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회복, 사도적 직무
최덕성, "왜 고신교회인가?: 고신교회의 계승과 도전" 12
6.3 복음 회복
6.3.1 고신교회 구성원 일부가 김세윤의 이신행칭의론 또는 유보적 칭의론과 최갑종 박사(백석대학교, 신약신학)의 ‘아르벵주의’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의의 복음”, “의의 선물”에 대한 복음 이해가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윤리공동체로 이해하거나 윤리실천운동을 교회의 지상과제로 여기는 풍토와 무관하지 않는 듯하다. 윤리 부재의 기독교는 상상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본받음은 성도 곧 의인 신분인 기독인의 마땅한 의무이다. 나무는 열매를 보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를 본받음, 윤리 실천, 생활 순결, 참회, 율법준수, 계명 엄수는 거룩한 교회의 구성원들,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을 받은 의인들, 성도들이 수행해야할 엄숙한 과제이다.
6.3.2 고신교회의 두 번째 도전과제는 윤리기독교를 넘어선 복음회복이다. 아울러 고신교회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혜택을 받은 자들의 회중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자긍심 강화가 필요하다. 신사참배거부운동과 신사참배거부운동교회의 초점은 거부, 반대, 저항이 아니었다. 우리 주, 왕 중 왕, 그리스도인 예수에 대한 충성, 신의, 신앙고백이었다. 고신교회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음과 동일시하면 구원자 예수 중심의 선배들의 고귀한 신앙운동을 율법주의, 도덕주의, 윤리 기독교로 전락시킬 수 있다.
6.3.3 윤리는 인간에게 생명과 구원을 제공하지 못한다. 한 명의 영혼도 건질 수 없다. 풍성한 영적인 삶을 돕지도 못한다. 윤리 실천의 실현에도 그다지 도움 되지 않는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다. 죄의 쓴 뿌리를 가지고 있다. 생명의 빵을 먹어야 살 수 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성령으로 중생하면 죄를 멀리하는 강한 힘을 얻는다. 의인의 신분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죄를 압도할 수 있는 거룩한 삶, 성화, 윤리실천이 가능해진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함을 받고 의인 신분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면 그 신분에 합당한 윤리적 열매를 맺는다.
6.3.4 고신교회는 아무나 공격하고 비난하고 꼬집어도 무방한 대상이 아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순교정신, 투쟁정신, 코람데오 정신을 자신의 눈 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 안의 티끌을 문제 삼는 형태로 표출하고 있지는 않는가? 사소한 인간적 오류에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고 비판을 일삼는가? 사랑 가득한 기독인은 예수를 보호한 요셉처럼 그리스도의 교회를 보호하고, 허물을 감싸준다. 교회는 흠 없는 천사들의 모임이 아니라 의인 신분을 가진 죄인들의 모임이다. 교회의 어두운 면을 침소봉대하여 교회가 동네 개보다 못한 것과 같이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욕되게 함은 같다. 고신교회의 정체성에서 크게 벗어난다. 순교정신, 투쟁정신, 공격성을 진리파수와 복음전도 사명수행에 쏟아 부으면 세계복음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6.3.5 목사는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교훈, 교리, 진리들을 골고루 가르치고 설교할 의무가 있다. 고신교회의 설교자는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을 그리스도를 본받음에 고착시키지 않는다. 윤리실천 강화(講話)에 함몰되지 않는다. 인간의 선한 행위와 그리스도를 본받음이 우리에게 의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신교회가 제시하는 복음의 초점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죄 용서를 받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생 복락을 누린다는 기쁜 소식이다. 세상을 구하고, 생명을 살리는 이 메시지야말로 고신교회 정체성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6.3.6 예수를 믿는다지만 삶이 바뀌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따르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 하나님과 무관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형식적이며 명목상의 크리스천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믿는다는 것 자체가 착각이거나 심리적 쏠림이거나 문화적 표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6.3.7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 구원자)로 믿는 일은 그를 본받는 윤리적 실천에 선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유일한 중보자 예수를 구원자로 믿고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중생하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zoe, 요 10:10)을 얻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접붙임 된다. 정상적인 고신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십자가, 영광스런 십자가를 만인이 본받아야 하는 아름다운 무엇이나 실천해야 할 윤리적인 어떤 것으로 변질시키지 않는다.
6.4 사도적 직무 수행
6.4.1 고신교회의 세 번째 도전 과제는 복음진리 전파에 주력하는 사도적 직무의 회복과 수행이다. 전술했듯이, 교회의 우선 과제는 시대마다 달랐다. 우리 시대 교회의 최우선 과제는 예루살렘교회로 복귀하는 일이다. 사도적 직임 곧 복음전도와 영혼선점 활동이다. 구성원의 고령화, 인구감소, 목회자 지망생 수 급감, 신앙생활의 경직성 등을 경험하는 고신교회의 상황은 사도적 직무 수행 곧 복음전도와 영혼선점에 매진할 것을 촉구한다.
6.4.2 예루살렘과 초기 교회의 집사, 장로, 목사, 감독의 공통 직무는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전도였다. 고신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들이 받은 것과 동일한 사도적 과업을 부여받았다. 사도성의 핵심은 모든 기독인과 교회 전체가 이어받은 복음전도의 직무이다. 사도적 직무는 기본적으로 입을 열어 말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orally)으로 수행되어 왔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대사(大使)들이었다. 계승되는 감독좌로 대체되는 직임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다. 사도들의 과업과 임무는 사도적 선교와 사도적 봉사(ministry)였다. 사도직은 종결되었다. 사도들이 수행한 복음전도의 과업은 모든 기독인과 전체 교회에 주어졌다. 모든 기독인은 사도적 직무의 계승자들이다.
6.4.3 고신교회는 중직자 개념을 개혁하여 영혼선점의 실적을 가진 자를 집사, 장로, 목사로 안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집사는 헌금계수와 교회 재산관리와 봉사 직무만으로 사명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다. 장로는 당회에 참여하여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만이 책무를 다한 것은 아니다. 복음전도는 목사와 전도사만의 몫이 아니다. ‘교회 가자’는 정도의 권고 이상이다. 기독교인들의 수평 이동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6.4.4 비기독인을 개종시키고 제자 양육하는 사람을 집사, 장로, 목사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가? 빌립 집사, 스데반 집사처럼 전도할 줄 아는 자를 중직자로 세워 오늘날의 집사와 장로의 기능을 겸하게 할 수 없는가? 교회 구성원이 복음전도와 제자양육에 열성을 다하면 목사와 장로 간의 긴장이 개선된다. 목회자 직임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교회 안의 갈등이 줄어든다. 불평할 틈이 없어진다.
6.4.5 고신교회의 급선무는 사도적 직무 수행의 야성 회복이다. 복음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현장에서 비기독인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영혼선점의 야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직분 개념을 바꾸어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복음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일목요연하게 전하고, 비기독교인들을 예수 믿게 하는 제자 공동체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제한된 에너지를 주변적인 것에 쏟아 부으면 ‘앙꼬 없는 찐빵 기독교’로 전락한다. 교회의 에너지를 사도적 직무 곧 복음전도, 영혼선점, 영원한 생명구원에 우선적으로 쏟아 붓는 일이 시급하다.
6.4.6 예루살렘교회, 종교개혁교회, 신사참배거부운동교회는 유람선이 아니라 전투함이었다. 고신교회의 시급한 도전과제는 영혼선점에 주력하는 전투함으로 거듭나는 일이다. 초대교회의 서로 다른 직임을 가진 기독교 초기 사역자들은 공통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공통의 직무, 그것은 다름 아닌 복음전도, 영혼선점이었다. 사도적 직무를 수행하면 성령의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가 복음을 명료하게 전하면, 하나님께서 복음 듣는 자의 마음을 여신다(행 16:14).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는다”(행 13:48). 은혜와 구원의 복음이 왕성한 교회 안에는 갈등이 줄어들고, 윤리의식과 거룩한 삶의 절실성이 고조된다. 교회는 질적 양적으로 부흥한다.
6.4.7 복음전도의 대상은 고신교회 안에도 많이 있다. 처음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만이 아니다. 복음을 설교하지 않는 목사, 교회개척을 교인 수평이동으로 이해하는 사역자, 복음전도의 의욕이 없는 성도들은 복음전도의 대상자일 가능성이 크다. 구원의 진리를 알면 입을 열어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의의 복음을 감추어 두고 살 수 없다.
6.4.8 고신교회의 강단과 신학교 강의실을 차지하고 있는 ‘윤리 기독교’, ‘세계관 기독교’, ‘문화 기독교’, ‘하나님의 선교’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영혼선점과 복음전도로 채우라. 비본질적인 것들이 강단과 강의실을 차지하면 교회는 침잠해 진다. 사탄 선교의 최우선 대상은 교회와 신학교 안에 있다. 교회 구성원들에게 물어보라. “당신은 예수를 믿습니까?” “당신이 예수를 믿는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목사후보생을 가르치는 신학교수들이 ‘복음’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비기독인이 단숨에 알아듣도록 설명할 수 있는가? 한 명의 영혼이라도 그리스도께 인도한 경험을 가진 자가 신학교 교수직을 맡음이 마땅하다. 비기독인에게 복음을 제시하여 그리스도께 인도해 보지 않은 목회자가 없어져야 고신교회의 고유한 정체성을 회복하고, 계승할 수 있다.
6.4.9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책임을 요구한다.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은 상충되지 않는다. 복음전도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교회의 필수 과제이다. 모든 교회 구성원들, 집사, 장로, 목사가 입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결신자를 얻어 예배하는 신앙고백공동체, 영혼선점 전투함으로 거듭나는 혁신이 요청된다.
최덕성, "고신교회의 계승과 도전," 제2차 고신포럼 힉술회 발표논문 일부 (2020.2.17. 프레지덴트호텔 서울)
최덕성 박사(현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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