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이 뿌리내린 은밀한 그림자: 시기심
―시기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3)
‘시기’(猜忌, Envy)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미워함이다.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타인’에게 초점을 맞춰서 “시기가 갖지 못한 좋은 것을 이웃이 가진 것을 슬퍼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질투를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춰 ‘이웃이 지닌 것을 자신이 소유하지 못해 슬퍼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시기는 인간의 영혼 속에 가장 은밀히 뿌리내린 그림자다. 그것은 다른 죄처럼 외부로 폭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요히, 빛나는 타인을 바라보는 눈 속에서 서서히 피어난다. 단테가 그 죄를 “눈의 죄”라 부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 눈으로부터 시작된 불꽃
라틴어 invidia는 “보다”(videre)에 ‘안으로’라는 접두사 in이 붙은 말이다. 시기란 보는 것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타인의 행복, 타인의 성공, 타인의 찬란한 순간을 바라보는 눈이 그 빛을 감당하지 못할 때, 그 시선은 부패하기 시작한다.
그 빛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된다. 시기하는 자의 눈은 타인의 영광을 비추는 빛에 상처받은 눈이다. 사울이 다윗을 향해 보낸 눈길이 그러했다. “그날 이후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성경의 히브리어는 ‘주목’이 아니라 ‘눈으로 노려보다’에 가깝다. 사울의 눈은 다윗을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닌 그를 본 것이다. 시기의 눈은 결국 타인을 보는 척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본다. 이처럼, 시기는 외향적 감정이 아니라, 자기 파괴의 불꽃이다.
2. 시기하는 마음 ― 행복을 슬퍼하고 불행을 기뻐하는 병
토마스 아퀴나스는 시기를 이렇게 정의했다. “시기란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 불행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 정의는 인간의 심연을 폭로한다. 시기하는 마음은 사랑의 부재가 아니라, 사랑의 왜곡된 잔향이다. 남의 기쁨이 내 슬픔이 되고, 남의 불행이 내 위로가 된다.
이 감정은 단테의 연옥에서처럼 영혼의 눈을 서서히 썩게 만든다. 시기의 본질은 증오가 아니라, 비교다. 비교는 눈에 잿빛을 묻히고, 세상을 왜곡시킨다. “왜 나는 아니지?”라는 한 문장이 시기의 씨앗이 된다.
셰익스피어가 시기를 ‘녹색 눈의 괴수(Green-eyed monster)’라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덜 익은 과일처럼 신맛이 짠득 감도는 질투, 빛나는 것을 삼키려다 오히려 속을 녹여버리는 괴수, 이처럼 시기는 고양이처럼 조용히 다가와 마음을 긁고, 결국 자신을 물어뜯는다.
3. 단테의 눈 ― 시기를 봉한 자들의 연옥
단테는 『신곡』에서 시기를 짓고 죽은 자들이 눈꺼풀이 굵은 철사로 꿰매진 채 연옥의 돌길을 더듬는 장면을 그린다. 그들은 더 이상 세상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그들은 비로소 빛의 의미를 배운다. 칼 올슨이 말했듯, “눈으로 죄를 지은 자들이 눈으로 대가를 치른다.” 시기란 보는 법을 잃은 죄이기에, 그 치유는 다시 ‘보는 법’을 배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눈을 감고서야 깨닫는다. 세상의 빛은 나만의 것이 아니며, 타인의 영광 또한 신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4. 시기의 특징 ― 평범함 속의 독
시기는 다른 죄보다 더 교묘하다. 대개 도덕의 옷을 입고 다가온다. 우리는 시기하면서도 그것을 정의감이라 착각하고, 열등감을 신앙의 겸손이라 포장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타인을 끌어내리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다. 시기는 조용하다. 폭력처럼 터지지 않기에, 우리는 그것을 죄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영혼의 침묵을 좀먹는 독이다. 친구의 칭찬이 불편하고, 남의 웃음이 마음을 쓰라리게 하는 그 순간, 우리 안의 시기는 이미 숨을 쉰다.
현대 심리학은 이런 감정을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 부른다. 남의 고통 속에서 느끼는 은밀한 쾌감, 그 달콤한 독이 바로 시기의 얼굴이다. 시기는 언제나 자신을 숨긴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이 시기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조용히 병들어 간다.
5. 시기의 치유 ― 눈을 닫고 마음을 열라
시기는 사랑의 결핍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을 잃은 감정이다. 그래서 단테의 연옥은 눈을 닫는 데서 시작된다. 눈을 감아야 마음이 보이고, 어둠 속에서야 진정한 빛을 인식한다.
시기는 타인의 빛을 미워하지만, 사랑은 타인의 빛에서 자신의 어둠을 비춘다. 눈을 닫는다는 것은 타인의 성공을 보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라는 초대다. 그리하여 시기의 눈은 닫힘을 통해 다시 열린다. 닫힌 눈이 마음의 눈이 되어, 타인의 영광 속에서 신의 손길을 본다.
6. 시기, 어두운 그림자
시기는 인간이 빛을 마주할 때 드리워지는 가장 어두운 그림자다. 그림자는 빛이 있을 때만 생긴다. 따라서 시기는 신의 선물 곁에 늘 붙어 다닌다.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자유의 한 조각, “너도 나처럼 보고 느끼라”는 빛의 시험이다.
우리는 그 빛 앞에서 두 가지 길을 걷는다. 하나는 사랑의 길, 다른 하나는 시기의 길, 사랑은 타인의 빛을 축복으로 보고, 시기는 그것을 경쟁으로 본다.
그러나 어쩌면 단테의 말처럼, 시기의 어둠도 결국 빛으로 가는 길목일지 모른다. 눈을 꿰맨 그들의 침묵 속에서, 하늘은 이미 다시 열리고 있었으니까.
“눈을 감아라. 그때서야 네가 진정으로 보게 될 것이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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