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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랜치스코, WCC 지도자들에게 교회일치를 연설하고 있다.

 

 

복음적 에큐메니스트 뉴비긴의 탄식  (미완성)

 

WCC 바로알기 27

 

 

1.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영적인 하나의 교회는 가시적으로도 하나로 나타남이 바람직하다교회는 지역, 언어, 국가, 종족, 문화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까닭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그러므로 지상의 교회의 가시적 연합과 일치 운동 곧 에큐메니칼 운동은 정당하다. 그리스도인은 가시적으로 하나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하나님의 백성들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1998)의 에큐메니칼 활동은 불가시적 교회의 가시적 일치에 초점이 있었다뉴비긴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복음의 절대 명령이며그 어느 것에 의해서도 묵살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 한나는 하나님의 교회가 외향적이고 가시적이고 하나가 된 사회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계속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웨슬리 뉴비긴, <아직 끝나지 않은 길>, 서울도서출판복있는 사람, 2011, 493, 이하 뉴비긴’).

 

3. WCC 중앙위원회는 1960년에 에큐메니칼 운동에 성경적이고복음적이고삼위일체적인 근거를 제공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고백하며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께 부름 받은 사명을 공동으로 완수하려는 교회들의 친교이다.” WCC가 이 고백적 정체성을 유지한다면 교회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건전한 에큐메니칼 운동 단체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4. 교회의 의무와 기능 가운데 하나는 온 세상의 평화와 정의 실현에 이바지하는 일이다칼빈주의 기독교는 이것을 기독인들의 세상에 대한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으로 이해하고 언급해 왔다문화명령은 인간의 삶과 세상의 평화와 정의에 관한 것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과 만물을 올바로 다스려야 할 책임 그리고 인간이 자연과 공존해야 할 과제들을 포함한다.

 

5. WCC 1960년대에 들어서서 세상의 평화 유지와 정의 실현에 큰 관심을 가졌다마치 그것만이 기독교의 모든 것처럼 여기고 투신했다뉴비긴도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그러면서도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해당하는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에큐메니칼 운동이 성공할 수 있는 길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공동체 결성은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죽음과 부활에 기초해 있다고 생각했다(뉴비긴, 493). 그의 선교사역과 에큐메니칼 활동은 역사적 기독교가 지녀온 복음에 대한 확신에 기초해 있었다.

 

6. 개혁신학 바탕에서 신학을 수업한 복음주의자 뉴비긴은 WCC와 조화롭게 지내지 못했다. WCC에는 복음주의 신념을 가진 자가 들어 설 공간이 없었다. WCC 1960년의 헌장과 달리세상에 대한 선교와 전도에 매진해 왔다복음적인 기독교와 불일치하는 행보를 보였다뉴비긴은 WCC와 복음주의가 조화하지 못하는 까닭들을 보여준다.

 

7. 뉴비긴은 잉글랜드 북동부 뉴캐슬어폰타인에서 출생했다지역 토박이 아버지와 스코틀랜드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28년에 케임브리지대학교 퀸즈칼리지에 입학했다대학생 시절영국의 학생기독운동(Student Christian Movement, SCM)에 가담하여 회심체험을 했다뉴비긴의 복음적인 에큐메니스트다운 통찰과 활동의 배경에는 이 회심체험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8. 학생기독운동은 자유주의 기독교계의 대표적인 특징인 사회적 책임에 대한 헌신도 강조하는 포용적인 단체였다경건기도전도믿음해외 선교를 강조했다뉴비긴의 복음적 에큐메니칼’ 개념은 이 단체에서 발아했고케임브리지칼레지라는 장로교회 신학교에서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 SCM의 신학적 태도와 포용적인 특징에 불만을 지닌 보수계 지도자들은 1928년에 기독학생회(Inter-Varsity Fellowship, IVF)를 결성하여 독립했다.

 

9. 뉴비긴은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졸업하고잉글랜드 장로교회 뉴캐슬노회의 허락을 받아 케임브리지대학교 타운에 있는 웨스트민스터칼리지에 입학했다. 이 신학교는 영국장로회 목회자, 신학자 양성기관이다. 18세기에 일어난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복음주의 부흥운동에서 연원한 개혁신학 교육개관이다. 현재의 교정은 1905년에 부유한 두 지성적 장로교 여인들이 교회에 헌납한 터에 세워졌다. 1972년에 장로교회와 회중교회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영국연합개혁교회(United Reformed Church in England)의 신학교육 기관이다.

 

10. 뉴비긴은 이 신학교 재학 중 세 가지 중요한 변화를 경험하고 확신했다. 첫째는 십자가에서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중심성이다로마서 연구와 함께 개혁주의 구원론을 확연하게 자기 것으로 삼았다둘째는 개혁신학 전통을 따르는 교회와 신학교가 전도기도경건 생활에 대체로 취약하다는 것이었다셋째는 평화는 대화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낭만적 평화주의와 탐욕적인 현실 정치가 만나면 무자비한 정치세력으로 바뀔 수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 전행 위협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퀘이커 교도들의 평화주의가 일종의 도피주의로 전락할 수 있음을 알았다그는 퀘이커 계열의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11. 뉴비긴은 스코틀랜드국교회(Church of Scotland, 장로교회에든버러노회에서 목사로 장립(1936)받았다그리고 아일랜드장로교회가 인도에 파송한 선교사의 딸 헬렌 헨더슨과 결혼했다두 사람은 학생기독운동의 간사로 활동하면서 사귀었다.

 

12. 뉴비긴은 인도 칸치푸람 지역의 농촌과 도시에서 전도 담당 선교사로 활동했다인도 남부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성공회영국 감리교회스코틀랜드국교회미국 회중교회 선교부들을 연합시켜 남인도교회(Church of South India, 1947)를 출범시켰다뉴비긴은 남인도교회의 마두라이 지역 담당 주교(bishop) 중 한 명이 되었다.

 

13. 뉴비긴은 1959년에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IMC) 총무직을 맡았다. 1961이 단체와 WCC의 통합을 주도했다. 1961년부터 1965년까지 WCC 부총무로 활약했고동시에 WCC로 병합된 IMC의 후신 세계선교전도위원회(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총무로 이 기구를 이끌었다. 1961년부터는 런던에서 제네바로 거주지를 옮겼다.

 

14. 뉴비긴의 WCC와 인연은 1947 WCC 창립 자문위원으로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을 받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설계라는 주제로 모인 WCC 창립 총회에 남인도교회의 대표자로 참석했다. WCC 창립 멤버 뉴비긴은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동력(動力) 비셔트 후프트 목사와 함께 활동했다(뉴비긴231).

 

15. 뉴비긴은 1950년에 모인 WCC 중앙위원회에 참석했다차기 총회 주제를 정하고 강연자를 정하는 25인 위원으로 임명받았다그는 ‘토론토 성명’ 작성을 주도했다(뉴비긴, 269). WCC는 독립교회들이 모인 협의회이며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말하는 하나의 거룩한 교회 곧 우남 상탐(unam sanctam)이 아니라면(뉴비긴, 270), 교회 연합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가 하고 묻고 그 질문에 답하는 글을 썼다이 글은 나중에 <교회란 무엇인가?>(2010)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가시적이고 실제적으로 존재하며 실재하는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모색하는 내용이다개신교로마가톨릭오순절파의 일치를 모색한다(뉴비긴, 370).

 

16. 뉴비긴은 WCC 초기에 이 단체의 교회의 증언’ 분과와 WCC의 행정을 다루는 위원회에서 활동했다그는 초기부터 WCC에 불편함을 느꼈다뉴비긴에게 WCC의 모습은 어색한 세계였다(뉴비긴245). 기본적인 원리가 망각되고 있었던 것이다(뉴비긴245). 자신과 같은 전통적인 접근을 하는 사람들과 이와 다른 개념의 선교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지적인 공감대가 없었다(뉴비긴244)

 

17. 뉴비긴이 교회 연합과 일치를 도모하려고 씨름한 노력의 기초는 복음적 신앙이었다(뉴비긴, 247). 두세 명이 모이는 곳에는 선교회 지부가 아니라 보편교회가 존재한다고 하는 확신이었다(뉴비긴258). 교회가 선교지에 기술자가 아니라 전도자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18. 뉴비긴은 WCC가 호켄다이크의 영향 아래서 변질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교회 중심적인 모델에서 벗어나 이 시대와 세상의 사회 정치 과학 등 세속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역(missio dei)으로 선교 방향을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WCC가 그 정도까지 나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뉴비긴, 279).

 

19. 뉴비긴은 남인도교회의 허락 아래서 1957년에 국제선교협의회(IMC) 총무직을 맡았다. 1961년에 이 단체와 WCC가 병합된 이후, WCC 선교와전도위원회를 이끌었다(뉴비긴, 311). 그는 이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의문을 가졌다과연 사회적 불의에 도전하는 일도 기독교 선교인가라고 질문했다(뉴비긴, 343).

 

20. 어느 피선교지인은 뉴비긴에게 “우리의 약한 분야에 전문가를 보내 주는 것이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기술자이기만을 원치 않고 복음을 전하는 자이기를 원한다”(뉴비긴, 357)고 말했다기술자가 아니라 전도자를 보내고구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사역자를 보내라고 했다(뉴비긴, 358). 뉴비긴은 이 말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아메리카를 방문하고서, 자신이 펼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메시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원자라고 고백하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그곳에도 지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뉴비긴, 368)

 

21. 한편북미의 복음주의자들은 뉴비긴에게 불경건한 사상과 잘못 짝지으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그들은 에큐메니즘과 공산주의를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살인과 간음과 같은 부류로 치부했다(뉴비긴, 368). 그들은 WCC가 로마가톨릭교회와 친하게 지낸다는 소식에 혐오감을 느꼈다(뉴비긴, 376). 복음주의 진영의 교회가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를 고려하면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도모하는 애큐메니칼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뉴비긴, 377)

 

22. 뉴비긴이 만난 다수의 젊은 성직자들은 WCC의 급속한 사회변동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아 사회정의 구현을 기독교의 선교로 생각하고 기꺼이 그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뉴비긴, 371). 인도 탐바람에서 열린 국제선교대회(1938) 이후, WCC 선교사상을 지배해 온 교회 중심적인 선교 모델은 서서히 무너졌다. 기독론적인 선교 이해가 아니라 삼위일체적 또는 신론적인 선교 이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뉴비긴, 381).

 

23. 초기 WCC는 자신의 갈 길을 가리키는 여러 가지 혼재된 표지들을 가지고 있었다. WCC의 어느 보고서는 하나님께서 온 창조세계를 다스린다고 선포한 뒤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 주신 지혜와 사랑과 능력에 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했다(뉴비긴, 381). 이 보고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종교에 하나님의 지혜사랑구원의 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하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었다.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할 뿐만 아니라 혁명운동을 구속사역과 동일시하고 있었다(뉴비긴, 390).

 

24. 1960년대에 이르러 WCC는 이른 바 세속주의 시대에 진입했다. 1950년대에 수용되었던 기독교 선언문들 곧 복음서에 기초한 일련의 선언문들을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교회가 아닌 세상을 바로 하나님이 일하고 있는 현장으로 여겼다이제는 사람들을 회심시키고 세례를 받게 하여 교회로 인도하는 일보다정의와 개발을 도모하고 교회를 참여시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시되었다세속적인 세상일이 선교와 전도의 중요한 관심 곧 유일한 대상이었디(뉴비긴391-392).

 

25. 그 무렵, 영국국교회 사제 존 로빈슨이 기독교 신앙에 도전하는 <신에게 솔직히>(1962)을 출판했다대 정신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이 책은 명목상으로 기독교인이지만 하나님을 실존하는 존재로 보지 않은 사람들의 분위기를 잘 포착했다뉴비긴의 후원자들은 이 책을 궁극적인 진리의 계시로 여겨 환영했다. ‘그들은 뉴비긴의 구태의연한 기독교 신학을 낭비로 여겨 실망한 것이 분명했다근본적인 기독교 신앙이 도전을 받고 있었다(뉴비긴, 392).

 

26. 그 무렵뉴비긴이 겪은 또 하나의 특이한 일은 선교잡지의 제목에 관한 것이었다. WCC 지도자들 사이의 첫 번째 충돌은 글자 ‘s'와 관련되어 있었다이 갈등은 IMC가 발행해 오던 선교저널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미션즈’(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s) 명칭에 붙어 있는 글자 ‘s’에서 시작되었다뉴비긴은 1910년 에든버러에서 모인 선교 대회의 결과로 1912년에 출범한 이 선교 잡지의 편집 책임을 맡고 있었다이것은 역사상 첫 선교 저널이었다.

 

27. 뉴비긴은 교회선교사전도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불신자들을 회심시키고 기독인이 되게 하는 전통적인 개념의 선교 활동과 그러한 선교를 하는 선교회들(missions)의 중요성을 확신하고 있었다그러나 WCC 지도자들은 선교지 명칭의 'Mission' 뒤에 붙은 's'를 제거하라고 압박했다.

 

28. WCC 지도자들은 좁은 의미의 선교사역(missions)을 제거하고 오로지 보편적 교회의 총체적인 선교(Mission)만 다루기를 원했다. WCC가 지향하는 선교만을 선교로 여기며 's'를 제거하라고 압박했다뉴비긴은 그 압력에 저항했다상당한 압력을 받으면서도 ‘s’를 버리지 않았다이 글자는 그가 제네바를 떠난 뒤에 제거되었다(뉴비긴, 395). <인터내셔널리뷰 오브 미션>(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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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뉴비긴은 WCC의 새로운 선교 개념과 관련하여무엇이 선교이고 무엇이 선교가 아닌가에 대한 생각을 계속했다(뉴비긴, 396). 나이지리아 의사 아데몰라는 미션병원을 운영하면서 거액 의료 프로젝트들을 가동하고 있었다(뉴비긴, 400). 뉴비긴은 제네바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그는 “치유의 기본 요건은 병원이 아니라 바로 기독교 회중입니다라고 했다(뉴비긴, 401). 뉴비긴은 이 말에 함축된 의미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의료행위는 기술이고기독교 병원은 기독교 원자력 발전소 같다그런 일을 선교의 전부로 여기는 것은 난센스라고 생각했다(뉴비긴, 403).

 

30. 뉴비긴의 WCC에 대한 기대는 확보된 많은 자원을 활동하여 복음 전도의 기회가 많은 지역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었다(뉴비긴, 404). 그러나 자신이 선교와전도위원회 총무로 추진하는 일이 이 단체의 기술적인 지원과 정치행동에 대한 열정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직접적인 복음전파와 교회의 설립에 대한 열정이 훨씬 미미했다(뉴비긴, 440). 선교사는 기술자가 아니라 전도자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31. 뉴비긴 주변에는 선교에 대한 ‘다른 영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이른바 ‘시대정신이었다. WCC는 세속적인 60년대의 강한 물결에 휩싸였다많은 사람들의 기억하는 것은 “이 세상이 의제를 제공해 준다는 표어였다(뉴비긴, 405). 이 표어는 중요한 진리를 가리키고 있으나 아주 쉽게 오해될 소지가 있다. <신에게 솔직히>가 담고 있는 불경스런 시대정신과 함께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교회와 선교사역이 모두 현대사회와 무관하다고 믿도록 만들었다.

 

32. WCC는 바티칸과 공식 접촉했다(뉴비긴408). WCC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연합과 일치를 추구했다2차 바티칸공의회 소집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제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모양새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뉴비긴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 간의 밀고 당기는 논쟁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33. 뉴비긴은 IMC WCC가 통합된 이후에도 선교에 있어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사적인 선교관을 포기하지 않았다. 1960대에 이르러 세속화 사상의 물결과 호켄다이크의 선교학이 WCC의 주류를 이루고하나님의 선교가 교회를 배척하는 것으로 오도되는 시기를 거치면서 깊은 상처를 받았다그런 상황에서도 뉴비긴은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의 살아 있는 표지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34. 뉴비긴은 WCC의 다원주의 성향과 타문화 선교에 대한 약화에 실망했다. 1993년에는당시 WCC 총무인 콘라드 레이저가 이끄는 WCC가 다원주의 경향으로 기울고 기독론 중심의 연합체에서 이탈하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WCC는 복음과 그리스도의 대속적 십자가 사역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WCC는 원래의 교회 연합과 일치 정신의 중심을 상실하고 있었다(뉴비긴421). 뉴비긴은 1988년에 교회는 세계선교를 하지 않을 때 자기 문화의 포로가 된다고 역설했다타문화 지역에 대한 선교와 복음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5. WCC 4차 총회(웁살라, 1968)는 뉴비긴이 이 교회연합일치 단체에 걸었던 희망과 기대를 산산이 부셔버렸다전체 집회는 온통 경제적 불의의 인종적 불의의 문제로 채색되어 있었다분위기는 분노로 가득 찼다온갖 위협과 분노를 수반하는 끔찍한 법의 선포와 같았다우리는 집단적으로 지옥의 구렁텅이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복음의 메시지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작은 구세군 밴드가 찬송을 부를 때 그것이 무언의 소리로 들렸을 뿐이었다.

 

36. 잘 훈련된 학생들이 방청석에서 밀집 대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계속해서 험악한 분위를 고조시켰다이보다 더 주목을 끈 것은 피터 시거가 기독교 복음을 조롱하는 그 유명한 가사 곧 당신이 죽을 때는 하늘에 파이가 있을 것이네라는 내용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었다모두들 입을 다문 채 열심히 그 노래를 듣다가 마치 새로운 진리가 계시된 것처럼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아니어떻게 이른 그룹이 그처럼 쉽게 세뇌당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몰려왔다(뉴비긴454).

 

37. 뉴비긴은 “오늘날의 구원이라는 주제로 방콕에서 열린 WCC 세계선교전도 대회(1973)에 참가하고서도 괴로움을 겪었다(뉴비긴, 453). 이 모임이 세상을 너무나 쉽게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양분했기 때문이다초청받은 강사들을 대체로 자신이 피억압자에 속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뉴비긴, 455). 방콕 대회에서 본 희망은 일본인 고수께 고야마가 “십자군의 마음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힌 마음이라는 말과 이러한 표현에서 엿보이는 새로운 종류의 영성을 찾는 진정한 열망이었다(뉴비긴, 455). 뉴비긴은 “이런 종류의 모임에 내가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임에 틀림없을 것이다”(뉴비긴, 456)라고 말했다.

 

38. WCC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뉴비긴은 3년 뒤, WCC 5차 총회(나이로비, 1975)에 참석했다(뉴비긴, 456). 나이로비 총회는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불경건한 충돌로 끝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었다적대감경멸감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이 총회는 그 이전의 어느 총회보다 기독교 진리를 현실적으로 시험했다나이로비에서 겪은 무척 고무된 아픔은 뉴비긴으로 하여금 WCC와 확실히 결별하게 만들었다(뉴비긴, 480-481).

 

39. 뉴비긴은 선교사역을 식민주의로부터 떼어놓으려고 몸부림치는 인물이었다(뉴비긴, 494-495). 한 동안 하나님이 결코 WCC를 버리시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변절한 WCC에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았다. WCC 4차 총회(웁살라, 1968) 참석한 뒤제네바를 떠나 선교지 인도로 복귀했다남인도교회 마드라스 주교로 활약하다가 1974년에 은퇴하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40. 은퇴 후 영국의 신학 기관 연합체인 버밍엄 셀리오크칼리지스(Selly Oaks Colleges)에서 에큐메닉스와 선교신학을 가르쳤다(1975-1979). 이 때부터 유럽 사회의 세속화와 세계 기독교의 변질을 절감하고 탄식하는 책들을 집필했다.

 

41. 뉴비긴이 복음적 에큐메니스트로서 인도선교에 이바지한 것 중 하나는 각종 교파 교회들을 기구적으로 단일화 하는 활동이었다유럽의 여러 교파들이 파송한 선교사들과 그들이 세운 교회들을 규합하여 단일 토착 교회 조직을 만들어냈다인도 동남부 마드라스 지역 중심으로 설립된 '남인도교회'(1947 설립)는 성공회·감리교회·남인도연합교회의 병합체였다여기에 가담한 남인도연합교회는 1908년에 장로교회와 회중교회의 연합으로 탄생했으므로 남인도교회 조직체 탄생에 장로교회도 포함된 셈이다.

 

42. 남인도 지역의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이 다양한 교회 전통과 교리의 벽을 극복하고 외형적인 일치를 이루어낸 것은 주목할 일이다남인도교회의 출범은 당시의 기독교권을 휩쓸던 에큐메니칼 정신의 구현이었다.

 

43. 단일교회 출범의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그 난관은 각각의 교회들이 지금까지 유지해오던 신학교리문화적인종적 배경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었다성공회는 '사도 계승'이라는 교회론적 강조에 따라 주교직을 보유하지 않은 신앙 공동체를 교회로 인정하기를 꺼렸다.

 

44. 남인도지역의 교파 교회들은 논란 끝에 모두 네 개 조항에 합의했다. (1)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성경 66권을 수용한다. (2)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수용한다. (3) 성례는 세례와 성찬이라는 것을 수용한다. (4) 감독제 정치를 수용한다서로 다른 신앙 색깔을 가진 교회와 선교회들은 기독교의 근본에 해당하는 것을 고백하는 데 일치했고감독제 교회정치의 효율성에 공감했다.

 

45. 뉴비긴이 자신의 노력의 WCC의 선교신학이 바뀔 것이라고 본 것은 오판이었다자신이 노력하면 WCC가 최소한 고유한 기독교 선교와 함께 이른바 ‘에큐메니칼 선교를 병행하도록 할 수는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그가 파악하지 못한 것은 두 가지이다첫째, WCC ‘조용한 복음주의자만 환영한다둘째, WCC에는 복음적 에큐메니스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뉴비긴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이상적인 인물이었다그러나 WCC는 그가 설 공간을 제공하지 않았다(뉴비긴, 493).

 

46. 뉴비긴은 WCC ‘하나님의 선교를 배제하지 않았다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이미 일하고 진행하고 있는 선교(mission)에 교회가 동참하는 것을 무시하지 않았다동시에 기독교의 고유한 전도 활동을 배제하거나 극도로 약화시키는 흐름에 동참을 거부했다뉴비긴과 WCC의 신학충돌은 선교 저널 명칭에 붙은 마지막 글자 ‘s’가 빠지는 것으로 1969년에 종결되었다(뉴비긴, 395, 544.).

 

47. 뉴비긴은 WCC 4차 총회(1968, 웁살라)를 계기로 WCC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그는 탄식했다. "하나님과의 화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인간화를 강조한 여러 세속주의 선교신학이 교회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간다고 확신했다”(브라이언 스탠리복음주의 세계 확산, 서울: CLC, 2014, 223). 선교지에서 은퇴하고 영국으로 돌아간 뉴비긴은 영국 사회와 문화의 세속주의 현상을 목격했다

 

48. 뉴비긴은 어느 신학자가 역사적 기독교 복음전도 행위를 ‘신학적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목격했다그는 이에 맞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전도를 하지 않은 것을 '신학적 간음'이라고 했다(뉴비긴,  477).

 

49.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인 뉴비긴은 생애 후반기에 이르러 정통 개혁신앙을 강조하는 인물로 변모했다인생 말년에 아르러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중요성을 선전하는 저술에 매진했다. 영국과 유럽의 교회들의 몰락의 원인을 밝히는 책들을 저술했다역사적 기독교의 복음과 전통적 선교의 틀로 다원주의와 혼합주의에 빠진 유럽 문화와 그 중심에 있는 종교적 신념들을 파헤쳤다. 이 상태로는 기독교가 황폐화 될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었다. 뉴비긴의 탄식을 담은 대표적인 책은 세 권이다. 서구 기독교의 위기>(The Other Side of 1984: Questions for the Churches, 1983),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Foolishness to the Greeks: The Gospel and Western Culture, 1986),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The Gospel in a Pluralistic Society, 1989).

 

50. 뉴비긴의 탄식은 회의주의적 탈기독교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에게 역사적 기독교 신앙과 유산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진리 안에서 연합과 일치라는에큐메니칼 운동 원칙에 충실할 것을 교훈한다. 입술에 발린 '복음적 에큐메니칼 신앙'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라는 에큐메니칼 활동의 범위와 방향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운다.

 

51. 뉴비긴은 시대적 분위기에 휩쓸려 저명한 선교단체를 WCC에 갖다 바쳤다. IMC를 WCC와 병합시키면 예수 구원 복음 선교가 더 활발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복음과 십자가의 도리를 외면하는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무의함을 깨달았다자신의 WCC의 선교신학을 복음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완벽한 오판이라는 것을 알았다. 복음주의자가 WCC 안에 들어가서 이 단체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복음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검정색 페인트가 가득히 담긴 통에 한 숟갈의 흰 페인트를 집어넣는다고 하여 전체가 희게 되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53. 뉴비긴의 오판은 예장 통합 총회(2021)가 '복음적 에큐메니칼 신앙'을 표방하면서도 WCC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는 결정의 오판과 일치한다. 이 교단의 공식 문서 <복음과 에큐메니칼 신앙>(2021)은 예장 통합이 자신을 ‘복음적 에큐메니칼과 동일시하면서도 WCC에 적극 가담하여 이 단체를 복음주의적으로 바꾸는데 이바지하리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WCC에 들어가서 복음주의적으로 변화시키자고 하는 일부 몰지각한 복음주의자들의 판단과 일치한다.

 

52. 뉴비긴은 일평생 보수 복음주의 진영에서 활동하지 않았다(스탠리, 222; Brian Stanley, Christianity in the Twentieth Century: A World History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8, 208-210.). IMC를 WCC에 병합시킨 그의 에큐메니칼 오판은 세계복음화를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세계 복음전도 기회 상실이라는 손실을 가져왔다. 

 

53. 교회사는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에서도 교훈을 얻는다. 뉴비긴의 오판과 행보는 오늘의 교회를 향하여 말한다. "복음 없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계륵(鷄肋)이다.  WCC 따라가면 교회가 죽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희생시키면서 세상사에 전념하는 WCC 에큐메니칼 운동은 주객을 전도한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배신이다..

 

53. 어느 선교학자는 뉴비긴을 진보계와 보수계 양편에 속한 자이며어느 한 편이 독점할 수 없는 인물로 평가한다. “복음주의적 확신과 에큐메니컬 포괄성을 넘나 든 선교학자이며두 신학 진영의 상호 이질성을 대화와 조정을 거쳐 하나가 되는 마법을 보여 준 선교학자라고 치하한다(이재근, “복음주의적 확신과 에큐메니컬 포용성을 체화한 선교신학자,” <뉴스앤조이>, 2019.07.24.). 이 주장은 타당하지 않은것으로 여겨진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유유미션-BREAD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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