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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무릇 신학을 하는 학도들은 자신들이 철학을 하고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하오. 이 단순한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신학을 오뉴월 염천에 녹아 늘어진 엿가락처럼 만들어 놓곤 하지요.

 

1.

 

물론 내가 여기서 말하는 신학은 기독교의 성경을 텍스트로 놓고 하는 신학이요. 그것은 동양 고대 히브리인의 영적신성 깨달음에서 시작하는 것이오. 서양의 사변철학과 거리가 있소. 그렇지 않고 이것저것 버무린 신학은 신학이 아니고 개똥도 아니니 내 얘기에서 제외하오.

 

그런데 신학과 철학 사이에서 헤메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소. 철학을 신학적으로 하는 사람은 드문데, 신학을 철학처럼하는 사람들은 왜 많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요.

 

거기에 신학도 철학도 아닌 별개의 제3 주제인 진화론으로 신학계와 기독교계에 불란을 일으킴은 웬일이오?

 

2.

 

신학을 배운 목회자들도, '목회철학'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니 신학이라는 말과 철학이라는 말 사이에 경계선이 없이 쓰는 것이요? 아니면, 철학이라는 단어가 더 유식해 보이오?

 

간단히 말하자면, 철학은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고, 신학은 인생의 답을 주는 것이오. 이 둘이 비슷한 것은 다만 그 사유(思惟)하는 형태일 뿐이오. 따라서 신학을 철학적 사유로 한다면 종착역은 신학이 다다르고자 했던 곳이 아닐 것은 뻔한 것이 아니겠소?

 

 

그렇다면, 당신이 성경을 철학적으로 푼다면, 반대로 신학적으로 푼다면, 어떻게 되겠는지, 그 해석의 결말이 다르게 될 것은 알만 하지 않소?

 

여기에서 성경과 제3의 주제인 진화론을 양립시키려는, 또는 진화론을 무리없이 신학에 접목하려는 철학적 노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런지는 짐작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오.

 

3.

 

성경을 기반으로 신학을 연구함은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고 또한 거장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비슷하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에서 작곡자가 의도한 것과 지휘자가 지향하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소? 그림이라면, 그 그림의 밝은 부분에서 보이는 것과 어두운 부분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 이 둘이 어떻게 어울려서 무슨 메세지를 주고 있는지 알아냄이 감상자가 할 일이 아니겠소?

 

쉽게 말하자면, 신학은 클래식 음악을 듣듯이, 성경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그림의 어두운 부분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긁어대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오.

 

4.

 

참으로 위대한 것은 단순하고 영원하오. 사람을 먹여 살리는 물과 공기가 단순하고 바다와 산이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듯이 그러하오. 콜라나 사이다처럼 물에다 설탕이나 뭘 많이 첨가한 것은 단순하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액체가 되지 못하듯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것을 설()로 말하는 신학적 영리함은 생수에 잡물을 섞거나 그림을 더 잘 보기 위해서 칼로 그림의 표면을 긁어대는 어리석음과 같지 않겠소?

 

, 단순, 담백, 영원한 진리에 헛손질을 함으로써 싸구려 이론으로 포장하지 말라. 그런 말이오.

 

5.

 

학문에 자유가 있듯이 학문에는 책임도 있소.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자유만 얘기하고 책임은 슬쩍 묻어두오. 우리는 신학이든 뭐든 학문의 자유를 말할 때는 억압하는 주체, 정부나 공산당이나 어떤 압력자에 대항해서 하는 말이오.

 

그러므로 동료 신학자나 그 신학의 소비자라고 할 수 있는 교회나 신자들을 향해서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지 마시오라고 해서는 안되오. 왜냐하면, 그들은 억압자가 아니라 당신의 신학적 산물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요.

 

, 마치 음식을 먹는 사람이 불량식품을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식품업자를 감시함과 같은 이치요. 음식업자가 고객에게 불량식품을 만드는 건 내 자유에 속하는 것이니 핍박하지 마시오라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것과 똑 같다는 말이오.

 

따라서 무슨 설()을 풀어 놓고 자유와 양심 어쩌고 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요. 아무도 총을 들이대고 위협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객적은 일이요.

 

학자는 자신의 이론이 동료 학자들과 그 이론의 소비자들/고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든지 그것에 따라서 책임성있게 처신하면 되는 것이요. 자신의 이론의 가치를 알아주면 좋고, 몰라준다면, 때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고요. 훌륭한 이론이라면 후학들이 알아 줄 날이 올 것이고, 학문계에 그런 일들은 전에도 있었소.

 

6.

 

진화론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혁명적이기도 하고 창의적이기도 하고 영리하기도 한 이론이오. 그러나 이것은 신학과는 다른 한 끝에서 일어난 설()이오. 이 둘을 쇠막대기를 구부려서 양끝이 만나게 하듯이 하려면, 두 끝에 다 철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도 불협화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오.

 

()을 말함은 자유가 아니라 책임과 관계된다는 것을 모르는 학자들이 많은 것 같소.

 

이질적인 것들을 엮어서 어떤 을 만들거나 말함에 있어서는 학문의 책임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오. 안 그렇소?

 

진화론은 신학이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지질학, 고고학, 고생물학, 등이 얽힌 것인데 신학교수가 무슨 실력으로 거기에 신학적 손을 대어 혼란만 가중시킬 셈이요? 즉 무책임하거나 기껏해야 무모하다, 이 말이오.

 

7.

 

지금, 사회에는 진화론을 신학에 도입하는 것보다 신학적으로 목회적으로 교회적으로 처결해야 할 주제들이 산적해 있소. 동성애 문제만 해도 이게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붙들고 씨름하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분투해야 할 일이오.

저출산 문제는 창세기 1:28-29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일인데 왜 그런 국가적 생존이 걸렸고 하나님의 명이 걸린 일에는 조용하오?

 

또한 국회의원 당선자들 중에 3분의 1이 범법자라는데 신학교수들은 무슨 생각을 하오? 책임이 없소? 신학교가 이 나라 이 사회에 대해서 할 말이 없고 책임을 못 느낀다면 뭐하러 존재하오? 밥이나 먹고 살자는 거요?

그 외에도 신학의 영역에서 심각하게고민해야 할 주제들이 얼마나 많소?

 

8.

 

유신진화론이 문제가 된 그 신학교에서는 2016년에 목사이며 그 학교의 신학교수였던 사람이 자기 중학생 딸을 때려 죽이고 방치하여 약 1년 동안 시신을 방안에서 썪게 하는 중에 경찰에 체포되는 천인공노할 사건이 있었소. 그 사건이 그 신학교의 정신세계나 윤리생활이나 심지어 이율배반적인 신학과 신앙 사이의 괴리, 또는 신앙과 생활 사이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겠소?

 

물론, 그 학교의 모든 목사나 교수들이 다 그런 건 아님이 분명하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성직자를 길러내는 학교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지옥으로 내려가는 듯한 환골탈태의 변환을 추구했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았겠소? 그런 적이 있소? 세월이 약이오?

 

그런 신학교에서 기껏한다는 것이 총장이 나서서 인문학 강좌 시리즈나 벌려 놓고 불신자들이 신학교 학생들에게 대단한 논설인양 설을 풀게 하는 풍조나 벌이고 있었으니, 신학교가 신 앞에서의 책임은 관두고 사회적 책임에도 무관심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하오. 도대체 신학교가 이렇게 촐랑거려도 되는 것이오?

 

그런 신학교는 영적명맥이 끊어졌다고 봐야하지 않겠소?

 

도대체 신학교에서 인문학이란 무엇이고 유신진화론이란 무엇이요? 그게 신학교에서 밥을 얻어 먹고 사는 당신들이 추구해야 할 본업이요?

 

당신들이 전도 전선에서 복음을 전하며 핍박을 받고있다면, 아니 재래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하며 십일조를 내고 있다면, 그런 배부른 헛잔치들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요.

 

이제 왜 사회가 목회자를 존경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왜 목사나 신학자가 쓴 에세이집은 전국적 선풍을 일으키지 못하는지 알만하오? 당신들이 내려다 보는 중보다 못함에 뼈 아픈 눈문을 흘리기 바라오.

 

9.

 

긴 얘기를 페북에서 짧게 하려니 어중간 해 졌소. 다들 정신 차리시오. 예수를 밥이나 벌어먹고 사는 도구로 사용하는 일은 이제 그만들 두구려. 역겹소.

 

고세진이 보내오

 

고세진, 전 아시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

 

(페이스북 게시 글, 20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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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ormanda 2024.06.18 21:31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 해임 결정에 대해
    김균진 원장(한국신학아카데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베리타스, 2024 05:05

    2024년 6월 4일 서울신학대학교 징계위원회가 이른바 "유신진화론"을 주장한다는 박영식 교수를 해임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 결정은 이사회에 통보되고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고 합니다. 이에 관해 한 조직신학자로서 본인의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1. 진화론은 이른바 "절대 진리"가 아닙니다. 물론 그 속에 타당한 내용도 있지만, 학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점을 가진 하나의 "학문적 이론"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진화론이 말하는 "생존 투쟁"이 생물계의 삶의 법칙이 아니라, "상부상조"와 "상생"이 그 법칙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학문의 세계에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절대 진리"라는 것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미시세계에서 세계의 사물들은 "객관적으로 확정될 수 있는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확정될 수 없는 "에너지 장" 혹은 "안개"와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에너지 장은 학자들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 물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임마누엘 칸트에 따르면, 우리는 "사물 자체"(Ding an sich)를 인식할 수 없고, 단지 그것의 "나타남"(현상, Erscheinung)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타남"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감지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른바 "절대 진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화론 역시 "절대 진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계의 모든 것이 무(無)에서 우연히 있게 되었다는 진화론과 빅뱅이론의 전제는 증명될 수 없는 하나의 학문적 "확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창세기 1, 2장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창조, 이른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가 "절대 진리"라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절대 진리"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영원한 타당한 "사실"(factum)을 뜻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른바 "창조과학자들"은 창세기 1, 2장의 기록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창세기 1, 2장의 말씀들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사실들"(facta)의 영역에 속한 "자연과학적 사실"이 되어버립니다. 창세기 1, 2장의 글자 하나하나가 "절대 진리"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창세기 1, 2장의 말씀들은 세계의 생성에 관한 "자연과학 교과서"가 되어버립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심각한 문제점을 가집니다. 만일 창세기 1, 2장의 말씀들이 자연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자연과학적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말씀들에 대한 신앙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사실들"을 신앙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머리로(이성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3. 그럼 구약성서 기자들은 우리에게 "자연과학적 사실들", 곧 그들이 알고 있는 세계 생성에 관한 "자연과학적 지식들"을 전하기 위해 창세기 1, 2장을 기록한 것일까요?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창세기 1, 2장의 말씀들은 "어처구니 없는"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창세기 1장에서 "하늘"은 "궁창", 곧 물을 막아내는 튼튼한 막 혹은 천막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은 하늘을 "물을 막아내는" 것, "물과 물을 나누는" 것으로 묘사합니다(창 1:6). 오늘날 이같은 "자연과학적 사실", "자연과학적 지식"을 인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또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함께, 동시적으로,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음에 반해, 창세기 2장에서는 남자를 먼저 지으시고,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고 얘기하는 모순을 보이기도 합니다. 여자를 남자 "갈빗대"로 만들었다는, 그래서 여자를 영원히 남자에게 귀속된 존재로 보는, 이같은 여성비하적 얘기를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2:4 상반절까지의 말씀들은 하나님을 "엘로힘"이라고 부름에 반해, 2:4 하반절부터의 말씀들은 하나님을 "야웨"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입니다.

    3. 한 마디로 창세기 1, 2장의 성서 기자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것은, 그들이 알고 있던 고대시대의 자연과학적 지식들이 아니라, 세계는 하나님의 결단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 "하나님의 것"이요, 세계를 있게 하신(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세계는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그들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특히 창세기 1장에서 2:4 상반절까지의 말씀들은 제2이사야서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 신앙이 위협을 받던 바빌론 포로기에 기록된 역사적 배경이 나타난다는 것은, 양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 2장에 기록되어 있는 이른바 "자연과학적 지식들"은 이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성서 기자들이 사용한 "수단들"일 뿐이지, 이른바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자연과학적 사실들", "자연과학적 지식들"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오늘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창조를 문서로 기록해야 한다면, 틀림없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통해, 우리의 언어로 이것을 기록할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창세기 1, 2장의 말씀들을 "자연과학적 사실들", "자연과학적 지식들"이라고 주장하는 "억지"를 우리는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필자가 진화론을 절대 진리로 생각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4. 결론적으로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가 이른바 "창조과학"을 부인하고 진화론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그를 파문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창세기 1,2장의 말씀들은 "과학"이 아닙니다. "자연과학 교과서"가 아닙니다. 성서 기자들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것은 "자연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 창조와 그의 주권과 세계 구원에 관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의 신앙을 증언할 뿐이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고대인들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믿으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서가 증언하고자 하는 "내용"을 보아야지, 글자 자체를 절대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화론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할 필요도 없고, "거짓말"이라고 부인할 필요도 없습니다. 진화론은 하나의 과학적 이론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만물은 변하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확신, 신념, 이론, 윤리와 도덕도 그 속에 가설의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1+1=2를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수학자들에 의하면 수학의 모든 공식들도 가설에 입각해 있고, 바로 여기에 현대 수학의 "위대함"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지도자들은 "절대"라는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 안에 계시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외에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교리도,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도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절대"의 이름으로, "교리"의 이름으로 한 신학자의 삶과 가정을 파괴하고, 한국 개신교회를 또다시 세상의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을 중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황덕형 총장이 말하듯이, 서울신학대학이 정말 "창조론의 연구에 있어서 대학의 다양한 이론들과의 학문적 대화를 추구"한다면, 박영식 교수의 입장을 하나의 "학문적 입장"으로 인정하고 학문적 대화를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학문적 문제는 학문적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지, "교수 파면"이란 "교단 정치적 결단"으로 끝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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