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교회 인사들은 스스로 자기에게 무죄를 선언했다
이단 판별 기준·주체는 무엇인가? 6
한국교회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사를 이단자로 몰아 파면시킨 적이 있다.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성도들을 교인명부에서 삭제했다. ‘이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다수 세력에 비협조적인 기독인 신자들을 이단자 취급했다.
한국장로교회가 파면한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 곧 우상숭배를 하기로 결정한 총회의 정책에 순응하지 않았다. 예장 평양노회는 처음 주기철 목사의 산정현교회 목사직을 해임만 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기독교 친일파 인사들의 세력과 힘의 논리에 따라 평양노회는 그의 목사직을 파면했다. 노회 목사명부에서 이름을 삭제함으로써 면직을 기정사실화 했다.
주기철 목사는 우상숭배를 하는 교회에 협조적이지 않았다. 기독교 정통신앙에 충실하게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일제에 항거하는 이들과 궤와 맥을 같이 했다. 한상동 목사가 주도하는 신사참배거부 운동에 동조했다.
당시의 한국교회는 ‘순일본적기독교’에 충실했다. 초대교회 이단자 마르시온처럼 성경을 편집했다. 성경에서 유대민족의 이야기를 삭제했다. 예수를 왕 중 왕으로 고백하는 신학을 폐기하고 그러한 가사를 담은 찬송가들을 제거했다. 교회당을 팔아 일제 전비(戰費)로 바쳤다. 교회의 대표자들은 “천조대신이 예수보다 높다”는 고백문서에 서명했다. 주일예배 제1부는 일왕을 신으로 섬기며 예배했다.
한국교회는 친일파 목사들과 친일파 신학자들의 주도 아래 교회라는 조직체의 보존과 안위에 진력했다. 기득권-주도권 유지 목적으로 백귀난행(百鬼亂行)을 저질렀다.
약 70년 뒤 한국장로교회 몇 개 노회들이 ‘주기철 목사 복권’ 행사를 하고 그의 ‘목사직 복권’을 선언했다. 예장통합 서울동노회와 평양노회, 예장합동 평양노회, 독노회라는 어느 교회가 목사 복권과 선포식을 가졌다.
목사직 복권은 과거의 결정이 유효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복권 행사에 과거사에 대한 참회 의지가 다소 엿보이지만 확실히 보여준 것은 현재의 한국장로교회가 ‘순일본적기독교’의 연장이며 동일집단이라는 사실이다.
법조계는 ‘사정(事情)변경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 과거 결정의 기초인 특별한 사정이 그 뒤 현저히 변경되어 당초 결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강제함이 신의와 공평의 원칙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일컫는다.
사정변경 원칙에 따르면 주기철 목사의 복권은 그가 친일행각과 우상숭배를 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만 할 수 있다. 친일파 인물이었고 우상숭배와 친일행각을 마다하지 않은 친일분자, 우상숭배자였음에도 교회가 그 사실을 간과하고 부당하게 면직시켰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필자는 학술서들과 논문에서 주기철 목사 복권의 비합리성과 부당성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그럼에도 예장통합과 예장합동 노회들은 주기철 목사 복권을 감행했다.
한국교회가 치리회의 규례와 합리성을 무시하고 주기철 목사 복권 행사를 거듭해 온 배후에는 친일파 전통, 과거사 청산의 부재, 논리성 결핍, 순교자 상품화, 자기 교단과 동일시를 통한 선전효과의 동기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기철 목사 복권은 논리와 상식만이 아니라 교회 규례의 여러 가지 규정에도 위반된다. 장로회의 경우 목사의 복권은 면직 치리한 해당 노회만 할 수 있다. 평양에 존재하는 평양노회만 복권을 시킬 수 있다. 장로교는 면직된 목사를 복권시키지 않는다. 다시 목사로 장립한다. 프로테스탄트교회는 로마가톨릭교회와 달리 죽은 자를 교회 치리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목사직은 명예직이 아니다.
교회는 진리변증이라는 엄중한 사명을 부여 받았다. 이단정죄라는 칼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대면 정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이단 판별과 정죄의 효력은 성경과 진리성에 일치하는 결정만이 유효하다. 사소한 결함이나 무지 탓으로 말미암은 신학적 그릇됨과 ‘구원받는 이단자들’의 무례함을 엄중히 꾸짖음이 마땅하다.
주기철 목사 복권 행사들은 한국교회가 지닌 모순과 미성숙 그리고 과거사 청산의 부재가 낳은 불행이다. 배교, 우상숭배, 백귀난행 등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 청산 과제 그리고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이 안겨준 교회교(Churchianity) 발상의 결과이다. 교회교는 교회가 무엇이든지 어떤 것을 결정하면 이를 절대적이며 유효한 것으로 여긴다.
한국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교회교 전통은 모순 투성이의 역사를 낳았다. 광복 후 죄인 석에 앉아 판단을 받아야 할 친일파 인사들이 스스로 심판석에 앉자 자신들에 무죄를 선언했다. 교권주의자들이 우상숭배를 거절한 자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아 제거하는 악행을 용인했다. 치리회 원칙에 부합하는 참회를 거부하는 자들의 ‘갑질’은 교회분열을 가져왔다.
주기철 목사 복권 행사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 따른 목사직 파면 결정에 법적 유효성을 인정한 해괴한 사건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팽배, 과거사 청산의 부재, 모순과 오류가 가득 찬 한국교회의 마당에서 누가 누구를 무슨 이유로 이단이라고 판별하고 이단자라고 정죄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위대한 이단자’ 주기철에 대한 목사 파면과 목사 복권은 세 가지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첫째, 교회의 이단정죄의 주체가 무엇인가. 둘째, 이단정죄의 기준은 무엇인가. 교회라는 조직체가 기득권 세력이나 다수 집단과 조화롭지 않은 특정인을 ‘괘씸죄’로 엮어 이단자로 처벌한 경우, 그 결정도 정당하고 유효한가. 셋째, 한국교회가 ‘교회교’ 발상에서 탈피할 방법은 무엇인가.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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