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판 종교다원주의
종교다원주의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힌두교 비이원성 철학에 기초한 라마크리슈나와 그를 교주로 삼아 출발한 ‘라마크리슈나 미션이다. 둘째는 기독교 바탕에서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 칼 라너, 라이문도 파니카, 존 힉, 그리고 이를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전승시킨 스탠리 사마르타와 웨슬리 아리아라자 등의 종교다원주의이다. 셋째는 한국인 탄허 스님의 불교판 종교다원주의이다.
한국인 승려 탄허는 '불교판 종교다원주의자'이다. 그의 주장은 단순히 모든 종교가 같다는 식의 피상적인 다원주의를 넘어선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회통(會通)'과 '화엄사상(華嚴思想)에 기반한 통합적 진리관'이다.
첫째, 화엄사상에 기반한 만법귀일(萬法歸一)의 진리를 강조한다. 탄허 스님은 불교의 화엄사상, 특히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도리를 최고의 교학으로 본다. 이는 우주 만물이 서로 원융하게 조화되어 있고, 모든 현상이 본래 하나의 진리에서 나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유교, 불교, 선교(도교) 등 동양의 여러 사상과 종교는 물론, 서양의 종교와 학문까지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진리로 통한다는 입장을 가졌다.
둘째, 종교 간의 차이 인정과 상호 보완성을 강조한다. 단순히 모든 종교가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 종교가 지향하는 바와 깨달음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이러한 차이들이 궁극적으로는 같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다양한 길이라고 본다. 서로 배척하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으로 이해하고 융합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기독교의 삼위일체론 등 기독교 또는 서양 종교의 사상까지도 불교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회통하려는 시도를 한다.
셋째, 인간 정신의 근원으로서 '성품’(性品)을 강조한다. 모든 종교의 근본 목적은 인간의 본래적인 심성, 곧 '성품'을 깨닫는 데 있다고 한다. 천당이나 지옥과 같은 개념은 유치원생을 지도하는 것과 같은 방편이며, 중요한 것은 우주의 주체가 무엇인지, 즉 우리의 정신(마음)이 시공을 초월한 근원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넷째, 미래 예지와 한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역학(易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와 세계, 한국의 미래에 대한 예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미래에 인류가 큰 변화와 혼란을 겪을 것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는 더 큰 성숙을 위한 과정이며, 한국이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동양 정신의 중심이자 세계의 정신적 수도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예지는 개인적인 호기심을 넘어 모든 인류가 공유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다.
탄허는 불교 뿐 아니라 유불선을 회통한 것으로 유명하다. 난해한 노장사상에 대해서도 회통을 통하여 그 뜻을 드러내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요컨대, 탄허의 종교다원주의는 각 종교의 고유성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화엄사상에 입각한 심오한 진리관을 통해 모든 종교와 사상이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조화롭게 만날 수 있다는 포괄적인 관점이다.
탄허의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승려가 있다. 승려 문광의 논문 제목은 “탄허 택성의 사교 회통사상 연구”(2018)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제출한 것이다. 후에 학술서 “탄허 선사의 사교 회통 사상”이라는 단행본 책으로 출간되었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위 글은 <종교다원주의: WCC의 신앙고백>에 실린 글을 간추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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