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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근본주의. 개혁주의

 

신복윤

 

이 글은 복음주의, 근본주의, 개혁주의 등 몇몇 운동들의 용어, 역사적 배경, 사상적 특징들을 돌아본다.  나아가 활동한 상황, 평가 그리고 한국 교회와의 관계 등을 차례로 살펴본다.

 

. 복음주의

 

1. 복음주의의 발단

 

근본주의가 20세기초 미국에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생긴 신학이라고 한다면, 복음주의(福音主義, Evangelicalism)17세기 이후 독일 루터교회의 '죽은 전통'에 불만을 품은 경건주의(敬虔主義)운동에서 파생된 운동이다.

 

종교개혁 이후 독일교회에는 점점 신앙의 고정화 현상이 나타나 교리적 정통주의가 만연케 되자, 슈페너(P.Spener 1635~1705)와 후랑케(Francke, 1663~1727)를 중심으로 종교적 정열과 내적 생명을 되살리려는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나 독일교회에 커다란 각성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기독교는 생활이요 체험이다"라는 표어를 가지고 성경의 생활화를 강조하였다. 이들의 경건주의 운동이 바로 독일과 영국, 그리고 기타 유럽의 복음주의의 모체가 된 것이다(복음주의,신학사전, 개혁주의 신행협회 pp. 204~205).

 

복음적이란 용어는 복음에 기초하려는 모든 개신교 교회에 붙여졌다. '복음주의'란말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도 적용되고, 영국에서는 웨슬리파 감리교회에도 사용되었다. 이렇게 사용된 복음주의는 기독교회 기본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한편, 성경의 권위와 완전영감설을 강조하고, 의식적 예배보다는 설교의 우위성을 주장하며, 로마가톨릭에 대해서는 짙은 회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2. 복음주의의 역사

 

위에서 말한대로 복음주의는 17세기 이후에 생긴 운동이지만, 그러나 초대교회의 신경(信經)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초대교회는 그것을 성경의 교훈과 관련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고 변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복음주의 신학은 이 시대의 사상과 손을 잡고 다음 내용들을 확인하였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참된 계시이며, 그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음성으로 말씀하신다는 것,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요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라는 것,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구속적으로 역사속에 들어오셨다는 것,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 시라는 것, 죄의 권세와 심판은 모든 인류에게 다같이 실재(實在)한다는 것, 하나님은 자비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먼저 찾아오셨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는 것, 역사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일반적 부활, 최후의 심판, 천국과 지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등이다.

 

복음주의 신학은 또한 초기 중세교회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캔터베리의 안셀름(Anselm)이 주장한 속죄론에서 만족설(滿足說)을 비중있게 취하였으며, 끌레르보의 버나드(Bernard)가 주장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하여도 강조하였다.

 

특히 복음주의 신학은 종교개혁의 특징들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있다. 복음주의는 철저하게 성경 중심성을 강조하고, 특별히 설교와 관련하여 성경의 능력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온다는 것, 교리와 생활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성령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그것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널리 보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등에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복음주의는 또한 이신칭의(以信稱義)교리를 강조하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자기계시(自己啓示)를 신뢰함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복음주의는 역시 교회는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를 직접적으로, 개인적으로, 또는 항상 가까이 나아가는 모든 신자들로 구성된다는 것을 기쁘게 고백하였다.

 

종교개혁은 제도화된 여러 구조들과 민족주의적 충동의 결과로 나타났으며, 이 속에서 복음주의 신학의 다양성이 발생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성례의 본질, 개인의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의 작정(作定)의 위치, 천년 왕국의 시기, 교회의 정치형태, 성경영감의 정확한 성격, 구원의 확신에 도달하는 방법, 문화와 국가에 대한 관계 등에 대하여 이해의 차이가 있었다. 오늘의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이런 문제들 가운데 대부분은 약간 이차적인 중요성을 가진 문제로 생각될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복음주의 신학은 또한 대략 18세기 중엽에 일어난 복음주의적 각성운동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이때 복음주의는 위대하고 표준적인 전통신학을 재차 확인하고, 크리스챤 삶의 신학에 특별한 역점을 두었다.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나 회심의 성질에 대한 논의는, 비록 회심의 시간에 대한 차이는 있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식과 이에 따르는 성질의 변화 문제와 함께 계속 전면에 나타났다.

성화의 수단과 그 가능성도 역시 강조되었는데, 성화의 시간과 성취에 대하여 약간의 차이가 다시 한번 있었다. 공동의 영적 삶의 신학이 또한 강조되었는데, 교회의 갱신과 세계의 복음화, 그리고 사회의 개선을 특별히 강조했다.

 

1980년대에 와서 복음주의 신학은 크리스챤 삶의 신학에서 벗어나 진지한 성경해석 작업과 이를 반영하는 사상을 통하여 다시 한번 중세 초기와 종교개혁 시대처럼 정통신학의 유산을 활기차게 선택하려는 증거를 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바로 그 당시에 복음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과 충돌하고 있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옛 계몽주의 운동의 합리주의와 신지식(神知識)에 이르는 다리로서 인간의 자각을 강조하는 후기 칸트 철학의 결합이었으며, 이 신학은 낭만주의 시대에 호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배경 가운데서 복음주의 신학은 그 새로운 견해들과 타협함으로 약화되거나 후퇴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 침체를 변호하려는 노력도 일어나고 있었다.

 

이들은 정통신학의 정수를 옹호하는데 눈부신 활약을 하면서도, 자주 그 당시 사상의 많은 부분을 버리고, 크리스챤 삶의 신학에 대한 독특한 복음주의적인 강조점을 약화시켰다. 따라서 모든 신학의 최종적인 형성을 종교개혁시대의 신앙고백에 끼워넣은 인상을 주었다.

 

이때 복음주의 신학의 빛을 희미하게나마 비추어 주던 학파가 있는데 바로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ayper) 이후에 나타난 화란학파(the Dutch School)이다. 이들은 정통신학의 전통을 확인하고, 모든 부분에서 크리스챤 삶의 신학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 깨닫고 있었으며, 동시에 많은 문제점들을 느끼고 그 당시 발생되는 문제들에 접근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에 자유주의 신학의 압력은 계속 증대되고, 복음주의는 약화되었기 때문에, 더욱 더 방어적인 복음주의 신학이 근본주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 가장 중요한 보루는, 교회와 사회가 파멸을 향하여 돌진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천년왕국설이었다. 그리스도교는 '현재'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미래'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20세기 중반에는 복음주의 신학 안에 어떤 활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 학자들이 진지하고 학문적인 성경해석 방법의 접근에 공헌하였고, 미국 학자들은 조직신학, 변증학, 윤리학같은 조직신학의 보조학문 영역에서 열심히 연구하였다. 화란학파와 메노나이트파(Mennonites)는 중요한 여러 종류의 출발점부터 사회적 행동의 신학들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오순절파의 카리스마 운동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교회를 통해 강하게 그리고 초자연적으로 나타나신다는 성령의 신학을 선언하였다.

 

3. 영적신학

 

마지막으로, 복음주의 신학은 영적신학(Spiritual Theology)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위대한 신학 전통의 일부분인 삶의 신학의 방법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정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신학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명상하고 기도하며 연구해야 할 대상이다. 신학연구의 목표는 신학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학문적인 만족에 대한 유혹은 극복되어야 한다. 즉 신학은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결산의 날이 가깝다는 자각에서 행해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복음주의 신학의 작업 전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다.

 

4. 한국교회와 복음주의

 

한국교회는 일반적으로 '복음주의적'이다. 복음주의는 요약해서 말한다면, 경건주의에 개혁주의가 가미된 운동이라고 하겠다. 복음주의자는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대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복음주의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복음주의는 현재 여러 교파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회장:전호진, 총무:박형용)가 있고,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김준곤, 총무:김영혁)가 있고, 복음주의사상·신앙·사업 확장에 힘쓰고 있다. 비록 사상과 교파의 배경은 다르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복음의 정열을 가지고, 경건하게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복음주의자라고 한다면, 한국복음주의 운동은 소망스러운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경계할 것은 복음주의가 경건주의에 흐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최근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에 비해 유럽의 복음주의 신학이 약세에 있는 것은 경건주의 운동의 영향 때문이다. 경건주의가 내세운 생활위주의 기독교는 얼마 안가서 교리적으로 이질화의 염려가 있다.

 

II. 근본주의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독일과 영국에서 일어난 자유주의는 19세기말 미국에서 강한 세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성경의 객관적 계시와 정확무오한 권위에 정면 도전하고, 그리스도의 처녀탄생,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대속교리, 육체부활 등에 대하여 회의를 느꼈다. 모세오경의 저작권, 구약의 연대적 순서, 복음서 기록의 정확성, 바울신서의 저작권 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신학적인 공격만이 아니라, 과학적인 공격도 아울러 퍼부었다. 다윈의 진화론이 인류와 세계에 대한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견해를 불신하는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가 아니라, 완성을 향하여 진보하여 가는 것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와같은 비평에 대하여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 즉 초자연적인 복음의 변호와 전파를 위하여 일어난 것이 곧 근본주의(根本主義, Fundamentalism)운동이었다. 그러나 신학적인 배경은 다양하여, 이 운동에는 칼빈주의자, 알미니안파, 침례교도, 장로교도, 그리고 세대주의자(世代主義者)들이 한데 뭉쳐 있었는데, 그들은 20세기초까지 공동의 적인 자유주의를 대항해서 싸웠다.

 

1. '근본주의'라는 말

 

'근본주의'라는 말은 1920년 침례교기관지 The Watchman Examiner의 편집인 커티스 리 로우즈(Curtis Lee Laws 1868~1946)가 북침례교 총회안의 반현대주의자들을 가리켜 사용한데서 비롯된다. 이 용어는 현대주의 신학과 현대문화의 세속화 양상에 대항하여 싸우는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을 총체적으로 넓은 의미에서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예를 들자면, 이 용어는 첫째로 복음주의적 개신교도들에게요, 둘째는 반현대주의자들에게다. 그들은 전통적, 초자연적, 성경적인 기독교의 원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앞에서도 말한 바 있는 반현대주의자나 혹은 세속화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이 용어는 넓은 의미에서도 사용되고, 좁은 의미에서도 사용되기 때문에 그 묘사는 다소 복잡하다.

 

때때로 이 말은 일반적으로 어떤 종교상의 반현대주의자를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혹은 근본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남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대로, 복음적 부흥운동에서 도를 지나치거나 반()지성주의적인 사람들을 가리켜 막연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이 말을 그렇게 사용하게 될 때, 근본주의와 부흥운동을 혼동하게 되고, 따라서 부흥운동가들의 뿌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몇몇 운동들과 혼동을 초래하게 된다.

 

예를 들면, 19세기 후반기에 일어난 '성결운동(聖潔運動)'은 완전무죄생활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체험을 강조하였다. 20세기 초에 일어난 '오순절운동'은 영적능력을 극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들은 반현대주의자인 근본주의자들의 호전성을 채택하였기 때문에 근본주의적이 되었다. 그러나 이 운동들은 교회와 관계에서는 독립성을 유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 모든 운동들의 공동 기원을 19세기 미국 부흥운동의 다양한 유산에 두고 있는 것이 확실하며, 그래서 그들은 보통 근본주의자로 불려졌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부흥운동가들이었다.

 

영국에서 근본주의라는 말은 더 넓은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근본주의는 성경의 고등한 견해와 근본적인 주장들을 가지는 복음주의적 보수주의를 가리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제임스 팩커(J. I. Packer)는 이런 의미에서 그의 저서 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London, 1958)에서 근본주의를 변호했으며, 제임스 바르(James Barr)Fundamentalism(London, 1977)라는 저서에서 근본주의운동을 비판하면서 보수주의적 복음주의의대부분의 분파들을 하나로 묶어 말하였다.

 

한편 미국에서는 근본주의가 호전적인 반현대주의적 백인 복음주의자들을 가리켜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미국의 흑은 복음주의자들은 흔히 스타일에서는 부흥사이고, 교리면에서는 근본주의이며, 윤리면에 있어서는 반현대주의에 속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근본주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2. 근본주의의 역사(曆史)와 특징

 

근본주의 운동의 특징들은 그 역사에서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다. 에네스트 샌딘(Ernest. R. Sandeen)은 그의 중요한 연구서 The Roots of Fundamentalism:British and American Millenarianism 1800~1930(Chicago, 1970)에서, 근본주의의 주요한 근원은 다비(J. N. Darby)와 그밖의 사람들의 저작에서 볼 수 있는 천년기전 재림예언운동(千年期前再臨豫言運動)이라고 지적하였다. 비록 영국에서 이 운동이 전통적인 교회를 떠난 플리머스 형제단(The Plymouth Brethren)을 만들어내기는 하였으나, 19세기 후반 미국의 장로교와 침례교같은 중요한 교파 안에서도 근본주의의 표현들이 나타났다.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가 이 운동의 특징이었으며, 스코필드(C. I. Scofield)의 관주성경(Reference Bible)은 거의 정경(正經)처럼 인정되었다. 또한 미국의 많은 세대주의자들은 영국의 케직사경회의 온건한 성결운동의 교리를 채택하였다. 세대주의는 이 시대에 교회의 파멸을 예고하면서, 20세기 초의 공격적인 현대주의 신학의 발생에 대하여 투쟁할 것을 고무하였다.

 

특히 현대주의가 강했던 미국에는 현대주의에 대항하여 신앙의 근본원리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세대주의자들이 많이 있었다. 북장로교에서는, 보수주의자 프린스톤 신학교의 지성적인 지도자들 찰스 핫지(Charles Hodge), A. A. 핫지(A. A. Hodge), 워필드(B. B. Warfield), 메이첸(J. G. Machen)에 의해 강하게 유지되었다.

 

보수주의적 장로교인들은 우선 근본교리를 옹호하는 전략을 전개하였다. 특히 1909년부터 1915 년까지 12권으로 된 근본주의 총서 근본원리들(The Fundamentals)이 출판되어 전통적인 교리들이 옹호되었다. 이 총서는 라이만 스튜어드(Lyman Steward)와 밀턴 스튜어드(Milton Steward) 형제가 희사한 25만불과 무디기념교회 딕슨(A. C. Dixon) 목사의 편집으로 이루어졌고, 집필자들은 당시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미국과 영국의 보수주의 신학자들이었으며, 전국적으로 300만권 이상이 무료로 배부되었다(George M. Marseden, Fundamentalism and American Culture Oxford University Press, 1980, p. 118).

 

이 총서는 성경의 축자영감과 무오성을 강조하는 29편의 논문들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을 변호하는 총 90편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근본주의 단체들이, 비록 한가지도 표준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근본주의적' 교리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가장 공통된 요점은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동정녀 탄생, 대리속죄,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이었다.

 

1920년대에, 현대주의자들을 대항하여 열심히 싸운 근본주의자들은 주요한 북장로교와 침례교 교단들 안에서 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은 규모의 근본주의 논쟁들이 다른 교파들 안에서도 발생하였으며,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이와 비슷한 분열들이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교회 안에서 발생하기도 하였다. 한편 근본주의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도덕적 부패를 공격함과 동시에, 교회와 문화의 부패도 공격하였다. 윌리엄 브라이언(William J. Bryan, 1860~1925)이 주도한 바 있는, 미국공립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 금지운동은 그러한 관심사의 주요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1925년 테네시주 데이튼(Dayton)시의 고등학교 생물교사인 존 스코우프스(John Scopes)는 이 법을 어기고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100불 벌금형의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근본주의자들은, 진화론 교육의 보급은 미국인의 생활에서 성경의 권위를 손상시키며, 도덕적 상대주의로 조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공산주의, 로마교회, , 담배, , 도박과 극장구경도 근본주의자들이 공격하는 또 다른 중요한 표적들이었다. 이러한 투쟁속에서 근본주의는 미국의 남북부전역과 그밖의 영어권 나라들, 그리고 그들의 선교지역에서, 여러가지 전통을 가진 반현대주의 크리스챤들의 연합으로 성장하였다. 그 연합의 중심에 미국의 세대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근본주의는 다른 전통들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았다.

 

1930년대에 와서 근본주의는 어떤 특수한 교회적인 표현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효과적인 근본주의자들은 점차로 현대주의자들이 들어있는 단체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교회나 교파로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이 침례교 도와 세대주의자들이었다. 분리주의가 참된 신앙의 시금석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20년대의 호전적 반현대주의자들의 광범한 연합은 1940년대에 와서는 분열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에서 한 주요한 집단은 호전성을 완화하고, 중요한 교파들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집단은 해롤드 J. 오켄가(Harold John Ockenga), F. H. 헨리(Carl F. H. Henry), 에드워드 J. 카넬 (Edward J. Carnell)과 같은 대변자들이 주로 이끌어왔으며, 그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을 '신복음주의자 (Neo-Evangelicals)'라고 불렀다. 그들이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의 협력을 얻은 것은 복음주의적 전() 근본주의자들의 발전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다.

 

한편 존 R. 라이스(John. R. Riee, 1895~1980), 밥 존스(Bob Jones, 1883~1968), 그리고 칼 맥킨타이어(Carl Mcintire1906~)와 같은 호전적인 분리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이 참된 '근본주의자'라고 주장하였다. 초기의 근본주의 운동과 달라진 이 분리주의적 근본주의 운동을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간하배(Harvie Conn)교수는 '신근본주의'라고 불렀다(ContemporaryWorld Theology,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77. p. 120).

 

1960년대 이후의 미국의 '근본주의'는 이 소수의 분리주의적 근본주의자들이 아니라, 넓은 복음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넓은 복음주의에는 전 근본주의자들과 여러가지 전통의 성경을 믿는 크리스챤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1980년대에 침례교의 근본주의자인 제리 포웰(Jerry Fawell)Moral Majority의 시작과 함께, 미국인의 공적생활에서 전통주의적 크리스챤의 관습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근본주의자들의 정치적 관심은 1920년대에서처럼 다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근본주의자들의 정치운동은 역시 현재 세대주의적 예언 해석에 중요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다.

 

3. 근본주의와 한국교회

 

한국장로교회는 처음부터 청교도적 개혁주의를 선교사들에게서 전수받았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는 동안에 이 청교도적 개혁주의 전통 속에는, 경건주의, 신비주의, 세대주의와 함께 근본주의 등, 성경사상에 미흡한 요소들이 들어와 사상적 혼란을 가져왔다. 특히 근본주의적 요소를 한국장로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일반 은총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개혁주의적 한국장로교회는 세상학문에 대한 노력을 강조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반()지식주의에 흐르는 경향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계시종교와 과학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칼빈은 계시종교를 알게될 때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바로 알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영원적인 것만이 아니라, 시간적인 것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으로 믿고 아울러 존중하며 강조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또한 잘못된 경건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왔다는 것도 근본주의의 영향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크리스챤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마땅하나, 그것이 경건생활이 못되고, 경건주의에 빠지게 될 때, 형식주의가 되고 율법주의가 된다. 경건주의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경에 없는 생활표준을 세우고, 그 표준이 마치 성경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는 논쟁을 일으켜 덕을 세우지 못하게 된다.

 

4. 근본주의에 대한 평가

 

근본주의가 초자연주의를 강조하고, 성경의 권위, 처녀탄생, 그리스도의 신성, 대속교리, 부활, 재림 등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을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나, 거기서 몇가지 약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첫째로, 근본주의는 하나님의 주권교리를 강조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다른 모든 교리를 싸고 도는 중심 태양이다. 하나님은 우주의 절대적인 최고의 통치자이시며, 작정과 창조와 섭리와 구속에서 주권적으로 일하시는 것이다.

 

둘째로 근본주의의 약점은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깊이 보지 못하는 점이다. 구약시대의 신자들 가운데는 율법으로 구원을 얻고, 신약시대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은 다같이 은혜언약에 속하는 구원방법의 계시이다. 구약이 은혜의 약속에 대해 계약이라고 한다면, 신약은 그 성취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양자는 연속성과 통일성은 갖는 것이다.

 

셋째로, 근본주의의 약점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일반은총(자연은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세속 학문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여 마침내는 반()지식주의로 흘러가고 말았다.

 

넷째로, 근본주의는 개인의 종교경험을 강조하는 경건주의적 경향을 보이면서 기독교의 사회적, 문화적 명령을 무시한다. 종교는 개인의 기도생활과 성경공부, 그리고 교회출석에 국한되고, 경제학이나 사회학, 그리고 자연과학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하여는 무관한 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문화·과학은 성경신학에 의하여 지도받지 못하고 오히려 한정되고 제약을 받는다.

 

다섯째로, 초기 근본주의와 후기() 근본주의가 다같이 복음을 전파하고 옹호하려는 열심은 대단하나, 옹호하려는 면이 전파하려는 면보다 더 우세하다. 적극적 자세에서 부정적 자세로, 당당한 싸움에서 사사로운 다툼으로, 은혜로움과 예절에서 비난의 언어로, 그리고 운동에서 인물로 그 호전성을 나타낸다(간하배, 현대신학 해설, p. 165).

 

III. 개혁주의(改革主義)

 

'개혁'이라는 말은 본래 16세기 로마 카톨릭교회의 오류와 폐단에 대항하여 일어난 교회들의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이다. 그러므로 개혁이라는 말은 더 넓은 의미에서 종교개혁의 모든 교회에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교회생활과 개인생활에서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 것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은 매우 제한된 의미를 갖는다. 이 말 루터의 사상에서 그 자체를 구별짓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개혁주의라는 용어는 또한 칼빈주의라는 말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1. 개혁주의의 사상적 특징

 

개혁주의는 칼빈으로부터 전해진 사상체계이다. 창시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 사상 체계의 중요한 해설가이다. 칼빈의 신학사상은 개혁운동에 이바지한 다른 위대한 지도자들의 사상과 함께 어거스틴 사상의 부흥이요, 어거스틴의 사상은 그보다 몇세기 전의 바울사상의 부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사상들을 조직적으로 설명하고, 특수하게 적용하여 현대를 위하여 제시한 사람이 바로 칼빈이다. 이때부터 이 사상체계를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라 부른다(H. Henry Meeter, The basic Ideas of Calvinism, Grand Rapids:Baker Book House, 1975, p. 29).

 

개혁주의는 신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사상체계이다. 여기에는 신학과 함께 정치, 사회, 과학, 예술 등에 대한 사상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사상체계는 인생관, 우주관, 세계관을 제공한다(상게서 p. 30). 개혁주의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상적 특징을 가진다.

 

(1) 성경관

 

개혁주의에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성경관이다. 미국 칼빈신학교의 클로스터 교수(Fred H. Klooster)는 그의 논문에서 개혁주의의 독특성을 성경관(sola and tota scriptura)에서 찾았다(The Uniqueness of Reformed Theology:A Preliminary Attempt at Description, Grand Rapids:The Reformed Ecumenical Synod, 1979).

 

종교개혁은 성경의 권위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새롭게 강조하였다. 종교개혁은 부패한 교권제도의 횡포를 버리고, 그 자체의 기초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하게 취급되었던 교회 전통의 권위를 거절하였다. 그리고 새로 발견한 진리에서 활기를 찾아,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라는 것, 그는 말씀을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신다는 것, 그 말씀이 죄인을 부르시는 수단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권위로 그들을 다스리시며 순종케 하신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성경의 영감(靈感)과 무오(無誤)에 관한 문제로 광범위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말씀을 주셨는지는 정확하고 상세하게 알지 못한다. 사실 하나님은 성경의 어떤 부분을 우리에게 주시되, 다른 부분과는 다르게 주셨다. 예를 들면, 십계명은 하나님 자신의 손으로 쓰시는 방법으로 주셨는가하면, 복음서들은 목격자들을 사용하여 영감으로 회상케하여 쓰도록 하였다. 누가는 역사를 조사하는 특별한 방법으로 누가복음을 기록하였다. 성경 저자의 인간성과 개성이 영감의 과정에서 성령(聖靈)에 의하여 충분히 인정되고 고려되었다는 것도 완전히 명백하다.

 

그러나 이사야와 아모스는 전혀 다른 문체(文體)와 다른 배경에서 각각 다른 책들을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과 요한은 비슷하게 그들 자신의 마음의 특성들을 보여 주었으며, 진리를 각각 다른 견지에서 표현하였다. 그들은 놀랍도록 서로 다른 문체로 쓰고, 예리하고 고상하게 나타내면서도 다같이 그들 자신의 독특한 지성과 경험을 가지고 기록하였던 것이다.

 

개혁파 전통에서는 영감의 방법이나, 성경의 여러가지 특성의 의미에 관한 기술적인 정의(定義)보다는 오히려 성경의 권위(權威)에 대하여 더 많이 강조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성경에 접근하면, 성경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다양한 형용사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성경은 권위가 있으되, 궁극적이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책이다. 성경은 잘못이 있을 수도 없고, 잘못을 범할 수도 없으며, 우리를 나쁜 길로 인도하지는 더욱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을 의지하고, 전적으로 신뢰하며,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죽기 위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바로 이 성경에서 찾는다(Inst. I. 7, 8, 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 인간의 구원, 신앙,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필요한 중요성에 따라 그것들을 성경에서 추론할 수 있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나 인간의 전통이나를 불문하고, 성경에는 어떤 것이라도 다른 무엇을 첨가해서는 안된다"(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I/6). 그러므로 성경이 말할 때 우리는 이에 순종하고 성경이 진리를 증언할 때,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그 진리에 굴복한다.

 

그러나 어떤 근거에서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성령(聖靈)의 신학자라 불리우는 칼빈은 이에 대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움을 우리에게 주었다. 칼빈의 열차(列車)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특수한 책이라고 믿으며, 여기서 감동을 받는다. 여러 세기를 걸쳐서 기록되었으나, 그 비상한 통일성, 위엄있는 문체, 영광스러운 내용, 놀랄만한 일관성, 예언의 놀라운 기록과 그 성취,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속에서 경건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우리를 확신시키고 설득하며 순종하게 하는 것은 그 중의 하나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그 전체도 아니다. 오히려 성경 권위의 확고한 근거는 칼빈이 지칠 줄 모르게 주장했던 성령의 증거인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믿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아는 것은 성령께서 증거해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때, 즉 성경의 권위와 성령의 증거를 분리시킬 때, 우리는 즉시 영적으로 싸늘해지는 위험에 처하게 되고, 마침내는 비생산적이며 무의미하게 되는 빈약한 논쟁의 희생물이 되고 말 것이다 (Inst. I.7.1, I.7.5, I.8.13 참조). 칼빈은 또한 "하나님이 교리의 저자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하기 전에는 교리에 대한 신앙이 수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Inst. I.7.4)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개혁주의는 66권의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임을 믿는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경은 정확무오한 객관적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말씀일 수밖에 없고, 그러므로 신앙과 행위의 규범이 된다(딤후3:16, 17). 개혁주의는 로마 가톨릭처럼 성경의 권위를 교회 밑에 두고, 교회가 없이는 성경이 존재할 수 없으나 성경은 없어도 교회는 존재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성경이 처음에는 불성문계시(不 成文啓示)로 있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성경이 교회보다 앞선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 문제이다(2:20).

 

개혁주의는 성경을 종교적 신물(神物)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에 따라 교회의 씨앗(종자)으로 삼기 위해 주신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개혁주의는 또한 신정통주의자들처럼, 계시의 객관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에 따르면 계시는 성경과 동일시될 수 없고, 성경은 계시의 증거요 표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자체가 아니며, 성경의 진술들은 계시 자체가 아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계시를 객관화하는 것이요 형체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계시는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는 사건이요, 하나님과 사람이 상봉하지 않는 한 계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칼바르트의 성경관 비판에 대하여는 Colin Brown, Karl Barth and the Christian Message, pp. 54~62; Klaas Runia, Karl Barths Doctrine of Holy Scripture를 참조). 개혁주의는 신복음주의자(新福音主義者)들처럼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분리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감은 믿으면서도 무오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무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신적 권위를 가지며, 그 독자적 신빙성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하여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교회나 신부(神父)에 의존할 필요없이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로마 가톨릭에 따르면, 성경은 흐려지고 손상되어서 신앙과 행위의 문제까지도 교회가 해석해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나, 우리는 성경의 명백성(明白性)을 주장하기 때문에 그들의 견해에 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의 충족성(充足性), 혹은 완전성을 주장한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개인과 교회의 영적·도덕적 욕구를 위해서 충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전을 성경과 동등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우월한 권위를 갖게하는 로마 교회의 입장을 우리는 전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2) 하나님의 주권사상

 

개혁주의의 특징은 하나님의 주권사상(主權思想)이다. 개혁주의는 항상 하나님 사상을 그 중심으로 하고 있다. 감리교가 죄인의 구원, 침례교가 중생의 신비, 루터교가 이신득구(以信得救), 모라비안이 그리스도의 상처, 희랍정교가 성령의 신비, 로마 교회가 교회의 보편성을 각각 강조한다고 하면, 개혁주의는 하나님 사상을 강조한다.

 

개혁주의는 인간의 회심(回心)이나 칭의(稱義)와 같은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하나님이 차지하셔야 할 당연한 권리를 차지하시도록 하는 사상에서 출발한 것이다(Pressly, Mason W. , Calvinism and Science, Articlein Ev. Repertoire, 1891, p. 662. quoted from H. Hemey Mater, The Basic Ideas of Calvinism, 1975, p. 32, 33)개혁주의자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11:36)이라는 말씀을 생활원리로 하고 실현하려 애쓴다.

 

개혁주의의 중심사상이 바로 하나님 사상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많은 연구가들이 서로 일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으로하는 사상체계를 이루고자 할 때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지배,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라는 술어를 필연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라는 말이 하나님과 우주와의 관계를 가장 잘 지적해 주는 술어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은, 자연계와 도덕적 세계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대권(絶對的 大權)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하나님은 자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진리, 도덕, 과학, 사랑 등의 여러 면에서도 법칙과 질서에 따라 다스리신다고 개혁주의자는 믿고 있다.

 

워필드(B.B. Warfield)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칼빈주의자는 모든 현상 배후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며, 이 현상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본다. 그리고 기도하는 태도로 전생애를 살아가며, 구원문제 있어서는 자아 의존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이다"(Calvin as a Theologian and Calvinism Today, pp. 23, 24).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개혁주의 첫째가는 대교리로써 다른 모든 교리들의 중심 태양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우주의 최고 절대적인 통치자라고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작정(作定), 창조, 심리, 구속(救贖)에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신다.

 

(3) 불가항력적 은혜

 

개혁주의의 셋째 특징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不可抗力的 恩惠)이다. 개혁주의의 구원이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임을 믿는다. 즉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임을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죄인 안에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실 때 아무도 그 역사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 개혁주의자들의 신념이다. 하나님이 주권사상을 가지다보면, 구원의 문제도 자연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서만 해결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교리는 칼빈주의 5대 강령이다. 즉 인간의 전적부패, 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등이다. 이 교리들은 구원은 사람의 공로나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임을 강조한다.

 

개혁주의는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이며(6:5, 17,9, 51:5; 3:10),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말한 영적 선(靈的 善)을 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른 말로하면,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존재이므로, 자신의 힘으로는 예수를 믿을 능력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이어서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창세 전에 선택하셨다(1:4). 이 선택은 선행을 조건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한 은혜의 선택이다.

 

그리고 성자(聖者)는 성부의 택함을 받은 죄인들을 위하여 인간이 되시고,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속을 완성하신다. 이것은 피택자(被擇者)에 국한된 구속이다(1:21, 10:14, 20:28). 제한속죄(制限贖罪)가 아니면 하나님의 선택은 무의미하다.

 

칼빈은 이 선택교리에 대하여 다른 칼빈주의자들보다 더 신중하였다. 그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높였고, 구원과 관련하여서도 높였지만, 그가 기독교 강요에서 구원의 문제를 다루기까지는 선택교리를 충분히 논하지 않았다(Inst. III. 21~24).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이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죄인들을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는 피택자에게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을 적용시키는 성령의 중생시키시는 역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구원의 국면을 우리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말로 표현한다. 어거스틴은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또한 즐겨 사용하셨다.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뜻은, 성령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삼위일체 하나님, 즉 성부, 성사, 성령은 죄인을 구원하시는데 다같이 참여하신다. 성부 하나님은 만세 전에 구원할 자를 미리 선택하셔서, 그의 백성을 성자 하나님에게 주시고, 성자 하나님은 때가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의 구속을 완성하신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위에서 말한대로, 선택된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적용하여 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한 죄인을 구원하시는데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은혜인가!

 

(4) 하나님 나라와 세상에 대한 견해

 

개혁주의의 넷째 특징은 하나님나라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하여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하나님나라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견해는 늘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개혁파 신학자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똑같은 '문화적 명령'에 대한 인식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개혁파의 신학적 전통은 최선을 다하여 세계의 형태와 문화에 대하여 큰 관심을 표시해 왔다. 물론 세상과 일치한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세상을 변혁시킨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였다.

 

우리는 이 사실이 칼빈에게서 아주 강하게 나타났음을 보게 된다. 제네바에 있어서의 칼빈의 관심은 복음선포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넓은 것이었다(칼빈의 이관심에 대하여는 W. Fred Graham, The Constructive Revolutionary: John Calvin and His SocioEconomic Impact, Richmond: John Knox Press, 1971를 읽을 것). 확실히 복음의 선포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와 국가의 생활 전반에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개혁주의는 사회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문화적 명령'에 대한 높은 인식을 갖고 있다. 문화적 명령에 대하여 논할 때, 기본적으로 지적되는 성경귀절은 창세기 128절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귀절은 생활의 모든 방면과 경험의 모든 국면을 하나님의 주권에 종속시키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그것을 요구할 책임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살고있는 상황에 대하여도 우리는 관심을 가진다. 배고픈 자가 배부름을 얻고, 목마른 자가 시원함을 얻으며, 핍박받는 자가 보호를 받고, 궁핍한 자가 만족함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개혁주의자는 다음 말씀과 같이 매우 강한 신앙을 고백한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24:1). 그리고 하나님은 한 순간이라도 세계를 자신 밖의 어떤 세력에도 내어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개혁주의자는 믿는다. 이것이 바로 일반사회에서 사회악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범(違犯)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 없다는 이유가 된다.

 

우리는 임신중절의 그 무서운 악,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도덕적 부패, 권력에 짓밟힌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 약하고 무력한 사람들에 대한 핍박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이다. 분명히 사회변혁은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도 복음의 선포와 개인의 중생에서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든가, 복음을 증거하지 않거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거나, 비전을 가지지 않거나, 또는 부흥과 개혁이 늦어지는데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교훈적 의지를 수행하도록 부름받지 않은 자처럼 생각한다든가 하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만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속해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마치 하나님에 대해 자신의 의무를 혼자 수행할 수 있는 것처럼 크리스챤이 자기 혼자만 살아가는 개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의 삶에서 타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그 특성이 악하고, 또한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으나(요일5:19), 우리는 세상을 대항하여 싸우는데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개혁주의 신자들은 폭군에게 도전했고 또한 그들을 넘어뜨렸다.

 

낫소의 윌리엄, 오랜지공, 존 낙스, 존 파임, 올리버 크롬월, 리쳐드 카메론, 스코틀랜드의 언약론자들, 그리고 존 위더스푼(William of Nassau, the Prince of Orange, John Knox, John Pym, Oliver Cromwell, RichardCameron, the Scottish Covenanters and John Witherspoon), 등 이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유산이며, 이 세상에서 어떻게 크리스챤으로 살아가며, 어떻게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우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두움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폭군의 광포도 우리에게 공포를 주지 못한다. 우리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니 어째서 무서워하겠는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16:33).

 

이와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11:15)하게 될 그 날을 향하여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다.

 

2. 한국교회와 개혁주의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은 정확히 말해서 유럽의 칼빈주의(개혁주의)와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 사상이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구현된 신학이다. 이 신학은 칼빈주의적 영미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전래되어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표준을 교의와 규례의 표준으로 채용함으로써 청교도적 개혁주의 신학의 교회가 된 것이다(박형룡,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 신학지남, 433, 1976. p. 11 참조).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를 출발점으로 하고, 칼빈주의 5대 교리, 문화적 명령, 그리스도인의 삶 등으로 전개된 개혁주의, 여기에 독특한 신학적 특징들이 가미되어 이루어진 청교도주의 등이 한국장로교 신학의 전통이 된 것이다.

 

188545일 미국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 G. Underwood) 목사가 한국에 온 이래 1938년까지의 한국교회는 매우 강한 개혁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자유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고, 19389월에는 신사 참배 결의라는 일대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한국장로교회는 대열을 재정비하고 개혁주의 수호와 발전을 위해 박차를 가하였으나, 6.25 동란, WCC 운동, 교단의 분열 등 원하지 않는 일들이 계속 발생하여 개혁주의 신학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한국에서의 칼빈연구 100"(이상규,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5)에서 볼 수 있는 대로, 1924년 칼빈이 처음 소개된 이래 1984년까지 60년동안 칼빈의 저서 번역, 칼빈에 관한 저술, 논문 등을 모두 합쳐 240편밖에 나오지 않은 사실을 미루어 보더라도, 스스로의 노력도 부족했거니와 외적 여 건에도 상당한 지배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후 칼빈 주석 전질과 기독교강요가 번역되고, 칼빈에 관한 저서, 논문들이 상당한 양으로 출판, 또는 각 신학지에 게재된 것을 보면 아직도 한국교회의 개혁주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V. 맺는말

 

복음주의, 근본주의, 개혁주의 비교

우리는 위에서 복음주의, 근본주의, 개혁주의 등 3대 신학운동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복음주의가 17세기 이후 독일에서 루터교회의 죽은 전통에 불만하여 생긴 경건주의 운동에서 파생된 운동이며, 근본주의가 20세기초 미국에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생긴 신학운동이라고 한다면, 개혁주의는 바울, 어거스틴을 거쳐 16세기 칼빈에 의하여 체계화된 사상운동이다.

 

복음주의가 경건을 강조하고, 근본주의가 근본교리들(성경의 무오성, 그리스도의 신성, 동정녀의 탄생, 대속교리,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을 주장하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인간의 구원을 더 강조한다면,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강조하고, 이 근본원리에 따라 모든 문제들(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신학)을 풀어 나가려고 노력한다.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운동이 다 귀중한 운동이나, 성경이 말하는대로의 교리적 균형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커다란 결함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교훈의 건전성과 관련있는 균형을 중대시하고 있는 것이다(딤전1:9; 6:3; 딤후1:13).

 

우리 한국교회는 앞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며, 하나님의 문화적 명령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지고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 건설에 힘쓰는 운동에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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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십자가, 마리아의 상징인가? 개신교회 교회당에 걸려 있는 십자가는 상징물이며 장식품이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아니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함은 잘못이다. 비성경적이다. 최근 한국의 어느 장로교단은 교회당 안에 있는 십자가를 모두 제거하기로 결...
    Date2016.03.25 Bydschoiword Reply6 Views1538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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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당, 신학과 교리를 대변하는 공간

    예배당, 신학과 교리를 대변하는 공간 <리폼드가디언>(2016.3.17.)에 게재된 글 이종현 30일간의 유럽여행. 5개국 18개 도시를 돌며 많은 곳을 들렀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장소는 예배당이다. 아마도 숙소 다음으로 많이 머무른 장소가 아닐까 싶다. 예배당에...
    Date2016.03.18 Bydschoiword Reply0 Views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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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주의는 합바지이다

    복음주의는 합바지이다. 무엇이 '복음주의'이며, 누가 '복음주의자'인가? 점점 모호해지던 보편적 개념… 이제는 절벽에 다 달았나? <교회와 신앙> 2016.3.18. 김정언 기자 미국의 복음주의는 과연 위기에 처해 있는가? 이번 대선 바람은 특히 복음주의(evangel...
    Date2016.03.17 Bydschoiword Reply0 Views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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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슬리의 12가지 지침

    웨슬레의 열두 가지 지침 존 웨슬리가 동역자들에게 준 12가지 지침 1. 부지런하십시오. 어느 한순간도 일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없게 하십시오. 결코 단 한순간도 그런 시간이 없도록 하십시오. 결코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 필...
    Date2016.03.09 Bydschoiword Reply0 Views1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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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주의, 근본주의. 개혁주의

    복음주의, 근본주의. 개혁주의 신복윤 이 글은 복음주의, 근본주의, 개혁주의 등 몇몇 운동들의 용어, 역사적 배경, 사상적 특징들을 돌아본다. 나아가 활동한 상황, 평가 그리고 한국 교회와의 관계 등을 차례로 살펴본다. Ⅰ. 복음주의 1. 복음주의의 발단 근...
    Date2016.03.06 Bydschoiword Reply0 Views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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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단규정 기본원칙

    이단규정 기본원칙 ‘이단을 규정하는 기본원칙에 대하여’ 이단여부는 구원과 관련된 진리따라 접근하되, 신학적 다양성은 존중 되어야 최태영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공보>, 2016. 1.12. 이단에 관한 논란이 우리 교단을 중심으로 한국 기독교 전반에 걸...
    Date2016.02.26 Bydschoiword Reply0 Views9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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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단연구가들, 상호존중해야

    이단연구가들, 상호존중해야 최병규 박사 <뉴스파워> 게재의 글을 옮김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
    Date2016.02.25 Bydschoiword Reply0 Views2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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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은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은 1. 무엇을 ‘탓’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자기 연민에 빠져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으며 삶이 항상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2. 스스로 ‘독립성’을 유지한다남에게 휘둘리지도 남을 휘두르지도 않는다. “상사가 나를 짜증 나...
    Date2016.02.21 Bydschoiword Reply0 Views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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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아는 지식

    성경을 아는 지식 R. C. 스프라울 내가 만일 마귀라면 사람들이 성경을 탐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첫째 목표 가운데 하나로 삼을 것이다. 어떻게 하느냐고? 이 고대의 책을 직접 공부하는 것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하지 않아도 손해 볼 것이 없는 번거로...
    Date2016.02.20 Bydschoiword Reply0 Views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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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폐쇄와 핵전쟁의 시발점/ 노정선

    개성폐쇄와 핵전쟁의 시발점 노정선 교수 <에큐메니안> (2016.2.15.) 게재 글 아래의 글은 연세대에서 윤리학을 가르친 노정선 교수(목사)가 쓴 글이다. 노정선은 북한통으로 알려진 분이다. <리포르만다>의 견해와 많이 다르다. 참고해 둘 필요가 있기에 옮...
    Date2016.02.15 Bydschoiword Reply0 Views2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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