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 설교자 스펄전의 무원고 설교
스펄전의 무원고 설교와 AI: 인지적 저수지의 축적
19세기 설교의 황태자 찰스 스펄전(C. H. Spurgeon)은 원고 없는 설교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강단에 원고를 지참하지 않았고, 설교 중 노트를 참고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치밀한 논리와 풍성한 성경 인용, 깊은 영적 통찰로 가득했다. 청중은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지만, 스펄전의 무원고 설교는 결코 준비 없는 즉흥 연설이 아니었다. 그의 비밀은 설교 직전의 원고 집필이 아닌, 평생에 걸친 ‘인지적 저수지(Cognitive Reservoir)’의 축적에 있었다.
스펄전은 젊은 시절부터 성경 전권을 암송하고 신학 서적과 교회사, 고전 문학을 광범위하게 탐독했다. 그는 이를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깊숙이 체화시켰다. 신학적 개념과 성경적 구조, 예화의 재료들이 그의 의식 속에 층층이 쌓여 있었기에, 강단 위에서의 그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자가 아니라, 이미 내면화된 텍스트를 성령의 조명 아래 실시간으로 호출하는 자였다. 그는 강단에 오르기 전, 설교의 핵심 뼈대인 '개요'를 명확히 세우고 이를 기도로 새겼다. 즉, 설교의 설계도는 철저히 준비하되, 그 집의 벽돌과 인테리어(구체적인 문장과 표현)는 현장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긴 것이다. 따라서 그의 설교는 준비 없는 즉흥이 아니라, 말씀으로 가득 찬 자의 자유로운 분출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스펄전의 사례는 현대의 AI 설교 논쟁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AI를 설교 준비에 사용하는 문제의 핵심은 기술적 편의성이 아니라, 설교 원천의 이동에 있다. 전통적인 설교 구조는 '계시된 말씀 → 설교자의 내면적 고뇌와 묵상 → 성령의 조명을 통한 선포'의 과정을 거친다. 설교자의 인격이 말씀과 씨름하며 소화해내는 과정 자체가 설교의 중요한 신학적 층위를 형성한다. 그러나 설교자가 스스로의 묵상 없이 AI가 생성한 구조와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면, 설교의 원천은 설교자의 영적 분투에서 통계적 언어 모델의 확률적 출력으로 변질된다.
데이터가 모델을 거쳐 출력되는 과정에는 설교자의 존재론적 책임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겉보기에는 유려하고 신학적으로 정교해 보일지라도, 그 메시지는 설교자의 영혼을 통과하지 않은 외부의 목소리일 뿐이다. 여기서 설교의 진정성과 영적 권위는 치명적인 균열을 일으킨다. 물론 AI를 사전이나 주석처럼 보조적인 도구로 활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전제는 설교자 자신이 스펄전처럼 평소 말씀과 교리를 자신의 내면에 깊이 축적해 온 상태여야 한다는 점이다. 내면이 말씀으로 가득 찬 설교자에게 AI는 자료 서치와 정리의 시간을 단축해 주는 펜과 같지만, 내면이 비어 있는 설교자에게 AI는 설교자의 자리를 찬탈하는 대리자가 된다.
결국 AI 설교 논쟁은 실무적인 활용 범위를 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설교자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묻는 존재론적 물음으로 귀결된다. 설교자는 단순히 말을 잘 만드는 기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애로 번역해 내는 통로다. 설교자의 존재는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단순한 파이프가 아니라, 메시지가 형성되는 과정 그 자체여야 한다.
스펄전의 무원고 설교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설교의 능력이 원고의 유무나 도구의 첨단성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말씀으로 채워진 삶과 성령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설교자의 인격 안에서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AI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묻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지금 내 내면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있는가, 아니면 그 빈자리를 기술의 편리함으로 은폐하려 하는가?” 설교자가 말씀 앞에 자신을 먼저 내어 맡길 때에야, 비로소 어떤 도구를 통해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은 선포될 수 있을 것이다.
김요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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