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의 동로마 제국에 대한 왜곡 시선
서로마는 476년에 멸망했다. 반면 동로마는 천 년 가까이 더 존속하며, 헬레니즘과 로마의 문명, 기독교 신학, 제국 관료제와 법제를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그러나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거치며, 유럽은 동로마를 로마 문명의 중심에서 배제했다. 그들은 동로마를 ‘퇴폐적이고 비이성적인 제국’으로 묘사하고, 오히려 단명했던 서로마를 ‘고전 문명의 정수’로 이상화했다.
이러한 시선은 의도된 역사 왜곡이며, 문명과 역사에 대한 기획된 재편이었다. 근대 유럽은 자신이 계승하고자 하는 유산을 라틴어, 로마법, 공화정 이미지에 국한하고, 동로마의 그리스어 문화와 정교 전통, 황제권 중심 체제를 이질적이고 타락한 것으로 매도했다.
‘라틴 제국’은 두 겹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고 세운 서유럽 귀족들의 괴뢰국가다. 공식 명칭은 Imperium Romaniae, 즉 ‘로마니아 제국’이었으며, 자신들이 로마의 정통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나라는 1261년 동로마 복원 세력에 의해 무너진 ‘허울뿐인 로마’였다.
다른 하나는, 근대 유럽 지성사가 ‘로마’를 오직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 문명으로 한정 지은 인식의 구조다. 이로 인해 동로마는 ‘라틴 로마가 아닌 로마’라는 점을 구실로 삼아 문명사에서 주변부로 밀어냈다. 즉, 동로마는 그리스어, 동방정교, 황제 중심 정치라는 세 가지 요소 때문에 유럽 문명의 ‘정통 후계자’에서 의도적으로 제외된 것이다.
800년, 교황 레오 3세는 샤를마뉴에게 ‘로마 황제’의 관을 씌웠다. 이는 명백히 동로마 황제를 무시하고 로마 제국의 계승성을 재편한 정치적 선언이었다. 이 조작은 훗날 962년 신성로마제국 성립으로 이어졌다.
신성로마제국은 로마 제국의 실질적 계보, 법제, 문화, 행정, 언어와 아무런 직접적 연속성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교황권과 서유럽 귀족사회는 이를 ‘정통한 로마의 부활’로 포장했다. 이로써 동로마는 오히려 ‘가짜 로마’, ‘이질적 제국’으로 전락했다.
이런 역사 서술은 실체보다 이미지, 정통성보다 이념이 우선한 기획된 서사였다. 요컨대, 신성로마제국이 ‘서유럽 로마 계승자’로 인정받은 것은 허울뿐인 명분이었다. 이는 정치 권력과 종교 권위가 만들어낸 의도적 허위이며, 동로마의 실제 유산을 지우는 문명적 삭제 행위였다.
오죽했으면 볼테르(Voltaire)가, "이 나라는 신성하지도, 로마적이지도, 제국도 아니다."라고 단언했겠는가? 그는 신성로마제국이 명목상 황제를 두었으나 실제로는 분열된 봉건제 국가들의 집합체에 불과했고, 로마의 법과 전통과는 거리가 멀며, ‘신성’이라는 표현도 교황과의 갈등을 고려하면 어울리지 않는 위선적 명칭이라고 비꼰 것이다.
그들에게 동로마는 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는가? 동로마는 수백 년에 걸쳐 이민족의 침입, 종교 갈등, 경제 위기, 지정학적 압박을 견디며 변형과 재구성을 반복한 고도의 생존 국가였다. 동로마는 사산 왕조와 7세기까지 끊임없이 충돌하며, 이슬람 제국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유프라테스 일대의 균형을 유지했다.
또한 발칸반도 일대에 슬라브족이 대규모로 이주하면서 동로마는 반복된 침공, 정착, 융합을 경험했다. 그러나 제국은 이를 억제하기보다 군사 식민제도, 지방행정개편, 종교 교화 전략으로 대응하며 사회 구조를 유지했다.
동로마는 단순히 장기 존속한 로마가 아니라 여러 문명의 압축적 실험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근대 유럽 지식인들에게는 불편한 존재였다. 자신들이 설계한 직선적 진보서사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로마 제국 쇠망사』(1788년)에서 동로마를 “비겁하고 미신적인 관료국가”, “성상 숭배에 중독된 정교 제국”으로 기술했다. 그는 유스티니아누스의 업적조차 조롱했고, 천 년에 걸친 정치적 생존과 문화적 복잡성을 ‘쇠락의 시간’으로 호도해 버렸다.
이러한 시선은 근대 유럽이 자신의 정체성을 계몽, 이성, 시민, 공화, 라틴이라는 코드로 구성하면서, 그에 반하는 동방 문명을 ‘타자화’한 결과였다. 즉, 동로마의 삭제는 근대 유럽인의 정체성 구성을 위한 정치적 필요에 따른 사관의 편향이었다.
서로마는 게르만 장군의 허수아비 정권으로 전락한 후 역사에서 퇴장했다. 반면 동로마는 천년 동안 고전 문명을 계승하며 동서 교류의 중심에 있었고, 그 유산은 근대 유럽 법제, 행정조직, 종교정치 모델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근대 유럽은 이를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으로 격하하고, ‘로마’라는 정체성에서 고의로 배제했다.
이것은 역사적 무지가 아니라 '정치적 역사'다. 유럽은 자신이 원하는 과거만을 선택했고, 그 선택 과정에서 동로마는 체계적으로 삭제되었다. 그리하여 '진짜 로마'는 망한 것이 아니라 지워진 것이다. 그리고 이 '삭제'는 누가 지웠는지, 왜 지웠는지를 묻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서깁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