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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목사의 딸 유감

 

허순길 박사 (전 고려신학대학원장)

 

<코람데오닷컴>(2015.3.9.)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8280

 

나는 최근에야 박혜란이 쓴 목사의 딸이란 책을 접했다. 그동안 이 책을 읽은 분들은 딸이 그의 아버지 박윤선 목사에 관해 쓴 글이기에 놀랐을 줄 안다. 내가 놀란 것은 그 책에서 보여준 그의 자만한 품격과 내용 대부분이 허구이기 때문이다. 혜란은 파격적인 자기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예순아홉 살이 되던 20094월에 김상복 목사님의 권유로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KALCAM)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는 미국 시민권소유자이다. 거기에선 65세가 되면 일반적으로 은퇴한다. 하지만 예순아홉 살에 목사 안수를 받고 비로소 내가 서야할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교회 역사상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일로 보인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이런 문제를 거론하려는데 있지 않다. 책의 내용 대부분이 허구요, 이것이 주님의 교회에 큰 해악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1950년대 박윤선과 그 가정을 조금 아는 사람이다. 1954년 고려신학교 예과에 입학하여 7년을 고려신학교 경내에서 지냈다. 대학부(칼빈학원) 4학년 때 박윤선의 셋째 딸 은란의 과외교사로 한 학기 동안 그 집에서 밥을 먹고 지냈고, 이어 신학교 본과에 들어서면서 그의 조교로서 졸업 때(1959)까지 3년 동안 풀타임으로 그의 주석 원고를 정리하고 도왔다. 이때 박혜란은 경남여고를 다녔고 이어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

 

박혜란은 한국 교회가 자기 아버지의 신학과 생활을 바로 판단하도록 글을 쓴다고 했다. 그 책의 핵심 내용은 그의 아버지 박윤선의 신학이 바르지 못하고 그의 생활도 잘못되었다고 아버지를 비하(卑下)하며, 이제 그가 남긴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그 이름을 잊어버리자는 요구이다. 그의 아버지 박윤선은 50대 전후 생의 황금기 13년 동안 고신의 개혁주의 신학을 주조했고, 만년에 합신에서 개혁신학교육에 봉사함으로 평생을 한국의 개혁주의 교회건설에 헌신한 하나님이 귀하게 쓰신 종이었다.

 

혜란의 글 가운데 혹 어떤 것은 사실일 수 있다. 목사요, 신학자 박윤선이라고 무흠할 수 없다. “이 생애에서 우리의 최상의 선행조차도 모두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2) 하지만 주님은 이런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교회건설을 위해 써 주심에 감사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그의 아버지 박윤선을 단순히 변호하려는데 있지 않다. 혜란이 아버지가 전처 자식들에게 무관심하고 새어머니가 그들을 홀대했다는 데 대한 증오로 허구한 화상을 그려 주님의 교회에 무서운 해악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잠잠할 수 없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 고 박윤선 박사의 가족, 뒤 중앙에 선 이가 박혜란씨, 새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1. 사랑을 말하지만 용서 없는 그의 위선

 

어머니를 잃고 계모를 갖는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계모가 아무리 전처의 자녀들에게 잘해도 칭찬을 듣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는 이화주 사모는 체격이 크고 외모가 여성보다 남성스럽게 보이는 분이다. 그래서 어린 전처 자녀들에게 섬세함이나 온화함을 느끼게 하는 데에는 결핍할 수도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나 혜란이 말한 대로 그가 항상 전처 자녀들에게 배은망덕한 전처 자식이라고 하며 박해를 가할 분은 전혀 아니었다. 그런 분이었다면 전처 딸 은란이를 위해 어떻게 과외교사를 둘 수 있으며, 서울대학에 입학한 혜란의 등록금을 댈 수 있었겠는가? 박윤선 교장은 정말 돈도, 살림도 모르는 분이었다. 혜란은 이화주 어머니의 배려를 고마워했어야 한다. 이화주 사모는 등록금을 보내고 나서 월급날을 기다릴 수 없어 돈을 빌리러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외국 잡지 노점상을 하는 혜란의 큰아버지에게 나를 보낸 적이 두 번 있었다.

 

혜란이와 남매들이 새어머니로부터 좀 홀대를 받고 심적으로 박해를 받았다고 인정하자. 그도 분명 새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간혹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아무튼, 오랜 세월 후에 모두 미국에 살면서 서로 만나 어머니 저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했고, 이화주 어머니도 피차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함으로 서로 용서하고 용서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 L.A.에 있는 새어머니를 방문하여 한 방에 같이 자게 된 일에 대해 이렇게 썼다. “처음 한 방에 같이 자면서 지나온 삶을 자유롭게 말씀드릴 수 있었다. 새어머니는 당신의 침대를 내게 주시고 당신은 방바닥에서 주무셨는데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라고 했다.(p.161) 모녀가 서로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으므로 어두운 지난날을 다 청산했다.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혜란은 새어머니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았다. 지난날의 일들을 잊거나 버리지 않았다. 지난날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여 글로 옮기고 그의 새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곧 기다린 듯이 세상에 책으로 펴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회개할 때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다"(103:12, 38:17)라고 하며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7:19)라고도 했다. 주님의 자녀인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는 용서를 말하면서 용서하지 않았다. 무서운 위선자이다. 글로 사랑을 말하면서 마음에는 미움의 독을 그대로 간직해 왔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2. 박윤선의 자녀로 누린 특권을 외면

 

혜란은 그의 아버지가 전처 자녀들에게 무관심하여 큰아들 춘호, 미국에 간 춘자와 요한을 돕지 않았다고 원망했다. 6.25 전쟁 직후 우리 모두가 끼니를 채우지 못하던 어려운 1950년대에 그는 훌륭한 아버지 덕에 남들이 꿈도 꾸지 못한 특권을 누린 사실을 전혀 잊고 있다. 춘호는 1953년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다. 혜란이 말한 대로 그는 영어도 잘하고 똑똑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가정을 외면하고 술을 마시고 방탕한 길에 들어섰다. 성년이 되어 가정을 가졌으면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가정을 돌봐야 했다. 그 시절에는 정말 죽기 살기로 일해야 입에 풀칠하고 살 수 있는 시대였다.


하지만 그는 늘 술에 취하고 방탕한 생활을 계속했다. 혜란도 그의 방탕한 생활을 언급은 했다. 그러나 춘호가 부모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었는지는 말하지 않고 숨겼다. 단지 부모가 그를 도와주지 않은 것만을 원망했다. 그는 종종 밤에 만취되어 아버지 집에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문을 부수고 행패를 부렸다. 그러니 부모로서도 그가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혜란은 자기 오빠가 아침에 밖에 묶여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부모로서 만취해서 행패를 부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기에 학생들을 시켜 그렇게까지 하였겠으며, “모든 것을 다 접고 시골에 가서 글이나 써야겠다.”라고 말했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그 어려운 현장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혜란은 사실을 사실대로 쓰지 않고, 독자를 오도하고 그의 아버지를 잔인한 분으로만 부각시키고 있다. 정직하지 못하다.

 

그리고 미국에 유학 간 춘자와 요한이 아버지에게서 어떤 경제적인 도움도 받지 못한 것을 원망했다. 1950년대에 외국에 유학한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우리 같은 평범한 가정의 자녀들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미국에 특별한 인연을 가진 분이 없는 한, 혹은 선교사들의 도움이 없는 한 미국에 갈 수 없었다. 춘자는 그의 아버지와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된 한 미국 가정의 호의로 고등학교를 마친 후 바로 1953년에 미국 유학을 할 수 있었다. 누구든 미국에 가면 장학금을 받아도 일하여 고학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시간을 내어 남의 집 정원에 풀을 깎거나, 집이나 사무실 청소를 하거나, 식당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 공부했다. 한국은 당시 보내줄 외화도 없었고 돈이 있어도 보내 줄 길이 없었다.

 

그런데 혜란은 그의 언니 춘자가 돈이 없어 석사 논문을 쓰지 못했다면서 아버지를 원망한다. 요한을 양자로 보낸 것도 미국에서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아버지의 목적이었다. 당시에는 어떤 길이라도 미국에 가는 것이 모든 젊은이의 소원이었다. 혜란은 자기들이 아버지, 박윤선의 자녀이기 때문에 남다른 특권을 누려온 사실을 조금도 생각지 않고 그의 아버지와 계모 이화주가 전처 자식에게 무관심해 도와주지 않았다고만 원망한다. 칠순이 지난 딸, 혜란의 배은망덕한 모습을 보는 것이 안타깝다.

 

3. 아버지의 딸, 한 남편의 아내로서의 행태

 

혜란은 거의 30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 박윤선에 대해 가능한 극단적인 모든 표현을 동원하여 매장하려 한다. 그의 아버지를 의처증을 가진 분이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고 손찌검까지 한 적이 많다고 하다가, 점점 강도를 높여 마침내는 상습적으로 구타했다.”라고 한다. 물론 부부가 다투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잉꼬부부라 해도 서로 자란 배경이 다르고, 개성이 다르므로 가끔 서로 다툴 수 있고, 밀고 당기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목사 박윤선도 인간이니 그럴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부부 사이는 칼이 물을 베어 가르지 못하듯 그 사이는 순간적으로 멀어졌다가 곧 제자리로 돌아온다. 가끔 다툰 일이 있다고 해서 아버지를 상습구타자로 몰고 가는 것은 악의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혜란이 그의 남편에 대해 그린 화상은 참으로 가관이다. 그는 아버지의 강압으로 마음에 맞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여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이혼을 생각했다고 하며, 남편이 가진 결점을 하나하나 들춰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만하게 보이기까지 한 그의 자존심이 아버지가 강요한다고 자기가 싫어한 남자와 결혼할 분은 전혀 아니다. 자기가 좋아 결혼하고 뒤에 마음에 차지 않으니 아버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아무튼, 그는 결혼하여 4남매를 두고 일곱 손자녀까지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칠순을 넘어 할머니가 된 그가 결혼생활이 불행하였음을 온 세상에 드러내고, 현재 살아있는 남편의 결점을 낱낱이 들추어 활자화하여 온 세상에 공포하였다. 이런 아내, 이런 여자가 세상에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이를 볼 때에도 그가 그의 아버지에 대해 그려 놓은 회화가 조작이요, 악의에 찬 소설임이 분명하다. 혜란은 현재 그 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지, 그 남편은 아내가 쓴 책을 읽고 어떤 독후감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목사의 안수를 받은 여목사 혜란의 행태는 정말 주의 이름에 큰 욕을 돌리고 있다. 그리스도인 가정생활 윤리에 대한 기본도 갖추지 못한 그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설교하고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4. 박윤선의 빠른 재혼에 대한 불만

 

19543월 김알렌(金愛蘭) 사모가 불의의 차 사고로 돌아가셨다. 당시 집에는 요한, 혜란, 은란, 단열 사 남매 중 요한은 곧 도미하고 어린 삼 남매가 남았다. 박윤선은 그의 아내에 대한 비보를 받고 유학 중에 있던 네덜란드에서 바로 귀국했다. 그는 정말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신념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가르치는 분이지 가정을 다스리고 돌볼 수 있는 자상한 아버지는 못되었다. 그래서 그는 당황한 나머지 집안이 정리되는 동안 얼마 동안 아이들을 혹 합당한 고아원에 맡길 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한 것이다. 혜란이 뒤에 이를 알았을 때 충격을 받았을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장성한 그로서는 당시의 아버지의 마음도 이해를 하고 동정심을 가졌어야 한다.

 

당시 학생들인 우리들도 어린 아이들만 남은 그 가정의 형편을 알고 안타까워했다. 그 형편을 잘 아는 신학교 이사들과 교계 지도자들은 박윤선 교장의 가정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게 되었다. 문제 해결의 길은 좀 무리가 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재혼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처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10) 재혼을 성사시켰다. 재혼 상대는 625 전쟁 시 북한에서 혼자 피난 왔다가 고려신학교에 입학하여 1952년에 졸업하고 교회를 봉사하고 있던 이화주 전도사였다. 상처 후 상당히 빠른 재혼이었다. 그러나 당시 어려운 그 가정 문제의 해결은 이 길밖에 없었다. 물론 박윤선 목사도 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자녀들인 혜란, 은란, 단열을 위한 일이었다. 혜란은 이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과 의논 없이 일찍 재혼한 것만을 탓하고 있다. 어릴 때는 이해를 못 했어도 장성해서는 이를 이해하고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5. 박혜란의 편향된 신학

 

 

 

▲ 박혜란씨가 펴낸 책 '목사의 딸' / 아가페북스 펴냄 / 288쪽 / 1만 3,000원

박헤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신학자들을 만나 사랑이 지배하는 가장 좋은 신학을 했다고 하며, 사랑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행복해한다. 이 좋은 신학이 목사의 딸을 쓰게 한 것으로 보인다.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안다. 모든 가능한 힘을 동원하여 아버지 박윤선의 신학을 폄하하도록 만든 신학이 결코 좋은 신학일 수 없다. 역설적으로 그가 강조하는 사랑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신학이 하나님의 사랑에 편중될 때 하나님의 공의, 죄와 회개는 무시하게 된다. 오늘 죄를 경시하는 교회 생활이 여기에서 왔다. 칼빈주의 신학은 언약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인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시면서 순종의 의무를 요구하신다. 우리가 약속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에 따른 순종의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기에 우리는 거듭 회개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기 때문이다. 헤란은 그의 아버지를 유교적 칼빈주의자라고 하며, 그의 신학이 남존여비, 충효 사상에 영향을 받은 신학이라고 하며 배척한다. 그는 가능한 한 모든 방편을 동원하여 그의 아버지의 신학을 폄하하고 있다. 거기에는 극한 자만과 여자로서 목사 안수 받은 여권에 대한 자기변호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자기 아버지 신학이 영육을 분리하는 이원론적 신학이라고도 비난한다.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라고 부르짖었다. 바울이 그의 몸을 사망의 몸이라고 할 때 그는 이원론자였는가? 물론 아니다.

 

혜란은 그의 아버지가 늘 죄인임을 고백하고, 죽기 살기로 기도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의 복음이 다른 복음이라고 하며 정죄한다. 우리는 의인이면서 죄인이기에 항상 죄를 회개하고, 죽기 살기로 기도하고, 죽기 살기로 봉사하기 원한다. 특별히 1950년대에 살던 우리는 더욱 그러했다. 오늘 우리가 그렇게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공덕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고, 주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칼빈주의이다.

 

혜란은 그의 아버지의 주석이 참고할만한 것이 없고 빈곤하다.”라고 하며 폄하한다. 모든 주석은 제각기 특징이 있다. 박윤선의 주석은 특별히 설교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쓴 칼빈주의 신학에 입각한 실용적인 귀한 주석이다. 지난날 수만 명의 설교자가 도움을 받아 왔고 지금도 도움을 얻고 있다. 혜란은 이 책들을 폄하하고 송두리째 땅속에 묻어버리기를 원한다. 고약한 심술이다.

 

나아가, 딸 혜란은 한국교회가 이렇게 큰 결함이 있는 분을 칼빈주의 대학자로 숭상하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하며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그는 세상에서 박윤선의 이름이 지워지기를 원한다. 사랑을 말하는 그가 이미 하늘나라에 간 그의 아버지를 향해 살인적인 독을 뿜어내고 있다.


빗나간 딸이 폄하하고 정죄한다고 해서 박윤선의 신학이 세상에서 결코 무시를 당하거나 정죄 되거나 묻히지는 않을 것이다. 혜란은 하나님이 반세기 동안 그의 아버지 박윤선을 들어 쓰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항의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실 일이 아니고 복 받들 일이 아니다.


할 말이 더 많으나 이것으로 마치려 한다. 박혜란은 이 책을 성령의 인도로 쓴 것이 아니고, ‘다른 영의 지배를 받아 쓴 것이 분명하다. 언제나 주의 교회에 해독을 끼치고 무너뜨리려는 영 말이다. 주의 교회에 백해무익한 이 책을 목회자들, 신학생들, 교회지도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라고 책머리에서 추천한 분들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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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5.03.11 22:06

    박혜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신학자들을 만나 사랑이 지배하는 가장 좋은 신학을 했다고 하며, 사랑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행복해한다. 이 좋은 신학이 “목사의 딸”을 쓰게 한 것으로 보인다. (허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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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5.03.11 22:08

    황영익 (페이스북에서 옮김)


    고 박윤선 목사의 딸이 쓴 책 '목사의 딸'을 둘러싸고 논쟁이 붙었다.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신학자들과 조카(저자의 사촌 형부)가 나섰다.
    목사의 딸은 아버지를 마치 매정한 위선자인 듯이 묘사하고,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마치 그 딸이 거짓말을 하는 듯이 말한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이제는 딸이 이상한 사람인 듯이 묘사된다.
    동일한 인물, 동일한 사실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이토록 큰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 인물과 맺은 관계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책을,
    단지 예민한 청소년기에 어머니를 잃고 새엄마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와 새 엄마에 대해 마음을 닫고 지낸 한 상처입은 딸의
    악의적이고 일방적인 비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사실적이고 논리적이며 신학적 철학적 기반이 탄탄하다.
    역시 그 아버지의 그 딸이다.

    과연 그 책이 '사춘기 시절에 친모가 별세하여 입은 상처와 가정의 갈등을
    치유하지 못하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화해하지 못한
    미숙한 성인의 왜곡된 인식'의 산물일까?
    혹시 그 딸이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치유해나가는 어떤 몸부림이 아닐까?
    그 책을 읽으면 독자의 가슴을 저미도록 아프게 만드는 부제가 하나 있다.
    '정죄 또 정죄!'
    그 아버지의 옹호자와 변호자들에 의해 그 딸이
    또 다시 정죄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고 박윤선 박사에 대한 변명은 언제나 정당하고 필요할 뿐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이나
    무언가 다른 관점에서의 해석이나 설명이 소중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그 딸을 치유받지 못한 영혼으로 규정하거나
    이교적이거나 신앙적으로 탈선한 비신앙인으로 묘사하는 마녀사냥의 방법으로
    고 박윤선 목사를 변호해낸다면 더 무서운 비극일 것이다.

    고 박윤선 목사를 둘러싼 논박은
    한국식 보수 장로교의 유교식 선비적 개혁주의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목사의 아들이다
    내 아버지 역시 고 박윤선 목사에게서 직접 배운 분이었다
    나는 내 아버지를 무한히 존경하고 지금도 그리워하고
    나는 아버지의 복제판과 같다고들 한다
    나는 고 박윤선 목사가 참 좋은 분으로 알고 있다
    책을 통해 비춰지는 딸의 비명은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찾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 딸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태도가 충분히 묻어나지 않은 채
    그 아버지를 변호하고 옹호하는데에만 급급하여 지나치게 공격적이 되면
    그 딸을 두 번 상처 입히고,
    그 아버지의 이름은 그의 인격이나 신학적 업적과는 달리
    다른 이미지의 대명사로 남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 가족사는 지금도 진행중인 한국교회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나라 역사와 비슷한 프레임인지도 모른다
    상처입고 그 상처가 누적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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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5.03.12 11:40
    박윤선 목사님이 가정에 무관심했는가?>

    - 박 목사님의 4남 박성은 박사가 전달해 온 내용을 영음사 편집부에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2013년 6월에 출간된 박윤선과의 만남 2권 393-394쪽에 실려 있습니다. -

    “정암이 가정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래서 그는 자녀들 중 잘못 나가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라는 소문은 그렇게 간단히 말할 부분은 아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뿌리 깊었던 유교적 가부장적 문화와 정암 자신이 겪은 일제시대의 엄격한 교육 및 청교도적 사고방식, 당시 한국의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위기감, 그리고 정암이 감당해야 할 엄청난 업무와 주석 집필 완수를 위한 극기적 돌진과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마는 성격 등을 고려하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암이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요즈음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듯 자녀 교육이나 보살핌을 어머니에게만 많이 일임하기보다 아버지로서 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친구 같은 따뜻함과 지나치게 엄격하지 않은 편한 태도로 많은 시간을 자녀들에게 할애하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며, 설사 반복되는 도덕적 잘못에 대해서도, 체벌을 하거나 너무 엄하게 다루지 않고 좀 자상하고 이해성 있는 아버지로 조용히 타이르는 아버지였으면 훨씬 더 나았을지도 모르며, 또한 당시로서는 좀 안정된 가정들이 할 수 있었던 가족 소풍도 자주 갖고, 또 그렇게 가정을‘ 내 팽개치고’ 홀로 수년씩 유학을 가지 않았더라면 뭔가 달라도 달랐을 것이며, 혹은 당시 소수의 어떤 가정들처럼 민주적인 가정을 이루어 어머니께서 당신을 소위‘ 주의 일을 크게 하신다고’ 극진히 위하지 못하게 하고 모든 것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며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며, 또한 신앙을 너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식보다 순수한 신앙적 모범으로 참고 기다리면서 기도와 사랑의 권면으로만 진행했다면, 신앙에서 멀어진 자녀들이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암의 적지 않은 스킨십과 자녀들에 대한 관심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녀들을 위해서 내는 시간은 태부족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현대 교육 심리학에서도 온전히 대답을 줄 수 없는 일련의 가정이지 아무도 교육의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 어느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려한다면, 당시 교회 또는 일반 사회에서도, 얼마나 많은 아버지들이 그런 이상적인 모습으로 자녀들에게 다가갔을까 하는 것이다. 기도하며 최선을 다한 그 시대의 아들인 아버지 정암을 일방적으로 그렇게 표현하거나 쉽게 나무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박성은 박사의 생각이다.

    또한 더 중요한 것은, 정암이 실제로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였는지에 대한 사실 여부가 극히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남을 판단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깝게 지낸 자녀라 할지라도 그 판단이 객관적이지 아니할 수 있다. 사실 정암은 자신의 젊은 시절부터 권위 의식은 매우 적었으며, 자녀들을 향해서 상당히 개방된 성품을 보인 편이었으며, 정암의 당시 수준으로는 지나치다 할 만큼 스킨십이 많아서 자주 가까운 이들과 자녀들을 손으로 귀를 꼬집어 잡곤 하였고(방지일 목사님에 따르면 정암은 젊었을 때‘ 귀쪽잡이’란 별명을 얻음), 장난치듯 큰 소리로 애칭도 부르고, 뺨이나 귀 등에 입을 맞추곤 하였다.

    다만 당시 어떤 아버지들처럼 그리 자상하지는 못하였으나 자녀들의 조그만 성취에도 지나치리만큼 매우 기뻐하던 것을 박성은 박사 자신도 경험했고 또한 다른 분들로부터 그렇게 들은 바 있다. 아침마다 늘 울면서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한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여러 가까이 모셨던 분들(주석 집필을 위해서 돕던 목사, 가까운 교계 인사들) 그 어느 누구도,“ 박 목사님이 그 자신이 학문과 신학 교육을 위해 세상을 모르고 사셨던 그 만큼 자신의 자녀들을 거의 무시하면서 관심도 갖지 않고 사셨다”는 식으로 말하는 분은 한 분도 없었다. 그런 소문이 얼마나 크게 복음에 누를 끼칠까 생각하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박성은 박사 자신도 무한한 책임을 느낌과 동시에 또 하나님께도 참 죄스러운 마음이라고 한다.

    따라서 박성은 박사는 개인적으로 그 소문의 객관성에 대해 적지 않은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암의‘ 자녀 소홀’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다름 아닌 정암의 장성한 자녀들 한두 사람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버지 정암 자신은, 그 비판의 진위는 고사하고 그가 그런 공격을 받았을 때, 그 말을 듣게 한 자녀들에게는 단번에 만족을 주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자주자주 깊이 반성하는 말씀을 많이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힌다. 정암은 그가 하늘나라로 가기 약 20년 전부터 “잘못 나간 자녀들의 책임은 다 내 몫이다”라고 하며 늘 자신의 과거 방법론에 대해 성찰하고 적지 않게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렇게 하므로 신학교나 가정에서 더욱더 인격적 대화에 시간을 내는 일에 더 노력한 것으로 안다.

    박성은 박사에게 자주 이야기한 바로는 “얘, 성은아, 너는 너무 한 가지 일에 나처럼 집중하지 말아라. 좀 릴랙스(relax)도 하고 아이들과도 많이 놀아줘! 나는 너무 한 가지 일만 집중하느라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못 가졌단다”라고 말씀하며 그의 남은 생애에 조금이라도 더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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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5.03.13 10:25

     

    심리 테스트에서 떨어지는 한국목사들


    박영돈 교수 페이스북 글


    약 30년 전 내가 미국 개혁교단(CRC)에서 목사안수 받을 때는 정신과에서 심리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목사가 될 사람으로서 정신적인 문제가 없는지를 검사하는 것이었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쉽게 통과하는 의례적인 절차였다. 그런데 한국인 목사후보생들이 이 테스트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였다. 이유인즉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가 교회와 가정 중에 어느 쪽이 우선적이냐고 묻는 질문에 한국인들은 한결같이 교회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관점에서 목사가 자신의 가정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으면서 교회 사역에 치중한다는 것은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신앙생활해온 이들에게는 주님의 일과 교회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가정까지 희생하는 것이 목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십자가라는 신념이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선배 목사들이 모두 이 길을 걸어갔던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라오려거든 부모와 형제와 처자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듯이 어느 시대건 복음 사역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이들은 이런 유의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한국선교 일세기 동안 한국교회를 일구어온 목사들의 남다른 헌신을 이끌어온 것도 이런 스피릿과 사명의식이었을 것이다.


    오랜 교회역사 속에 모든 것이 안정되어 그런 희생이 요구되지 않는 미국교회의 상황에서는 그런 식의 목회는 매우 비정상으로 보일 것이다. 목사안수를 받은 후 한 미국 교회에서 나에게 보내온 청빙서류를 보니 연봉과 여러 가지 혜택, 일 년에 휴가가 며칠인지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런 호강은 과거 한국교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목사들은 가족과 휴가를 누릴 수 있는 여유는커녕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며 열악한 목회 환경에서 불철주야 교회를 돌아보느라 가정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야했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목사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돌아갔다. 목사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세심한 돌봄과 사랑마저 교인들에게 다 빼앗긴 채 가난과 궁핍에 찌든 처절한 삶을 감내해야 했다.

    신학교수들 가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구신학을 누군가 전수해 와야 했던 한국교회의 초창기 상황에서 그들은 가족을 남겨두고 혈혈단신으로 외국으로 건너가 몇 년 동안 재정적인 어려움과 언어의 극심한 한계를 극복하며 피 말리는 노고로 신학학위를 끝내야만 했다. 서구의 유구한 신학적인 전통과 유산을 전수받아 자국어로 자유롭게 신학을 연구하며 여유로운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외국 신학생들과는 처지가 완전히 달랐다. 외국유학기간동안 그들의 가정은 내팽개쳐지듯 희생되었다. 이것이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박윤선 박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신학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겪은 아픈 과거사이다. 그 딸의 상처와 그 아버지의 고충을 이런 시대적인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도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공부를 끝내고 귀국하면서 미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닌 딸과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아이를 데려왔다. 한국어 수업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을 외국인 학교에 보낼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부산에 있는 일반학교에 집어넣었다. 한국에 오기를 아주 싫어했던 딸아이는 한 낙후한 여자 중학교에 들어가 엄청난 문화적인 충격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사춘기를 보내야했다. 딸은 미국에서의 즐겁고 발랄했던 모습과는 달리 항상 그늘진 얼굴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런 딸의 고충에는 깊은 관심과 배려 없이 한국에서 새로 시작한 교수사역에 흠뻑 도취되어있었다. 그러면서도 주의 일이 우선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지금 돌아보니 거룩한 명분으로 포장된 이기적인 야심에 사로잡혀 부모의 마땅한 도리를 소홀히 하고 자녀들을 희생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야박한 아비를 원망하지 않고 잘 자라준 딸에게 미안하며 감사하다. 처녀 때는 나를 닮아서인지 성깔이 있더니 이제 결혼하여 자신도 딸을 가진 엄마가 되니 못난 부모에 대한 배려가 더 각별해졌다. 아마 내 딸이 자신이 상처받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이 아비의 치부를 드러낸다면 목사의 딸 못지않은 책이 나올 것이다. 딸아 많이 미안하다. 그리고 깊이 감사한다. 나뿐 아니라 우리 모든 목사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이 말을 꼭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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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5.03.19 22:15
    목사의 딸과 아버지의 딸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박윤선은 율법주의, 기복신앙, 권위주의, 인간을 높이는 것 가장 싫어했던 분”

    “목사의 딸”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돌아가신 박윤선 목사님의 딸이 아버지 박윤선 목사님과 얽힌 가정사와 목사 박윤선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서술한 수기형식의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족들이 겪은 고생과 아픔에 대한 연민과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주를 위해서 살겠다는 사람들은 교회 지도자로, 나라를 위하여 살겠다는 이들은 독립운동에 나서면서 그 와중에 그들의 가족들은 철저하게 희생당하는 시절을 살아낸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그 고통과 고생을 담보로 맺어진 열매를 박윤선의 제자들과 한국교회가 누렸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에게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박윤선의 가족들이 어떤 고생을 하였으며 박윤선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품고 오랜 세월을 지냈는지 저는 나름대로 이미 익히 알고 있는 터였습니다. 그리고 부모에 대하여 한 맺힌 분노를 품고 살았던 큰 아들 춘호씨가 2008년 77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마지막 5년 동안을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며 처절하게 회개하고, 그간 분노하고 증오하였던 여러 사람들을 찾아가서 혹은 전화로 일일이 사과하고 화해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았는가, 특별히 새어머니인 이화주 사모님에게 어떻게 사죄하고 화해하며 지냈는가를 박은혜씨를 통하여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박은혜씨는 생전에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가장 격렬하게 표출하였던 아들로 알려진 박윤선의 큰 아들 춘호씨의 딸이고 박윤선의 친손녀입니다. 이 부부는 미국에서 돌아와 3년 전에 신학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천안에서 매우 열악한 환경가운데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씨를 통하여 그의 삼촌이었던 다니엘 씨도 세상 떠나기 얼마 전에 그 부부를 통하여 예수를 영접하고 얼마나 통렬하게 회개하고 눈물로 살았는지 들었습니다. 특히 평생 가장 증오했던 새어머니에게 전화로 통곡하며 사죄하였고 이화주 사모는 비행기로 날아오고, 후에 다른 이복형제들도 비행기로 날아와 화해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은혜씨를 통하여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은혜씨는 자기 아버지 춘호씨에 대하여 해소할 수 없는 분노와 한을 품고 살았지만 마지막 5년 동안의 모습을 보며 자기 아버지를 용서하고 감사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내력을 알고 있어서인지 사실 박혜란씨의 ‘목사의 딸’은 매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박윤선과 상당 기간을 같이 보낸 여러 사람들이 그 책에 기술된 어떤 사실들에 대하여 사실성 여부를 갖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반론을 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진술들의 사실성 여부보다 더 충격적으로 제게 다가온 것은 그 책이 소개하는 박윤선에 대한 특정의 일화들에 대한 저자의 안목이었습니다. 책의 전편에 흐르는 저자의 분노에 찬 기운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생생하게 감지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이 많이 힘들었던 것은, 저자가 일관되게 분노에 찬 안목으로 자기가 소개하고 있는 각각의 사건들을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른 자녀들도 이 사건을 이렇게 이해하고 해석할까 하는 의구심이 여러 곳에서 들었습니다. 저자는 목사의 딸이 아니라, 아버지의 딸로 맺힌 한이 많아 보였습니다.

    박윤선이 주석 집필에 전념하느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고, 많은 도리들을 소홀히 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본인도 말년에 이르러 많이 아쉬워했던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는 합신에서 한 교수에게 자기는 학생들을 교육하는데 실패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주석집필에만 전념하느라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돌보는 일에 소홀히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합신에서는 이제 그 일에 전념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하기를 애썼고 어느 때는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불러서 돈이 든 봉투를 건네주며 격려하였습니다. 거의 언제나 그와 동행했던 이화주 사모님의 두꺼운 수첩에는 제자들의 기도제목이 빼곡히 적혀 있곤 했습니다.

    그가 가장 소리를 높이며 반대했던 것이 율법주의와 기복신앙과 권위주의, 그리고 인간을 높이는 태도였습니다. 그가 가장 힘주어 배격했던 것들을 놓고 그의 딸은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단정을 자신의 책에서 하고 있어서 그 점이 가장 의아했습니다.

    박윤선은 어린 제자가 설교를 해도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아멘 아멘 하며 설교를 듣고, 그가 사회를 하고 강단을 내려오면 아무리 어린 제자라 하여도 설교자의 신발을 바로 놓아주며 자리에 돌아오는 모습은 수없이 목격된 일입니다.

    죽기 직전에도 인간 박윤선의 의를 제거해달라고 소리쳐 기도했다는 증언, 평생을 바쳐 저술한 주석임에도 그것이 박윤선의 개인적인 의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다 불살라 버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실 저는 박윤선의 설교를 연구한 설교학 박사 논문 하나를 지도해보려 해도 그의 설교 자료가 충분히 남아있지 않아서 포기한 상태입니다. 박윤선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면서 그의 유품 하나도 제대로 모아놓지 않은 그의 후예들에게 사실 저는 서운함이 많이 있습니다. 개인을 높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평생의 지론과 그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후학들의 지나친 조심으로 역사적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것은 오히려 큰 실수입니다.

    그가 언어 실력이 없어서 중국어 번역 성경을 보았을 뿐이라는 진술은 박윤선을 알거나 배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율법주의자 기복신앙가 권위주의자 언어에 무식한 자이었는지는 딸이 그렇다하면 그런 것으로 결론이 나는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으로 해석학적으로 학문적으로 논증이 되어야 할 일들입니다.

    이미 숱한 학문적, 경험적 논의를 통하여 그는 그런 사람과는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논증되어온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책에서 피력한 이러한 단정들에 대하여는 다시 하나씩 검증하고 논증하는 일들이 합신이나 혹은 다른 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목사의 딸로서 쓴 글일는지는 몰라도, 30년 가까이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70대 중반의 딸이 아버지의 딸로 쓴 글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 이 책을 덮으며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오히려 박윤선이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많은 이들에게 박윤선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게 하는 좋은 기회를 주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어서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동시에 20대 후반에 박윤선을 만나서 그의 제자요, 그의 신학과 사상과 인격으로부터 평생 영향을 받고 그로부터 유익을 얻으며 살아오고 있는 나로서는 그분 때문에 험난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분의 딸은 물론 이미 세상을 떠난 대부분의 다른 가족들과 남아 있는 후손들에게 여전히 미안한 마음입니다.

    박윤선을 지칭하는 것 같은 맥락으로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는 디모데전서 5장 8절을 인용한 이 책의 추천자에 대하여 저는 고린도전서 4장의 말씀으로 답을 하고 싶습니다.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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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5.03.20 10:08


    <목사의 딸>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크리스천투데이 (2015.3.26.)


    보수교회 목회자들의 신관과 삶 되돌아보는 계기 제공 

    김영한(샬롬나비 대표/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한국 보수주의 교회 내에서 박윤선 목사는 목회자의 사표요 인생의 사부요 훌륭한 신학자요 신앙가의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다른 이도 아닌 그의 친딸이 저서 『목사의 딸』에서 그에 대해 쓴 비판적 평가로 인하여, 교계 안에서 논란(論難)이 일어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윤선에 대한 평가는 크게 훼손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단지 “그러한 인간적인 면, 심지어는 약한 점도 가지고 계셨구나” 하면서, 그분에 대한 보다 넓은 이해를 가지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것 같다. 그럼에도 이 논란이 단지 그분에 대한 이해에서 끝나지 않아야 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신앙 및 보수교회 목회자의 자기 이해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는 박윤선 목사의 삶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사의 딸』은 한국 보수주의 목회자들의 신관과 자기 삶을 되돌아 보는 계기를 제공하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1. 모든 인간은 그 시대의 아들 딸이다.

    저자인 딸(박혜란 목사)은 ‘아버지’(박윤선)에 대해 “매우 단순한 분이셨기에, 사람이 상당히 복합적인 존재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셨던 것 같다”며 “암기력이 뛰어나고 집중력이 있어 늘 훌륭한 학생이고 스승으로 인정받으셨지만, 성격이 급하고 분노를 터뜨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해서 가부장적으로 주의 종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강요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고 손찌검까지 한 적이 많다고 하다가, 점점 강도를 높여 마침내는 “상습적으로 구타했다”고 언급한다. 친어머니는 딸이 어린 시절 별세했는데, 아버지는 재혼한 후 전처의 자녀들인 자신과 남매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쓰고 있다. 어머니가 별세한 후 6개월도 안 되어 재혼한 아버지에 대하여 딸로서는 의당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버지를 새어머니에게 빼앗긴 딸의 그런 관점에서, 아버지가 친어머니를 잃은 자녀들에 대한 양육 책임(심적 외로움과 상실 감정에 대한 공명)을 다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볼 수 있다.

    모든 인간은 그 시대의 산물이다. 따라서 박윤선 목사도 그러한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의당 가부장적 사고 속에서 아내와 자녀들을 대했을 것이다. 물론 복음을 믿었고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관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그러한 시대적 제약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죄인인 것이다. 구약성경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겼으나 그 시대의 관습에 따라서 첩을 가졌고, 부인 사라의 자식인 이삭과 하갈의 자식인 이스마엘 사이의 갈등을 가정의 골칫거리로 보고 고민한, 믿음의 선구자였다. 오늘날 우리가 박윤선 시대의 윤리를 보고 비판하는 것처럼, 우리 후손들이 우리의 윤리를 볼 때 미흡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은 그러한 시대의 제약 속에 살지만, 그러한 제약을 믿음으로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박윤선 목사를 가까이 아는 후학들이나 제자들은 그분이 별세하기 전 한 주간 “자기 의”를 버리게 해 달라는 회개 기도를 하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분은 그만큼 자신의 약점을 아시는 분이었고, 하나님 앞에 가기 전에 이 모든 허물을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씻고자 했던 것이다. 이들 가족관계의 깊은 차원은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이 책 독자들은 “박윤선 목사의 가족관계에 이러한 아쉬운 점들이 있었구나”라고 느낀다. 이 책은 이러한 숨겨진 사실 보고(報告)를 넘어서,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서 “아들과 딸들에게 어떠한 아버지로 비치고 있나”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2. 인간의 지식도 다 그 시대의 제약물로서 한계를 지닌다.

    딸은 명문대학을 나오고 목회학을 전공하고 안수받은 목회자로서, 아버지의 대표적 ‘업적’인 신·구약 전권 주석에 대해서도 “외국어에 능통하셨지만 주석은 한글 성경으로 하셨는데, 당시 한글 성경은 히브리어·헬라어 원문을 번역한 게 아니라 몇 가지 언어로 중역된 성경이었다”며 “그래서 곳곳에 오역이 있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여러 주석을 참조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버지의 주석이 “참고할 만한 것이 없고 빈곤하다”고 비판했다. 딸은 “예를 들어 성경 속 ‘충성’이라는 단어는 ‘신실함, 꾸준함, 변절하지 않음’ 등을 뜻하는데, 아버지는 ‘군신 관계’만으로 이해하셨다”며 “이는 아마 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교육받으면서 유교적·군사적 가치관을 갖게 됐기 때문일 것인데, 문제는 한국교회가 그런 아버지의 신학적 전통을 계승하려고만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필자의 관점에 의하면 박윤선 박사의 지식을 오늘날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는 그의 시대에 최고 명문인 평양숭실 영문과를 졸업한 지식인이었고,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과 화란자유대학에 유학한 최상급의 학자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목회자를 위하여 그의 주석을 썼기 때문에 우리말 성경을 위주로 할 수밖에 없었고, 성경주석학이 제대로 발전되지 않은 시기에 오역(誤譯)까지 드러낼 엄두를 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보인다. 독일 지식사회학자 칼 만하임(Karl Mannheim)이 지적하듯이 우리의 지식이란 역사적 시대에 제약된 지식이기 때문에, 오늘날 주석학에서는 본문 번역의 정확성이 문제시되나 그 시대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수준이 아직도 거기에까지 미처 관심을 가지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3. 박윤선도 그 시대의 유교적 가부장 속에서 표상된 하나님 이해과 윤리를 가졌다는 것은 당연하다.

    딸이 비판하는 것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유교적 가부장제의 틀이다. 아버지가 유교 문화에서 태어나서 유교의 책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유교적 가치관이 그의 삶을 지배했다고 한다. 딸은 아버지가 후에 성경과 신학을 배웠지만, 그 유교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유교적 가부장적 하나님은 정죄하시거나 벌 주시는 데 모든 힘을 쓰시는 그런 분, 주신 은혜를 되받기를 원하시는 분, 너무도 거룩하여서 범접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 던지는 도전은 한국 교회는 유교적 가부장제 때문에 복음이 왜곡되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고, “…대형교회들의 문제점은, 목회자가 마치 황제처럼 군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성경적 윤리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지적은 정당하다.

    그런데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박윤선 목사가 유교적 가부장적 신관을 가졌다는 것은 그 시대에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인격적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었으나, 그런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그가 자라난 유교적 가부장적 사회의 틀에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지식사회학(sociology of knowledge)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사회적 관습에서 체득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언어와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약점을 지닌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자녀로 받아주신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가부장적 신관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가부장적 신관을 비판하고 수정해야 한다.

    이러한 딸의 비판적 지적에는 오늘날 세상을 섬기고 자신을 주고자 하기보다는, 세상에서 분리되어서 자기 독선 가운데서 세상의 일방적인 존경만을 받으려 하는 한국 보수주의 지도자들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다. 딸도 한국에 있을 때는 그 문화 속에 있어 그것을 깨닫지 못했었는데, 오랜 전통의 미국 교회 교인들의 삶을 보면서, 또 신학을 공부하면서, 유교적 가부장제가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나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보수교회 목회자들이 이러한 신관과 윤리를 가지고 목회함으로써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교회의 목회자들은 이러한 유교적 가부장적 모습에서 탈피하여, 복음적이고 인간의 고통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가지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혹시 딸이 모르고 있는, 그의 아버지 박윤선의 아름다운 모습들도 많이 있다. 그분을 가까이 모신 김명혁 교수가 다음 사실을 말해 주어 필자는 감명 깊게 들었었다. 1980년대 초 총신 사태 시 학생들이 자동차를 뒤엎는 상황 속에서도, 학장으로서 주동 학생을 징계하려 하기보다는 기도주간을 선포하여, 학생들이 기도와 묵상 가운데서 스스로 회개하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었디. 이 사례는 그분이 일방적으로 유교적이고 가부장적 신관과 윤리를 가진 분이 아니라, 복음적이고 사랑의 윤리를 가진 지도자였다는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다른 사례는 교수회를 할 때도 본인이 느끼기에 스스로 풀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점은, 김 교수에게 직접 전화로 연락하여 어려운 심경을 토로하고 의논하려 한 점이다. 이 사례도 그분의 따뜻한 인간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점이라고 김명혁 박사께서 말해주던 것이 기억이 난다.

    4. 딸 박혜란 목사의 공헌: 자기 아버지의 결점을 공개할 수 있는 용기와 정직성

    딸은 그의 아버지를 “유교적 칼빈주의자”라고 하며, 그의 신학이 남존여비·충효사상에 영향을 받았고, 영육을 분리하는 이원론적이라고 평가한다. 딸은 “한국교회가 이렇게 큰 결함이 있는 분을 칼빈주의 대학자로 숭상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그녀의 비판은 “아버지의 신학을 폄하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극한 자만과 여자로서 목사 안수받은 여권에 대한 자기 변호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보고 싶다.

    딸은 “집필하면서 부담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특히 아버지를 존경하다 못해 숭상하려는 느낌을 주는 분들도 있어 무섭기도 했다”며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집필하면서 20번 넘게 읽고 그때마다 울어야 했다는 점”이라고 피력한다. 딸은 이 책을 통하여 파묻혀야 할 일을 들추어 논란거리를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표(師表)로 추앙받는 아버지의 허물을 지적함으로써 그것에 투영되는 한국 보수교회 목회자들 자신의 편견과 허물을 되돌아 보자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딸의 저서는 하나의 공헌을 하고 있다.

    5. 보수교회와 그의 제자들은 딸의 저서를 “허구”나 “아버지 비하”로 돌려서는 안 된다.

    허순길 목사를 비롯한 고신과 합신, 총신의 일부 박윤선 제자들은 이 저서에 나타난 딸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지나치게 평가절하하려고 한다. “거의 30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 박윤선에 대해 가능한 극단적인 모든 표현을 동원하여 매장하려 한다” “책의 내용 대부분이 허구요, 이것이 주님의 교회에 큰 해악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박혜란은 한국 교회가 자기 아버지의 신학과 생활을 바로 판단하도록 글을 쓴다고 했다. 그 책의 핵심 내용은 그의 아버지 박윤선의 신학이 바르지 못하고 그의 생활도 잘못되었다고 아버지를 비하(卑下)하며, 이제 그가 남긴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그 이름을 잊어버리자는 요구이다” “그(딸)는 세상에서 박윤선의 이름이 지워지기를 원한다. 사랑을 말하는 그가 이미 하늘나라에 간 그의 아버지를 향해 살인적인 독을 뿜어내고 있다” “혜란은 새어머니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았다. 지난날의 일들을 잊거나 버리지 않았다. 지난날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여 글로 옮기고 그의 새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곧 기다린 듯이 세상에 책으로 펴냈다… 그는 용서를 말하면서 용서하지 않았다. 무서운 위선자이다. 글로 사랑을 말하면서 마음에는 미움의 독을 그대로 간직해 왔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허순길, “박혜란의 ‘목사의 딸’에 대한 유감” 승인 2015.03.09. 23:07:48, 코람데오닷컴). 이는 딸의 순수한 의도를 비하하는, 너무 지나친 문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딸은 이런 책을 쓰면서 20번 넘게 울면서 자신의 허물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딸에 대한 평가절하의 시도는 스승이나 사표(師表)에 대한 과잉충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변호일변도의 과잉충성 사고에 머무른다면 한국 보수교회에 아무런 발전이 없다고 보인다. 친딸이 용기있게 지적해 준 스승의 인간적 한계와 허물을 직시하고, 이것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 교회와 목회자들 자신의 모습을 겸허하게 살펴야 한다. 딸은 “아버지를 힐난하기 위해 쓴 책이 결코 아니다”며 “아버지를 통해 말씀과 기도의 전통을 유산으로 받았다면, 아버지의 부족한 면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인습(因習)도 인정하고 개선해야 하는 것이고, 이는 제가 딸이기에 가능한 시도”라고 밝히고 있다.

    6. 보수교회 목회자들은 이번 출판물을 자기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딸 박혜란 목사는 오늘날 한국 보수교회가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유교적 가부장적 신학적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려고만 하는 것을 시정하기 위하여 이 저서를 낸 것으로 피력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보수주의 목회자들은 너무 일방적으로 박윤선을 옹호하고 아버지를 비판하는 딸의 의도를 비하하려는 태도에서 돌이켜, 냉정하게 이 저서에 투영된 오늘날 보수교회와 목회자들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이 저서는 과거를 이야기함으로써 오늘날 보수교회와 목회자 된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거울의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된다. 오늘을 살고 있는 보수주의 목회자들이 이런 식으로 저서의 의미를 폄하해버리고 만다면 『목사의 딸』 저서의 발간 의미는 퇴색될 것이다. 옹호 목회자들은 딸을 폄하하기 이전에, 먼저 칼 만하임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 존재와 윤리가 그 시대와 환경에 제약된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며, 이러한 인간 박윤선 목사 안에 잠재적으로 투영된 보수교회와 목회자 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맺음말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상의 책을 읽고 또 논란의 글을 읽고 난 뒤, 박윤선 목사에 대한 이미지가 결정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단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 시대 한국교회의 사표요 대신학자요 지도자인 그분도 “그러한 인간적인 약점도 가지셨구나” 하는, 그분의 인간적 면모와 그의 가정사의 한 면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분이 성경의 오역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고 다른 주석을 제대로 인용하지 아니했다고 그의 학문성이 반감되는 것도 없고, 그분이 가부장적 태도로, 전처와 자녀들을 잘 돌보지 않았다는 사실조차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지, 그분에 대한 존경이 훼손되지 않았다고 본다. 인간이란 그 시대의 제약을 받는 존재요 죄인이기 때문이다. 딸이 아버지가 너무 성인으로서 우상화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러한 비판적 저서를 낸 것은, 오히려 그녀의 아버지를 “죄인이요 의인”이라는 개혁주의적 인물로 각인시켜 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면에 있어서 딸은 교계가 존경하는 아버지를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훌륭한 여성으로서, “과연 그분의 딸이구나”라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준다. 이 저서는 아버지 비판을 통해서 거기에 잠재적으로 투영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신관과 윤리를 비판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보수교회 목회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 보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저서는 보수교회 목회자들의 신관과 윤리 정립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다. 2015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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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5.03.31 10:26

     

    <목사의 딸>이라는 책을 읽고

     

    정문호 목사

     

    정문호는 총신대학교 신대원에서 1977년부터 2000년까지 <성경적 교회성장> 및 <신학생과 성경> 과목을 가지고 23년 동안 강의하였으며 현재 예손교회 원로목사이다.


    나는 지금 85세 된 원로목사이다. 나는 박혜란 목사의 열서너 살 때부터 너무나 잘 알 뿐 아니라 가정의 모든 자녀들도 잘 아는 목사이다. 그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박 목사님의 교육과 감화를 받고 목회자로 부흥사로 헌신한 목사이기도 하다.

    왜, 왜, 왜?
    왜, 목사의 딸이 아버지 목사의 모든 것(인격, 주석, 교육, 설교)을 부정했을까?
    왜, 딸 목사가 아버지의 신앙을 바리새적인 인격자라고 매도했을까?
    왜, 목사의 딸이 아버지의 인격은 짓밟고 자기만 자랑했을까?
    왜, 딸이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화살 맞은 맹수로 느꼈고, 아버지는 새어머니의 농간에 넘어간 완전한 장님으로 느꼈을까?
    왜,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전처 자식에 대하여 정죄의 도끼로 내려쳤다고 느꼈을까?
    왜, 전처 자식들은 육신의 자식, 후처 자식들은 영의 자식이라고까지 느끼고 살았을까?
    왜, 한국교회 수천 명의 교역자와 성도들이 충격 받을 이 책을 세상에 내어놓았을까?
    왜, 얄팍한 상술로 이 책을 썼다고 느끼게 했을까?
     
    아버지를 비난하고 폄하하다

    자신도 목사 된 사람으로 이렇게 아버지를 난도질할 수 있을까? 아버지를 유교적 권위주의, 샤머니즘적 기복주의, 왜곡된 율법주의자로 매도할 수 있을까? 딸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선자, 바리새인으로 매도하였다. 아버지가 십자가의 사랑을 자녀들에게 베풀 여유도 없이 분주한 시간을 보낸 것(주석집필, 신학교육, 목회사명)을 허물이라고 이야기했다. 저자는 새어머니도 저주에 가까운 악평을 하였다.


     (해방 후) 부산에 와서도 불면증에 시달린 아버지는 자주 어머니(친모)와 말다툼했고, 말다툼 끝에 어머니에게 손찌검한 적도 많았다. 정말 보았는가? 또 왜 그랬을까?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때 어머니의 상기된 모습에서 아버지가 손찌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그런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나쁜 손버릇은 그쯤 멈춘 듯하다(30쪽). 그런데 한참 뒤에 가서는 자녀들이 보는 가운데서 아버지는 거의 상습적으로 어머니를 구타했다(245쪽)고 비난한다. 앞뒤가 잘 안 맞는 이야기다.


    이 일에 대하여 왜 아버지가 그렇게 했는가에 대한 정황은 숨기고 아버지만 몹쓸 사람으로 정죄하고 있다. 왜 아버지가 큰 오빠, 작은 오빠의 사춘기에 있었던 잘못에 대하여 분노하면서 매질을 했을까? 사춘기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아버지가 “이놈들아, 목사의 얼굴에 똥칠한다”고 매질을 했다고 하는데 그 똥칠이 어느 정도였을까? 구체적으로 말하지 아니하였다. 나는 짐작이 간다. 박 목사님께서 큰 아들의 일로 교장직 사표까지 내고 학교에 출근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는 것은 내가 학생 때 있었던 일이다.


    아버지를 흥분 잘하고 성 잘 내는 그리고 손찌검하는 분으로 그리면서 그것에 대하여 진실을 밝히는 용기라고 했는데 허물을 덮을 수 있는 용기는 없었던가?


    박 목사님의 성역 50주년 기념예배에 대한 것을 이렇게 쓰고 있다. “1976년 성경 66권에 대한 주석을 완간하신 아버지는 그해 ‘성역 50주년 감사예배’를 드렸다”(254쪽). 그 해는 1976년이 아니고 1984년 4월 27일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버지가 “저는 육십 년 묵은 죄인입니다”(255쪽)라고 했다고 했는데 박윤선 목사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저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라고 하셨다.


    이처럼 역사적인 사실조차 바로 기억하지 못하는 딸의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다 믿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아버지에 대하여 평하기를 이것은 겸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지사충성의 삶을 지극한 가치로 삼아온 아버지의 자기 고백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255쪽). 그러나 십자가에 깊이 잠길 때 나의 죄밖에 안 보이고 높은 하나님의 은혜를 쳐다볼 때 감사밖에 없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안타깝다.


    딸은 아버지에 대해서 그 중심에는 당신 홀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죽기까지 충성하고자 했던 이기적 칼빈주의가 자리잡고 있었고, 이런 충성심을 부추긴 새어머니와 주변에 있는 동료들 그리고 아버지를 숭배하기를 일삼았던 한국교회가 한몫했다고 지적하고 그들이 아버지를 아버지답게 행동하지 못하게 한 공범의 자리에서 비껴날 수 없었다(247쪽)고 질타한다.


    또 아버지의 생각 속에는 유교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한글성경에도 여전히 유교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번역이라고 주장했다. 이 점에서 아버지의 성경주석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에서 딸은 십자가의 사랑에서 멀리 떠나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도 사랑을 운운할 수 있을까? 정결한 마음과 깨끗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딤전 1:5)

    심리에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숨어 있다

    딸의 심리에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숨어있다고 느꼈다.


    고교시절에 아버지가 너는 독일어를 전공하면 좋겠다는 권면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생각하기를 아버지가 독일어에 약함으로 딸의 도움을 받으려고 권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나는 독일어를 전공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더구나 아버지를 돕기 위하여 목사가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선교사 스푸너 목사가 한국에 와서 고려신학교에서 우리들을 가르쳤다. 때가 되어 스푸너 선교사가 귀국하게 되었다. 그때 사정상 비행기로 가지 못하고 군함으로 가게 되었고 배편으로 가시는 스푸너 목사를 찾아 달려가서 송별예배를 드렸다. 바로 그날이 주일날이었다(예배 시간이 그날밖에 없었다.) 이 사실로 인해 박 목사님은 교장직을 내놓게 된 것이다(면직). 이에 대하여 딸은 우리가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정죄했던 것을 아버지가 고스란히 값으로 받는 셈이 되었다라고 쓰고 있다. 이렇게 느끼는 쾌감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했습니까?” 둘째 아들인 요한이 아버지에게 한 질문이다. 이에 대해 1971년 12월 27일에 아버지가 딸 혜란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주로 목사 안수를 받기 전 일본에 있을 때 약간 다툰 일이 있고, 또 나로서 지나치게 분노한 일이 있는 것(심지어는 조금 때린 일도 있음)은 뼈아픈 일이고 회개한다. ……내가 주님의 일에 지나친 충성을 하였는지 모르나 너희를 위해서는 시간을 쓰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내가 요한이를 데리고 있은 때가 많지 못함은 후회한다. 그런데 모든 일에 하나님의 판단이 있을 것이다.”(100쪽)


    정 목사는 아버지의 이 편지를 회개의 편지로 생각한다. 아버지의 체면을 모두 접고 이렇게까지 편지하기가 쉽겠는가?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식의 강요가 과연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도리라는 말인가? 여기에는 딸의 지나친 교만과 잘못된 어떤 복수심이 깔려있다.


    박 목사님의 자녀들이 너무나 아버지에 대하여 마음이 닫힌 상태에서 신앙을 찾으려고 애썼다는 생각이 든다.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은 성령의 역사밖에 없다. 그런고로 아버지께서 자녀들의 상태를 아시고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자신을 지나치게 자랑하지 말라

    50세에 덴버신학교에서 구약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사랑을 실천한다고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에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는 그곳 반석교회를 방문하여 열심히 봉사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반석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도 하고 이렇게 지내는 가운데 ‘정은이’라는 불쌍한 초등학교 2학년, 불구자가 되어 엎드려 살아가는 정은이를 걸어다닐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여 일을 성취했다는 이야기도 읽었다.


    ‘해 뜨는 마을’이라는 범죄소년원에 가서 영어교사를 하면서 이웃을 사랑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복음의 씨를 뿌렸으니 훗날 말씀의 열매를 거둘 것이라고 자신의 말을 나열하였다.


    또한 꿈에도 생각하지 않던 목사 안수를 받았고, 자녀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시작된 목회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5년 동안 난지도, 범죄소년원에서 봉사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버지를 지독히 비난하는 것과 대비해 보면 그의 마음과 신앙이 어떤지 드러난다. 자기를 죽이는 십자가는 없고 자기를 높이는 마음밖에 없다.


    춘호 오빠를 어떻게 소개하는지를 보라. 아버지와 관련된 큰 오빠의 많은 잘못은 덮으면서도 회개하는 오빠는 잘 소개하려고 애쓴다.


    허랑방탕하던 큰 오빠가 일찍 결혼하였으나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해 그 부인은 영양실조에 걸려 고생하다가 어린 자녀 다섯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두 번째 결혼도 실패로 끝나 이혼하고 말았다. 세 번째 결혼을 통해 지혜로운 여성을 만나 잘 살아가는 듯 했지만 허랑방탕한 생활로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할 정도로 심한 상태가 되었다. 이때 아내와 자식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고 마침내 춘호 오빠의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 후 가족의 보살핌과 하나님이 생명을 연장시켜주심으로 5년을 더 살았다. 그렇게 된 춘호 오빠는 자신이 잘못한 사람에게 전화로 용서를 구하고 친척들에게 전화로 용서를 구했다. 큰 오빠가 그렇게도 미워했던 새어머니와도 만나기를 요청하여 새어머니를 보고서는 땅바닥에 엎드려 큰 절로 자기 잘못을 회개했다.


    큰 오빠는 이렇게 회개했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자녀들에게 잘못했다고 청산도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는 식으로 딸은 따진다.


    정 목사는 고 박윤선 목사께서 학생들에게와 가정 자녀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떠오른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결코 실패하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그렇게 자녀들이 세상으로 나가 불신앙 가운데 헤매지만 하나님께서 다 아셔서 뜻대로 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때가 이르매 큰 아들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


    박혜란 목사는 남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자기 아버지는 끝까지 미워했을까? 새어머니를 미워하면서 무슨 이웃을 사랑한단 말인가? 자만에 빠지지 말고 겸손하면 좋겠다. 성경에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는 말씀도 있지 아니한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벧전 4:8).


    진정한 복음적 자유?

    딸 혜란 씨는 45세에 덴버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만난 그라운즈 교수에게 눈물 흘리면서 자기 입장(부모와의 갈등)을 말했다. 그 교수가 말하기를 혜란 목사의 잘못이 아니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경직된 신앙관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딸은 모든 염세주의적 죄책감과 두려움에 떨던 마음이 깨끗이 씻겨간 듯 한없는 기쁨을 맛보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185쪽).


    나는 그라운즈 교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잘못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딸의 생각 그 자체가 잘못인 것이다. 아버지가 세상의 향락을 위하여 육신의 쾌락을 도모하려고 자녀에 대해 무관심한 것인가? 주님의 사명을 위하여 평생 몸 바쳐 오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깨달으려고 노력했다면 아버지를 이렇게 매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 목사는 박혜란 목사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미국 덴버신학교에서 발견한 사실은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복음에서 참 자유를 발견하고, 신앙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박혜란 목사는 성경에서 많은 것을 발견한 중에 복음 안의 자유를 발견했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아버지의 인격이나 신학조차 대부분 단죄하고 있다는 것이 과연 자기 죄를 발견하고 자유를 누리는 사람의 심리인지 궁금하다. 그런 자유가 과연 진정한 복음적 자유이겠는가?


    아무리 영리하고 머리가 좋을지라도 그것들이 십자가의 용광로 속에서 녹아지지 못하면 자신의 영안을 흐리게 한다. 성경을 너무나도 개인적이고 철학적으로 해석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성경이 말한다 하지 말고 성경이 말하는 것을 성경이 말한다고 내가 말한다”고 한 칼빈의 주장도 모르는 것 같다.


    자기 자랑, 자기의 사색, 자기의 체험 이 모든 것은 교만에 근거한 것이니 이 뿌리를 뽑아버려야 그때부터 성경의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히 12:15). 왜? 왜? 왜? 창세기 9:20-27의 내용도 모르는 것일까?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존경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목사의 딸>은 교계에 물의를 일으켜 어떤 이익을 바라보는 술책으로 보인다. 이처럼 부모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면 박혜란 목사도 부정을 당하지 않을까 두렵다.


    새어머니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자기 가정에 그런 불행이 왔다고 하면 그 새어머니의 친 자녀들도 불행했어야 할 것 아닌가? 자신의 문제를 환경이나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른으로서 가질 태도는 아니다.


    한국교계에 많은 목사들 가운데 박혜란 목사와 같은 사정과 가정 형편에 처했던 자녀들이 한두 가정이겠는가? 그럴지라도 아버지를 그토록 모독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를 향한 하나님의 감추인 뜻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이렇게 교만에 꽉 찬 책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녀에 대한 애정까지 모두 희생시키면서 묵묵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한국교회를 위하여 성경주석을 완간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준비시킨 그 어떤 뜻이 있었다고 박혜란 목사가 마음을 넓히고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정 목사는 22살부터 85세 오늘날까지 박 목사님의 가르침과 설교와 행동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써 살아온 사람인데 박 목사님을 딸이 말하는 대로 그렇게 잘못된 성격의 사람으로 여긴 적이 없다.


    정 목사는 이 책을 세 번이나 읽고 이 글을 쓰는 데 2주일이 걸렸다. 나도 피곤한 상태이다. 이제 말을 맺으려고 한다. <목사의 딸>이라는 책은 자서전도 아니요 소설도 아니요 있을 수 없는 불효의 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박 목사님은 지상에 있는 목사님 중에 훌륭한 목사의 한 사람이다. 비록 박 목사님이 자녀들에게 행한 무관심이 있었다 할지라도 <목사의 딸>이란 책으로 박 목사님을 통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 큰 오빠가 회개하고 행복하게 아름답게 살다가 77세로 생을 마친 것을 보고 깊은 생각이 있어야 하겠다. 박혜란 목사도 남은 생애를 주님이 주시는 참 평강을 누리며 보람 있는 인생으로 달려가 주님 앞에서 아버지 정암과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정 목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싶다.


    감사하면 강해지고
    기뻐하면 젊어지고
    사랑하면 예뻐지고
    용서하면 능력 받고
    기도하면 신앙 용사가 되고
    십자가로 승리한다. 아멘

    앞을 향하여 진격하는 아군 보병의 머리에다 수 없는 포탄을 터뜨리는 포병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똑똑한 포병일 수는 없다. 실수로나 그렇게 할 수 있다. 박 목사님의 위대한 점은 이러한 가정의 어려운 시험, 고통, 환난, 자녀들의 불신앙, 비난 속에서도 신구약 66권의 주석을 쓰셨다. 위대한 나의 스승이시다. 존경합니다. 더욱 더 존경하게 됩니다. 더불어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주후 2015년 3월 11일
    정 문 호 목사

     

    <기독신문>(201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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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5.04.03 15:22

     

    딸의 변명

     

    (뉴스앤조이, 2015.4.3.)

    고 박윤선 목사의 숨겨진 가족사를 다룬 책 <목사의 딸>(아가페북스). 책이 출판된 지 4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치열해졌다. 처음에는 박 목사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목사의 딸>이 왜곡된 시각으로 쓰인 책이자, 한국교회에 해악을 끼치는 책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관련 기사: <목사의 딸>, 한국교회에 득일까 독일까)

    최근에는 한발 더 나가, 책 내용이 대부분 허구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관련 기사: <목사의 딸> 박혜란의 사촌 형부 목사, "이 책은 거짓") <뉴스앤조이>는 사실 확인을 위해 곧바로 박혜란 목사와 인터뷰를 추진했다. 하지만 박 목사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제약이 따랐다. 결국 박 목사가 귀국하는 3월 중순까지 기다려, 박 목사를 직접 만나 보기로 했다.

    박혜란 목사는 박윤선 목사와 첫째 부인 김애련 씨의 3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서울대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1970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45세 늦은 나이에 덴버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성남시 할렐루야교회에서 성경대학 강사로 활동하다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뉴스앤조이>는 3월 25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박혜란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박 목사는 사이버 강의 녹화를 위해 3월 19일 한국을 찾았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70이 넘은 나이 탓인지 귀에 보청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질문에 답할 때면 막힘이 없었고, 사전에 전달한 질문지에도 하나하나 답을 달아 놓았다.

    인터뷰는 3시간가량 진행했다. <뉴스앤조이>는 집필 동기부터 박윤선 목사의 상습적 폭행, 김애련 씨(박윤선 목사의 첫째 부인)의 소천 당시의 상황 등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박 목사는 어떤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스스로 '컴맹'이라 자처하는 그이지만, 주변에서 하도 말이 많아 인터넷에 어떤 글들이 올라왔는지 직접 찾아봤다고 했다.


    ▲ 박혜란 목사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 특히 힘들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책 내용은 모두 사실"

    박 목사는 책에 진실이 아닌 내용이나 과장된 내용은 없다고 했다. 편집인이 내용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문장 순서를 바꾸거나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려 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소제목이나 과장된 표현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내용은 자신이 갖고 있던 자료(편지, 일기)를 토대로 작성했다고 했다. 책에 담지 못한 더 심한 사건도 있지만, 글의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이라 넣지 않았다고 했다.

    집필 동기는 분명했다. 진실을 남기기 위한 목적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했다. 박윤선 목사는 신학적으로나 인성적으로 분명한 결함이 있는데, 한국교회는 박 목사를 우상 섬기듯 추앙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잘못된 유산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그 폐해가 한국교회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3년 전에 합신대학교에서 정암 기념 사업회를 열었다. 강단에서 아버지 설교를 복창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세 권짜리 책도 냈다. <부르심, 네 꼴 보고 은혜를 받겠느냐>, <기도, 죽기 내기로 기도하라> 등이었다. 내용은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제목부터 문제가 심각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다. 죽기 살기로 하는 걸 어떻게 교제라고 할 수 있나? 아버지는 이런 것들을 많이 강조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

    아버지의 잘못된 가르침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아무런 성찰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기도를 열심히 해서 뭘 받아 내려고 한다. 우상숭배다. 마치 신령 나무에 딱 매달려 놔주지 않는 그런 모습이다. 기를 쓰고 교회에서 살게 하고, 헌금하게 하고, 봉사하게 한다. 다 교세를 늘리기 위한 방편이지, 교회의 본래 가치가 아니다. 아직까지 이런 내용의 책을 팔고, 설교하는 게 문제다."

    아버지는 '개인' 아닌 한국교회 '지도자'

    박혜란 목사는 아버지의 허물을 들춰내기 위해 책을 쓴 게 아니라고 했다. 아버지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추앙받는 인물이고, 아버지라면 죽는시늉까지 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에 집필을 다짐했다고 했다. 그 역시 논란이 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이렇게까지 크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김수흥 목사(박윤선 목사의 조카사위)가 <목사의 딸>을 비판하며 창세기의 노아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노아)가 술에 취해 벗었을 때 아들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버지 행동을 떠벌렸으나, 셈과 야벳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나를 함과 비교한 것이다. 하지만 노아와 아버지는 완전히 다르다. 노아는 한 개인이지만, 아버지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다. 하나님은 지도자였던 모세의 잘못은 엄중히 꾸짖으셨다. 아버지 역시 지도자로 숭배를 받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한 개인에 불과했다면 이런 책을 쓸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지만,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아직도 아버지를 성인 모시듯 한다.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주변 목회자들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한국교회 문제를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는 박윤선 목사에 대한 비판이 필요했다. 마침 나에게 자료가 많았고, 한국교회를 위해 책을 쓰게 됐다."


    ▲ 박 목사는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전에, 한국교회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비춰지고 있는지, 한국교회가 본질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목사의 딸>은 삼류 소설?…"아버지는 욱하는 스타일"

    박윤선 목사 가정과 가까이 지낸 박 목사의 제자들은 책의 내용이 허구라고 말한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박윤선 목사의 조카사위였던 김수흥 목사는 책의 내용이 거짓이라는 글을 <뉴스앤조이>에 기고했고, LA에 사는 박혜란 목사의 이복동생인 박성은 전도사도 참고 자료라며 장문의 메일을 <뉴스앤조이>에 보냈다. 이들은 책의 내용이 대부분 허구라고 주장했고, 박 목사의 저의를 의심했다. 박혜란 목사에게 이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먼저 박윤선 목사가 김애련 씨와 자녀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일부터 물었다. 박혜란 목사는 사실이라고 했다. 박윤선 목사는 분노가 많고 성미가 급한 성격이어서 폭행은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고 했다. 집에 잠깐 머물고 돌아갔던 외부인들이 폭행 사실을 모르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김애련 씨)께 다녀왔다고 인사했다. 평소 같았으면 왔느냐며 반갑게 맞아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방 안에 가만히 숨어 계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렸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을 여러 번 목격했다. 춘호 오빠(박윤선 목사의 첫째 아들)나 요한 오빠(박윤선 목사의 둘째 아들)는 더 자주 목격했다. 언니 오빠들은 어머니가 맞는 모습도 봤다. 밖에서는 성인처럼 추앙받는 아버지였지만, 가정에서는 자녀들과 어머니께 폭력을 행사하는 분이었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우리를 더 힘들게 했다.

    재혼하고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화주 어머니(박윤선 목사의 둘째 부인)가 오신 후로는 자녀들에게나 어머니에게나 폭력을 쓰지 않았다. 아예 말대꾸 자체를 하지 않았다. 싸움을 걸어오면 가만히 계셨다. 어머니(김애련 씨)가 갑작스럽게 떠난 후로 충격을 받으셨던 것 같다. 조강지처가 빨리 죽은 사람들은 후처에게 굉장히 잘한다. 또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서다. 이복동생들은 아버지의 예전 모습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와 성은이는 14년 차이가 난다. 우리 형제들은 이복동생들에게 예전 일을 일절 말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박윤선 목사와 김애련 씨가 다툰 이유를 자식들 때문이라고 한다. 교단이나 신학교 내에서 박 목사가 바른 소리를 하면 "박 목사는 자기 아들이나 잘 다스리라"는 소리를 들었고, 이런 문제가 부부 싸움의 발단이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목사는 첫째 오빠(박춘호 씨)의 비행으로 아버지가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버지의 잘못에서 비롯된 싸움도 잦았다고 했다.

    "춘호 오빠는 아버지의 의처증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임신을 피하기 위해 잠자릴 거부하시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의심했다. 낮에 남자가 집안에 뭘 고치러 와도 큰 싸움이 났다. 춘자 언니(박윤선 목사의 첫째 딸)는 아버지의 급한 성미를 싸움의 원인으로 생각했다.

    돈 문제도 있다. 많은 사람이 아버지께서 가난한 신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신 내준 일을 회자한다. 헌데, 어느 누구도 어머니 입장에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녀는 6명이고, 신학생들과 손님들은 거의 매일같이 집에 찾아와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모든 일을 어머니와 상의 없이 혼자 결정했다. 어머니는 홀로 가정 살림을 떠안고 있었다."

    "내막도 모르는 사람들이 거짓 운운"


    ▲ 박혜란 목사는 아버지가 겉으로는 거룩하게 보여도, 그 이면에 감춰진 모습도 많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목사의 딸>에는 김애련 씨의 사망 당시의 상황이 자세히 나온다.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이던 박윤선 목사는 김애련 씨 사망 후 10일 만에 귀국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박혜란 목사가 아버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당시 정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글을 썼다고 비판한다.

    "귀국이 늦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시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귀국 후 행동이 문제였다. 충격에 빠진 자녀들에게 아무런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자기 할 일에만 몰두했다. 그 뒤로도 어머니의 추도 예배를 한번도 드리지 않았고, 어머니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재혼 문제도 그렇다. 아버지가 공부와 목회만 아는 분이었고, 젊었기 때문에 여자가 필요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당시 요한 오빠는 17살이었고, 나는 13살이었다. 자녀들에게 허락을 구했어야 했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알려는 줬어야 했다. 따로 나가서 살 것 같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집으로 데리고 올 사람이라면 결혼 전에 결혼한다는 말이라도 해야 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박윤선 목사의 둘째 부인인 이화주 씨가 전처의 자녀들을 차별했다는 내용은 사실일까. 책에 따르면 이화주 씨는 전차와 후처의 자식들을 차별하고, 전처의 자녀들에게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박윤선 목사의 제자들은 이화주 씨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후처로서 전처 자녀들에게 그만큼 잘한 분도 없다는 것이다.

    "책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집에 잠깐 들러서 아버지와 얘기나 하고 돌아갔던 사람들이다. 부엌에서 살림을 도와줬던 아주머니들이 그들보다 집안 사정을 더 잘 알 것이다. 남자들은 그런 걸 볼 수도 없고, 또 그들이 보는 앞에서는 이화주 어머니가 저주하는 말을 뱉을 수도 없다. 허순길 박사는 단열(박윤선 목사의 셋째 아들)의 공부를 봐주기 위해 집에 들락거렸다. 허 박사와 인사는 했지만, 한번도 대화를 해 보지 않았다. 글을 보니까 나를 혜란이라고 부르더라 상당히 불쾌했다.

    이복동생들이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 또한 당연하다. 우리 형제들은 이화주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외부에 전혀 말하지 않았고,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나와 제일 가까운 분인 외숙모에게도 일절 말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버지께 누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께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걸 집념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어떤 이들은 이화주 어머니가 남에게 돈을 꾸어 나의 대학 등록금을 대 줬는데 어떻게 차별 운운할 수 있냐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도 사실이 아니다. 돈 꾸는 일은 자주 있었다. 등록금 말고도 생활비가 항상 부족해 큰아버지 신세를 많이 졌다. 당시 서울대학교 등록금은 다른 대학의 반도 안됐다.

    4년 내내 등록금을 대 준 것도 아니다. 1년간은 가정교사를 하면서 스스로 학비를 마련했고, 한 학기는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등록금을 낼 때면 항상 불평했다. 혜란이 등록금 때문에 못살겠다는 말을 자주했다. 집에 가면 그런 불평을 계속 늘어놓으셨다. 집에 가는 게 끔찍이 싫었다."

    의문의 꼬리는 책의 출판 시기로까지 이어진다. 박윤선 목사와 이화주 씨가 살아 있을 때는 책을 내지 않다가, 지금에서야 책을 출판한 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반론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악랄한 말들이다. 도대체 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5년 전부터 집필을 준비했고, 4년 전에 탈고했다. 아가페 출판사에 찾아가기 전에 ㅅ출판사와 ㅎ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했다. 두 곳 모두 처음에는 반겼다. 하지만 내부 회의를 거쳐야 한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고, 결국에는 출판을 못하겠다고 하더라.

    내가 직접 아가페에 원고를 보내진 않았다. 친구에게 원고를 보여 줬고, 그 친구가 아가페에 원고를 보냈다. 아가페도 출판 여부를 놓고 직원들의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정형철 대표가 출판을 적극 지지했다. 우여곡절 끝에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늦어진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복수심이다 이런 말은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다. 처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20년이 넘었다. 진실을 남겨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책을 썼다."


    ▲ 인터뷰는 3시간 가까이 이어졌지만, 박 목사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어렸을 적 추억을 얘기할 때는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아버지에 의한 강제 결혼이었나…가치관 차이로 남편과 불화

    결혼 문제는 어떨까. 박혜란 목사는 <목사의 딸>에서 자신은 결혼을 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박윤선 목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혜란 목사가 결혼을 밀어붙였다고 주장한다. 박윤선 목사가 신앙이 약했던 사람을 사위로 받아들일 리 없고, 둘은 죽고 못 사는 연애 끝에 결혼했다는 것이다.

    박혜란 목사는 황당해했다. 도대체 자신의 연애사를 어디에서 듣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공대를 다니다 보니 주변에 남자들이 많았다. 나는 남자를 무서워했다. 결혼할 생각도 없었다. 현재의 남편이 졸업 후에도 계속 따라다녔다. 집에 가면 문밖에 와 있었고, 어딜 가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역시 당시에는 친구가 없어 외로웠고, 일할 때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남편의 도움을 받았다. 그때부터 왕래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추호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부산으로 내려가시기 전에 그 남자와 결혼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 그냥 친구다"라고 했고, 아버지는 결혼할 사람도 아닌데 왜 만나느냐며 화를 내셨다. 만나는 남자가 있는데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하니, 아버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께 뺨을 맞았다.

    아버지는 많이 불안해했다. 나 혼자 서울에서 지내는 것도 그렇고, 당시에는 일이 늦게 끝나 통행금지 시간이 다 돼서 집에 도착하곤 했으니 말이다. 당시에 나는 자존감이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 없이 자란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를 던진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과 결혼한 것 같다.

    도대체 남의 연애사를 얼마나 잘 안다고 그런 말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의 결혼 문제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연애 얘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왜 남의 결혼 문제까지 추측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께 반항했다는 얘기도 나오더라. 부모님께 꾸지람받은 일은 거의 없었다. 결혼 문제로 아버지께 처음으로 맞았다. 그때 아버지가 자유 방종 뭐 이런 말을 했고, 그 말을 어머니가 이복동생이나 김수흥 목사에게 얘기한 것 같다."

    책에 쓰인 대로 그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가치관의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어느 정도 단념하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지낸다고 했다. 경제적인 상황도 좋아져 지금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 수 있는 수준은 된다고 했다.

    남편과의 불화로 불면증을 앓기도 했다. 젊었을 때부터 민감한 성격 탓에 종종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6년 전에는 증상이 심해져 전문 상담가를 찾아가 상담 치료를 받기도 했다. 남편과의 갈등이 누적되고, 나이가 들자 증상이 심해졌다. 하지만 지속적인 상담 치료와 목회 활동을 통해 현재는 거의 완치됐다고 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이화주 씨의 자녀들은 이복형제들을 친누나와 친형처럼 따랐는데, 박혜란 목사는 왜 항상 자신들을 이복동생이라고 부르는지, 동생들은 궁금해한다."

    박 목사는 이복동생들을 차별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사용한 건 아니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계모나 이복동생이라는 표현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이복동생(Half-Brother)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한인 교계에는 박윤선 목사의 전처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책에서 이복동생이란 단어를 사용했다고 했다.

    한국교회 갱신 위해 책 집필

    박혜란 목사는 인터뷰 내내 아버지를 힐난할 목적으로 책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통해 한국교회가 말씀과 기도의 전통을 유산으로 받았고, 동시에 아버지의 한계를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그대로 답습한다고 했다. 한국교회를 위해 아버지에 대한 바른 평가가 필요했고, 아버지의 한계를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에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했다.




    ▲ 박 목사는 저녁 식사 후에는 항상 성경을 읽는다고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성경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고 했다. 자신은 철저한 문자주의자라며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 의미를 찾는다고 했다. 현재는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을 대조해 가며 잘못 번역된 부분을 수정하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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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5.04.05 22:45
    박채동, 개혁주의 마을


    {개혁주의 마을} 어울림 <박윤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사악한 목사(?)들과 신학생들> (2015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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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부모가 미쳐서 자식을 죽이려 한다면 얼른 도망치는 것이 현명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해치려 한다면 부모를 뿌리치고 도망가는 것이 현명합니다. 신중하게 판단하되 이런 경우는 부모와 분리돼 살아가는 것도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극단의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서툴거나 표현을 못하거나 단점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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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는 까닭만으로 우리는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해야만 합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해 기꺼이 죽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게 죽으신, 신인神人이신 예수님’, ‘아버지, 어머니’를 빼놓고 나를 위해 기꺼이 기쁨으로 죽어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것만으로 예수님과 부모님은 우리의 아낌없는 존경과 사랑을 받기에 마땅한 분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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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마다 가장의 상像은 다릅니다. 20세기 말 미국 식 평등주의 가정의 ‘달콤 짝짝 권위 없는 아버지 유형’을 20세기 초, 그것도 고종이 황제 노릇하던 시절에 태어나신 분에게 적용해 시비를 일삼고 난도질하는 짓은 합리를 따른 올바른 평가 방식이 아닙니다. 후궁을 많이 둔 다윗이나 세종대왕을 “색마”로 몰아가는 짓과 같습니다. 임진왜란 중에도 때때로 첩과 성관계하신 이순신 장군을 “군기 문란”으로 몰아가는 황당한 짓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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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장군은 전란 중에도 색을 밝힌 ‘색마’, ‘군기문란’에 빠진 무능하고 부패한 장군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휼륭한 장수이십니다. 우리나라가 왜국의 속국으로 떨어질 위기에서 우리나라를 구해낸 위인이십니다. 다윗과 세종대왕이 ‘색마’입니까? 성에 미친 ‘성중독자’입니까? 아닙니다. 다윗의 생애 한 단편은 하나님 앞에서 흠이 많은 생애였지만 성경의 사가들은 다윗의 전체 생애를 “하나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의 용사”로, 우리나라 역사가들은 세종대왕을 “성군聖君”으로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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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박윤선 목사님이 요즘 아버지들처럼 부엌에서 앞치마 두르고, 평등주의 식으로 자녀들을 친구처럼 상대하고, 더 나아가서는 아이들을 위해 재혼도 하지 않은 채 밥하고 빨래하는 삶을 사셔야 했습니까? 지금 잣대를 과거 시대 남자에게 들이대는 것은 ‘폭력’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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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선 목사님은 조선 유교가 뿌리 깊게 박혀 있던 시절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조선 유교주의를 벗어 던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을 위해 사셨습니다. 그러함에도 ‘그 시대 아들’이신만큼 요즘 시대 ‘솜사탕 같은 아버지 유형’과는 다른 점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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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선 목사님 과거 행적에 대해 ‘팩트의 정확성이 부족한 {목사의 딸}’을 읽고선, 혹은 ‘{목사의 딸}을 선전하는 출판사 광고 문구’만 보고선, 혹은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만 읽고선 인터넷에서 박윤선 목사님을 난도질하는 얼빠진 목사(?)들과 신학생들이 여러 명 있는데, 참 한심한 노릇입니다. 그냥 솔직하게 “나는 자유주의자로서, 21세기 과학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성경의 기적들을 신화로 해석하지 못하는 보수주의 신학, 보수주의 꼴통을 증오한다. 평등주의 교인들에게나 여권주의 여자들에게 아첨 떨어서 점수 좀 따고 싶다.”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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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 ‘성경의 권위’와 함께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며 ‘예수님을 인간 예수’, ‘도덕적 스승’으로 격하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기세를 떨치며 주님의 교회를 허물 때 ‘자기 주인이신 주님’을 알아 ‘성경의 권위와 주님의 신성’을 지키심으로써 주님의 교회를 지켜내신 박윤선 목사님······. 한국 교회 보수주의 신학의 중요한 인물 박윤선 목사님······. 보수주의 신학을 증오하는 나머지, 박윤선 목사님 과거 행적 단편을 두고 ‘박윤선 인생과 한국 보수주의 신학 전체’를 부정하려는 인터넷 목사(?)들과 신학생들은 ‘자기 주인이신 주님도 몰라보는 미친개들’,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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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인간들 특징이 있습니다. ‘성경 영감’ 부정입니다. 보수주의 신학을 부정하는 자들은 ‘성경 영감’론에 악마의 인식이 있는 자들입니다. 혼전 경험을 맘껏 해 보고 싶은데, 성경과 보수주의 신학이 이걸 반대하니까 거의 히스테리성 신경질을 부리는 젊은 신학생들도 꽤 있더군요. 차마 본심을 드러내지 못하니까 보수주의 신학에 대해 저열한 앙심을 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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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선 목사’라는 한국 교회 보수주의 거목을 “위선자 바리새인, 기복주의 우상숭배자”로 몰아가서 어떻게든 박윤선 목사님이 대표하는 한국 보수주의 신학까지 부정하고 싶은, 양심이 화인 맞은 ‘사이비 목사’들과 신학생들······.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때렸다.”는 말만 나오면 일단 앞뒤 안 가리고 발광 증세를 보이는 일부 어리석은 여권주의 여자들······. 이런 여자들은 정작 자신의 언어폭력은 전혀 반성하지 않는 양심, 사이비 목사들과 똑같은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한심한 족속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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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옛 시대 남성에게 20세기 말 미국 식 아버지 상을 투영해 시비를 걸어 난도질하는 목사(?)들 글과 신학생들 글을 보면, ‘진짜로 고등 교육을 받고 학문하는 사람들 글쓰기가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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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5.04.15 17:14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박성은 (박윤선의 아들)  1


    <기독개혁신보> (2015.3.31.)

    < 박성은 박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

    <필자 박성은 / 박윤선 목사의 4남으로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M.D.), 웨스트민스터신학교(캘리포니아)에서 M.A.R.를 받고 박사학위 과정에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I) 의대 임상 부교수,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통증의학 및 신경내과 병원 운영. 캘리포니아 Beuena Park 나침반교회 자원봉사 전도사로 봉사하고 있다.> 


    “당신은 진정한 개혁주의로, 인간의 부패성에 대해 깊이 느끼셨던 분이셨습니다. 혜란 누님의 글을 보셨다 하더라도 훼손에 대해선 그다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비록 세상적 기준으로 자상하고 상세하게 또한 방법론적으로 자식들을 사랑하지는 못하셨다 해도 늘 단순하고 진실하게 우리를 대해주셨던 모습, 오늘 따라 너무 그리울 뿐입니다.”

    아버지, 지금 얼마나 기쁘고 좋으십니까? 저는 아버님 살아 계실 때 당신 밑에서 신학 수업은 못해서 한이 맺히긴 하였고 또 안수 받은 목사가 되지 못해 훌륭하게 설교자로서 직접 강단에서 영혼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선 목회자가 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는 일터, 즉 환자를 보면서 때에 따라 눈물로 기도도 해주고, 의심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변증적으로 가르치고, 확신을 주기 위해 이런 저런 말을 하며 권면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끔 목회자나 신학 교수의 일을 하는 것도 그려 보지만, 그래도 전 제가 하는 이 일에 적지 않은 기쁨을 가집니다. 

    단순한 아버지를 좋아했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당신의 온 삶의 열정을 당신이 “당신님”이라고 특별히 불러드리는 삼위일체 창조주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인 성경에 쏟으신 것을 저는 어릴 적부터 알았습니다.

    당신은 항상 두툼한 손가락으로 낡은 가죽 덮개로 된 온갖 가장자리에 간단히 코멘트를 써놓은 너덜너덜한 성경을 손에 쥐시고, 당신이 좋아하시던 파카 만년필로 된 굵은 글씨로 이곳저곳으로 선을 그어가면서 읽고 계셨죠. 때로는 조용한 소리를 내시면서 읽다가, 원고지에 굵은 글씨로 몇 자 적으시다가, 성경 원어를 찾고, 또 다른 서양 주석가들의 주석들을 펼쳐보시고 조용히 웃으시곤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전 어머님의 잦은 주의대로, “아버지는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바친 분인데, 내가 아버지 대접하려고 놔둔 것 건드려선 안 돼. 너희들도 커서 아버지처럼 살면 얼마나 좋겠냐!” 하시면서 당시로선 조금은 싫증나도록 저희들을 다독이시던 것 기억합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은 잘 알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기대하지 않았고 그런 단순한 아버지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어머니보다 더 좋아했으니까요.

    당신은 평생 저희들의 옳지 못한 행동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교단적으로도 자녀들의 일로 많은 노고를 치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이 생명을 걸고 외치던 “교회끼리 소송은 안 됩니다”라는 주장에 찬성하지 않던 분들이 “자기 아들이나 잘 다스리라고 해!”라며 당신의 형님들의 비행까지 들고 나와서 강단에서 비평할 때 당신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으셨겠지요.

    그래도 당신은 그런 형님을 끝까지 도우셨고 위해서 끝까지 기도하시다 가셨죠. “기도는 내가 죽은 후에라도 이뤄져!”라고 하시면서요. 정말 그랬습니다. 당신의 말씀이 맞았어요. 형님 세 분 다 참신한 신자로 이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를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니까요.


    저희가 어릴 때부터 당신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당신을 재정적으로 도와 공부하게 했던 몇몇 미국인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가정예배 때도 기도하셨고 또 성탄절 때마다 카드를 보내셨습니다. 특히 Bouley(“뻘레이 할머니”) 여사는 그녀가 70년대 초반쯤 세상 떴다는 말을 들으실 때까지 계속 기억하시고 기도하셔서 우리는 그분이 누군가 하고 그저 듣기만 했습니다. 

    율법주의에 매이지 않은 용기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당신은 선교사들을 그리도 사랑하셔서 당시 전후 복구를 위해 여러 해 봉사하고 가는 출항 스케줄 상 주일 아침에 본국을 향해 홀로 영구 귀국하는 스푸너 선교사를 그냥 돌려보내기가 너무도 안 되어 “나라도 가서 꼭 위로의 말이라도 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곤 당시 경직했던 고려파의 신학 교육 수장으로 있음도 마다 않고 본국으로 떠나는 스푸너를 위로하러 급히 주일 아침 시발택시를 잡아타시는 것을 어머니 손을 잡고 봤습니다. 바로 신학교 사택 앞이었죠. 그 후 저는 잘 몰랐는데 많은 어려움을 당하셨더군요.

    전 당신의 용기와 율법주의에 매이지 않으신 아버님 당신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후에도 아버님은 주일 성수에 대해서도 어머니와는 다르게 이런저런 권면은 많이 하지 않으셨고 주일은 예배에 집중하라고만 하셨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주일 설교 마치시고 오후 서너 시간 편히 쉬시면서 저희더러 손발 좀 주물러달라고 하시곤 하셨던 것 저희들은 기억합니다.


    선교사들의 노고를 늘 생각하셔서 당신의 생일에는 늘 한국 주재 선교사 가족들을 집으로 대거 초청하시곤 해서 어머니께서 교회 요리 잘 하시는 집사님들을 불러 모으시던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 당신은 말씀은 별로 많이 하시지 않았지만 정말 이해심 많은 분이셨다고 저는 자랑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70-80년대에 장발로 다닐 때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리 깎으라’고 하셨지만 당신은 대체로 침묵하시다가도 가끔 “그거 아이들 요즈음 추세인데 그냥 두라우. 당신 말대로라면 나도 지금 상투를 틀란 말이요?”라고 하시며 우리를 변호해 주시곤 하셨죠.

    당신은 우리가 가족끼리라도 모였을 때는 혹시라도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그들의 성취에 대해 조금이라도 폄하하는 말을 할 때면 늘 우리를 경계하신 것으로 우리 모두 기억합니다. 정말 아버지가 옳으셨어요. 제가 곁에서 봐도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폄하하는 말을 하신 기억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내 생각을 들여다보면 냄새 나서 다 도망가 버릴 거다”

    아버지 당신은 진정한 개혁주의로, 인간의 부패성에 대해 깊이 느끼셨던 분이셨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지금 살아서 혜란 누님의 글을 보셨다 하더라도 당신 자신의 명예 훼손에 대해선 그다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내가 그랬지 않았는가? 당신들 누구라도 나하고 삼일만 가까이 있어보고 특별히 내 속에 들어와서 내 생각을 들여다본다면, 냄새 나서 다 도망가 버릴 거라고 말일세. 사실 난 내 딸 혜란이가 말한 것보다 더 나쁜 놈이라오”라고 말입니다.

    당신은 늘 인간의 죄악상에 대해 뼈저리게 일러 주셨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여 “구원을 받았지만 항상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정예배 시간에 어린 저희들에게도 귀가 닳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신뢰할 바가 아니고 사랑할 바라”고도 말입니다. 인간은 의롭다고 칭해진 것이지 의로운 것이 아니므로 계속 성화해 나가야 한다는 개혁주의 진수에 충실하셨고, 인간이 아무리 악을 행해도 안타까워는 해야 하겠지만, 놀랄 것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바울 신학에서 악한 생각을 도모하는 인간을 헬라어로 ‘삵스’로 표현하였으며 단지 신체적인 몸을 뜻하는 헬라어 ‘소마’와는 구분해서 말한 부분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물론 이 부분은, 흑백 논리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정암이 인정하는 대로, 바울이 두 단어를 기계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혼용된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이나, 확실한 것은 정암은 인간에 대해 말할 때 ‘죄로 향하는 몸’(‘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나니’, 롬 8:6)을 말할 때와 ‘중성적 의미로서 몸’(‘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롬 12:1)에서 말하는 ‘몸’과는 날카롭게 구분하시곤 했다.]

    제가 “아버지, 난, 교회에서 녹을 받지 않고 주님의 일을 할 거예요!”라고 말한 적을 기억하십니까? 그러자 아버님은 저의 교만한 마음을 걱정하시면서, “너 사람이 원래 다 진흙인줄 모르네? 사람은 자기가 뭘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돈을 받아도 별 것 아니고 안 받아도 대단한 것 아니다. 사람은 일정한 보수를 받으며 책임을 지는 것이 더 효과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이 두 가지 다 잘하기 어렵다! 너무 장담하지 말아라. 겸손해라”라고 저에게 경계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갑니다.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지 말라”

    아버지, 당신은 소시 때부터 동양철학에 심취하시고 대학 중용 시경 서경 등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섭렵하셨고, 또한 유교의 이단설이라 말씀하시며 장자나 노자에 대해서도 가끔 가정예배 때 인용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놀랍게 당신은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먼 분이셨습니다.


    항상 짙은 스킨십으로 우리를 대하시고 함께 만들어낸 애칭을 자식들과 쓰기도 하시며(예를 들어 막내아들을 ‘거북님’이라고 부름) 우리로 하여금 거의 버릇없는 자식같이 만드신 당신. 식사하실 때 옆에서 함부로 눕곤 하면, 어머니께서는 “어른 식사 하시는데 누워있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지, 당신은 별로 관계도 안하셨고 허례허식을 너무 지나칠 정도로 차리지 않으셨던 당신. 며느리나 딸과 차의 뒷자리에 동석하시면 항상 그들의 손을 깍지 끼어 잡고 계시던 당신. 비록 세상적 기준으로 자상하고 상세하게 또한 방법론적으로 자식들을 사랑하지는 못하셨다 해도 늘 단순하고 진실하게 우리를 대해주셨던 모습, 오늘 따라 너무 그리울 뿐입니다.

    아버지 당신은 권위에 대하여 성경적 진리를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동양철학을 하신 당신은, 지나친 것들은 성경적 원리에 의해 제거해야 되지만, 일반은총의 깨달음에 의한 동양적 윤리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가정예배 시에 말씀하시던 것들 중, “부모는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지만 이 세상에서는 다른 어떤 권위보다 더 깊은 권위를 소유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동양 윤리에서 말하는 “부모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온유와 울음으로 손을 붙들고 호소할지언정 부모에게 고함지르고 험한 말이나 혈기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유교적 진리는 그 자체로선 구원은 못 주지만,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만 건질 수밖에 없는 어떤 절박한 상황에서, 자기의 부모를 생각해서, 부모의 자식인 동생을 자신의 아들보다 항상 먼저 위험에서 건져야 한다”는 유교적 윤리는 지나치다고 하시며 잘못된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셨습니다(필자는 여기서 정암이 한 말은 분명히 기억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서 어디서 정암이 그런 글을 인용하셨는지 아직 찾아 봐야 합니다.) 참 균형 있는 좋은 가르침이라 여겨집니다.

    항상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신 이유에서 권위를 가지듯, 우리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육신적 이유가 되고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그 점에서 특별히 가지는 부모의 권위도 무시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이 너무 와 닿는 이 시대입니다.


    당신이 바치신 삶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박성은 2

    <기독교개혁신보> (2015.4.15.)


    < 박성은 박사, 캘리포니아대학교수 >

     

    "딸의 대학 등록금을 대느라고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신학교 월급으론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아 항상 돈을 빌리러 다니던 계모를 원망하고 저주하는 누님에 대해서는 갸우뚱 할 따름입니다."

        

    "참 진리가 다수결에 의해 몰락되고, 비진리가 군중에 의해 진리로 둔갑하는 이 시대에, 진리 편에 서기 위해선 기꺼이 고난도 감수하던 당신의 외침은 가슴 벅찬 메아리로 아직 남아있습니다." 

     

    아버지, 외국 생활을 많이 하셨던 당신은 영성이 메말라가는 서양 신학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동양 철학과 성경을 비교하여 성경의 탁월성을 드러내고 또한 서양 신학이 잊어가는 성경의 가르침을 당신의 잠언 주석을 통해 영미에 소개하려는 뜻을 가지셨음을 기억합니다.

     

    항상 권위주의를 배격하셨던 아버지

     

    당신이 가졌던 더욱더 방대하게 동양윤리의 옳고 그름과 또한 성경적 윤리관에 비해서 탁월치 못함을 드러내시길 원하셔서 한동안 잠시 그런 계획을 가지셨으나 일의 어려움을 아시고 접으셨지요.


    수많은 성경주석을 접한 당신은 당신의 주석이 누구보다 우수하다 고집하지 않으셨음도 저는 압니다. 누가 무슨 악한 말로 오해를 하고 악한 말로 뒤집어 씌워도 그저 침묵하고 정진하고 하나님만 바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권위주의는 항상 배격하셨음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제자들이 설교할 때도 항상 앞에 앉으시고 자주 필기도 하시곤 했습니다. 제자 목사님들이 와서 세배를 할 때도 대부분 함께 맞절을 하시는 때가 많았고, 거의 대부분 손자 벌 되는 신학생들에게도 존댓말을 쓰시는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교회에서 외식주의와 종교적 권위주의를 배격하려고 목사 가운도 입지 말라고 하셨고 그저 겸손히 은사에 따라 봉사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했음을 저희들 모두 잘 기억합니다. 또한 일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목사는 항상 보따리를 싸고 목회를 해야 하며 목사도 다른 장로와 함께 임기제로 해나가라고 힘든 주문을 하셨음을 압니다.

     

    우는 소리로 기도하셨던 아버지가 이해됩니다

     

    제가 아주 너댓 살 때에도 자주자주 술 취해서 밤에 집으로 와서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큰 소리로 주정하던 큰 형님 때문에 무던히도 울며 하나님께 간구했던 당신은 어린 제 눈에도 이상한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술주정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돕는 가까이 거주하는 신학교 학생들은 술 취한 형님을 일단 안정시켜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고 붙들어 묶곤 하였고, 언젠가 비가 오는 한밤중에 술에 취한 형님을 묶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데, 아버지는 형님의 머리가 땅에 닫지 않도록 하게 하려고 손수 방석을 가져다가 형님의 머리 밑에 놓아두시던 것을 어린 제 눈으로 본 기억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왜 저러실까 했지만, 다윗의 용서와 사랑을 배신하고 심지어 아비의 부인들을 겁탈했던 압살롬의 죽음을 애곡으로 반응했던 다윗에 대하여 읽고 이해했습니다. 당신의 기도대로 그리고 당신이 항상 하신 말씀대로, ‘기도는 죽은 다음에도 이루어져라고 하시던 말씀대로 큰 형님은 그의 말년에 저희 어머니 자식들과 가깝게 보냈고 그가 소천하기 전 후모가 계신 양로병원에 와서 엎드려 절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곁에서 수십 년 주석을 받아 적었던 딸 같은 비서에게(실제로 아버님이라 불렀음) 물건을 건넬 때도 책에다가 얹어서 주셨고, 그의 팔십 생애에 있어서 단 한 번도 남녀유별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전 어머님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싶어서 몰래 등에 업고 학교로 데리고 가셨던 당신, 또한 당신보다 십 수 년 연하였던 어머니에게도 늘 존대를 하셨던 아버님에게 폭력을, 더군다나 습관적으로 행사했다고 말하는 자녀를 가지셨던 당신은 정말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자기 아버지를 온 천하에 대고 폭언과 거짓으로 매장하는 딸을 둔 것 하나만으로 당신은 놀라운 삶을 사신 분이 확실합니다. 딸의 대학 등록금을 대느라고 제 달 제 달 나오지도 않는 신학교 월급으론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아 항상 돈을 빌리러 다니던 계모를 원망하고 저주하는 누님에 대해서는 갸우뚱 할 따름입니다. 이런저런 복잡한 시대적 그리고 가정적 상황에서 그것들을 극복하고 주석을 쓰시려고 할 때에는 한 가지 일에 초인적 집중력을 아버지처럼 구사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그리고 아버지 당신은 어린아이와 같이 울면서 아침마다 긴 시간을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자주자주 매우 안타까워서 견디기 어렵다고 하나님께 토로하셨습니다. 그리곤 가까이 다가가서 당신의 기도 소리를 들어보면 온갖 자세한 도고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어린 저도 듣곤 했습니다. 이제야 저는 왜 아버지가 그토록 안타까워 견디기 어렵다는 말을 하나님께 자주 하셨는지 이해가 조금은 갑니다. 그 목소리는 늘 반쯤 우는 소리였습니다.


    그러심에도 저희들더러 기도를 꼭 길게 해야 한다느니 왜 기도생활을 그 정도로 하느니 하시는 말씀은 별로 하지 않으시고 단순히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만 아주 가끔 하셨습니다. (겨울엔) 항상 두터운 옛 만주 봉천신학교 교수 시절부터 입던 두껍고 누런 털 달린 오버코트를 입으시고 두터운 스펀지 방석과 성경을 옆에 끼고 하루도 빼지 않고 뒷산으로 기도하러 오르내리셨던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늘 하얀 손수건을 꾸깃꾸깃 주머니에서 꺼내서 코를 풀곤 하셨지요. 늘 기도할 수 있는 뒷산이 있는 곳에 집을 구하려고 어머니가 노력하셨지요.

     

    당신이 바치신 그 삶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개혁주의자셨던 당신은, 구약의 모든 것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덕만으로 우리 신자에게 구원은 완성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정을 받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구원의 정점적 완성(consummation)은 되지 않았기에, 아직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죄성과 악한 경향을 향해 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항상 당신은 설교에서, “신자의 평안함염려하지 말라는 설교를 수도 없이 하셨으나, 또한 너희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12:4), 또한 내 몸을 처 복종케 함은”(고전 9:27)이란 말씀도 많이 하셨지요. 당신의 그러한 가르침을 아들은 신학교에서 뒤늦게 “Already, But Not Yet”(이미 그러나 아직)의 원리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원받고 어린아이와 같은 기쁨과 평안함을 누리면서도, 또 한편 영적 전쟁(warfare)을 위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6:17)도 간단없이 강조하셨습니다. 정말이지 당신이 추구하던 개혁주의는 위클리프와, 루터, 칼빈, 그리고 바빙크와 워필드와 함께 서 있었습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 흘려 전한 복음으로 한국 땅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수적 부흥도 했지만, 아직도 복음의 씨앗이 깊게 뿌리 내리지 못한 조국을 많이 염려하셨음을 곁에서 보았습니다. “딱 거져 카톨릭같이 되어 가누나!” 하시며 복음이 삶으로 연결되지 못함을 염려하셨고 많은 교인들이 구경꾼 같은 위치에 있지 않는가라고 근심하시곤 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민족상잔의 전쟁, 그리고 그 후에도 경제적 정치적 안정을 이루지 못한 조국의 강단을 많이 생각하셨음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강단의 말씀 사역의 부흥을 생각하여 온몸을 던져 불태워 성경주석을 쓰신 것을 이 아들은 지켜봤습니다. 소풍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하고, 미국을 수도 없이 왕래하셨지만 그 흔한 국립공원(national park) 한 곳도 가 보지 못한 당신은 그저 사명에 몰두하여 사시다 가셨습니다.


    당신의 뇌리에는 그저 강단, 성경주석, 그리고 신학교밖에 들어 있지 않았음을 잘 압니다. 비행기를 타도 주석 원고를 손에 드시고, 어디서 누구를 기다려도 돌아앉아 주여 주여하시며 기도하셨던 당신을 언짢게 생각하며 균형이 없는 지도자, “치우친 삶,” “하나밖에 모르는 분이라며, 지금 좀 풍요로워진 위치에서 괴이한 눈초리로 보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그런 당신이 그립고 그렇게 바쳐진 삶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하나에 올인하지 않는 삶으로는 적은 성취도 가능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늘 진리 편에 서라하셨던 당신은 순수한 복음 진리 때문에 많은 오해도 받으시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셨음을 압니다. 90년 전 보장된 교수직과 큰 교단의 이점을 포기하고 조그만 신학교를 세워 진리 운동을 주도하던 G. 메이쳔 박사, 그리고 보장된 노후를 마다하고 새로 시작하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참여하셨다가 1년 후 폐렴으로 소천한 프린스턴신학교의 구약학 전설, 로버트 딕 윌슨(Robert Dick Wilson) 박사, 그리고 존 머리 교수, 코넬리우스 반틸 박사, 모두가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음을 저는 압니다.


    또한 당신은 그들이 결코 분열주의자들이 아니라고 변호하시며, 강단이 두 쪽 나도록 내리치며 절절히 외치던 당신의 사자후의 설교가 유독 그리워지는 시대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분열주의자란 말도 때론 감수해야 한다고 외치시던 당신의 갈라진 목소리가 유독 듣고 싶은 때입니다. 진리 편에 서기 위해선 고난도 감수해야 된다고 단호한 자세로 일러 주시던 쉰 목소리가 많이많이 생각나는 때입니다. 참 진리가 다수결에 의해 몰락되고, 비진리가 군중에 의해 진리로 둔갑하는 이 시대에, 당신의 외침은 가슴 벅찬 메아리로 남아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사역에 사활을 건 기도

     

    저는 지금도 아버지 당신의 기도 소리를 아침마다 곁에서 듣는 듯합니다. 당신의 생의 말기에, 80을 바라보는 시기에, 젊은 네 교수님들과 손잡고 신학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셨습니다. 맨땅에서 선지학교를 시작하신 것이지요. 이제 갓 시작한 신학교는 모든 것 하나 가진 것이 없었음에도, 진리를 사모하여 모여든 많은 젊은이들과 꿈을 나누는 기쁨을 누리시는가 했습니다.


    허나 당시 고등교육의 질적 퇴락을 염려한 정부의 강경책으로 신학교 인가라는 문제로 당신은 날마다 눈물로 주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학생들의 학문적 미래와 또한 그들의 졸업 후 사역을 위한 학교의 위상을 위해 고등교육기관 인가는 모든 분들과 뜨거운 기도의 제목이었음을 잘 기억합니다. 당시로선 불가능하다했던 새 신학교 인가 문제는, 당신을 여윈 얼굴로 빈방에 홀로 앉아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도록 했었지요. 당신의 마지막 사역의 사활을 건 기도였습니다.


    당시 이미 당당하게 인가받아 있던 몇몇 신학교에 버금가는 위상을 남겨줘야 하겠기에 당신은 교수님들과 또한 교회의 어른들과 기도로 해결하기로 작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적으로 열매를 보게 되었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특별히 금식 후 죽을 드시는 당신의 까맣게 타고 초췌해진 얼굴의 미소는 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이십니다

     

    기도는 물론 영혼의 호흡이며 우리가 하나님과 가지는 아름답고 귀한 대화이니 모든 언어는 기도를 위해 있다고 말씀하신 당신은, 또한 기도가 영적 전쟁이기에 죽기내기로 시간을 확보하고, 죽기내기로 집중하고, 죽기내기로 우선순위를 바로 잡지 못하면 진정한 기도생활이 되지 않는다고 귀가 닳도록 역설하셨지요. 우리의 남아있는 죄성 때문에 싫어도 진액을 짜서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아직 성화의 완성을 이루지 못한 우리는 기도에 게으르고, 기도가 정욕으로 흐르고 성의가 없다고 누누이 강조하시며 기도가 싫을수록 기도하려고 애써야 한다고 하셨지요.


    아버지 당신은 기도를 똑똑한 정신으로 그리고 우리 속에 있는 가장 귀한 것을 다 동원해서 하라하셨고,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짓지 않”(삼상 12:23)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바쳐 넣어야 된다고 하셨지요. 결코 고행주의자도, 자학주의자도, 염세주의자도 아니셨지만 기도와 성결을 향한 고난은 당신의 설교의 주된 테마였으며 당신의 삶의 징검다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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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5.05.05 23:24


    김영재 교수가 본 <목사의 딸>

    저는 살림출판사에서 발행한 현대신학자 평전 시리즈의 <박윤선>을 쓴 김영재입니다.

    저도 <목사의 딸>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딸이 사춘기 시절에 어머니를 여의신 불행한 일과, 이어서 형제자매들이 겪은 쓰라린 일들을 열거하는 대목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박윤선의 인품을 여지없이 비판할 뿐 아니라 업적을 폄하하고, 아버지의 신앙과 함께 그분을 낳은, 그분이 몸 바쳐 일한 한국교회의 신앙과 신학이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하는 말을 읽고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말하듯이 독서도 많이 했으며, 고등교육을 받고 건축사의 경력도 가진 지성인이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교양인이십니다. 슬하에 세 자녀를 둔 가정의 주부이실 뿐 아니라 미국에서 신학까지 하여 목회학박사 학위도 얻고 목사 안수까지 받고서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목회하시는 등,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의 인격과 신앙과 신학을 잘못되었다 하면서 매섭게 비판할 수 있는지 의아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어떤 인물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써야 할 경우, 그 사람을 매장하기로 작정을 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익명으로 쓰거나 마지못해 조심스럽게 쓰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아버지를 비판하고 폄하하는 글을 스스럼없이 파상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유물론이 지배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전체주의 사회에서 자녀가 권력의 강압을 의식한 나머지 아버지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고 들어 왔습니다만, 자유를 누리는 정상적인 사회에서 그러는 일은 유례가 없는 줄 압니다. 일제강점기에 처음에는 독립운동을 하던 많은 지도적 인물들이 일제의 탄압에 마침내 굴종하여 변절하고 만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해방이 되자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민족 반역자로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이나 자손들은 그 일을 가슴 아파할 뿐, 그들 중에 자신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다른 사람들처럼 돌을 던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들이 아버지와 일체임을 의식해서이고, 그것이 그들에게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고 의리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잘못을 자기들의 잘못으로 동일시하는 것이 도리이고,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박윤선은 1905년에 출생하셔서 40세가 되기까지 일제강점기에 온 민족의 아픔과 고초를 함께 겪으며 사셨습니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함으로 교회를 탄압하며 신학교를 폐쇄할 때, 박윤선은 다른 교수들처럼 망명의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봉천에서 박형룡 교수와 함께 신학교를 섬길 때 신사참배에 한 번 굴하고는, 사임하고 은둔하면서 주석 쓰는 일에만 매진하셨습니다. 그때 한시적으로 굴종한 사실은 박윤선에게는 늘 마음 아파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연약하여 실족했던 사실을 자녀는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함께 마음 아파해야 할 터인데, 비웃는 조로 말하고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박해 아래 감옥에서 순교하거나 굴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을 우리는 존경합니다만, 그러지 못한 이들을 비웃거나 정죄하는 일은 아무도 감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연약한 죄인이어서, 어느 누구도 박해를 견딜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견디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을 나무라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교회가 신사참배한 사실을 해방 후 공적으로 회개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회개운동은 부분적으로 한국 장로교회가 분열되기 전, 소위 고려측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자신이 먼저 회개함으로써 회개하는 집회를 주도하는 한 분으로 역할을 하셨습니다. 1946년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회개하는 집회에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유년주일학교의 큰 학생들이 어른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은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피하여 다녔으나, 신사참배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여기시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찬송을 부르며 회개할 때, 온 교회가 울음바다가 되었던 일을 저는 종종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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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선 목사님이 “나는 죄인”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 것은 신사참배를 이기지 못해서였을 뿐 아니라, 그것이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한 사도 바울을 위시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속죄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다 깊이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란 루터가 한 말입니다만, 하나님을 더 알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면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더 의식하게 되고, 그래서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값지고 귀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가 덴버신학교와 교수님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을 가졌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이해하거나 전달하고 적용하는 일을 두고는, “오랜 기독교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의 교회 사역자들”과 한국과 같이 “기독교 역사가 짧은 데다 다종교사회에서 성장해 온 교회 사역자들”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압제와 고난 속에서 자라 왔으며 현재도 북한의 전쟁 도발과 위협 아래 살고 있는 분단국의 교회 목회자”와 “풍요와 자유를 누려온 미국교회의 목회자”가 말씀을 택하여 강조하고 적용하는 일에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흑인 목사들이 선호하는 말씀은 자유와 평등인 줄 압니다.

    개혁주의 전통을 이어받고 그것을 표방하는 한국장로교회가, 네덜란드교회를 개혁주의가 잘 발전한 나라 교회라고 하여 그대로 모방하거나 배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1960대 중반의 이야기입니다만, 네덜란드 주민의 50%가 주일예배에 출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곳 교회의 목회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 즉 성화를 주로 설교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다원종교사회에서 아직 기독교인이 소수인 한국교회의 목회자는, 회개하고 주께로 오라는 복음주의적인 설교를 여전히 많이 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개인을 대하여서도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달리 말씀을 선택하고 적용해야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는 가정을 심방할 때 그 가정의 사정을 알고 적절한 말씀을 택하여 권면하거나 위로합니다. 덴버의 교수님들은 소녀 시절부터 안고 있는 저자의 문제를 두고 상담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많이 이야기한 줄 압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유로움을 맛보고 누리게 되었다고 하는 저자의 간증은 귀하고, 그러한 경험은 하나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유는 죄에서의 자유로움이고, 세상의 염려와 근심에서 해방되어 누리는 자유입니다. 저자가 얻어 누리는 자유가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유로움을 얻은 그리스도인은, 마귀와 우상을 섬기며 돈을 사랑하고 육의 정욕을 따라 사는 데서 멀리 벗어나 성령을 좇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사주 보고, 점치고, 날 잡고 하는 옛 풍속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하면, 아직도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유하며 억압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자유로움을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롬 8:38,39)”을 확신하는 가운데 누리는 자유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온갖 핍박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전도자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루터 역시 교황에게 출교를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회를 개혁하고 복음을 드러내는 일에 충실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지체 높은 사람이나 그 무슨 권세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돈의 유혹과 세력에도 초연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모든 것에 당당해질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전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 하면 신학을 한 사람들에게는 낯익은 제목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먼저 설교하고 발표한 글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거기서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물 위에 있는 자유로운 주인이며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사에 섬길 자세를 갖춘, 각 사람에게 예속된 종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물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을 받지 않는 자유인이면서, 동시에 누구에게나 봉사해야 하는 모든 사람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첫 문장은 갈라디아서 5장 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를 해석한 말씀이고, 두 번째 문장은 5장 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는 말씀을 다시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은 종의 자세로 형제를, 즉 만인을 섬기는 자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 7장을 보면 성경은 “우리가 죄의 종에서 해방되었으니 이젠 자유인이다.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자”고 말씀하지 않고,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8)” 하는 말씀처럼 시종일관 의의 종이라면서 섬기는 삶을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고 말씀합니다.

    그는 고린도후서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이는 우리가 다 익히 아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어서 직분을 맡은 자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 산다는 것을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된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한다”는 것은 우리 목회자들이 흔히 간과하는 말씀입니다.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마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9)” 하고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후 4:12)”고 말씀을 합니다. 말씀의 사역자인 바울은 종으로서 교회를 위하여,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향유하도록 하기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종으로 섬긴다고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쉬라고 하시지 않고, 계속 새롭게 져야 할 멍에를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옳게 이해하고 한 것인 줄 압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향유하는 당연한 자유와 권리를, 형제와 이웃을 위하여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죄의 종으로 살지 않고 의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고기를 먹는 문제를 두고 바울은 먹을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가졌으나 자기가 고기를 먹음으로 약한 형제가 시험에 들게 된다면, 자기는 고기를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고전 8:13, 롬 14:13-23).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유를 누린다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은 섬기는 자유, 남을 배려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취약했던 부분을 폭로할 뿐 아니라, 그분을 낳고 그분이 섬기던 교회와 그분에게서 배운 많은 목회자들을 존중하지 않고 근심하게 하는 것은, 섬기는 종으로서 누리는 자유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무용론을 말하는 안티노미안들이 말하는 자유보다 훨씬 위험한 사상이요 자세입니다. 그것은 남을 배려하고 남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라는 성경이 가르치는 자유가 아니고, 방종입니다. 언론의 자유를 빙자하여 특종 기사에 혈안이 되어 사회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을 개의치 않거나, 진실을 말한다면서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고, 한 사람의 생명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이기적이고 몰지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는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는 자유입니다.

    딸의 아버지 박윤선은 태생적으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나머지 그 밖의 것은 잊어버리기가 일쑤인 분임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열정과 믿음을 가지셔서, 맡은 사역을 위하여 전력으로 질주하신 분입니다. 역사는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 점에서 박윤선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러 세우신 분입니다. 종으로서의 자유를 향유하기 위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안녕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자녀들과 즐길 수 있는 욕구와 당연한 권리와 자유를 희생하고 죽기살기로 기도하시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교회의 종으로 섬기는 삶을 사신 것입니다. 그렇게 사신 분을 두고 율법주의에 얽매여 있었다거나 아직 자유로움을 몰랐다고 평가하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오해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무엇인지 온전히 알지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오랜 유교적인 전통 문화에서 살아왔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유교적인 전통과 가르침을 부정하거나 배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기독교와 상통하는 윤리적인 가르침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존해야 합니다. 교회에 권위주의 혹은 교권주의가 팽배한 것을 반드시 유교적인 영향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중세의 긴 세월을 지나면서 교권주의로 굳어졌습니다. 샤머니즘과 같은 민속신앙이나 우상을 섬기려는 경향은, 우리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본능적인 종교심입니다. 구약의 선지자의 외침은, 그런 신앙에서 창조주요 구원의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역사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개혁교회와 전통을 존중하고 그것을 가르치신 박윤선 목사님을 두고 유교적인 권위주의와 샤머니즘을 못 벗어났느니 하고 말하는 것은, 어이가 없는 오해요 단죄입니다. 스스로 복음주의 신학자라는 분들이, 아버지의 가정생활에 대한 딸의 이야기를 동정한 나머지, 구체적인 논증도 없는 오해에서 비롯된 신학적인 편견까지 그대로 받아들여, 보수주의와 율법주의 혹은 샤머니즘적인 것을 동일시하며, 박윤선이 한국 보수주의 교회로 하여금 그런 신앙을 갖게 했다는 점에 동의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위대한 신학자임을 인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신학자라는 사람이 교회를 섬기지 않고 교회를 방관하거나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그냥 학자일 수는 있어도 신학자일 수는 없습니다.

    박윤선은 성경 말씀에 충실하기 위하여 평생을 바쳐 성경을 주석했고, 많은 목회자들에게 계시의 말씀인 성경 말씀에 충실한 설교를 하도록 가르치고 열정을 불어넣으며 자료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한국교회에 개혁신학과 전통의 기초를 놓았으며, 교회 쇄신을 주창하고 실천한 개혁주의 신학자입니다.

    박윤선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유익을 얻은, 한국교회에 속한 지체의 한 사람으로,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그 때문에 아버지와 정겨운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희생이 되신 자녀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아울러 감사의 마음을 가집니다. 저자인 딸은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므로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셨으며, 아버지가 보다 완벽한 분이기를 소원하는 마음에서 아버지의 신학마저 왜곡되게 이해하시는 줄 압니다. 공인으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신 분들과 순교자의 자녀들 중에는 불만과 소외감을 가지는 이들이 많았으나, 나중에 그들이 장성하여서는 사생활을 희생하신 아버지를 이해하고 돌아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딸의 아버지 박윤선의 뜻과는 다르게 살아온 자녀분들도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와 눈물로 화해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이미 성경 말씀을 통하여 자유로움을 얻은 따님께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자유의 의미를 더 터득하셔서 아버지 박윤선을 옳게 이해하는 자유로움의 경지에 이르시기를 빌며, 아버지를 낳으시고, 아버지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종의 사역을 감당하고자 하는 후배들을 낳은 한국교회,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신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시고 종으로 섬기신 한국교회와 부족한 우리 모두를 귀하게 보아 주시고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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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되자 2021.07.25 19:22
    목사의 딸이라는 책을 반쯤 읽고 수년전 덮었다가 오늘 다 읽고나서 여러 기사들을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예상대로 여러 논란과 논쟁이 있었네요. 저는 장로의 딸로서 pk들의 어려움을 근처에서 많이 보며 지냈습니다. 이 책의 동기를 한국교회가 사랑하지 못해서 잘못가고 있으니 바로 가라는 메시지로 이해합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잘못했더라도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적나라하게 책을 펴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자녀들이 어디에 있는 줄 모르는 목회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책이라 생각이 듭니다. 목회자도 이럴진대 하물며 교인들은 어떻겠습니다. 자신은 가족도 사랑못하면서 강대상에서 왜 사랑을 외칩니까. 본인이 살아내지 못한 말씀을 전하는 것에 대해 점검해야할 것입니다. 오늘날 개독이 된 이유가 바로 이 책 안에 있네요. 아버지를 판단하는 것이 옳은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박혜란 목사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판단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는 깨닫는 바가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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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통 피해자와 담배꽁초 버리기

    간통피해자 손봉호 교수 지난 2월 26일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가 위헌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개인의 문제를 형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입장이 우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지킬 수 있는 하나의 테두리가 없어진 것 아니냐는...
    Date2015.03.13 Bydschoiword Reply1 Views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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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박윤선 목사의 딸 유감

    박윤선 목사의 딸 유감 허순길 박사 (전 고려신학대학원장) <코람데오닷컴>(2015.3.9.)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8280 나는 최근에야 박혜란이 쓴 “목사의 딸”이란 책을 접했다. 그동안 이 책을 읽은 분들은 딸이 그의 아버지 ...
    Date2015.03.11 Bydschoiword Reply12 Views8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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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오류 있다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가 결집했다. 지난 3일~6일까지 선밸리 지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에서는 미국 최대 목회자 세미나인 ‘셰퍼드 콘퍼런스’가 열렸다. 5000여 명의 목회자가 참석한 가운데 이번 콘퍼런스는 보수 기독교가 느끼는 시대적 긴박성이 묻어났다. ...
    Date2015.03.11 Bydschoiword Reply0 Views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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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샤의 딸>이 보여주는 우상

    <목사의 딸>이 보여주는 우상 <목사의 딸> 박혜란의 사촌 형부 목사, "이 책은 거짓" - 고 박윤선 목사 가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결론... "상처가 진실 왜곡" 고 박윤선 목사의 조카사위가 <목사의 딸>(아가페북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뉴스앤...
    Date2015.03.09 Bydschoiword Reply2 Views2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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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교회는 '젊은지구론'을 넘어서야 한다

    교회는 '젊은지구론'을 넘어서야 한다 과학의 성취가 오히려 창조의 신비 발현...과학과 신앙 통합적 시각 필요 뉴스앤조이 (2015.3.4.) <뉴스앤조이>가 창조과학 논쟁과 관련한 다양한 쟁점을 취재했습니다. ▲ 창조과학과 이를 반대하는 입장 ▲ 젊은지구론에...
    Date2015.03.05 Bydschoiword Reply0 Views2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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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왜 창조과학회는 지구가 '젊다' 하는가

    왜 창조과학회는 지구가 '젊다' 하는가 세상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성경 기록에 근거한 연대기 산출 <뉴스앤조이> (2015.3.2.) ['창조과학'을 둘러싼 논쟁, 그 두 번째 기획 기사입니다. 창조과학의 광범위한 주제 중 '젊은지구론'에 한정해 한국창조과학...
    Date2015.03.05 Bydschoiword Reply0 Views2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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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논문쓰기 방법

    논문 쓰기 방법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학사 미국 미시건 대학교 사회심리학 석사 미국 미시건 대학교 사회심리학 박사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현)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센터장 ...
    Date2015.03.04 Bydschoiword Reply0 Views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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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방언기도가 없는가?

    성경에 방언기도가 없는가? 김동수 교수 (평택대) 최근 성경에 방언 기도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는 방언은 가짜 방언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는 지난 백년간 사탄에게 완전히...
    Date2015.03.02 Bydschoiword Reply4 Views4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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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거

    휴거 김재성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조직신학) 예수님의 재림시에 벌어질 상황전개에 대해서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를 먼저 풀어보고자 합니다. 휴거에 관련된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먼저 개괄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휴거라는 단어가 성경...
    Date2015.02.18 Bydschoiword Reply1 Views3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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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교회 구성원이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교회 구성원이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크리스천투데이, 2015.2.16. 기사 [슬로우 리뷰] 양희송 대표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이정규 강도사님(시광교회)의 2월 첫 ‘슬로우 리뷰’ 선정 도서는 양희송 대표(청어람아카데미...
    Date2015.02.16 Bydschoiword Reply0 Views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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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움: 우리 시대의 가장 거대한 우상

    즐거움: 우리 시대의 가장 거대한 우상1) 존 쿠퍼(칼빈신학교 철학교수) \\ 전체적 조망 십계명 첫 번째 계명은 우리에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촉구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돈 둘 다를 동시에 섬기지 말라고 경고 하셨다 (마 6:24). 바울...
    Date2015.02.15 Bydschoiword Reply1 Views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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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은 성령의 신학자인가?

    성령의 신학자, 요한 칼빈 김재성 박사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 김재성 박사(국제신대 부총장) 칼빈 탄생 오백주년 (1509-2009)을 맞이하여 그가 남긴 공헌과 영향력을 평가하는 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의 연구서적들이 세계 여러 곳에서 많이 나...
    Date2015.02.14 Bydschoiword Reply0 Views3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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