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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투항한 왜군 장수 사야가.

ⓒ KBS1 드라마 <징비록> 갈무리

 


 

항왜 김충선 이야기

 

<오마이뉴스>(2015.4.16.)

 

 

임진왜란 초반 상황을 다루고 있는 KBS 주말드라마 <징비록>의 최근 방영분에서는 항왜 사야가(한국명 김충선) 사건을 다뤘다. 항왜(降倭)는 '투항한 왜인'이란 뜻의 조선시대 용어다.

지난 주말에 방영된 <징비록>에서는 경상도병마절도사(경상도사령관, 종2품 차관급) 박진이 군영에 갑작스레 들이닥친 일본군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장면이 나왔다. 사야가(沙也可)가 이끄는 일본군 부대가 항복을 자청하자, 박진은 이들이 항복을 가장해 침입을 시도하는 부대일 것으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양쪽 부대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사야가가 땅바닥에 무기를 내려놓으면서 상황은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 그제야 박진은 일본군이 진짜로 항복하러 왔다는 것을 믿게 됐다.

승승장구하던 왜군, 그는 왜 투항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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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야가(김충선)에 대한 설명문.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의 녹동서원 옆에 있는 ‘달성 한일 우호관’에서 찍은 사진. 녹동서원은 사야가의 신주를 모신 사당 겸 연구소다.

ⓒ 김종성

 


일본군 제2군 사령관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의 선봉장인 사야가가 3천 병력을 이끌고 자기 나라에서 출항한 날은 1592년 5월 21일이다. 당시 문서에 표기된 음력 날짜로는 4월 11일이다. 이어 그가 부산에 상륙한 날은 그 해 5월 23일(음력 4월 13일)이다.

참고로, 임진왜란을 다룬 모든 드라마에서는 일본군이 부산에 나타난 날짜가 '1592년 4월 13일'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음력으로는 선조 25년 '4월 13일'이고, 양력으로는 '1592년 5월 23일'이다.

5월 23일 부산에 상륙한 사야가는 이틀 뒤인 5월 25일(음력 4월 15일)에 조선 백성을 상대로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사야가는 "지금 우리는 그대들의 나라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이미 맹세했다"면서 "우리는 침략할 뜻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강조했다. 

닷새 뒤인 5월 30일(음력 4월 20일), 사야가는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에게 항복 문서를 전달하고 조선에 투항했다. 이것이 드라마에 나온 상황이다. 침략군의 일원으로 상륙한 부대가 한 차례의 전투도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3천 명이라는 적지 않은 병력을 이끌고 상륙 7일 만에 투항을 선택했으니, 임진왜란 초반 상황에서 상당히 의외의 사건이었다.

임진왜란 초반은 일본군의 압도적 우세로 전개됐다. 조선군은 연전 연패하면서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서 제2군 선봉대인 사야가 부대는 조선 주상을 잡으러 신속히 북상해야 했다. 그런 부대가 투항의 '선봉대'가 된 것이다.

사야가가 유리한 상황에서 투항을 했다는 점은 경상도병마절도사(경상병사)에게 보낸 항복 문서에서 나타난다. 이 문서에서 그는 "지금 내가 투항하고자 하는 것은 지략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힘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재능이나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며 무기가 불리해서도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마디로, 사야가는 '파이팅' 넘치는 상황에서 투항을 결정했다. 일반적인 투항과는 정반대 분위기 속에서 투항을 단행했던 것이다. 자신들이 유리하고 상대방이 불리한 상황에서 투항했으니, 투항 받는 조선군 쪽이 오히려 긴장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항복을 했다'가 아니라 '항복을 해줬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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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위에서 바라본 녹동서원의 풍경. 지난 2월 1일에 찍은 사진이다.

ⓒ 김종성

 


경상병사 박진은 투항군의 장수가 너무 젊다는 사실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1592년, 사야가는 스물두 살이었다. '1571년 생'이었던 것이다. 3천 병력을 이끄는 장수가 스물두 살이라는 사실은, 보통 서른이 넘어야 과거 시험에 급제하는 조선 관료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무사의 지위가 세습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야가가 스물두 살이라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가문 내부에서 세습된 지위를 기초로 부대를 통솔하게 된 것이니, 연령이 문제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5월 21일 출항해 23일 부산에 상륙한 일본 장수가 25일에 조선 백성을 상대로 "침략할 뜻이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30일에 정식으로 투항한 사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사야가가 부산에 상륙하기 전 이미 항복을 결심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투도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상륙 직후에 항복을 단행했으니, 그의 투항은 사전에 계획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는 처음부터 싸울 뜻이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야가의 심리는 조선 백성에게 공표한 담화문에서도 드러난다. 이 글에서 그는 "우리는 원래부터 조선의 문명을 흠모하여 꼭 한 번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 항복 문서에서는 "이렇게 투항하게 된 것은 조선 문명의 우수성을 보고, 이런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선 문명 동경한 일본 장수... 그게 전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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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충선이 잠들어 있는 곳. 녹동서원 뒷산에 있는 김충선 무덤.

ⓒ 김종성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사야가의 공식적인 투항 동기는 조선 문명에 대한 동경심에 있었다. 평소 조선을 동경하던 차에 일본군의 일원으로 부산에 상륙한 틈을 타 투항을 결심했던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열성 한류 팬이었던 셈.

18세기까지만 해도 일본 문명이 조선 문명에 뒤진다는 게 객관적으로 명확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일본인이 조선 문명을 흠모한다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3천 병력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온 장수가 그런 명분으로 투항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물론 평소 조선을 동경하는 마음은 있었겠지만, 그것이 속마음의 전부였으리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해는 1590년이다. 그가 일본 전역의 군대를 동원해서 조선 침공을 단행한 해는 1592년이다. 내부를 통일한 지 2년 만에 외부를 상대로 대규모 군사 행동을 일으킨 셈이다.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평화적인 방법도 동원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전쟁이라는 수단에 의존했다. 그렇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은 겉으로는 통일이 됐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분열 요소가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일본 전역의 군대를 동원해서 전쟁을 일으켰으니, 그 군대의 구성원이 온전히 히데요시 편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못해 건너온 일본인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또 히데요시에게 원망을 품은 이도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도 일본군 내부에는 히데요시에 대한 불평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야가 같은 항왜들이 대거 속출했던 것이다.

일본인으로서 조선에 투항했으니, 누가 봐도 조선은 사야가의 제2의 조국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이 제1의 조국으로 비쳐지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그는 조선을 제1의 조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온몸을 다 불태웠다. 이 점은 그가 투항 이후에 보여준 행적에서 잘 들난다.

투항한 사야가는 자신이 언제 일본군이었느냐는듯 조선의 승리를 위해 혼신의 열정을 다했다. 그는 조선군에게 조총 기술을 전수하고, 일본군의 새로운 전법에 대한 대응법을 알려줫다.

그로부터 몇 십 년 전만 해도 일본군은 기병 위주의 전법을 구사했다. 조선군이 아는 일본군은 그런 전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임진왜란 직전까지만 해도 조선 최고의 장군인 신립 장군이 충주 탄금대에서 기병 위주의 작전을 구사했다가 실패한 것은 일본군의 새로운 전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히데요시의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 때 이미 조총 위주의 보병 부대로 변신했다. 사야가는 조선군이 그런 새로운 전법에 신속히 적응하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사야갸 덕분에 조선군은 좀더 빨리 조총 기술을 습득하고 일본군에 역공을 가할 수 있게 됐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50여 년 뒤인 1650년대가 되면, 조선군의 사격 기술이 동아시아 정상급이 된다. 이 점은 청나라가 조선 조총 부대의 힘을 빌려 러시아군을 두 차례나 물리친 나선 정벌에서 입증된다. 나선(羅禪)은 러시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조선군이 사격 기술을 본격 연마한 계기가 사야가의 투항에 있으니, 사야가가 한국 사격의 스승 같은 존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조총 기술 전수한 사야가, 조선의 신임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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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동서원의 모습.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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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가는 조총 기술을 전수해줬을 뿐만 아니라, 일본군과의 전투에도 직접 참가해 많은 공을 세웠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정부에서는 장관급의 작위도 내려줬다. 또 김(金)이라는 성과 충선(忠善)이라는 이름도 하사했다. 이른바 사성(賜姓)의 혜택을 준 것이다. 이 덕분에 사야가는 김해 김씨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게 됐다. 사야가의 후손들은 기존의 김해 김씨와 구별할 목적으로 '사성(賜姓) 김해 김씨'라고도 불린다.

또 정부에서는 사야가, 아니 김충선에게 집과 토지도 하사했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서 바로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의 후손이 정착한 이 땅에는 지금도 그의 무덤과 사당이 남아 있다. 그의 사당은 녹동서원으로 불리고 있다. 서원은 연구소 기능도 수행했지만, 사당의 기능을 훨씬 더 비중 있게 수행했다.

전라도 출신 공직자인 강항(1567~1618)의 임진왜란 회고록인 <간양록>에 따르면, 항왜에 대한 조선 정부의 대우는 그렇게 후한 편이 아니었다. 항왜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투항한 것에 비하면, 이들에 대한 대우는 조금 박한 편이었다. 심지어 항왜를 죽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 비하면, 김충선에 대한 대우는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정부에서는 김충선에게 고위 관직과 집과 토지를 아낌없이 줬다. 이것은 그가 많은 병력을 이끌고 투항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조총 기술을 전수해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선을 위해 열심히 싸워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에 대한 김충선의 충성은 전쟁 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여진족과의 전투에도 참가하고, 인조 정권에 대한 반란의 진압에도 참가하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도 참전했다. 부산에 상륙한 그날 이후, 그는 조선 땅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싸웠다. 그는 뼛속까지 조선 사람이었다.

김충선이 조선에 온 것은 22세 때였다. 그 뒤 그는 50년 동안 조선을 위해 봉사했다. 그는 1642년 일흔두 살 나이로 '제1의 조국'으로 인정 받은 조선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임진왜란은 그가 제1의 조국을 찾아가도록 만든 결정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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