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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glossolalia)은 신앙생활에 유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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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언의 재출현

 

고린도교회의 방언 건 이후, 초대교회 400년 동안 자신들이 방언을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몬타누스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었다. 이단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었다. 개혁신학의 대부 존 칼빈이 교회 안에 이상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두고 하나님을 조롱하는 일이며 일종의 사악한 위선이라고 지적한 것을 보아 그 시대에도 방언 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17세기 말프랑스 남부 세벤(Cevennes) 지역에서 전투를 하던 한 무리가 예언을 하고 환상을 체험하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18세기에 얀센주의자들(Jansenists)이 방언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종교 개혁자들의 이신칭의 가르침에 반대한 로마가톨릭교회 지지자들이었다. 미국의 세이커교도들은 무아지경과 비슷한 상태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한 기독교계 소종파였다. 

 

현대 오순절주의 방언 현상은 1901년 미국의 벧엘성경학교에서 일어났다. 학장 찰스 팔함 목사가 학생들에게 성령을 받은 증거가 무엇인가를 연구하여 발표하라고 했다. 사도행전의 성령받은 증거는 방언이라는 결론을 얻었고, 함께 방언 받기를 기도했다. 뜨겁게 기도하는 학생들은 방언을 하고 뜨거운 성령충만을 경험했다. 5년 뒤 1906년에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러스 아주사 거리에서 흑인 목사 시무어가 설교 중에 갑자기 방언을 했다. 아주사 집회는 지진과 같았다. 그런데 20세기에 나타난 방언 현상은 사도행전의 방언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초자연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었다. 방언의 내용을 타인이 알아 들을 수 없었고,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로마가톨릭교회 안에도 이런 종류의 방언하는 신도들이 있다고 한다.

 

정통적인 기독교는 방언하는 자들을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로 보아 왔다. 방언을 이단적이거나 광신적이거나 비정통적인 집단 현상과 동일시해 왔다사도 시대 이후 신약성경이 말하는 방언 은사가 나타났다는 보고는 한 번도 없다.  20세기 초에 등장하여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이상야릇한 방언은 사도행전의 방언과 같지 않다. 비정상적인 집단에서 나타난 '방언'이었다.

 

현대 방언 지지자들이 방언은사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방언 반대자들은 방언이 사도시대의 마감과 더불어 그쳤다고 주장한다현대 방언을 사도행전의 방언의 재등장이 아니라 고린도교회를 어지럽힌 이교 방언가짜 방언의 관행과 비슷한 하나의 언어적 일탈 현상으로 여긴다.

 

바울은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8)고 말한다. ‘그친다’의 헬라어 동사 '파우오'(pauo)영원히 그치다’는 뜻이다. 무엇이 일단 그치면 다시 나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격한 표적 방언을 염두에 두고서 한 말로 보인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기적이며 계시의 수단으로 주어진 표적으로 예루살렘, 가이샤라, 에베소에 각각 히루 동안에 주어졌다가 그쳤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특별한 표적이었다.. 표적 방언은 하나님이 이방인을 포함하는 새로운 구원 역사를 시작하였음을 알리는 거대한 사건이었다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막힌 담은 무너졌고, 하나님이 모든 민족에게 그리고 모든 언어로 말씀하기 원함을 알렸다. 방언은 바벨탑 사건 이후 하나님의 저주를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교회가 출범하면서부터는 온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복 주심과 새 언약 시대의 징표로 주어졌다.  

 

초자연적 기적과 계시의 시대는 사도들과 더불어 끝났다신약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사도적 기적은 약 58년경의 멜리데 섬에서 있었던 보불리오 아버지의 신유사건이다( 28:7-20). 요한은 계시록을 완성한 96년까지 방언을 언급하지 않는다. 사도적 권위와 메시지는 더 이상 표적으로 확증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도 요한의 죽음과 함께 사도시대가 끝나자 사도적 표적들은 현실에서 사라졌다(고전 12:12 참고). 

 

신약성경 가운데서 방언을 언급하는 책은 마가복음, 사도행전, 고린도전서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쓴 뒤 여러 편의 서신서들을 썼지만 방언을 다시 언급하지 않는다베드로는 방언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요한, 야고보, 유다도 언급하지 않는다방언이 기독인의 신앙생활에 그토록 유익하고 중요하고 두드러진 기독교 신앙의 특징이면 사도들과 신약성경의 나머지 책들이 이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의아스럽다. 사도 시대가 종료되기 전에도 위 성경들 외에는 방언의 은사를 언급하지 않는다. 방언을 암시하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사도 시대 이후의 교회 지도자들은 어느 누구도 방언을 긍정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사도행전이 말하는 방언이나 방언하는 은사가 중단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증명부담의 의무는 방언 지지자들에게 있다. 은사주의 그룹은 오늘날의 방언이 진실한 영적 은사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확실함을 설명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 거의 1,900년 동안 나타나지 않은 사도행전의 표적 방언 또는 고린도전서가 언급하는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방언" 은사가 20세기 초에 이르러 교회 안에 비로소 재등장한 까닭을 설명해야 한다. 

 

2. 현대 방언의 긍정적인 면

 

하나님은 개인의 영적 유익 곧 덕(edification)을 세울 목적으로 방언 은사를 주실 수 있지 않은가?  현대 방언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주저된다. 하나님은 마른막대기를 신자훈련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거룩한 구원의 역사에 이방국가 이집트, 바벨론, 앗시리아, 로마를 동원한 하나님은 이상야릇한 방언을 사용하여 자기 백성들에게 신비를 체험하게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방언은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오늘날 우리 시대에 주어지는 성령의 기이한 은사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현대 방언이 하나님과 친밀한 영적 교제를 느끼게 하고영이 새로워짐을 경험하게 하고활기찬 신앙생활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교회당에서 오래 동안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지사충성하는 상당수 사람들이 방언하는 사람들이다.이들은 방언으로 영적인 신비를 체험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려 한다. 신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 기독인답게 살려고 노력한다. 성령 하나님은 바람처럼 역사한다인간의 고착된 사고와 방식을 넘어선다

 

어느 여인은 어릴 때 교회를 다녔지만 반세기 동안 하나님을 등졌다가 불행한 상황에서 예수를 주를 믿고 예배하는 개종 첫날부터 이상야릇한 방언을 경험했다. 눈을 감으면 무아지경의 황홀감에 도취되어 잠시나마 정신적 고통을 잊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경험을 한다. 그러한 체험 덕분에 숨을 쉬고 살아있다고 한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이제는 그리스도에게서 떠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어느 여인은  오랫동안 악령에게 이끌려 간질 증상과 같은 고통을 당해 왔다. 유명하다는 무속인과 불교 사찰을 전전했다. 귀신에게 사로 잡혀 여러 가지 험난한 시련을 당했다. 어느 날 교회 예배에 참석했고, 그 날부터 방언 했다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해 오다가 약 7년 뒤 교사직을 그만두고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공부를 마무리하고 있다. 위 두 여인의 경우, 방언은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와 사랑의 징표이며, 극심한 사탄 활동의 포로 상태에서 해방되는 경험이다

 

왜 오늘날  방언이 폭발력 있게 확산되고 있을까? 차갑고 생기 없는 기독교에 대한 대안의 필요성 때문이 아닐까? 차갑고 냉정한 신자들, 영적이고 신비한 세계에 관심이 없는 지성적 기독교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인다 

 

방언하는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세계와 직접 접촉하는 것 같은 느낌을 체험한다신의 임재를 직접 경험한다무미건조하지 않으며학문적인 냉정성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왜 그토록 많은 기독교인들이 방언을 말하고 새로운 신자들이 방언체험을 찾는가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영적인 굶주림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언은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게하고 흥분과 온기와 사랑을 느끼게 한다방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실제로 개입하고 친히 역사한다고 믿는 듯하다

 

현대 방언을 부정하는 교회는 생기 없는 정통신앙을 앞세운다. 입술로는 성령 충만을 외치지만 실제 생활에는 영적인 활기가 없다지적 냉기가 감도는 신앙생활, 복음전도와 신앙생활의 열성이 식어 있는 교회의 현실은 기독교가 현대인에게 실질적인 만족을 주지 못한다. 방언을 환영하지 않는 교회도 언제나 성령의 특별한 역사와 신도들의 영적체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교회가 방언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환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다만 그것이 마귀로부터 오지 않고 성령이 주신 은사일 경우이다. 최소한 신앙생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일련의 심리 현상일 경우이다. 하나님은 건전한 심리현상을 이용하기도 한다. 기독인은 지정의를 거쳐 느껴지고 인식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방언하는 기독인들의 체험적 신앙이 그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기독인들보다 더 탁월한가? 우리의 질문은 여기서 더 깊어 진다. 누가 오늘날 방언을 말하는 이들이 방언을 하지 않는 신자들보다 그리스도를 위해 더 거룩하고 더 일관된 삶을 산다고 진지하게 말할 수 있는가오순절주의, 은사주의, 신사도주의를 지향하는 교회들이 방언을 거부하면 모든 것을 성경에만 호소하는 교회들보다 전반적으로 더 강하고 더 건전함을 보여주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은사주의 운동이 더 영적인 그리스도인이나 신학적으로 더 탁월한 지식인을 배출하는가

 

수십년 동안 방언을 해 온 사람들 가운데 단호히 그것을 버린 기독인들이 있다. 놀랍게도 그 수가 적지 않다. 방언을 해도 진정한 평안만족능력기쁨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증언하면서 방언퇴치운동을 펼치고 있다.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왜 황홀한 체험이 주는 감정적 흥분을 되풀이하기가 점차 더 어려워지고결국 환멸로 끝나는 경우가 그토록 많은가이러한 질문들은 방언에 대한 우리의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것이 바람직함을 강력히 시사한다.

 

3. 학습행동

 

방언은 일련의 심리적 학습행동일 수 있다방언 공동체는 방언을 가르치고 학습하기도 한다. 방언 학습자는 노골적으로 ‘의지적 통제에 대한 수동적 포기’ 상태로 들어가도록 교육을 받는다. ,방언 갈망자는 긴장을 풀고 자기의식에 대한 통제를 포기한다. 집회 참석자들이 거의 다 방언을 하므로 자기도 그것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방언 소리를 들어보고 약간의 훈련을 받으면 대부분 방언을 한다고 한다. “당신은 방언을 받았습니까?”라고 묻고 “일단 시작하세요할렐루야와 아멘을 반복적으로 되풀이 하면 방언이 터집니다라고 말한다은사주의 공동체는 구성원들에게 방언을 하도록 무언의 집단적 압력을 준다방언을 못하면 왕따 당한다고 하는 느낌 곧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방언은 방언 공동체 구성원들의 최대공약수이다영성과 정통성과 영적 성숙의 보편적 기준이다. 어느 목사는 유튜브 채널에  "방언은사 받는 법"이라는 동영상을 게시했. 은사는 성령이 주시는 선물이다. 받는 사람의 노력, 연습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노력이나 학습 결과로 방언은사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성령이나 은사의 초자연성과 무관하다. 성령이 특정인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시려 한다면, 왜 그것을 받는 사람이 방언을 하려고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가? 왜 "방언은사 받는 법"을 학습해야 하는가?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젊은 연예인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어린 십대 소년 소녀들을 보라. 흥분, 감격열정, 굉음 속에서 자신들의 성대와 근육에 대한 의지적 통제를 포기한다집단적 심리구조최면무아지경 경험기억자극정신적 카타르시스 해소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자신의 의지 통제를 포기하면 무의식적인 중언부언의 말이나 의미 없는 소리를 반복하거나 무아지경의 황홀감을 느끼는 행위를 지속 반복하며, 방언이라고 하는 '언어 이상 증세'가 타나날 수 있다.

 

방언에 '종교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을 주목해 보라. 낯설고 이상한 가르침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으로 화답한다눈을 감으면 즉각 방언을 하고 자기의지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 쉽게 진입한다. 심리적 암시 능력에 가볍게 복종한다무슨 암시를 받든지 간에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감정이 고조되고 정신적 압력이 올라간 상태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성령이나 초자연성과 무관한 언어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실어증 환자들의 상태와 방언하는 사람들은 똑 같은 언어해체 현상을 보인다마귀적이든 심리적이든 간에 언어에 대한 자기의 의지적 통제 포기가 이루어진다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언어 통제가 방해를 받을 때 의미 없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상야릇한 방언을 초래하는 자연스런 심리 기제들이 많다.

 

하나님이 신앙생활에 유직하고 영적 성숙에 도움을 주는 방언은사를 준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가 그것을 받는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타인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발음 현상으로 나타날까? 

 

바울은 일관되게 자기 부정을 강조한다.  '자기의 덕(edification)을 세움(고전 14:4)은  그의 일관된 자기 부정의 가르침에 역행한바울은 자기를 세우려고 교회에서 방언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고전 14:4). 자기를 세우려는 은사 활용은 은사를 주시는 목적에서 일탈하는 일이다. 사랑의 원칙을 무시하는 행동이다(고전 13:5).

 

자기의 덕을 세우다라는 헬라어 단어의 뜻은 “자기를 세우다이다문맥에 따라 긍정적인 뜻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이 본문은 이것을 부정적인 의도로 사용한다. 고린도 교인들이 방언에 치중하는 까닭이 이기적으로 자기를 세우려는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타인에게 신령한 신자로 보이려고 눈에 띄는 방언을 하는 자기중심적 욕망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과시 동기의 행동으로 유익을 얻는 사람은 방언을 말하는 자 외에 아무도 없다. 방언에서 얻는 것은 결국 자기의 영광을 구하고 자기를 세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단호하게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고 가르친다.

 

4. 방언 수수께끼

 

방언 지지자들은 방언이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신비한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방언은 개인의 영적 체험 영역에 국한된 수수께끼인가?

 

바울의 방언에 대한 고린도전서 14장의 가르침은 교회질서 차원에서 주어진 것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교회가 경계하라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알지 못하는 말을 하는 집단 방언을 금한다통역 없이는 방언하지 말라고 한다방언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개인기도의 수단이 아니라는 뜻이다바울은 "각종 방언 말함”(고전 12:10) “방언들 통역”(고전 14:28)을 동시에 언급한다. 방언 통역은 의미를 지닌 단어들과 문법 체계를 가졌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방언 성령이 주시는 은사라는 것을 배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그러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방언 지지자들은 방언의 진정성을 입증,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신뢰성 증명에 매우 취약하다. 이것은  방언이라는 것을 가볍게 여기거나, 부정하거나, 신뢰하지 않은 가장 큰 까닭이다.

 

방언이 가짜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그렇다. 녹음기로 방언 녹음하여 방언 통역의 은사를 가졌다고 하는 자에게 통역을 의뢰해 보라통역자들 각각의 정보를 차단한 상태에서 여러 명에게 통역을 부탁해 보라통역자 수만큼이나 다른 내용을 내놓을 것이다오순절주의자, 은사주의자, 신사도주의자들이 실제로 확인이 가능한, 통역이 가능한 언어로 말을 한 사례는 없다. 방언이라는 것의 진정성을 확실히 입증된 경우는 없다

 

모든 방언은 마귀 활동의 결과인가? 사탄은 매우 영리하고 교활하다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을 호시탐탐 유혹하고 넘어지게 한다. 사람이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비우면 '얼씨구 좋다'고 하면서 그 빈 마음에 들어간다. 그곳을 자기의 집으로 삼고 왕성하게 역사한다. 자기를 천사나 성령으로 가장하고서 방언으로 그리스도를 저주(anathema Jesu)할 수 있다방언을 주도하여 성도들이 하나님께 올바른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방해한다.

 

사탄은 진리를 흉내 내는 전문가이다(고후 11:12-15). 모든 거짓 종교의 배후에 있다(고전 10:20).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딤전 4:1)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방언이 마귀 활동과 무관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모든 방언 현상이 성령과 무관하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하나님은 종종 비정상적인 방법을 수단 삼아 자신의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올 수있다. 그 과정에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체험들을 하게 할 수도 있다. 신자 개인의 신앙증진에 유익하고 영적 삶의 풍요로움에 이바지하는 경우, 그것이 정당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중립적이다.

 

5. 이교 방언현상

 

방언은 기독교-교회의 전유(專有현상이 아니다세계 여러 지역과 종교들이 방언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방언은 이교 주술 숭배자들 사이에서 장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무아지경의 언어는 거짓 종교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방언을 하는 종교 그룹은 대략 다음과 같다. 불교 일련종(남묘효량게쿄), 티베트의 승려들회교도에스키모인인도의 힌두교일부다처제를 가진 미국의 몰몬교 신자들이다. 로마가톨릭교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아프리카 서부 해안의 컬트 샹고교에티오피아의 컬트 조르교아이티의 컬트 부두교남미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샤먼(shaman)들에게서 발견된다고 한다

 

명확하게 마귀의 역사로 나타나는 방언들도 있다. 아프리카 동부에 귀신에 사로잡혀 스와힐리어나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아프리카의 통가(Thonga)족은 줄루(Zulu)어를 전혀 모르는데도 그들 사이에서 귀신을 쫓아 낼 때 보통 줄루어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은 ‘방언의 기적으로 줄루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이 사례들은 방언이 사탄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것이라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6. 맑은 정신의 기도

 

현대 방언은 교만영적 우월감 과시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정도를 넘어 속임수심리적-사회적-언어적 '트릭'(trick)으로 이용되고 있다. 교회의 무질서를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직통계시예언투시입신환상, 신의 음성 듣기, 신들림,  '임파테이션'  불건전한 신비주의를 조장하거나 직결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울은 교회의 질서차원에서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고 하는 구도에서 방언을 언급한다. 방언을 교회 회중 앞에서 하거나 마이크 붙잡고 하거나 학습으로 유도하여 하게 하는 방언은 바울의 방언 지침에 어긋난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분이다. 바울은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4:6)고 한다. 자기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담은 맑은 정신으로 성 삼위일체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올바른 기도이다. 하나님은 맑은 정신으로언어체계에 따라 의미를 지닌 단어들로 구성된 자기 언어로 히는 기도를 원한다. 온전한 정신 상태로 드리는 예배를 원한다.

 

기도는 의미없는 중얼거림, 혼잣말, 독백(獨白)이 아니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소리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통역할 수 없는 소리, 의미 없는 소리, 불분명한 소리는 영적 전쟁을 실패로 이끈다. 전쟁터의 나팔은 분명한 소리를 낸다바울은 "너희도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고전 14:9)고 말한다

 

오늘날의 방언은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를 훼방하려는 마귀의 수단일 수 있다. 고성의 시끄러운 악기연주나 집단 심리의 결과이거나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방언, 뜻을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소리는 십중팔구 마귀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귀와 상관 없다고 믿고, 개인의 신앙향상과 영적 활기 증진에 유익하다고 생각하여 기어코 방언을 하려 한다면 혼자 골방이나 산속에서 하라고 권하고 싶다.

 

7. 형제자매

 

오순절주의는 방언을 성령세례와 동일시한다방언을 '받아야' 성령세례를 받은 것으로 여긴다. 개혁신학은 성령세례를 중생과 동일시한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중생하고 회개하고, 죄 용서를 받고 거룩한 삶을 시작한다고 믿는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을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로 여긴다.

 

구원사를 주도하는 성령 하나님은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행 13:48)에게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적용시키고 성령세례를 베풀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하고 중생하게 한다. 오순절 날 예루살렘의 성령 강림 사건은 단회적이다. 그 날 임한 성령은 동일하게 우리들 가운데서 역사한다. 성령충만 안에서 신비한 일들을 체험하게 한다. 기적을 일으키신다. 그럼에도 현대 방언이 성령의 은사이며 하나님의 영이 주도하여 직접 일으키는 초자연적인 기적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방언기도가 성령께서 직접 우리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주는 보혜사 성령의 역사라고 판단할  성경적 또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

 

사람은 자신의 선이해와 체험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학문은 본질상 열려있는 과정이므로 새로운 주장이 정당하면 받아들인다. 그러나 본문을 해석하는 관점, 세계관은 닫혀 있을 수 있다학자는 편향성이 개입하거나 사실을 왜곡할까봐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친다. 자신이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는지, 잘못 해석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신학자는 자신의 학문 활동이 하나님의 특별계시 기록인 성경과 인간의 합리 적 이해에 충실한가를 거듭 점검한다.

 

방언주의자들은 종종 현대 방언의 정당성을 로마서 8장 26절과 27절에 호소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이 본문은 구원과 하나님의 자녀됨에 관한 바울의 서술 일부이다.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노예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성령이 우리를 돕는 까닭은 우리의 연약함(weakness)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상속자임에도 우리가 연약성 때문에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성령이 탄식스럽게 직접 하나님께 간구하며, 그 결과로 우리가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주체는 인간이나 방언자가 아니라 성령이다. 

 

누구든지 성경의 가르침에 주목하기보다 자기의 체험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갼강부회식으로  적용함은 옳지 않다. 자기의 체험으로 형성된 사고 체계나 신념에 따라, 자신의 방언 경험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며 다른 주장의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고 심지어 공격함은 무신론자인 옥스퍼드대학 교수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자신의 경험으로 기독교 자체를 속단한 것과 다르지 않다.

 

방언하는 사람들은 예수 안에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이다성경을 권위 있는 책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희생적인 죽음과 육체적 부활을 믿고 고백한다. 이신득구, 순종과 성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뜨겁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열심히 구원의 복음을 전한다우리가 이상야릇한 방언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은 형제자매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신앙을 유지하고 "사랑 가운데서 진리"( 4:15)를 믿고 행동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정체불명의 방언이라는 체험 컨텍스트가 기독교 신앙와 생활의 최고 권위인 성경이라는 분명한 텍스트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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