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조회 수 2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교만 신되기.jpg

 

 

스스로 진 왕관의 무게: 하나님 되기

 

 교만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1-3)

 

교만은 단순한 자아도취나 오만한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가장 깊은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비극적인 선언이며, 피조물로서의 숙명을 거부하는 장엄하고도 슬픈 반역이다. 교회는 오랫동안 이 교만을 일반 윤리적 흠결이 아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본질적인 신학적 죄로 이해해 왔다. 교만은 스스로 빛과 그림자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삶과 세계를 통치하겠다는 자기중심성의 처절한 몸부림인 것이다.

 

태초의 동산, 아담이 손을 뻗어 금단의 열매를 취했을 때, 그는 단지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이미 영원한 순종의 약속이 아닌,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찰나의 유혹에 매료되어 있었다. 어거스틴이 꿰뚫어 보았듯이, 이 최초의 범죄는 주권자의 통치를 거부하고 피조된 자리가 아닌 통치자의 자리를 탐낸 자아의 승천시도였다. 그 순간, 인간은 자신이 굳게 뿌리내려 있어야 할 근원을 버리고 스스로를 그 근원으로 삼는, 영원히 목마른 존재가 되었다.

 

저 시날 평지 위,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던 바벨탑은 돌과 진흙으로 세운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을 내자"는 인간의 거대한 자기애가 응축된 기념비였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곧 주권과 지배권을 의미한다. 그들은 바벨탑 아래 모여 하나님 없이 스스로 땅의 이름과 역사를 결정하고, 흩어지지 않고 영원히 자신들의 왕국을 세우려는 야망을 불태웠다.

 

심지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었던 다윗마저도, 군대의 수를 세어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했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힘보다 나의 힘을 더 신뢰하는 작은 바벨탑이 세워지고 있었다. 교만은 이처럼 하나님의 법도를 무시하고, 창조주 없이 자기 뜻과 생각대로 스스로의 운명을 엮어보려는 시도이며, 우리 안에서 왕관을 쓰고 앉은 작은 우상인 것이다.

 

교만의 본질은 자기 중심성이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무한한 자기 결정권을 지닌 존재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스스로 충족될 수 없는 유한성과 의존성이라는 본질적 한계를 지닌 이중적 존재이다. 교만은 바로 이 유한성의 조건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할 그 근원적인 결핍을 스스로의 힘으로 채우고 운명의 주인이 되겠다는 치명적인 오판이다.

 

이 비극적인 열망 때문에 6세기의 로마 감독 그레고리우스는 교만을 다른 모든 죄가 흘러나오는 가장 깊은 뿌리, 곧 일곱 대죄 중 하나가 아닌 그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선언했다. 영국인 작가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는 교만이야말로 죄 중의 죄이며, 다른 모든 죄악은 교만에 비하면 마치 벼룩에 물린 자국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이 오만하고 비극적인 열망이 우리를 끝없는 분열과 고립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스스로 지은 왕관의 무게는 너무나 무겁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그 왕관을 내려놓고, 창조주께 우리의 주권을 겸손히 되돌려드릴 때 비로소 시작된다.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인정하고, 우리의 영혼이 마땅히 뿌리내려야 할 영원한 근원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인간은 그 아름다운 한계 안에서 참된 충족과 안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

 

 

 

 

?

  1. 스스로 진 왕관의 무게: 하나님 되기

        스스로 진 왕관의 무게: 하나님 되기   ― 교만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1-3)   교만은 단순한 자아도취나 오만한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가장 깊은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비극적인 선언이며, 피조물로서의 숙명을 거부하는 장엄하고도 슬...
    Date2025.10.25 Byreformanda Reply0 Views21 file
    Read More
  2. 영혼의 그림자 드리운 왕좌: 자기 높이기

        영혼의 그림자 드리운 왕좌: 자기 높이기   ― 교만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1-2)   다른 죄들은 벼룩에 물린 자국에 불과하다. 그러나 교만은 영혼을 태우는 불이다.   고대의 신화에 나오눈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불을 훔쳤다. 그는 인간을 위한...
    Date2025.10.25 Byreformanda Reply0 Views26 file
    Read More
  3. 단테와 일곱 가지 죽음의 죄

      서울서부법원 복도에 걸려 있던 그림   단테와 일곱 가지 죽음의 죄 — 사랑이 잿빛으로 변한 자리   ―일곱가지 죽음에 이르는 죄에 대한 묵상  (칠거지악 1-1)   1. 단테, 어둠의 숲에서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 그의 『신곡』(La ...
    Date2025.10.24 Byreformanda Reply0 Views26 file
    Read More
  4. 자유는 서서히 무너진다

    이재명 대통령 부부      자유는 서서히 무너진다   공산화는 총칼로 오지 않는다. 법의 이름으로, 제도의 얼굴로, 언론의 포장지에 싸여 조용히 스며든다.'   먼저, 방송이 변한다. 진실은 편집되고, 불편한 질문은 사라진다. 국민은 “그게 전부”라고 믿으며...
    Date2025.10.23 Byreformanda Reply0 Views42 file
    Read More
  5. 환율이 오르면 어떻게 되는가?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      환율이 오르면 어떻게 되는가?   환율이 개박살났다. 이제 1400원대가 뉴노멀이 됐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 내리락하던 환율이 이제는 1400원 밑으로 더 이상 내려가질 않는다. 이재명 정권 출범 이후 환율은 사실상 1400원...
    Date2025.10.11 Byreformanda Reply0 Views107 file
    Read More
  6. 오세택 목사님께

        오세택 목사님께   손영광 (울산대학교 교수)   제목: 손현보 목사님 징계를 요구하는 예장 고신 두레교회와 오세택 목사님께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고사모(고신교단을 사랑하는 모임)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기독교 좌파들이 손현보 목사님 징계...
    Date2025.09.27 Byreformanda Reply0 Views217 file
    Read More
  7. '오빠와 누나' 이야기

        '오빠와 누나' 이야기   오빠와 누나 이야기 – 노래로 부르는 한국 현대사   황석영의 <장길산> 읽을 때 싱긋 웃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 목 비틀기를 예사로 하는 험상궂은 장정들이 상대방을 부를 때 ‘언니’라고 부르는 거예요. 어려서 사촌 누나에게 ‘...
    Date2025.09.04 Byreformanda Reply0 Views273 file
    Read More
  8. 조국과 윤미향 사면의 비극

      조국과 윤미향 사면의 비극     전 숭실대학교 교수였던 김영한 박사(샬롬을 꿈꾸는나비행동 상임대표)가 2025년 9월 1일, “조국과 윤미향에 대한 광복절 사면에 관하여”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조국 씨와 윤미향 씨에 대한 광복절 사면에 ...
    Date2025.09.01 Byreformanda Reply0 Views228 file
    Read More
  9. 낙하복 실험

        낙하복 실험   1912년 파리, 낙하복 실험을 위해 그는 타워에서 뛰어내렸다   1912년 2월 4일, 프란츠 라이셰르트(Frantz Reichelt)는 자신이 발명한 걸작인 "낙하복"이 안전하고 효과적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 옷을 입고 파리 에펠탑까지 올랐습니다. 당...
    Date2025.08.24 Byreformanda Reply0 Views261 file
    Read More
  10. 한반도의 주인은 누구인가?

        한반도의 주인은 누구인가?     한반도의 주인은 누구인가 : 남북한의 정통성 논쟁     한반도의 주인은 누구인가. 단순한 역사 논쟁이었다면 목사가 굳이 펜을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다르다. 북한이, 혹은 북한과 유사한 성격의 체...
    Date2025.08.14 Byreformanda Reply0 Views282 file
    Read More
  11. 불교판 종교다원주의

          불교판 종교다원주의     종교다원주의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힌두교 비이원성 철학에 기초한 라마크리슈나와 그를 교주로 삼아 출발한 ‘라마크리슈나 미션이다. 둘째는 기독교 바탕에서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 칼 라너, 라이문도 파니카, 존 ...
    Date2025.07.29 Byreformanda Reply0 Views295 file
    Read More
  12. 권력은 법 위에 있지 않다

        권력은 법 위에 있지 않다     대대한민국 헌법 제84조는 국가 최고 권력자로 하여금 안정적인 국가 경영과 통치를 하도록 일시적 특권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 법은 최고 권력자에게 법 위에 있을 수 있는 권한 부여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재직 ...
    Date2025.06.17 Byreformanda Reply0 Views662 file
    Read More
  13. 호남이 변하면 나라가 바뀐다

      주동식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     호남이 변하면 나라가 바뀐다   주동식의 전라도 논평   아래는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의 세이브코리아 광주 집회의 연설 전문이다. 광주 출신인 그는 “친북·종중에서 벗어나 대한민국과 함께 가야 호남도 살아...
    Date2025.04.20 Byreformanda Reply0 Views820 file
    Read More
  14. 오늘은 성숙을 향한 민주주의의 여정의 날이다

        오늘은 성숙을 향한 민주주의의 여정의 날이다   오늘은 난리와 폭동이 예상되는 날이다. 대규모 집단 불복과 반발이 시작될 모양이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간판을 뗄 것이라고 하는 자들도 있다. 성숙을 향한 민주주의의 여정의 ...
    Date2025.04.03 Byreformanda Reply1 Views2818 file
    Read More
  15. 헌법재판소의 10가지 탄핵 위법 재판

      헌법재판소의 10가지 탄핵 위법 재판   허영 교수(대한민국의 법조인, 헌법학자, 1936-)는 위법한 헌재 탄핵심판 결정이 오히려 국민 저항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0가지가 넘는 이런 불공정하고 졸속으로 진행된 탄핵심판을 우리 국민이 용납하겠...
    Date2025.03.07 Byreformanda Reply0 Views1102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 Nex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