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궤를 일삼음이 마땅치 않다
성경 본문: 행 6:1-4, 7
1.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도성의 거주민이 몇명 정도일까? 성읍의 크기, 주택의 구조, 가구당 5인 등 고고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근거로 추정해 보면 약 10만 명으로 보인다. 오순절에 찾아오는 디아스포라는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2. 예루살렘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행 6::7)하는 역사를 경험했다. 바울의 3차 선교여행이 끝나는 시점의 예루살렘의 기독인 수가 수만 명에 이른다고 기록한다(행 21장). 인구 10만 명 도시에 기독인들이 수만 명이 살고 있었다. 무엇이 예루살렘교회의 부흥을 가져왔는가? 윤리적 사람, 이웃봉사, 공궤 등이 작용했을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3. 예루살렘 교회가 출발한 이후, 사도들의 열성적인 복음전도로 신도 수가 많아졌을 때, 일부 신자들의 불만을 토로했다.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기독인들이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 유대인 기독인들과 관련하여 불평을 터뜨렸다. 식사를 할 때마다 푸대접을 받은 것이다. 왜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 유대인 과부들의 식탁에는 고기와 생선이 나오는데, 우리 헬라어를 사용하는 나그네 과부들의 식탁은 모두 풀밭인가 하는 것이었다.
4.. 밥,, 빵, 양식은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제1순위 과제이다. 사람의 가장 급박한 과제는 밥, 빵, 양식이다.. 먹을 것 없이 3일만 굶어보라. 길거리에 지나가는 강아지를 잡아 보신탕만들어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집비둘기 잡아 통닭구이 해 먹고 싶어 진다. 일용할 양식이나 빵에는 먹는 것 만이 아니라 의복, 주택, 교육,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간구하는 일용할 양식에는 의식주 생활에 필요한 것 모두가 포함된다.
5. 원망이 쏟아져 나올 때, 12사도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불공평한 분배에 대해 사과했는가? 항의에 대하여 신도들을 불러모아놓고 분배 체계 고치겠다고 했는가? 불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구현하겠다고 했는가? 분배 문제에 기독교 윤리를 적용하여 불평, 불만, 원망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는가? 책임자를 문책하고, 급식 감독관 교체히고, 저울 가져다가 식량을 공평히 분배하라고 지시했는가? 교회가 출신 성분에 따라 불공정하게 분배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요즘에는 사랑이 없다고 험담하면서 무리 지어 교회를 나가버릴 수 있다. 가십, 명예훼손, 부당한 대우를 한다고 시비를 걸고 원성을 높일 수 있다. 이를 교회법정에 고소하고, 만족하지 않으면 세상 법정에 고소하기도 한다.
6. 사도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처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라고 진단했다. 한글개역개정 성경은 공궤를 '접대'로 번역한다. 헬라어는 식탁봉사(table serving)으로 표기한다. 식사대접이다. 식량분배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쨌든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 칭찬 듣는 인물 7명을 뽑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리라”(6:4)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널리 전파되어 예루살렘에서 믿는 사람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행 6:7).
7. 사도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처 놓고” 부차적인 일에 골몰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했다. 식량, 빵, 식사와 관련된 이 사안의 핵심이 분배의 불평등에 있다고 보지 않았다. 섬기는 행위에 집중하느라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게 되었다는 것을 간파했다. “제쳐 놓다”는 “뒤로 남겨 두었다”는 뜻이다. 밥이 우선순위 1번이고, 말씀 전하는 일이 차선이 된 사실을 발견했다. 예루살렘교회가 직면한 사안의 핵심은 밥이 아니라 말씀과 밥 사이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교회가 단체급식소처럼, 언제부터인가 영적인 일을 제쳐놓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8. 의식주 문제와 분배의 공정성은 경제적인 사안인 동시에 정치적인 주제이다. 너는 쌀밥에 고깃국인데 왜 나는 보리밥이냐, 왜 너는 갑이고 나는 을이냐 하고 불평등의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밥이나 식량의 분배는 곧잘 정치적 사안으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갈등 구조의 대립으로 비화된다.
9. 공산주의 사회의 목표는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 건설”이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회가 건설되어도 불평등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공산주의 사회의 부정부패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보다 더 심하다. 사회복지 제도가 발전하면 인간은 죄를 더 많이 짓는다. 밥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듯이, 분배 윤리, 평등원칙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사람은 빵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10. 베드로가 예수에게 크게 항변했다(마 16:21). 예수께서 고난, 죽음, 3일 만에 부활하리라고 말했을 때였다. 메시아가 죽으면 안 된다. 왕위 차지, 새 왕국 건설, 정의로운 사회 국가 건설, 승리자가 되려면 힘이 힘이 필요하다. 경제적 수탈, 문화적 지배, 정치적 위협, 강압적 주권 침탈에 항의하면서 당신을 따르는 사람이 5천 명, 7천 명은 어쩌란 말이냐. 매일 당신 하나만을 바라보면서 정의로운 세상, 배고픔을 해결하는 사회구조, 하나님의 신정정치로 로마제국의 압정에 대항하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죽는다는 말이 무슨 소린가? 이 세상 갈아 업고, 사회적 약자 돌보고, 이웃과 상생하고, 하나님의 나라 구현해야 하지 않는가? 삼일 만에 살아난들 무슨 소용인가, 죽음으로 정의로운 독립국가 건건설이 실패한다면 하고 항의했다.
11. 예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라고 했다. 예수는 '하나님의 일'과 '사탄의 일'을 대조한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활동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은 무엇인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했다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다. 복음은 죽음과 부활로 맞줄임 되는 십자가의 진리이다. 하나님의 인간사랑, 영원한 계획, 죄의 문제 해결하기 위한 구원 프로젝트, 도성인신, 복음전도, 대속사역, 화목제물로 죽음, 부활과 승리, 승천과 재림의 소식이다. 파스카, 구원의 전 체계를 한 마디로 집약하면 십자가 복음이다. 어느 목사는 십자가만으로는 불가하고 부활신앙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한다. 구원의 전체적인 구도에 무지한 발언이다.
12.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허울좋은 변두리 과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예수 구원의 복음이 없는 선교 활동을 지칭한다. 인권, 정의, 분배, 정치, 혁명, 참여, 사회구원, 해방신학, 사회복지를 제1순위 사역으로 본다. 교회가 에너지가 넘쳐서 그런 일 할 수 있으면 좋다. 그러나 그 봉사는 봉사일 뿐 그것으로 한 한 명의 영혼도 주께 돌아오게 하지 못한다. 예배당 건축, 선교지에서 학교 짓고, 병원세우고,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프로그램 진행하는 것은 귀한 사역이다. 그러나 섬김 봉사 구제 그 자체로는 한 명의 영혼도 구원하지 못한다.
13. 하버드대학교의 하비 콕스 박사는 1960년대에 <세속도시>를 저술하여 기독교의 “세속화”를 외친 자유주의 사회윤리학자이다. 하비 콕스와 최덕성은 모두 예일대학교의 출신이며, 조지 린데벡의 제자이다. 그러나 걸어온 길이 다르다. 최덕성은 근래에 "지금도 당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바뀐 것도 있지만, 하나님이 세속 영역에 현존한다(presence)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최덕성과 하비 콕스는 2018년 8월 마지막 주일 올드케임브리지침례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약 2,000명 정도 모일 수 있는 크고 아름다운 예배당에 약 40명이 참석했다. 이 교회는 ‘점진적인 평'화라는 화두 아래서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지향한다. 동성애자, 무슬림, 상대주의, 종교다원주의 환영하고 있다. 교인들이 줄어들자 교회경영이 어려워 주중에는 교회당을 발레, 댄스 홀로 임대해 주어 그 돈으로 교회당을 관리하고 유지하고 있다.
14. 기독교 윤리실천운동은 기독교를 공동체로 인식하는 데 이바지했다. 나는 몇 해 전 “예수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기독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종교이다. 그러나 윤리실천운동 그 자체로는 저절로 단 한 명의 영혼도 구원할 수 없다. 기독교를 윤리실천운동과 동일시함은 교회 과제의 우선순위를 뒤바꾼 위험한 시도이다. 식탁 봉사, 섬김, 구제, 병원, 학교, 분배정의, 윤리실천 등은 귀하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한 명의 영혼도 구원할 수 없다.
15. 한국교회의 총회, 노회, 연회 등이 모이면 회무에 시달린다. 앙꼬 없는 찐빵, 노란 자위 없는 계란 같은 모임이라는 인상을 준다. 말씀이 우선이고 공궤는 차선이다. 신학 이론상으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1순위일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말씀은 제쳐놓고 공궤에 전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단체, 유엔, NGO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을 교회가 맡아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16. 교회의 사도직 수행은 우선과제 1 번이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책임을 배제하지 않는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 성령이 역사한다(행 16:14). 믿음으로 죄인이 은혜 안으로 진입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이 때 성령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한다.
17. 복음은 무엇인가?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4)라고 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 예수 그 분이 곧 그리스도, 메시야, 구원자이다. 간추리면, (1) 예수 그분이 그리스도이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희생제물로 죽었다, (3) 장사되고 성경 예언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그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죄를 용서받고 영생복락의 반열에 들게 된다.
18.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한 이 복음을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 언약 안에 들어가고, 의, 칭의를 앞당겨 받고, 성령의 도움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산다. 심판대에 영광의 몸으로 부활한다. 그 부활 경험한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영광으로 임할 때 은혜로 그 나라에 들어간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백성이 된다.
19. 교회는 복음전도의 사도직을 위임받았다. 전도자는 사도적 직무을 위임 받은 사람이다. 사도적 직임의 핵심은 예수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하는 복음전도 활동이다. 베드로의 고백과 사도행전 5:42, 17:1-3; 18:4-5, 요일 2:22절 등에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 전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다는 복음전도이다.
20. 바울은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고후 2:17)고 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신학자들이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복음을 혼잡케 한다. 복음에 다른 것을 섞는다. 십자가 도리를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에 다른 것을 집어넣어 복음을 주변적인 것으로 내 몰아붙인다. 윤리실천, 사회봉사, 정의로운 사회건설, 하나님의 선교라는 멋있는 이름으로 포장된 신학교육에서 복음이 드러나지 않게 한다. 윤리실천, 사회봉사, 정의로운 사회건설, 하나님의 선교 활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들 자체로는 한 명의 영혼도 구원할 수 없다.
21. 한국교회의 저성장, 도덕성 해이, 사회적 신인도 저하가 걱정된다. 그러나 교회 안에 복음이 없고, 신자들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일목요연하게 전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큰 위기이다. 교회가 공궤, 식사분배는 하지만 복음전도를 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더 심각하다. 주변적인 것들에는 열성을 보이지만, 사도적 직무에는 탁월성이 없는 것은 기현상이 문제이다.
22. 십자가의 복음에 우리의 희망과 미래가 있다. 사회변혁 이념이나 세속화 그리고 윤리실천운동은 복음 사역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 복음전도, 영혼 구원에 집중하라.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주는 구원, 칭의, 부활, 영원한 생명의 복을 얻는 길임을 선포하라. 천하에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하면 성령님께서 복음 듣는 자의 마음을 여신다. 하나님께서 영생 주시기로 작정한 자들을 우리들에게 붙이신다.
2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과 헬라인 그리고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다. 우리가 담대히 그리고 명료하게 복음을 전하면, 신도들, 제자들의 수가 많아진다. 부산, 서울, 대한민국, 세계만방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수가 크게 늘어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처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 전파에 전무하리라”(행 6:4). 복음전도가 답이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최덕성 설교문 (2018.9.10. 브니엘신학교 경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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