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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2222.jpg

 


성경은 방언(glossolalia)을 지지하는?  편집 중입니다. 옮기지 마십시오.

    

1. 방언 연구자들

 

한국교회의 방언’(글로쏘랄리아, glossolalia)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하버드대학교 인류학자 니콜라스 하크네스 교수는 최근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를 거쳐 교파, 교단을 넘어 확산되고 있는 오순절주의 방언 현상을 탐색한 책을 펴냈다. ‘방언은 수수께끼이다. 그것의 인기가 경쟁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종교-기독교 유산으로 정착되고 있다. 제도화된 대규모 교회들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 한편에서 방언은 영적 욕구를 채우고 있고, 다른 한 편에서 강한 반대를 유발하는 교차점에 놓여 있다고 한다.

 

하크네스는 방언을 사람의 정상적인 언어 능력의 제한성과 인간 언어의 이데올로기적 한계를 넘어서는 충만 신학(theology of fullness)의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인류학-사회학-언어학 관점으로 접근한다. 성경적 근거나 역사적 모범을 탐색하지는 않는다(Nicholas Harkness, Glossolalia and the Problem of Languag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20).

 

보츠와나대학교의 종교학-신학 교수 제임스 아만즈는 방언현상을 심리학적 임상실험으로 분석하고서, 방언은 완전한 신적인 언어(divine language)인 동시에 시끄러운 악기소리와 고성(高聲) 기도와 더불어 감정적으로 고조된 사람들이 영적인 것을 체험하고 싶어 하고 그런 것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결과라고 결론짓는다불안한 정서 상태에서 학습된(taught) 말하기이며, 신자가 방언을 할 때 성령의 완전한 통제를 받는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한다. ‘방언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언어(man-made language)이고, 타 종교에서도 논쟁이 되고 있다고 한다(James N. Amanze, "Glossolalia: Divine Speech or man-made language? A psychological analysis of the gift of speaking in tongues in the Pentecostal Churches in Botswana," Studia Historiae Ecclesiasticae, vol. 41, no. 2, Pretora 2015).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의 '상표'처럼 여겨지는 '방언'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비방언주의는 제임스 아만즈의 주장과 대동소하다. '방언반대자들은 이를 저주받은 마법적 기호 발음(semiotic alchemy)이라고 한다. 사탄이 궤계를 부리며 신자들을 유혹하는 수단이라고 한다. ‘방언이 사람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수단이며 그 비밀이 복음이라면 인간이 하나님께서 복음을 알려주는 격의 모순에 봉착한다고 지적한다. 하나님께 무슨 비밀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방언기도’가 진언-니르바나와 비슷한 점이 있고, 방언기도자가 신비롭고 감미로운 황홀경-엑스타시 또는 무아지경-만트라 상태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오순절주의 교회의 삶과 영성에 방언은 여러 가지 영적인 은사들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방언옹호자들은 그것을 성령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라고 한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기도하며. 마귀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비밀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며, 따라서 자신도 그 기도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방언하늘의 언어,’ ‘천사의 언어,’ ‘하나님께 올리는 영적인 기도로 여긴다.

 

2. 방언과 글로쏘랄리아

 

방언(Speaking in Tongues, Dialect)은 본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에 필요한 언어 수단이다. 로마제국 안의 다양한 지방어들이다. 각 족속과 지역의 언어 곧 오늘날의 외국어이다. 방언은 단어와 문법을 지니고 있다. 번역과 통역이 가능하다. 단어와 문법 체계를 갖추지 않은 의미 없는 소리나 단순 음절의 반복은 방언이 아니다.

 

다양한 방언들은 바벨탑 사건 때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저주의 상징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날, 예루살렘에 주어진 방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초자연적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저주의 상징인 방언들이 극복되고 새 언약 시대의 시작과 그리스도의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표적이었다. 그곳에 모인 자들은 방언을 말하거나 방언으로 타인이 하는 말 곧 단어와 문법으로 구성된 언어들을 말하고 알아들었다.

 

우리가 논하는 방언’(glossolalia)은 방언이나 외국어가 아니라 신비한 체험 가운데 일어나는 이상한 소리 현상이다. 오순절주의와 은산주의는 이를 신적인 언어라고 한다. 영적 은사,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교통,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믿음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방언을 체험하면 확신을 가지게 된다. 성령이 자기 안에 거함을 확신한다. 자신의 영이 새로워지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다.

 

3. 사도행전의 방언

 

사도행전은 방언을 세 차례 언급한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하늘의 언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의사소통의 초자연적 수단이었다. 성령 하나님이 개입하여 상대방의 언어, 학습하지 않은 언어를 환하게 알아듣는 신비한 현상이었다.

 

예루살렘의 방언은 여러 언어권에서 예루살렘에 찾아온 유대인 디아스포라(흩어진 자들)와 유대교에 들어온 이방인들이 아람어로 전하는 사도들의 복음 메시지를 알아듣고 이해하는 언어 사건이었다. 그들은 방언기도를 하지 않았다. 신에게 비밀스런 무엇을 고하는 진언(眞言, 18:11; 42:12)이나 이상한 소리나 황홀한 상태에서 뜻을 알지 못하는 중얼거림이 아니었다.

 

얼마 뒤, 가이샤라에 예루살렘에 주어진 동일한 방언이 있었다(11:15).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방언이 주어졌다.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주어지는 사실을 보여준 표적이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 죽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 그의 이름을 믿는 자가 죄 사함 받음 등의 핵심 교리를 전했다(10:34-43).

 

베드로가 이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그 말씀을 듣는 이방인들에게 임하고 그들이 방언을 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자들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아 방언을 말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11:18)라고 하며 놀라워했다.

 

20년 뒤, 에베소에서 12명가량의 제자들이 방언을 했다. 세례요한 추종자들(Mandeans)로 추정되는 이들은 성령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세례요한의 세례만 받은 상태였다. 바울은 그들에게 세례요한이 한 말을 알려주면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했다. 그러자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고,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바울이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자 방언과 예언을 했다(19:1-7).

 

에베소 방언 사건의 순서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방언은 복음전도와 세례 이후에 주어졌다.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에베소 지역 거주자들은 유대인들일 가능성이 크다. 바울과 그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 방언이 의사소통을 위한 목적이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다른 언급을 하지 않음을 보아 예루살렘, 가이샤라의 방언과 동일한 사건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이 있었다. 에베소의 방언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보여주는 표적이었던 것 같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주어지고, 에베소 신자들에게 임한 초자연적 방언이 그친다고 한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8).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성령의 은사 목록에 각종 방언 말하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 바울이 말하는 방언은 국제무역도시 고린도를 드나드는 여러 지방 사람들의 언어 곧 외국어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고전 12:10).

 

4. 영으로 비밀을 말하기(고전 14:2)

 

방언이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활동이거나, 신과 인간의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개념은 고린도전서 142절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142절의 한글 번역문은 미숙하다. 그리스어 본문에 있는 단어 4개를 빠뜨리고 있다(그 이유는-때문에, 사람->사람들, 하나님에게->신에게,  말해도). 그리고 4절에 두 번 나타나는 덕(edification)이라는 단어는 원문에 없다. '자기의 덕을 위하여'를 "자기를 세우고"로 번역함이 옳다. 5절에 나타난 '방언'(단수)는 복수형 '방언들'이다.고린도전서 141절부터 5절을 그리스어에 충실하게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것을 사모하십시오. 특히 예언을 열망하십시오. 그 까닭은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하지 아니하고 반대로 신()에게 하기 때문에 자기 영으로 비밀을 말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끼치며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기를 세우고,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를 세웁니다. 나는 여러분이 다 방언들을 말하기를 바랍니다만, 예언할 수 있기를 더 원합니다. 방언들을 말하는 사람이 만일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사람만 못합니다”(고전 14:1-5).

 

고린도전서 142절은 이처럼 예언을 강조하고 방언을 교정하는 가르침에 등장하는 한 구절이다. 14장 1절부터 5절까지의 본문과 그 장의 매듭문장까지 모두 예언을 권장하고 방언을 경계한다.

 

고린도교회에는 거짓 사도들이 들어와 진짜 사도인 것처럼 행사하면서 신자들을 속이고 있었다. 거짓사도들은 나무 위에 달려 죽은 예수를 저주받은 자라고 하고 자신들을 영적으로 신령한 자라고 선전했다.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했다. 바울은 말한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전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해도,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을 잘도 용납합니다. 여러분은 그들에 대하여 말한다.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잘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서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잘도 받아들입니다(고후 11:4). 이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들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놀랄 것은 없습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그렇다면, 사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 해서, 조금도 놀랄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이 행한 대로 될 것입니다"(고후 11:13-15). 거짓 사도들이 이상한 '방언'을 앞세워 인기 몰이를 한 것으로 보인다.

 

5. 방언은 비밀을 말하는 수단인가?

 

고린도전서 142절이 '방언'을 지칭한다면 아래와 같은 여러 가지 모순들이 발생한다. 첫째, 방언이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수단이라면 왜 청중이 알아듣는 통역을 하라고 하는가?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라.” ‘방언이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면 이를 통역하라고 함은 모순이다. 남의 비밀을 청중에게 공개하라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라고 말한다.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라고 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라고 한다.

 

둘째,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하리요,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고 한다. 이 맥락의 방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방언이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일이면 그것은 통역해야 할 까닭이 없다.

 

셋째, 바울은 자신이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한다. 그는 고향 방언 길리기아어, 팔레스타인 방언 아람어, 국제어 헬라어, 유대인 방언 히브리어에 능통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로마군대 안에서 통용되던 라틴어 방언도 어느 정도 구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은 여러 가지 방언을 구사했다. 바울이 감사하다고 말한 것은 타인이 알아듣지 못하고 교회와 타인에게 덕을 세우지도 못하는 방언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종 방언들곧 여러 지역 방언들-외국어들을 말하는 은사(고전 12:10, 28)를 지녔기 때문으로 보인다.

 

넷째, 바울은 방언들-외국어들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14:39)고 하면서, 타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부정적으로 서술한다. 외국어는 장려하고 의미 없는 방언곧 중얼거림은 경계한다. 국제무역 항구도시 고린도에 모인 외국인들은 자기들끼리 자기 방언으로 대화를 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이 방언을 금하지 말라,” “방언하기를 원한다고 한 가르침에 나오는 방언은 외국어인듯하다.

 

구약성경의 율법서는 사도행전의 방언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바울은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다”(고전 14:21-22)라고 한다.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는 표적이다. 어떻든 바울은 율법서에 등장하는 방언으로 고린도교회의 '방언'을 교정한다.

 

다섯째, 바울은 교회에서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명료하게 이해되는 언어로 말함이 말아듣지 못하는 외국어 또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고린도전서 142절의 방언이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수단이라면, 바울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까닭으로 이를 무익하다고 말할 까닭이 없다.

 

여섯째, 바울은 방언을 질서 없이 하면 "미쳤다"고 하는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한다.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외국어)으로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한다.

 

일곱째,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하라고 한다. 전술했듯이, 방언이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수단이면, 왜 한 사람이 통역을 해야 하고, 왜 두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회중을 향하여 방언으로 말을 해야 하는가? 바울은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라고 잘라 말한다. 바울이 권장하는 방언은 좁은 공간의 예배 실에서 한꺼번에 통성기도 하듯이 하는 중얼거림의 방언이 아니다.

 

여덟째, 바울은 방언을 무질서와 품위상실과 연관시켜 언급한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하고,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한다. 바울은 방언을 교회 안의 무질서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이처럼 고린도전서 142절이 말하는 방언이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수단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경계하는 가르침의 일부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고린도교회를 어지럽히던 거짓 사도들을 언급한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들이며 궤휼의 역군이다.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바 이는 큰 일이 아니다. 그들은 결국 그 행위대로 된다(고후 11:13-15).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거짓사도들과 관련되어 있어 보인다.

 

6. 방언기도

 

고린도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었다. 파당, 음행, 송사, 결혼, 우상제물, 육체부활, 여성의 수건쓰기, 바울의 사도권 시비, 예수를 저주할 자라고 하는 주장, 그리고 방언등 본받을 것이 없는 교회였다.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외국인들이 말하는 방언이고, 둘째는 오늘날의 방언이다. 후자는 다른 예수를 전파하고 다른 영을 받게 하고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곧 거짓 사도들 곧 궤휼의 역군들이 몰고 온 마법적 기호 발음으로 보인다(고후 11:4).

 

종교개혁신학자 존 칼빈은 제네바교리문답 제247문에서 그렇다면 방언으로(알지 못하는 말)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고 이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며 일종의 사악한 위선입니다고 답한다. 종교개혁운동 시대에도 고린도교회 안에 있었던 '방언' 현상에 집착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 방언은 대부분 몇 개의 단어들로 구성된 단순 음절의 반복이다. 선박용 모스 부호(Morse Code)를 소리로 발음하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단조롭다. 성경이 긍정적으로 말하는 방언의 조건 곧 언어의 구성 요소를 갖추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능력의 신이다. 오늘날에도 예루살렘, 가이샤라, 에베소의 표적 방언을 일으킬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초자연적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신자에게 탁월한 외국어 능력을 주어 교회에 유익을 끼치게 할 수 있다. 전능한 하나님의 활동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사도시대 이후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과 동일한 방언이 있었던 기록은 없다.

 

방언이 개인의 신앙생활에 이로운 면이 있다. 하나님과 친숙한 영적 교제가 가능하다. 교회를 사랑하고 오래 동안 기도하고 봉사하고 지사충성하는 신도 가운데는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방언'은 하나님과 친밀함을 느끼게 하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이 이루어지게 하며, 영이 새로워짐을 경험하게 한다. 활기찬 신앙생활에 유익하다.

 

하나님은 개인의 유익() 위해 ‘방언을 주실 수도 있다. 성령 하나님은 바람처럼 역사한다. 인간의 고착된 방식을 뛰어 넘는다. 성령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필요한 특별한 은사들을 제공한다. 지성주의적 냉기가 감도는 교회에는 특별한 성령의 임재 경험과 영적인 체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모든 '방언'이 다 가짜라고 단정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개신교 개혁신학 전통은 대체로 '방언'에 소극적이다. 이 교회들은 주지주의적이며 냉냉하다. 복음전도와 신앙생활에 열기가 식어 있다. 반대로 신적인 방언을 체험한 신앙인들은 열기가 있다. 방언하는 신자들은 대부분 교회 안에서 열심히 봉사하며 지사충성한다. 예배의 끝자리를 지키는 분들은 거의 다 방언하는 신자들이다. 교회 안에서 이들의 존재는 무엇인가? 방언이 영적 삶의 풍요로움에 이바지하다면 이를 마다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방언'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바울이 말하는 "각종 방언 말함”(고전 12:10)방언들 통역함”은 외국어 말하기와 외국어 통역 능력도 은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역은 문법 체계를 가진 언어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불가능한 이상한 중얼거림 기도를 녹음하여 통역 은사를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통역을 요청해 보라. 각각 다른 내용을 내놓는다

 

'방언’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은 자주 그리스도의 교회의 무질서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교만의 상징이며, 영적 우월감 과시와 속임수 또는 심리적-사회적-언어적 '트릭'(trick)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탄은 매우 영리하고 교활하여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을 호시탐탐 유혹하고 넘어지게 한다. '방언'에 개입하여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기도를 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지 못하게 하고, 영적 교제를 방해할 수 있다. ‘방언은 대부분 교회를 어지럽히는 직통계시, 예언, 투시, 입신, 하나님의 음성 듣기, 귀신들림 등 바람직하지 않은 신비주의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방언은 기독교-교회의 전유 언어가 아니다. 세계 여러 지역과 종교들에서 방언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불교 일련종(남묘효량게쿄), 힌두교, 일부다처제의 몰몬교,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프리카 서부 해안의 컬트 샹고교, 에티오피아의 컬트 조르교, 아이티의 컬트 부두교, 남미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샤먼(shaman)들에게서 발견된다고 한다.

   

맺음말


방언지지자들은 그것의 기원을 사도행전 2장에서 찾고, 자신의 방언 체험과 오순절 성령강림 날의 방언을 동일시한다. 사도행전의 방언과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동일하지 않다. 목적이 다르고, 현상이 같지 않다. 전자는 초자연적으로 주어진 사람과 사람의 의사소통의 수단이었고 표적이었다. 후자는 은사 맥락에서 언급된 이상한 중얼거림이다. 예수의 사도들은 바울이 경계한 고린도교회의 방언’ 곧 현대 '방언'을 알지 못했다. 바울은 타인이 알아들을 수 없고 자신도 알지 못하며 교회에 이롭지도 않은, 덕을 세우지 못하는, 무의미한 기호발음 현상(semiotic utterance)을 경계한다.

 

방언지지자들이 호소하는 사실상의 유일한 성경적 근거는 고린도전서 142절이다. 이 본문은 방언을 경계하고 교정하는 가르침의 일부이다. 현대 ‘방언’의 성경적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더욱이 그것이 확실히 성령이 주시는 은사라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 진정성을 검증할 수도 없다.

 

교회는 영적은사들을 분별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바울은 방언과 예언과 관련하여 영들 분별”(고전 12:10)의 중요성을 말한다. 방언을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하라고 하면서,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고전 14:29)라고 한다. 교회는 두 사람 이상의 전문가들의 검증 없이 영적 은사라는 것들을 수용하지 않는다. 성령 하나님은 성경의 가르침 밖에서 역사하지 않는다. 성경과 더불어 역사한다

 

방언’ 지지자 가운데는 영적으로 교만하고 성숙하지 않은 자들도 있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경건하고 품행이 방정하고 신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 자신이 하는 '방언'이 하나님에게서 왔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자들이 많다.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거나, 방언의 무익함을 간파하고서 방언을 멀리하기도 한다과거에 '방언'을 지지했지만 현재는 '방언'한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방언' 퇴치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도 있다.

 

'방언'은 체험 영역에 국한된 수수께끼인가? 고린도전서 14장은 통역 없이는 방언을 하지 말라고 한다. 한꺼번에 동시에 하는 집단적 방언을 금한다. 방언은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수단이 아니다. ' 방언'이 개인의 영적 갱신에 유익하고 덕(edification)을 세우는가? 바울에게 '자기의 덕'은 자기 부정의 반대 개념이다. 이러한 해석이 옳지 않을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방언'의 성경적 근거나 모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 비슷한 것이 나오기는 하지만 '방언'이 아니다. 개인의 영적 유익을 위해 성령이 방언을 주시는가? 자기부정에 도움을 주는 '방언'이라면 혼자 조용히 골방에서 산속에서 또는 가정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 앞에서 마이크 붙잡고 분위기 조성하고 학습을 유도한 결과로 하는 방언이나 시끄러운 악기소리나 심리적인 수단들을 동원하는 '방언'은 가짜거나 사탄적일 가능성이 크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리포르만다(기독교사상연구원) 14회 학술회 발표 논문,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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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20.07.19 Byreformanda Reply0 Views412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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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 규칙(1943)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1943 출범)은 한국 기독교의 배교 전력의 한 단면이다. 이 교회 조직의 규정은 일제말기의 한국교회를 훼절, 변절했다고 하는 따위의 용어로  설명하고 규정함이 타당하...
    Date2020.06.30 Byreformanda Reply1 Views58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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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국교회는 훼절이 아니라 배교했다

    한국교회는 훼절이 아니라 배교했다 원제: 신사참배거부운동의 교회관   한국의 일부 교회사가들은 예장 고신 교회를 완전주의 교회관과 관련시킨다. '고신파'가 분리주의를 연상시키며, 그 시원(始原)을 신사참배거부운동이 기성교회에 항거하여 독자적인 교...
    Date2020.06.10 Byreformanda Reply0 Views592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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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총신대학교의 바벨론 포로 시대

     총신대학교 교정 (사당동) 총신대학교의 바벨론 포로 시대      1. 해임 결정을 즉각 취소하라   최근 총신대학교의 이사회(관선임시이사회)는 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윤리학을 가르치는 이상원 교수를 해임시켰다. 징계위원회가 결의한 것을 받아 확정하고 ...
    Date2020.06.04 Byreformanda Reply0 Views999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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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교회의 국가지배 저항사

    사랑의교회, 서울 교회의 국가지배 저항사   1. 장로교 언약도 '교회의 바벨론 포로 시대'는 로마교회의 교황청이 1309년부터 1376년까지 프랑스 아비뇽에 머물렀던 73년 동안 세속 권력의 꼭두각시 역할을 한 시기를 일컫는다. 교회가 프랑스 왕권에 굴복한 ...
    Date2020.05.31 Byreformanda Reply0 Views253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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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교회의 바벨론 포로 시대

    로마교회의 교황청(프랑스 아비뇽, 감옥형태의 건물) 교회의 바벨론 포로 시대     1. 중세교회의 구습, 변화하는 세상   구약시대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남왕조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다.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Date2020.05.28 Byreformanda Reply0 Views47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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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예수는 헬라어로 가르친 적이 있는가?

    예수는 헬라어로 가르친 적이 있는가?   예수는 갈릴리 출신이다. 모국어는 아람어였다. 예수와 요셉과 마리아는 아람어를 사용했다. 제자들도 아람어를 사용했다.오늘날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람어로 예배를 드린다. 고대 아람어 방언으...
    Date2020.05.14 Byreformanda Reply0 Views56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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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유비쿼터스 방언, 코로나 플랫폼

    유비쿼터스 방언, 코로나 채널 1. 개종한 이방인, 입교한 유대인 위경 <유디스>(Judith, BC 100경 추정)는 암몬인이 유대인으로 신분을 바꾼 이야기를 소개한다. 암몬 족속 장수 아키오르가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었다(유디스 14:10). 미모의 유대인 여인 ...
    Date2020.05.03 Byreformanda Reply0 Views26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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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최덕성 교수와 한국교회의 칭의론 논쟁

    최덕성 교수와 한국교회의 칭의론 논쟁 고경태 박사 (총신대학교 교수) 1. 들어가는 말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교회당 정문에 게시한 95개 반박문(1517)은 교회와 세계 역사를 바꾸었다. 루터는 이신칭의 교리를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articulus sta...
    Date2020.04.12 Byreformanda Reply0 Views55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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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화이부동(和而不同)은 가능한가?

     화이부동(和而不同)은 가능한가? 한국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는 증상은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 강단에서 외치는 설교에 응집력과 일관성 있는 교리가 없다. 확실성을 가진 진리체계를 제시하지 않는다. 축복, 은혜, 위로, 평안, 윤리, 은사 ...
    Date2020.04.11 Byreformanda Reply0 Views378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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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복음회복, 사도적 직무

    복음회복, 사도적 직무 최덕성, "왜 고신교회인가?: 고신교회의 계승과 도전" 12 6.3 복음 회복   6.3.1 고신교회 구성원 일부가 김세윤의 이신행칭의론 또는 유보적 칭의론과 최갑종 박사(백석대학교, 신약신학)의 ‘아르벵주의’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의의 ...
    Date2020.04.08 Byreformanda Reply0 Views34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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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의(義)의 복음, 의인 자긍심

    의(義)의 복음, 의인 자긍심 "왜 고신교회인가?: 고신교회의 계승과 도전" 11 6.2 의의 복음, 의인 자긍심   6.2.1 개혁신학의 두드러진 장점은 이신칭의 중심의 구원론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이다. 이신칭의는 기독교 정통 신앙의 요체(要體, hinge)이다. ...
    Date2020.04.08 Byreformanda Reply0 Views44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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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복음 파도타기

      복음 파도타기 "왜 고신교회인가?: 고신교회의 계승과 도전" 10 6. 도전 과제   6.1 복음 파도타기   6.1.1 전통은 전수들과 계승자들에 의해 유지된다. 거미줄처진 탄광 같이 썰렁한 교회에는 유산을 물려받을 주체-사람들이 없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 신...
    Date2020.04.08 Byreformanda Reply0 Views295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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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김영한 박사의 이단-사이비에 관한 신학적 기준

    김영한 박사의 이단-사이비에 관한 신학적 기준 전문성 결여된 이단감별사들      머리말   최근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단 논쟁과 시비는 주도자들의 주관적, 자의적 판단으로 인하여 교회 안팎에 많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몇몇 직업적 이단감...
    Date2020.03.28 Byreformanda Reply0 Views432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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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한국장로교회의 첫 분열, 무엇 때문인가?

    박정곤 목사, 최덕성 목사, 이세령 목사 (완편에서 오른편으로)                  한국장로교회의 첫 분열, 무엇 때문인가?    이대웅 기자 <크리스천투데이> 2020.02.18. 제2회 고신포럼 ‘전환기의 한국교회와 고신의 역할’        제2회 고신포럼(대표회장 ...
    Date2020.03.10 Byreformanda Reply0 Views419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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