 신이시다.” 이것이 단테의 문학의 정수이며, 단테의 신학이다. 인간의 눈으로 본 최초의 천국의 시인이며, 신의 빛으로 인간을 본 마지막 철학자였다

 

신곡은 인간 영혼의 죄와 구원을 우주적 질서 속에서 시적으로 그린 거대한 여정이다. 그 가운데 시기(嫉妬, envy)는 인간의 시선이 타인을 향해 왜곡되는 죄, 눈의 죄로 묘사된다. 단테는 연옥의 제2, 곧 시기하는 자들의 고리에서 이 죄를 섬뜩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낸다.

 

시기는 눈으로 짓는 죄이다. 시기의 본질은 보는 데 있다. 시기하는 자는 타인의 빛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들의 눈은 언제나 남의 행복에 머문다.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타인의 은총을 훔쳐보고, 비교하며, 그 불평등 앞에서 신을 원망한다.

단테는 이 점을 포착한다. 그는 시기하는 자들이 눈꺼풀이 굵은 철사로 꿰매진 채연옥의 길을 더듬는 장면을 그린다. 그들의 눈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없게 봉해지고, 대신 마음속의 어둠만을 응시한다.

 

이것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다. 그들이 세상을 잘못 본 대가, 보는 방식을 정화하는 길이다. 눈으로 죄를 지은 자들이 눈으로 벌을 받는다. 시선은 다시 훈련되면, 빛을 질투하던 눈이 이제는 어둠 속에서 참된 빛을 배운다.

 

단테는 시기를 철사로 꿰맨 연옥의 시각이라고 했다. 이 장면을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묘사한다. 그들의 눈은 닫혀 있지만, 영혼의 귀는 열린다. 그들은 서로 기대어 걷고, 길 위에서 울며 노래한다. 그들의 노래는 놀랍게도 사랑의 찬가이다. “모든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미한다. 눈이 닫히자, 오히려 마음이 열린다. 그러자 시기는 고통 속에서 사랑의 결핍으로 해석되고, 그 결핍은 치유된다.

 

단테는 사람들에게 눈과 빛, 곧 시기 대신 어둠-정화를 주었다. 그 어둠은 벌이 아니라, 치유의 밤이다. 어둠 속에서 비로소 빛을 깨닫는다. “빛은 나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단테의 세계에서 시기는 단순한 악덕이 아니라, 사랑의 왜곡된 그림자다. 사랑이 자신에게로 굽어지면 탐욕이 되고, 남의 행복으로 향하면 시기가 된다. 시기는 사랑의 뒤틀린 형상, 타인의 빛을 보고 자기의 어둠을 절망하는 마음이다.

 

단테에 따르면, 연옥에서 눈을 꿰매는 것은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의식이다. 눈을 감고 나서야, 인간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질서를 본다. 그제야 타인의 행복 속에서도 신의 선함을 본다. 철사로 꿰매진 눈(시기)은 신의 손길 아래에서 서서히 풀려나며 새로운 시선을 얻는다. 사랑으로 보는 눈, 은혜로 보는 눈으로 바뀐다.

 

 

단테에 따르면 인간 코메디(신곡)의 연옥은 단순한 형벌의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회복의 공간이다. 시기는 인간이 신의 질서를 잃어버린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이지만, 단테는 그것이 사랑으로 다시 길들여질 수 있는 감각임을 보여준다.

 

눈이 봉해진 자들은 서로를 손끝으로 인도하며, 다른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그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걷는 모습은, 시기가 공동체적 사랑으로 변모하는 과정의 상징이다.

 

단테는 그들의 어두운 행렬을 묘사하면서 외친다.  그들은 눈을 감았으나, 하늘을 본다.”

 

인간 죄성의 뿔인 시기는 실상 어둠 속의 빛을 기다리는 눈이다. 단테에게 시기는 단순한 질투의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타인의 빛을 사랑하지 못하는 영적 질병이다. 그 병의 치유는 눈을 감는 것에서 시작된다. 시기하던 자가 눈을 닫는 순간, 그는 비로소 본다. 그동안 자신이 보지 못했던 신의 사랑, 은총의 질서를 본다.

 

단테의 연옥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눈을 감아라. 그때서야 진짜 빛을 보리라.” 그것이 시기를 정화하는 길이며, 어둠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랑의 눈이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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