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장례 행렬. 국민장, 서울운동장에서 영결식이 거행되고,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구, 공산당 지지자였는가?

 

원제: 김구 선생 암살은 정권 차원의 범죄였다

 

김구 암살범으로 악명 높은 안두희는 인생 자체가 미스터리다. 제3대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1955년, 안두희는 김구 시해 직후 옥중에서 쓴 일기를 엮어 ‘시역(弑逆)의 고민’(이하 ‘시역’)을 간행했다. 1994년 국회 법사위에 ‘백범 암살 진상 조사 소위원회’(위원장 신한국당 강신옥 의원)가 설치되고 안두희가 증인으로 소환됐다. 중풍을 앓던 77세 안두희는 들것에 실려 국회에 출석했지만, 구두 증언을 할 수 없는 몸 상태였다. 그는 증언 대신 중풍을 얻기 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121개 분량의 ‘마지막 증언’을 제출했다.

 

‘마지막 증언’에서 안두희는 ‘시역’은 “특무대(방첩사의 전신) 김창룡 등의 권고로 썼지만, 출간된 책의 절반 이상은 특무대에서 제멋대로 고쳐 쓴 것”이라고 증언했다. 안두희는 반세기 가까이 진술 번복을 거듭해 왔기에 ‘마지막 증언’이라고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김구 시해가 배후 없는 단독 범행임을 주장한 ‘시역’보다는 진실에 가깝다. ‘시역’은 김구 시해의 진실을 기록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해 세력’이 김구를 암살한 이유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안두희는 1917년 평안북도 용천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고, 메이지대학 법학과에서 공부했다. 1941년 돌연 학업을 중단하고 전쟁 통인 중국으로 건너갔고, 해방 직전 고향으로 돌아와 군청 고원(雇員)으로 일했다. 1945년 말, 조카가 신의주 학생 의거에 연루되고, 이듬해 토지 개혁으로 집안의 재산이 몰수되자 월남했다.

 

월남 전부터 친분이 있던 서북청년회(이하 서청) 부위원장 김성주의 추천으로 서청에 가입해 종로지부 총무부장으로 폭력적 수단으로 ‘좌익 척결’에 앞장섰다. 경무국장 조병옥,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등 서청과 공생 관계였던 경찰 수뇌부와도 친분을 쌓았다. 2001년 공개된 미군 비밀 문서에는 안두희가 극우 테러 조직 백의사 암살단원, 미군 방첩대(CIC) 정보원(Informer)과 요원(Agent)으로 활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안두희는 김구 시해 석 달 전인 1949년 3월, 32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포병 소위(육사 8기)로 임관했다. 임관 한 달 후, 한독당 조직부장 김학규의 주선으로 한독당 비밀 당원으로 가입했다.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한 김학규는 해방 후 중국에 머물다 1948년 4월 김구가 남북연석회의 참석을 위해 평양으로 떠나는 것을 만류하기 위해 귀국했다. 서청 수뇌부는 안두희를 한독당에 입당시키기 위해 귀국한 지 1년밖에 안 돼 국내 정치 상황에 어두웠던 김학규에게 조직적으로 공작을 펼쳤다. 현역 장교가 정당에 가입하는 것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안두희에게 발급된 한독당 당원증에는 ‘비(秘) 자’ 도장이 찍혀 있었다.

 

“크게 기대되는 일꾼”이라는 김학규의 추천 덕분에 안두희는 여러 차례 김구와 독대할 수 있었다. 두 달 남짓 짧은 기간에 김구로부터 총애를 받았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시역’에서 안두희는 “경교장은 이미 내 집같이 무상출입이다. 구실이 붙는 대로 자주 찾았고 일요일은 거의 예외 없이 정기적으로 방문했다”고 적었다. 시해 당일 안두희가 권총을 소지한 채 김구와 독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949년 6월 26일 일요일 정오, 안두희는 경교장으로 김구를 찾아갔다. 비서가 아무 의심 없이 그를 2층 김구의 집무실로 안내했고, 얼마 후 네 발의 총성이 울렸다. 정문에서 경계를 서던 경관들이 응접실로 달려왔고, 안두희가 권총을 내려놓고 손을 들었다. “지금 내가 선생님을 쏘았소. 지금 선생님은 나의 총에 돌아가셨소.”

 

‘시역’에서 안두희는 마지막 순간 김구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졌다고 적었다. “선생님께서는 남북 협상으로 평양을 다녀오신 이후 왜 미군 철퇴를 주장하고, 미국 원조를 거부하고, 유엔의 처사와 5·10 선거까지 부인하셨습니까? 어쩌면 그렇게 주장하심이 공산당과 꼭 같으십니까?” “왜 정부를 부인하시고, 미국을 침략자로 규정하시고, 이 박사를 사대주의자라 매도하셨습니까?” “한국 군대는 김구의 군대라는 외인(外人)의 평론에 대해 선생님은 무슨 말로 반박하시렵니까?” “여순반란은 누가 사주한 것입니까?” “송진우는 누가 죽였습니까?” “장덕수는 누가 죽였습니까?”

 

시해 직후 안두희는 격분한 경관들과 비서들에게 뭇매를 맞아서 크게 다쳤다. 경찰이 안두희를 검거하려 했지만, ‘우연히’ 경교장 앞을 지나던 헌병대가 “경찰이 군인을 연행할 수는 없다”고 윽박지르고 군용차에 안두희를 태우고 사라졌다. 2시간 후 헌병사령부 전봉덕 부사령관은 “안두희의 단독 범행인 듯하다”고 발표했다. 보고를 받은 신성모 국방장관은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겠군”이라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김구를 살해한 동기에 관해서도 공표하고 싶은데, 지금 모든 사실을 일반인 앞에 공개한다는 것은 생애를 조국 독립에 바친 애국자에 대한 추억에 불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의미심장한 담화를 발표했다. 군 수뇌부의 특별 지시와 특무대, 헌병대의 배려로 안두희는 호텔 같은 구금 시설에서 술, 담배, 신문 열람, 집필, 목욕, 특별 면회 등이 허용된 상태로 ‘황제 수사’를 받았다. 수사에 이어 기소, 재판, 수형도 모두 군에서 처리했다.

 

1949년 8월, 안두희는 나흘 만에 종결된 군사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해 11월 15년형, 이듬해 3월 10년형으로 감형되었고, 1951년 2월에 잔형(殘刑) 면제 처분, 1953년 2월 복권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6·25전쟁 발발 직후 현역으로 복직해 실전에 투입됐다. 1951년 8월, 서이환 의원은 국회 긴급 현안 질문에서 “안두희가 대령급 직책에 임명된 사실의 확인”을 요청했다.

 

군대 공식 기록에는 안두희가 1951년 12월 복직 취소로 제대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 후로도 그의 군 경력은 이어져 대령까지 진급했음을 보여주는 한·미·일 자료가 다수 발견됐다. 1950년대 초 안두희는 대한건설협회 부사장이라는 직함으로 정치 폭력배를 이끌었고, 1959년 대령 계급으로 일본에 건너가 북한적십자사의 재일 교포 북송선인 소련 국적 토보리스크호를 공해에서 폭침시킬 비밀 작전을 수행하다가 실패하고 한일 간 외교 분쟁을 야기했다. 안두희는 이승만 정부 군부의 비밀 요원이었던 것이다. 1995년 국회 ‘백범 김구 선생 암살 진상 조사 보고서’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백범 김구 선생 암살 사건은 안두희에 의한 우발적 단독 범행이 아니라 면밀하게 준비·모의되고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된 정권 차원의 범죄였다. 안두희는 그 거대한 조직과 역할에서 암살자에 지나지 않았다.”

 

<참고 문헌>

 

도진순, ‘백범 김구 시해 사건과 관련된 안두희 증언에 대한 분석’, 성곡논총 제27-4집, 1996

 

백범 암살 진상 조사 소위원회, ‘백범 김구 선생 암살 진상 조사보고서’, 1995

 

안두희, ‘나는 왜 김구 선생을 사살했나’, 타임라인, 2020

 

정병준, ‘공작원 안두희와 그의 시대’, 역사비평 제69호, 2004

 

정병준, ‘미국 자료를 통해 본 백범 김구 암살의 배경과 미국의 평가’, 역사와 현실 제61호, 2006.

 

글쓴이: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조선일보 20250902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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