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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리용의 건물

 

칼빈의 가족과 성직록

 

 

(1) 칼빈의 부모

 

칼빈은 프랑스 북부의 피카르디 주, 주교도시 노용(Noyon)에서 1509710일 태어났다. 칼빈의 부모는 모두 7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52녀였다. 샤를이 장남이고, 칼빈은 차남이었다.

 

칼빈의 모친인 잔느 르프랑은 노용의 토박이이며, 시의회와 부르주와지의 일원의 딸이었다. 그녀는 가톨릭 교리를 철저히 지키는 전통적인 신앙인이었다. 칼빈의 어머니는 어린 칼빈을 데리고 기도 행렬 행사에 데리고 갔었다. 칼빈은 성인 안나의 신체 일부분에 입을 맞추었다고 말한다. 칼빈의 모친은 칼빈이 6세쯤인 1515년경에 세상을 떠났다. 칼빈의 모친은 5세에 죽었다. 칼빈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50세 이상이었다.

 

칼빈의 아버지는 제라르 꼬뱅(Gerard Calvin)이었고, 어머니는 잔느 르프랑이었다. 칼빈 가문의 원래 성은 꼬뱅이었다. 칼빈은 쟝 꼬뱅으로 발음되었다. 그는 프랑스어로는 장 깔뱅(Jean Calvin)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용되던 프랑스식 발음으로는 깔방으로 불렸다. 칼빈은 파리에서 라틴어 표기법에 따라 요안니스 칼비누스’(Ioannis Calvinus)로 서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남아있는 서명들은 모두 칼비누스라고 되어 있다. 영어로 표기된 이름은 존 칼빈’(John Calvin)인데, 이것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칼빈의 친할아버지는 수공업자로서 술통을 만들었다. 칼빈의 아버지 제라르는 누아용 시민의 딸과 결혼하였다. 칼빈의 아버지는 법률공부를 하였으며, 공증인의 지위를 얻었다.

 

제라르는 당시 유서 깊은 누아용 주교의 비서이며, 보좌 주교, 주교의 대리인이 되었다. 당시 누아용의 주교는 프랑스 12귀족 중 하나였다. 칼빈은 누아용 주교의 형제인 몽모르 가정에서 그의 자녀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 제라르는 교회 법률과 재정에 중요부분을 담당하였다. 그는 마을의 재정 담당관이 되었다. 칼빈의 아버지는 1497년에 지방 귀족층을 의미하는 부르주아라는 신분을 획득하였으며, 다음 해에는 시의원으로 선발되었다.

 

칼빈의 아버지는 앙제의 주교 샤를느와 성당의 참사회에 고용되었고, 거기서 여러 행정 업무를 수행하였다. 루터의 아버지가 루터가 성직자 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칼빈의 아버지는 칼빈이 성직자가 되는 것을 원하였다.

 

주교의 세속적 대리인으로서 신부가 직접 다루기엔 적절하지 않은 일들을 맡아 처리하던 제라르는 빚을 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출교되었다. 아버지 제라르는 1528년 당시 교회 지도부와 마찰이 생겼고, 그는 결국 15281113일에 교회에서 출교 되었다. 죄목은 그동안 있었던 교회와 재정 거래 중에서 감사 기록 일부가 누락 되었다는 이유였다.

 

칼빈은 1531년 봄, 21살의 나이로 법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칼빈은 그의 아버지의 병환으로 노아용에 돌아왔다. 그해 526일에 부친은 세상을 떠났다. 장남 샤를의 노력으로 사면을 얻어서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교회의 묘지에 묻혔다. 아버지의 죽음은 칼빈에게 큰 충격이었음에 틀림없다.

 

(2) 칼빈의 형제와 자매들

 

칼빈의 형 샤를은 1518년에 대성당의 지도 신부가 되었고 또 루피의 교구 신부가 되었다. 그는 노용 주교가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였다.

 

칼빈은 25세인 153454일에 노용교회에서 받은 연봉을 거절하기 위해 귀향했다가 체포되었으나 풀려났다. 칼빈이 성직록을 포기한 이틀 후에 그의 형 사를르는 이단 죄목으로 조사를 받았다. 칼빈의 형인 샤를(Charles)도 종교개혁을 지지하다가 이단 혐의로 출교를 당하고 사를르는 교회의 감금 상태에 있다가 1537101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 사면과 예배를 허락받았으나 거부하였으며, 임종시에 성찬을 거부하였다. 그는 밤중에 교수대의 네 기둥 사이에 묻혔다.

 

노용의 참사원 자크 르바수시르의 칼빈의 형에 대해서 말한다. “그는 그의 동생의 오류를 끌어들이고, 전파했으며, 미사에 대해 깐죽거리고 비웃었으며, 성례전 특히 최후의 침상에서 거행하는 종부성사를 거부했고 결국에는 비천한 묘소에 던져지고 말았다.”

 

칼빈은 둘째 아들이었고 셋째 아들은 앙투안(Antoine)이었다. 그는 트라버시 인근의 투르네롤의 신부였다. 그러나 그는 복음적인 신앙을 받아들여 여동생 마리와 함께 칼빈을 따라 1536년에 제네바로 왔다. 앙투안은 그곳에서 서점을 경영하였다. 그는 칼빈 덕으로 시민권을 받았고(1546), 200인 의회의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1558), 60인 의회의 의원으로도 선출되었다(1570).

 

그는 또한 병원 감독관의 한 사람으로 임명되기도 했는데, 1573년에 죽었다. 그는 세 번 결혼했는데, 피난민의 딸이었던 그의 두 번째 부인과는 부인의 간통 혐의 때문에 이혼하였다(1557). 칼빈은 이 사건으로 무고하게 고통을 받았지만 앙투안과 그의 다섯 아이들을 자신의 많지 않은 유산의 주요 상속인들로 삼았다.

 

넷째 형제는 프랑수아로서 일찍 죽었다. 칼빈의 자매로는 마리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또 한 명이 있었는데, 마리는 앙투안과 함께 제네바에서 칼빈과 같이 지냈다. 칼빈은 두 형제와 배다른 여동생인 마리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칼빈과 함께 개신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칼빈과 함께 제네바로 왔기 때문이다.

 

칼빈은 또한 사촌 로베르 올리베탕(Robert Olivetan)이 있었다. 칼빈은 그와 같이 1528년 개혁을 좋아하는 휴머니즘 운동에 가담하였다. 올리베탕은 칼빈보다 몇 해 전에 개신교를 받아들였다. 그는 32세에 이탈리아에 있는 페라라 공작부인의 궁정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32세였다. 아마 그는 독살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3) 칼빈의 성직록

 

칼빈의 아버지는 주교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칼빈이 152151912세에 노용 대성당에 속한 라 제신느(La Gesine) 성당 보좌 신부로 명목상 임명되어 성직록을 받게 하였다. 이 성직록은 성당으로부터 받는 수입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며, 누와용 대성당의 제단을 시중들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칼빈은 이 때에 성직 서약문에 서약했다. 또한 삭발식을 가졌다. 이로서 칼빈은 예비사제가 된 것이다. 그는 보리와 밀을 받았다.

 

그 후 칼빈은 152792718세에 오를레앙 대학으로 가기 직전에 자기 고향으로 가서 사제 직분을 받았다. 그는 성 마르탱 드 마떼빌르(Marteville)’ 교구 목사의 부속 소년, 보좌사제, 교구 성직자로 임명되어 성직록을 받은 것이다. 이 성직록은 25세가 될 때까지 모든 교육에 관한 장학금을 주는 혜택이 있었다. 이것을 통하여 칼빈은 1534년이 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다. 이것은 칼빈이 당시에 명의 신부직은 성직자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학비를 충당하는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칼빈은 25세가 되던 해인 153454일 성직록을 포기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25세가 되어 공식적으로 사제로서 교회 봉사를 하지 않으면 성직록을 포기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교회법에 의하면, 이 나이에는 신부의 서품을 받아서 교구에서 부양을 받든지, 아니면 다른 직업을 갖고 교회의 후원금을 받지 않는 선택을 해야 했다.

 

칼빈은 성직의 특권을 포기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런데, 이 날 칼빈은노용교회에서 받은 연봉을 거절하기 위해 귀향했다가 체포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풀려났다. 칼빈이 성직록을 포기한 이틀 후에 그의 형 사를르는 이단 죄목으로 조사를 받았다. 1537101일까지 사를르는 교회의 감금 상태에 있다가 죽었다.

 

여러 학자들은 칼빈이 성직록을 포기한 것은 회심의 증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이것은 당시 관습을 따른 것으로 회심의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본다.

 

(4) 칼빈의 고향

 

칼빈은 1509710일 파리에서 북쪽으로 약 60마일 떨어진 프랑스 피가르디 지방의 노용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곳에서 14년 동안 살았다. 이 성읍에는 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다. 이곳은 주후 500년경부터 주교좌가 있었던 곳이었다. 샤를마뉴 대제가 768년 프랑크족의 왕으로 즉위한 것도 이곳이다.

 

1534년 봄에 칼빈은 고향에 갔다. 여기서 그는 개신교도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에 노용의 주민들은 칼빈을 이단자로 결정했다. 이 일로 526, ‘성 삼위일체 기념일 전날 교회에서 재판을 받기 위하여노용의 감옥에 갇혔다. 그곳은 뽀르테 꼬르바(La Porte Corbaut)이라는 이름의 감옥이었다. 그러나 칼빈은 곧 풀려나서 파리로 갔다. 1536기독교 강요초판 표지에 적힌 저자의 이름은 라틴어로 노용의 존 칼빈이라고 되어 있었다.

 

칼빈은 아주 단순하게 자기의 조국을 사랑했다. 때때로 그의 작품에는 애국적 감상이 스며있다. “조국에 대한 사랑, 우리의 공동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조국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마음 속에 본성적으로 심어져 있다.”

 

1551년 칼빈이 태어난 노용에서 축하잔치가 벌어졌다. 왜냐하면 칼빈이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향을 칼빈은 항상 사랑하고 그리워하였다. 그러한 노용이 칼빈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에는 시 당국이 수익증대를 위해서 칼빈을 홍보하였다.

 

칼빈이 태어난 집은 1918년 대대적인 전투로 무너졌다. 참나무로 된 옛날 계단의 기대만 남았다. 칼빈의 집은 1930년에 그 무너진 자리 위에 다시 세웠다. 오늘날 있는 집은 1955년에 복구되었고, 프랑스 개신교 역사학회의 주도로 박물관과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칼빈은 제네바에 묻혔다. 그러나, 칼빈의 무덤은 어디인지 모른다. 단지 칼빈의 무덤이라고 추정되는 곳에, 19세기에 'J. C.'라고 새겨진 비문을 세웠다. 하나님의 전사였던 칼빈은 때로는 모세를, 때로는 예레미야를 자신의 거울로 삼았다. 칼빈이 사후 무덤을 남기지 않은 것은 모세를 닮았다.

 

조창훈 목사 (페이스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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