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조회 수 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166606041-e1372085222474-1024x682.jpg

 

자신을 태우는 불: 분노 3

 

분노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3)

 

톨스토이의 부활은 명상처럼 흐르는 한편의 긴 설교이다. 성경에 근거한 분노 신학이 맞닿는 지점을 따라가고 있다. 단순히 한 인간의 도덕적 각성을 그린 소설이 아니다. 인간의 영혼이 죄와 불의, 분노와 용서의 광야를 건너 부활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영적 서사이며, 동시에 성경이 말하는 분노의 구속이라는 신학적 주제와 깊은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분노는 단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이 깨어나는 첫울음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패함을 직면하게 하는 불길이다.

 

톨스토이는 그 불이 단순히 타오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음을 안다. 그 불은 타인을 태우는 불이 아니라, 자신을 정화시키는 불이다. 그럴 때 분노는 죄의 불길에서 사랑의 빛으로 변하고, 영혼은 마침내 부활의 자리에 선다.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은 이러한 분노의 거룩한 실체를 가장 잘 보여준다. 예수께서 성전의 상인들을 내쫓으셨을 때, 그 분노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파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다시 정결하게 하려는 정화의 불이었다.

 

그 불은 사람을 향하지 않았고, 죄를 향했다. 톨스토이는 부활의 주인공 네흘류도프를 통해 그 동일한 불길을 인간의 내면 속에 옮겨 놓았다. 네흘류도프는 처음에 사회의 불의와 제도의 부패에 분노한다.

 

그러나 그는 곧 깨닫는다. 자신이 비난하는 그 세상의 악이 바로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그때 그의 분노는 방향을 바꾼다. 세상을 향하던 불이 자신을 향하기 시작한다. 그는 마치 예수가 성전의 장사꾼을 몰아내듯, 자신의 영혼 안에서 탐욕과 위선을 몰아낸다. 그렇게 그의 영혼의 성전이 비로소 깨끗해 진다.

 

이처럼 톨스토이가 그려낸 분노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정화의 과정이다. 예수의 분노가 회복의 불이었다면, 네흘류도프의 분노는 회개의 불이다. 두 불길은 서로를 비춘다. 예수의 분노는 거룩의 불이었고, 네흘류도프의 분노는 인간이 그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불이었다.

 

바울의 서신에서도 톨스토이의 영적 여정과 닮은 구조가 보인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분을 내되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말한다. 분노는 인간 안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것이 오래 머무르면 곧 죄의 그늘이 된다.

 

네흘류도프는 처음에 세상에 대한 의분으로 불타오르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불길이 자신을 태우기 시작한다. 그는 점점 피폐해지고, 자신의 분노가 도덕적 우월감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자각한다. 그때 그는 바울의 권면처럼 분노를 품지 않고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시베리아로 유배된 여인 카챠를 따라가며, 그는 점차 그 분노를 사랑의 불로 바꾸는 길을 걷는다.

 

바울이 말한 분을 내되 죄를 짓지 말라는 말은 결국 분노를 억누르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성화시키라는 뜻이다.

 

톨스토이의 문학은 그 말씀의 서사적 해석처럼 보인다. 네흘류도프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온도가 변한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정죄하지 않는다. 그의 분노는 이제 타인을 비추는 빛으로 바뀐다. 바울이 말한 절제는 감정의 억압이 아니라 변형의 신학이며, 톨스토이는 그 변형의 과정을 인간의 삶 속에 실제로 구현해 보인다.

 

시편의 시인들처럼, 톨스토이의 주인공 또한 처음엔 하나님께 항의하며 분노한다. “왜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고통받는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분노는 기도로 바뀐다. 그는 시편 51편의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울며 고백한다. “나는 그들을 미워했으나, 나 자신이 그들보다 더 부패했음을 보았다.”

 

이 고백은 인간의 분노가 신앙의 자리에서 회개로 변하는 장면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정결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간구했듯, 네흘류도프 역시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해달라고 속삭인다. 결국 부활은 하나의 긴 시편처럼 읽힌다. 그것은 분노로 시작해, 회개로 깊어지고, 용서와 사랑으로 끝난다.

 

예수의 생애에서 가장 신비로운 순간은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분노의 침묵이었다. 십자가 위의 예수는 세상의 불의 앞에서도 침묵하셨다. 그 침묵은 무력함이 아니라 사랑의 절정이었다.

 

톨스토이의 부활후반부에서 네흘류도프는 바로 그 침묵의 신학으로 들어간다. 그는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던 사람이었지만, 마침내 그 부조리 속에서 자신을 본다. 그 순간 그는 말문을 닫는다. 그는 세상을 더 이상 심판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을 불쌍히 여긴다. 그의 침묵 속에는 예수의 마지막 기도가 울린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침묵은 분노의 완성이다. 인간의 분노는 결국 침묵 속에서만 완전히 구속된다. 그 침묵은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행위이며, 모든 정의의 욕망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영혼의 안식이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분노가 이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부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경은 분노를 단순히 죄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놓으신 정의감의 불씨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불이 성령의 바람 아래에 있지 않다면, 곧바로 교만의 불로 타오르게 된다.

 

톨스토이는 이 미묘한 경계를 문학으로 탐구했다. 그의 결론은 성경의 결론과 동일하다. 분노는 사랑으로만 구속된다. 사랑이 분노를 덮을 때, 정의는 자비로 완성된다.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더 이상 증오의 불이 아니라, 사람을 비추는 빛이 된다.

 

부활의 마지막 장면에서 네흘류도프는 성경을 펼친다. 그때 그는 깨닫는다. 분노를 다스린다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하나님께 다시 드리는 일이라는 것을. 분노는 결국 자아의 십자가 위에서만 사라진다. 그리고 그 십자가 위에서 인간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다.

 

톨스토이의 부활은 예수의 의로운 분노, 바울의 절제된 분노, 시편의 회개하는 분노를 하나의 인간 이야기로 엮어낸 복음의 재현이다. 그에게 부활은 죽음의 반대가 아니다.

 

그것은 분노의 불길이 사랑의 빛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그 불길은 인간의 내면에서 타오르며, 정죄의 언어를 침묵으로, 증오의 불을 사랑의 온기로 바꾼다. 그때 영혼은 다시 태어난다. 그때야말로 인간은 진정으로 부활한다.

 

부활은 분노를 설명하는 톨스토이의 문학적 복음서이다. 그의 문장은 한 편의 설교처럼 울린다. “불을 두려워하지 말라. 다만 그 불이 자신을 태우지 않을까 두려워하라.” 이것이 톨스토이가 전한 분노의 신학’, 그리고 성경이 말한 거룩한 부활의 깊은 비밀이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

 

 

?

  1. 분노신학: 죄, 불, 사랑을 통과한 영혼의 이야기

      분노신학: 죄, 불, 사랑을 통과한 영혼의 이야기  ―분노에 대한 한 편의 묵상(칠거지악, 3-10)   1. 분노의 영적 해부학 ― 창세기에서 시편까지   분노는 성경의 첫 살인자와 함께 등장했다. 가인의 얼굴이 무겁게 떨어졌을 때(창 4:5), 인류의 감정사는 불...
    Date2025.10.26 Byreformanda Reply0 Views2 newfile
    Read More
  2. 사랑으로 분노를 이기라

        사랑으로 분노를 이기라  ―분노에 대한 한 편의 묵상(칠거지악, 3-8)   분노는 영혼의 용광로다. 상처와 억울함, 무너진 기대와 흔들리는 자존이 녹아내리며 뜨겁게 끓어오르는 자리. 성경은 이 불길을 악으로만 단정하지도, 무조건 방치하지도 않는다. ...
    Date2025.10.26 Byreformanda Reply0 Views1 newfile
    Read More
  3. 분노 길들이기

      분노 길들이기   ―분노에 대한 한 편의 묵상(칠거지악, 3-8)     분노, 인간의 가슴 속에 놓인 작은 화로,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는 방 안에서도, 그 화로는 은근하게 붉은 숨을 내쉰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갑작스런 모욕, 기대가 무너지는 소리, 인정받고...
    Date2025.10.26 Byreformanda Reply0 Views2 newfile
    Read More
  4. 분노는 사탄의 화로이다

        분노는 사탄의 화로이다     ―분노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3-6)     분노는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잠든 불의의 화로(火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씨처럼 작고 조용하게 타오르다가, 어느 순간 세상을 태워버릴 만큼 거대한 화염으로 번진...
    Date2025.10.26 Byreformanda Reply0 Views2 newfile
    Read More
  5. 도스토예프스키와 분노 속의 은혜의 빛

      도스토예프스키와 분노 속의 은혜의 빛     ―분노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4)     『부활』의 작가 톨스토이와 『죄와 벌』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의 두 영혼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다른 하늘을 응시했다. 두 사람은 모두 죄...
    Date2025.10.26 Byreformanda Reply0 Views1 newfile
    Read More
  6. 자신을 태우는 불: 분노 3

      자신을 태우는 불: 분노 3   ―분노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3)   톨스토이의 『부활』은 명상처럼 흐르는 한편의 긴 설교이다. 성경에 근거한 분노 신학이 맞닿는 지점을 따라가고 있다. 단순히 한 인간의 도덕적 각성을 그린 소설이 아니다. 인...
    Date2025.10.26 Byreformanda Reply0 Views1 newfile
    Read More
  7. 톨톨스토이, 누구를 위한 분노인가?: 분노 2

        톨스토이, 누구를 위한 분노인가?: 분노 2     ―분노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3-3)       레프 톨스토이의 『부활』(The Ressulection, Воскресение, 1899)은 인간의 영혼이 죄와 분노, 불의와 무지 속에서 어떻게 깨어나고 다시 태어나는가를 보...
    Date2025.10.26 Byreformanda Reply0 Views0 newfile
    Read More
  8. 셰익스피어의 분노의 변증법: 분노 1

        셰익스피어의 분노의 변증법: 분노 1   ― 시기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10)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 왕(King Lear)』은 인간의 분노가 어떻게 영혼의 심연을 흔들고, 사랑과 진리를 삼켜버리는지를 보여주는 장엄한 서사시와도 같다. 그 안...
    Date2025.10.26 Byreformanda Reply0 Views9 newfile
    Read More
  9. 시기의 포로에서 자유로워지기

        시기의 포로에서 자유로워지기 ―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다  ― 시기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10)   시기(Envy)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가장 은밀히 자라나는 감정이다. 처음에는 미세한 불편함으로 시작된다. 누군가의 이름이 칭찬받는 자...
    Date2025.10.25 Byreformanda Reply0 Views7 newfile
    Read More
  10. 시기에 대한 성경의 경고

        시기에 대한 성경의 경고: 시기 10   ― 시기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9)    시기에 대한 경고성경은 시기를 단순한 감정의 사안으로 다루지 않는다. 영혼의 균열, 곧 사랑이 부재한 자리에서 피어나는 내면의 어둠으로 본다. 사도 바울과 베드...
    Date2025.10.25 Byreformanda Reply0 Views6 newfile
    Read More
  11. 여우와 신포도: 시기 9

      여우와 신포도: 시기 9   ― 시기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9)   어느날 여우는 나뭇가지에 잘 익은 포도가 매달려 있는 것을 침을 삼켰다. 포도를 따려고 뛰어올랐으나 손에 닿지 않앗다. “조금 더 높이 오르면 포도를 딸 수 있을 거야” 하고 시도...
    Date2025.10.25 Byreformanda Reply0 Views8 newfile
    Read More
  12. 신데렐라의 자기 자신 되찾기: 시기 7

      사진=영화 '신데렐라' 스틸   신델렐라의 자기 자신 되찾기: 시기 7   ― 시기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7)   『신데렐라』(Cinderella)는 부당한 학대와 시련 속에서도 주인공 신데렐라가 고난을 이겨내고 초자연적인 원조자의 도움을 받아 결국에...
    Date2025.10.25 Byreformanda Reply0 Views7 newfile
    Read More
  13. 시기와 질투는 사랑을 왜곡한다: 시기 7

        시기와 질투는 사랑을 왜곡한다: 시기 7   ― 시기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7)   윌리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Othello)는 인간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시기가 어떻게 사랑을 왜곡시키고, 진실을 파괴하며, 결국 자기 자신을 삼켜버리는가를...
    Date2025.10.25 Byreformanda Reply0 Views5 newfile
    Read More
  14. 시기와 질투의 부메랑: 시기 5

        시기와 질투의 부메랑: 시기 5   ― 시기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6)   인간의 마음속에는 모방의 불꽃이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서로를 비추며 배우고, 닮으려 하며,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형성한다. 아이는 부모의 말투를 따라 하고, 제...
    Date2025.10.25 Byreformanda Reply0 Views3 newfile
    Read More
  15. 깊이 뿌리내린 은밀한 그림자: 시기심

          깊이 뿌리내린 은밀한 그림자: 시기심   ―시기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3)     ‘시기’(猜忌, Envy)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미워함이다.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타인’에게 초점을 맞춰서 “시기가 갖지 못한...
    Date2025.10.25 Byreformanda Reply0 Views6 new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 Nex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