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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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하루

 

 

비 갠 뒤의 숲길을 걷듯, 나의 신앙은 자주 질척거리고 무겁다. 오랫동안 나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문장을 딘순화 하는 법을 익혀왔다. 개혁주의 신학 전통의 특성애 충실한 셈이다. 이  명료한 문장은 잘 정돈된 서가처럼 단정하지만, 정작 그 길을 걷는 나의 거친 숨소리는 담아내지 못한다. 언어는 비대하고, 영혼은 그 언어의 무게에 눌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숲의 속도, 기도의 호흡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정교한 지도를 분석하는 작업이 아니라, 자욱한 안개 속에서 앞서가신 분의 희미한 발자국에 내 발을 포개는 일임을 깨닫는다. 나는 자꾸만 내 삶에서 어둠이 걷히기만을 기도했지만, 그분은 어둠 한복판에서도, 사방이 우겨쌈을 당한 현장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법을 조용히 가르쳐주셨다. 그것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신비였다.

 

그리스도의 영은 나의 서두르는 마음을 조용히 비켜 가신다. 나는 명사(名詞, noun)로 굳어진 하나님을 분석하느라 분주할 때, 정작 동사(動詞, verb)로 일하며 내 곁을 앞서 걷고 계신 하나님을 놓치곤 했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지식을 삼키는 시간이 아니라, 앞서가시는 그분의 호흡이 내 폐부에 닿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어야 했다. 말씀이 내 삶의 결을 따라 천천히 스며들 때, 비로소 나의 거칠었던 숨이 고르게 펴졌다. 그것은 장악이 아니라 그분의 보폭에 나를 맞추는 항복이었다.

 

거룩이라는 조용한 반복

 

나는 예수님의 신비를 포함한 기독교 진리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하나님이 진정 바라시는 것은 논리적인 정합성 못지 않게 정직하게 떨리는 심정으로 그분을 뒤따르는 나의 입술이다. 거창한 신학적 주제들이 겸손이라는 그릇에 담기지 않을 때, 그것은 영혼을 풍요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공허하게 만든다. 참된 거룩은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무대 위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길 위에서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이웃의 먼지 묻은 발을 닦아주는 조용한 반복 속에 머물러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내게 더 많이, 더 높이, 더 깊게를 요구하며 시선을 앗아간다. 손에 쥔 명예는 아침 안개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쾌락은 잠시 웃음을 빌려준 뒤 긴 공허를 이자로 받아간다. 나는 유익한 그리스도인으로, 시대와 교회의 요청에 답하는 신학자이기를 갈구해 왔다. 그것이 나를 부르신 분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정작 그분과 함께 걷는 일에는 서툴다. 영원을 사모하기보다 현실의 난제와 씨름하고,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교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신학적인 주제들을 해결하는 데 더 재빠르다. 그런 것에 시간 대부분을 쏟고 마음을 고정하는 사이, 나의 삶이 주께서 원하는 만큼 철저한 깊이를 지닌 상태인지 의문이다.  

 

설명이 아닌, 동행의 신비

 

나는 오래 전에 그분을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설명하려던 자리에서 그분의 뒤를 쫓는 순례자의 자리로 옮겨갔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지혜라 믿었으나, 이제는 사라질 것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멀리서 나를 부르시는 그분의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진짜 지혜임을 배운다.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보다 그분의 뒤에서 내뱉는 진심 어린 뉘우침 한 번이 내게는 더 귀하다. 은혜가 스며들지 않은 지식은 마음을 차갑게 식히지만, 그분을 따르며 내딛는 서툰 발걸음은 누군가의 언 땅을 녹일 수 있음을 믿는다. 나는 여전히 자주 빗나가고, 여전히 온전히 거리를 좁히지 못한 부서진 존재다. 그러나 넘어질 때마다 그분이 걸어가신 방향으로 다시 몸을 돌린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위대한 성취의 탑을 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하루, 어제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그분의 발자국 위에 내 발을 얹는 용기다. 방향을 틀어 그분과 함께 걷는 일, 그 단순한 돌이킴이 오늘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예배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분의 발자욱을 따라, 그 분의 발등만 바라보고 걷는 것만으로도 나의 오늘은 충분히 눈부시다.

 

 

최덕성 고백명상록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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