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S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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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아카데미, 현 제네바대학교 칼빈칼리지



칼빈의 제네바교리문답(1542)


제네바교리문답서(1542)는 종교개혁 신학자 존 칼빈(John, Calvin)이 제네바교회의 자녀들과 새 신자들의 성경 교육 목적으로 사용하던 교리문답서이다. 후대에 장로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 오던 신앙고백서들과 교리문답서들 가운데서 중요한 내용을 일부 추가 편집된 텍스트이다.
 
. 믿음에 관하여


[1주일]
1: 인간의 삶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2: 무슨 이유에서 당신은 그렇게 말합니까?
: 하나님은 우리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우리를 지으시고 세상에 살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 그러면 인간에게 있어서 최상의 행복은 무엇입니까?
: 위와 같습니다.
 
4: 왜 당신은 그것을 최상의 행복이라고 말합니까?
: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동물보다 더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25:4-6)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구더기인 인생이랴
 
5: 이런 이유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 , 확실히 그렇습니다.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6: 그러면 하나님에 대해서 참되고 올바르게 아는 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가운데 있습니다.
(115: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7: 하나님께 영광을 바르게 돌리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분의 거룩한 뜻에 복종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의 모든 어려움 중에서 그분에게 도움을 청하며, 그분 안에서 구원과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온다는 것을 마음과 입(행위)으로 표현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2주일]
8: 이 모든 것을 순서로 만들어서 자세하게 이야기 해 봅시다. 첫 번째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갖는 것입니다.
 
9: 그것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 먼저 하나님을 전능하시고 지극히 선하신 분으로 아는 것입니다.
 
10: 그것으로 충분합니까?
: 아닙니다.
 
11: 충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돕는 능력을 우리에게 보이시거나 그의 선함을 나타내실 만한 가치 있는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2: 그러면 더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과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와 구원자가 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13: 어떻게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며,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4: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뢰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다는 말입니까?
: , 그렇습니다.
(14:6-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사도신경]
15: 그러면 이런 지식의 핵심을 요약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요약할 수 있습니까?
: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는 신앙고백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통 사도신경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항상 고백했던 것이며 또한 이것은 순수한 사도적 가르침으로부터 나온 참된 신앙의 요약이기 때문입니다.
 
16: 이 사도신경을 암송해 봅시다.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장사되어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3주일]
17: 이 신앙고백을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이것을 몇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까?
: 4가지 부분입니다.
 
18: 어떤 것들입니까?
: 첫째로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셋째로 성령님께 대한 것입니다.
넷째로 교회에 관한 것이며 동시에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로우신 행위들에 관한 것입니다.
 
19: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뿐이신데 당신은 왜 아버지(성부), 아들(성자), 성령(성령)을 말하고 있습니까?(삼위:三位)
: 우리는 단 하나의 신적 본질 안에서 만물의 시작, 기원 그리고 제 일 원인이신 아버지와 영원한 지혜이신 아들과 모든 피조물 위에 부어지시기는 하나 언제나 당신 자신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이신 성령님을 고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20: 당신은 우리가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세 위격을 명확히 구분할 때 그것이 전혀 부적절하지 않으며, 그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분리되지(나누어지지 않음) 않으신다고 이해하고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어거스틴(Augustinus): 성부, 성자, 성령은 존재가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역사에도 분리될 수 없다. 즉 외부와 관련된 사역에 있어서도 분리될 수 없이 역사하신다.
 
[하나님 아버지]
21: 이제 사도신경의 첫 번째 부분을 말해보십시오.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22: 당신은 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릅니까?
: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성부)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며, 영원 전부터 하나님(성부)에게서 나셨습니다. 그 후 그분은 세상에 나타나셨을 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고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사실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아버지도 되신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5: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

23: 당신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고 생각합니까?
: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은 능력을 가지고 계시지만 이제는 그것을 쓰시지 않으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을 당신의 손과 주권(지배권) 안에 두고 계시며, 만사를 당신의 섭리대로 처리하시며, 세상을 당신의 뜻에 따라 통치하시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당신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이끌어 가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115: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24: 당신의 말대로 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행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활동하신다는 말이군요. 즉 하나님은 항상 활동하시고 계시며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에 의하지 않거나 혹은 하나님의 허락과 명령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는 말입니까?(좋은 일 과 나쁜 일 모두 포함)
: 그렇습니다.
 
[4주일]
25: 당신은 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신 주인이라고 덧붙였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들 안에서 그분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의 본질을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우리에게 마치 하나의 거울과 같아서 이 거울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데 적당할 만큼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104:24)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6: 당신은 '하늘과 땅'이라는 말에서 다른 피조물들을 제외하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다른 피조물들도 역시 이 두 단어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은 하늘에 속하든지 아니면 땅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27: 그러면 피조물을 항상 각자의 상태로 유지하도록 돌보는 일은 한 번 이러한 것을 만드는 일보다 더 큰 일인데 당신은 왜 하나님을 단지 창조주라고만 부름니까?
: 그것은 하나님이 한 번 피조물들을 손으로 지으시는 큰 일을 하신 다음에는 버려두시고 돌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계가 처음에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그 상태로 하나님이 유지하시는 것이며,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힘이 아니고는 존재를 보존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을 당신의 손 안에 넣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만물을 통치하시고 지배하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사랑과 능력과 지혜를 통하여 자연의 모든 질서를 인도하십니다. 즉 비와 가뭄, 우박과 폭풍과 좋은 날씨, 풍년과 흉년, 건강과 갖가지 질병을 주십니다. 이것을 요약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모든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8: 그러면 악마들(사탄과 귀신들 모두)과 악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이들을 인도하시지는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제어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는 한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들의 의사와 의도에 반대되더라도 이들을 억제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1: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29: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이 당신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만일 악마들과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비참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저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한 결코 양심의 평화를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저들을 억제하고 계시므로 저들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편히 쉴며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사 우리를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5주일] [예수 그리스도]
 
30: 이제 둘째 부분으로 들어가 봅시다.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31: 이 부분에서 말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의 구원자로 인정하는 것과 그분이 어떻게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내어 우리에게 구원을 얻게 해 주셨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32: 당신이 그분을 "예수"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 그것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천사가 그분에게 주신 이름입니다.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33: 이 말은 예수님이 이 이름을 사람들로부터 얻었다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까?
: 확실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불리기를 원사셨기 때문에 실제로도 그대로 불려져야 합니다.
 
34: 그 다음에 나오는 "그리스도"란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예수님의 일은 이 칭호를 통해서 더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즉 그분은 왕, 제사장, 선지자로 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5: 당신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압니까?
: 성경에(구약) 의하면 기름 붓는 예식은 이런 세 가지 일에 적용되고 있으며 또한 그분에게 이런 일들이 거듭해서 인정되고 있습니다(신약).
 
36: 그분은 어떤 종류의 기름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까?
: 그것은 고대의 왕들이나 제사장들 그리고 선지자들의 경우와 같이 눈에 보이는 기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 성령님의 은혜는 과거에 행해졌던 외적 기름부음의 본질적인 것입니다.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7: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왕국(왕직)은 어떤 형태입니까?
: 그것은 영적인 것이며, 그 왕국은 의와 생명을 지니고 있는 말씀과 성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살후2: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38: 제사장직이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제사(희생)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얻고 또 하나님의 진노를 막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직분이자 권한입니다.
(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39: 당신은 어떤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라고 부릅니까?
: 왜냐하면 그분은 이 세상에 왔을 때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높으신 대언자요, 보내심을 받은 자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분명히 밝혀 주셨으며 그리고 모든 예언들과 계시를 완성시키셨기 때문입니다.
(1: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6주일]
40: 이러한 사실들이 당신에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 모든 것이 우리를 유익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 직분의 은혜를 받은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은사들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그분의 충만함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41: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십시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은사들과 함께 성령을 충만히 받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 정도에 따라 이것들을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영적인 은혜들을 마치 우물에서 물을 마시듯이 그분으로부터 얻는 것입니다.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42: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왕국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 그것은 그분을 통해서 우리의 양심이 죄에서 해방을 받고 또한 그분의 영적인 풍요함으로 충만해져서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우리는 우리 영혼의 적인 악마와 죄와 육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43: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직분을 통해서 우리들을 하나님 아버지와 화해시키시는 중보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직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과 함께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 있는 길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제사장직에 참여하고 있는 유익을 얻게 된 것입니다.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44: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 이 직분가 주 예수님께 주어진 것은 그분이 당신의 백성들의 주()와 교사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 목적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진리에 대한 참된 지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심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집의 학생들이 되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45: 그러면 당신이 결론 짓는 것은 결국 이 '그리스도'라는 칭호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주신 세가지 직분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이 직분들의 열매와 능력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달해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7주일]
46: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시는데 당신은 왜 그분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부릅니까?
: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불려지는 것은 태어나면서(본성적으로) 부터가 아닙니다. 다만 양자로 만드시고, 또 은혜에 의한 것이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의 자녀로 여겨주시 한에 있어서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나신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동일 본질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그분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불려지는 것은 옳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본성적으로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47: 당신의 말은 이 명예(영예)는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고유한 것이며, 또 그분에게만 본성적으로 속해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이 명예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지체들이 된 이유로 은혜로써 이것에 참여 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이 참여(사귐)와 관련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많은 형제들 중에 처음 난 자(장자)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요일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8: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그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주과 되시기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 아버지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으셨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즉 그분은 우리 인간의 육신을 취하시고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사역들을 성취하셨다는 것인데 다음과 같습니다.
 
49: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두 구절을 당신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몸에서 그녀와 똑같은 몸으로 되어졌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렇게 된 것은 그분이 예언된 바와 같이 다윗의 자손이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인간의 협력이 없이 오직 성령님의 기적적인 활동에 의해서 되어진 것입니다.
(132: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50: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육신을 취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스려 범한 불복종은 인간의 본성 안에서 원 상태로 회복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를 결합시키기 위한 중보자가 될 수 없으셨습니다.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51: 그러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는 구주의 임무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 자신의 인격과 같은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회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52: 그런데 이것은 왜 인간의 행위나 자연질서를 통해서가 아니고 오직 성령님에 의해서 일어나야만 합니까?
: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그 자체가 부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성령님께서는 이 잉태를 인도하시어 우리 주님을 모든 부패로부터 보호하시고 또 그분을 거룩함으로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53: 이로써 다른 사람들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하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흠이 없으시고, 모태로부터 본래적인 깨끗함으로 하나님께 바쳐지셨으며, 인간의 보편적인 부패의 지배를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확증되었다는 것입니까?
: , 그렇습니다.
 
[8주일]
54: 그러면 왜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까?
: 그분은 우리를 다스리시고, 하늘과 땅 위에서 하나님의 왕권과 주권을 행사하시며, 천들과 성도들의 머리가 되시도록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세우심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55: 왜 당신은 그분의 전 생애를 생략하고 출생에서 즉시 죽음으로 넘어갑니까?
: 여기서는 단지 우리의 구원에 속한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6: 왜 당신은 한 마디로, '그분이 죽으셨다'고 말하지 않고 본디오 빌라도에 관하여 말하며 또한 그에게서 고난을 받았다고 말합니까?
: 그것은 단순히 이 이야기의 확실성(객관성)을 우리에게 증명하기 위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의 죽음이 정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57: 어떻게 해서 그렇습니까?
: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징벌을 스스로 담당하시고 이를 통해 우리를 이 징벌로부터 구해내기시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악행자로서 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지상의 심판자 앞에 출두하여 그분의 입을 통해 정죄 받기를 원하셨는데 이는 하늘에 계신 재판관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죄없다'라고 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58: 그렇지만 빌라도는 무죄하다고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서 그러한 판단을 받아 마땅한 것처럼 그렇게 주님을 정죄하지는 않았습니다.
: 두 가지가 다 인정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빌라도을 통해서 의롭다고 인정된 것은 당신의 죄과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과로 인하여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동일한 사람을 통해 공적으로 정죄를 받으신 것은 주님께서 참으로 우리의 대리자이심을 즉 우리를 죄를 사하기 위해서 우리 대신 정죄 받으셨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23: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하여 내게 끌어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59: 잘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죄인이었다면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정죄가 우리의 해방이 되기 위해서는 그분이 범법자 중 하나로 여김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는 말이군요.
: 그렇습니다.
(53: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9주일]
60: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사람들이 다른 방법으로 그분을 죽게 했을 때보다 다른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점을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리심은 우리의 저주를 스스로 짊어지시고 우리를 그 저주로부터 해방하시기 위함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61: 뭐라고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까지 저주를 받으셨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의 모욕하는 것이 아닙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저주를 받으시면서도 그는 자기 능력으로 저주를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의 복된 상태를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으셨는데 이는 우리를 당신의 축복으로 채워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62: 그 뒤에 나오는 말인 '장사되어'를 설명해 보십시오.
: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저주로써 인간에게 부과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저주를 견뎌내셨고 또 이를 견뎌내심으로 이를 정복하셨습니다. 또한 당신의 죽음이 진정한 죽음임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덤속에 장사되어지를 원하셨습니다.
 
63: 그러나 우리는 죽는 일을 조금도 멈추지 않기 때문에 이 그리스도의 승리는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준다고 생각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들의 죽음은 이들을 더 좋은 생명에로 안내해 주는 통로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64: 그러면 이제 우리는 죽음을 마치 무서운 일처럼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우리를 멸하기 위함이 아니고 구원코자 그곳에 앞서가신 우리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쁜 마음으로 따라갈 뿐이라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10주일]
65: '음부에 내려가셨다가'라는 말이 가르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영과 육체의 분리를 뜻하는 자연적인 죽음의 고통만을 겪으신 것이 아니고 그분의 영혼이 베드로가 '죽음의 고통'이라고 말한 것처럼 상상하기 힘든 괴로움 속에 갇혀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66: 어떤 이유로 그런 일이 생겼으며, 또한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를 지시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셨으므로 그 분은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기나 한 것처럼 아니, 하나님께서 마치 그분을 향해 진노하시기나 한 것처럼 당신의 양심 안에서 이러한 가공할 만한 고통을 느끼셔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깊은 고통 중에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67: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진노하셨습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된 말씀을 증명하시기 위해 그분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손에 맞으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으며, 또한 그분은 우리의 죄악을 짊어지셨습니다.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8: 그러나 친히 하나님이신 그가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기나 한 것처럼 어떻게 그러한 심한 공포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까?
: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인성에 따라 이러한 극단적인 곤궁 속에 계셨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그분의 신성은 마치 잠시 동안 숨어계신 듯 신성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 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69: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러한 저주(고난) 가운데 빠질 수 있습니까?
: 그리스도께서는 그 고난에 머물러 있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말한 그 공포를 느끼셨지만 그것에 패배당하거나 억눌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를 깨뜨리고 멸하시기 위해서 음부의 권세에 대항하여 싸우셨기 때문입니다.
 
70: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통과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벌하시는 죄인들이 느끼는 고통 사이의 차이점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 안에 일시적으로 있었던 것이 죄인들에게는 영원한 것이며, 그분에게는 단지 찌르는 가시에 불과했던 것이 죄인들에게는 그들을 죽게 하는 칼이 되기 때문입니다.
: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벌하신 죄인들은 절망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불만을 품고 드디어는 하나님을 저주하게 됩니다.
 
[11주일]
71: 지금까지 말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우리는 어떤 열매(선물)을 얻을 수 있습니까?
: ,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속죄해 주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주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켜 주신 희생제물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씻는 역할을 하기에 이를 통해서 우리의 영혼은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하게 씻겨졌습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죄악들은 없어졌으며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기억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에 대한 채무증서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72: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부터 우리가 얻는 다른 유익이 또 있습니까?
: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들이라면 우리의 옛 인간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며, 우리의 육체는 억제를 당하여 악한 욕심들이 더 이상 우리 안에서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게 됩니다.
 
73: 다음 조항을 말해 보십시오.
: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그분은 죽음과 죄의 승리자라는 사실이 증거되었습니다. 부활을 통하여 그분은 죽음을 이기셨으며, 악마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셨으며, 모든 악마의 권세를 파괴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74: 그리스도의 부활은 얼마나 많은 유익들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까?
: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의로움을 충만히 얻도록 해 주셨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도 언젠가는 동일하게 영광스럽고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리라는 확실한 보증이 됩니다. 셋째로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이 부활에 참여하게 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미 지금부터 새 생명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거룩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12주일]
75: 다음을 말해보십시오.
: '하늘에 오르사'
 
76: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셨으므로 그분은 이제 더 이상 땅 위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 ,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로부터 명령받으신 것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지상에 머물러 계실 필요가 없으신 것입니다.
 
77: '하늘에 오르심'(승천)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 두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 땅으로 내려오셨던 것처럼 우리를 위해 다시금 하늘로 올라 가셨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분은 우리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고, 또한 과거 우리의 죄 때문에 닫혀있던 하늘 문이 이제는 우리에게 열려져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중보자와 변호자가 되시기 위해 그 곳에서 아버지의 면전으로 나아가십니다.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7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심으로써 세상에서 떠나셨고 이제는 더 이상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그분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79: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육신적인 형태를 통해서입니까?
: 아닙니다. 하늘로 올리움을 받으신 몸과 세상 모든 곳에 계신 신성은 서로 다른 별개의 사항입니다.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벧전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80: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말을 당신은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통치하시기 위하여 하늘과 땅의 주권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81: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오른편''앉아 계심'은 무슨 뜻입니까?
: 이 말은 이 세상의 왕들로부터 취한 하나의 비유입니다. 즉 그들은 자기들의 이름으로 통치하도록 임명한 대리자들을 그들의 오른편에 앉힙니다.
 
82: 당신은 바울이 말한대로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셨으며, 또한 모든 높은 것 보다 더 높혀졌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았다는 말이군요?
: 그렇습니다.
(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3주일]
83: 다음을 말해 보십시오.
: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언젠가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것인데 이 때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승천 시 본 모습 그대로 오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84: 마지막 심판은 세상의 마지막에 있을 것인데, 왜 당신은 그 때에 어떤 사람은 살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죽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한 번 죽을 것으로 명령되어 있지 않습니까?
: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였습니다. 그 때 살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저들의 부패가 제거되기 위해서 또한 그 몸이 썩지 않는 것으로 되기 위하여 몸이 순식간에 변화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고전15:52-3)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85: 그러면 당신은 이 변화가 저들의 최초의 본성을 제거하고 다른 상태로 살아나기 때문에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도 마치 죽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86: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언젠가는 다시 오시리라고 하는 사실로부터 우리가 얻는 유익은 무엇이 있습니까?
: 아주 큰 위로가 있습니다. 그분께서 나타나시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오직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임이 굳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87: 그러므로 우리는 최후의 심판을 두려워해서도, 또한 그것에 대해 공포감을 가져서도 안된다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최후의 심판자는 다른 이가 아니라 우리의 보호자이며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 [14주일]
88: 세 번째 부분으로 들어가 봅시다.
: 이것은 성령 하나님에 대한 부분입니다.
 
89: 이 신앙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대속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성부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이 속죄와 구원에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90: 왜 그렇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깨끗게 해 주시기 때문에 성령님께서는 이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의 양심에 뿌려주셔서 우리의 양심이 깨끗하게 되도록 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91: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십시오.
: 우리 마음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능력을 깨닫고 느끼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밝히시어(조명) 우리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께서는 자신의 은혜를 우리의 영혼 속에 확증하시고, 인치시며 그 은혜가 우리 안에 거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며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모든 선물과 은혜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15주일]
92: 다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4번째 부분인데 여기서 우리는 보편적(공동적=우주적=전체적)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93: 공동적 교회란 무엇입니까?
: 공동적 교회란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작정하시고 선택하신 성도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94: 이 조항을 믿을 필요가 있습니까?
: 당연히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이미 언급된 모든 것들의 은혜를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열매 없게 하지 않으려면 이것을 당연히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들로부터 자연적으로 생기는 열매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95: 그러면 당신은 지금까지 구원의 원인과 근거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우리를 자비와 사랑 안에서 받아들여 주신 것과, 이 은혜가 성령에 의하여 우리에게 견고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거기에 대하여 한층 더 큰 확신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 그 모든 것의 실현과 성취가 제시되고 있다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96: 당신은 어떤 의미에서 교회를 거룩하다고 말합니까?
: 성부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자들 안에서 당신의 영광이 빛나게 하기 위해 이들을 의롭게 하시고 정켤케 하시사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교회를 구속하신 후 이를 거룩하게 만드셨는데 이는 당신의 교회가 영광스럽고 흠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5:26-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97: '공동적'이란 무슨 뜻입니까?
: 성도들의 머리는 오직 한 분뿐이시라는 것과 모든 사람들은 이 한 몸 안에서 연합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러 교회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단 하나의 교회가 있을 뿐입니다.
(4:4-5)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고전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98: '성도의 교통'(사귐)이란 무슨 뜻입니까?
: 이것은 교회의 회원들 사이에 있는 일치를 보다 잘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은혜의 선물들은 모든 성도의 각각의 유익과 구원을 위하도록 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그들은 다 서로 사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99: 그러면 당신이 교회에 관하여 말하는 이 거룩함은 현재 완전한 것입니까?
: 아닙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안에서 싸우고 있는 중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역사 속에서 교회는 언제나 불안전한 형태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그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히 결합되어 그분에 의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지기까지는 결코 제거되지 않을 것입니다.
 
100: 이런 공동적 교회는 이를 믿는 것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이해 될 수 없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이를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외적인 표징에 따르면 보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신앙고백에서는 본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하신 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동적 교회는 사람의 눈에는 충분하게 볼 수 없습니다.
 
[용서][15주일]
101: 다음에 나오는 말은 무엇입니까?
: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
 
102: 용서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우신 자비하심으로써 당신의 성도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또한 없애 주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죄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전혀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죄들 때문에 자신의 성도들을 벌하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103: 이로부터 우리 자신의 공로나 노력을 통해서는 하나님께 용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에 대한 값을 치르셨으며, 또한 이에 대한 고통을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편에서는 이에 대한 어떤 공로적인 배상도 치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악된 행위들에 대한 용서를 다만 하나님의 순전하신 은혜로써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104: 왜 이 조항이 교회에 관한 조항 다음에 고백되어지고 있습니까?
: 왜냐하면 먼저 하나님의 백성 안에 가입되고 그리스도의 몸과의 일치와 결합 위에 굳게 서서 교회의 진정한 일원이 되지 않는 한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죄의 용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05: 그러면 교회 밖에는 단지 저주와 죽음만이 있다는 말입니까?
: 분명히 그렇습니다. 성도들의 공동체로부터 분리하여 따로 분파를 만드는 자들은 그들의 분열상태에 있는 한 결코 구원을 바랄 수 없습니다.
 
[육신의 부활과 영생] [17주일]
106: 다음에 나오는 말은 무엇입니까?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
 
107: 이 조항이 사도신경에 들어가 있습니까?
: 우리의 참된 행복이 이 세상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 세상을 마치 이국 땅처럼 통과해 나아가는 것을 배우며 모든 지상적인 사물들을 억제하며 우리의 마음을 조금도 이러한 것에 두지 않는 것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비록 아직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의 열매들을 완전히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용기를 잃지 않고 계시의 날까지 인내로써 이를 기다리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08: 이 부활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 이전에 이미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육신을 다시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육체는 성질이 전혀 다른 상태을 가졌기 때문에 죽음과 부패의 지배를 더 이상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의 외적육체와는 동일한 존재 형태를 보존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때까지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순식간에 변화를 통해서 기적적으로 다시 일으켜질 것입니다.
(고전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109: 이 부활 사건은 의인들이나 악인들이에게 모두 일어납니까?
: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 부활은 서로 다른 조건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쪽은 구원과 기쁨에로 부활할 것이며, 다른 쪽은 저주와 죽음에로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110: 그런데 이 신앙고백에서는 왜 영생에 대하여만 언급이 있고 지옥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까?
: 왜냐하면 이 신앙의 요약 속에는 성도의 마음에 위로를 주는 것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이 신앙의 요약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베푸시는 은혜들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엔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제외된 악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18주일]
111: 이제 우리는 신앙이 설 수 있는 기초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로부터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겠군요?
: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이란 성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구원자되심을 그분의 복음으로 친히 가르쳐 주신 대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성령의 은혜를 통해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아는 것입니다.
 
112: 우리는 이 신앙을 우리 자신의 힘을 통해서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얻는 것입니까?
: 성경에서는 이 신앙이 오직 성령님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분명한 것입니다.
 
113: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십시오.
: 우리의 이해력은 너무도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적 지혜를 깨달아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의심에 빠지거나 자기 자신이나 여러 가지 피조물에 대한 잘못된 신뢰에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밝히셔서(조명) 우리가 그 어떤 방법으로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이 신앙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즉 성령님께서는 구원의 약속들을 우리의 마음 속에 확증해 주시고 인쳐주심으로써 우리를 강한 확신 속에 굳게 새워 주십니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 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14: 우리가 이런 신앙을 소유하게 될 때 이 신앙으로부터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 이 신앙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해 줌으로써 우리로 영생을 얻게 해 줍니다.
 
115: 뭐라고요? 인간은 거룩한 삶과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때 이런 선행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 만일 어떤 완벽한 사람이 발견된다면 우리는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가련한 죄인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대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 외의 다른 곳에 우리의 의로움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3:10-11)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18주일]
116: 우리의 모든 행위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혜택을 입힐 수 있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정죄를 받았다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행하는 모든 일들은 죄악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모두 정죄하십니다.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117: 당신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로 우리를 받아주시기 전에는 마치 악한 나무가 악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가 죄만 지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의 행위들이 외적으로 볼 때에는 아름다운 모습을 띠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들은 정녕 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감찰하고 계시는 우리의 마음이 부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18: 그러면 당신은 우리가 우리의 공로와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호감을 사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도록 할 수가 없고 오히려 그와 정반대로 하나님의 진노를 부추기는 일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는 전혀 고려해 넣지 않으시고 오직 당신의 순전한 긍휼과 자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기쁘게 용납하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돌리시며, 우리의 죄악을 조금도 우리에게 돌리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3:5-7)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19: 그러면 당신은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 우리가 복음의 약속들을 믿고, 이를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신뢰로써 받아들일 때 이 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20: 당신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서 이 의를 우리에게 제시한 것처럼 이 의를 받는 수단까지(도구)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즉 우리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 이 의를 받는다고 말입니다.
: 그렇습니다.
 
[행위] [20주일]
121: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받아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은혜에 의하여 행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행위들 자체가 지니고 있는 가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관대하심으로 이 행위들을 용납해 주시는 것입니다.
 
122: 뭐라고요? 이 행위들이 성령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용납되어질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의 육신 가운데에는 언제나 어떤 결함이 항상 있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들은 이것에 더럽혀 지는 것입니다.
 
123: 그러면 이 행위들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게 만드는 수단은 무엇입니까?
: 그것은 신앙 안에서 행해질 때 그렇게 됩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를 엄격하게 심사치 않으시고 모든 불완전함과 오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을 가지고 덮어 주시며 그 행위를 온전한 것으로 간주하시며 받아들여 주신다는 것을 마음에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124: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이후에는 그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말입니까? 또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게 되어 구원이나 은혜를 얻는다는 말입니까?
: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입니다. 성경에는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떤 자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도록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진 빚을 계산하지 않으시도록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143: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125: 그러면 성도들의 모든 선한 행위는 무익하다는 말입니까.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천국에서 이 선행들에 대해 보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무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보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써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 두시되 기억지 아니하신다는 전적인 자비와 은총으로 되는 것이지 우리의 공로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126: 그러나 선한 행위를 하지 않고도 의롭게 인정 받는다고 믿을 수 있습니까?
: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분이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단순히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키고 자기의 무죄하신 공로를 통하여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출해 내시고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하게 해 주시겠다고만 약속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도록 해서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해 주시겠다고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127: 그렇기 때문에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선행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게을러지지 않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선행들이 만들어지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복음의 교리는 신앙과 회개의 두 가지가 모두 포함되는 것입니다.
 
[회개] [21주일]
128: 회개란 무엇입니까?
: 회개란 죄악에 대한 불쾌감과 선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로부터 나옵니다. 또한 이 회개는 우리를 이끌어 육신의 죄악을 억제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성령님에 의해 통치되고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129: 이것은 바로 앞서서 말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두 번째 점이라고 생각합니까?
: 그렇습니다. 참되고 올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분의 뜻에 복종하는 데 있다고 우리는 말합니다.
 
130: 왜 그렇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스스로가 상상에 따라서 만든 섬김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기뻐하시는 바에 따라 섬김 받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B. 율법.
[십계명]
131: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치하실 목적으로 우리게 주신 규칙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132: 율법의 내용은 어떻게 되어있습니까?
: 율법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네 가지 계명을 포함하고 있으며, 둘째 부분은 여섯 가지 계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계명은 모두 열 가지입니다.
 
133: 이 구분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두 돌 판에 써서 모세에게 주시고 그 율법이 열 가지 계명으로 요약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2:15)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 오는데 증거의 두 판이 그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편 저편에 글자가 있으니.
(4:13)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 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134: 첫째 돌 판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 올바로 영광을 돌리는 방법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135: 둘째 돌 판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 우리가 우리의 이웃과 더불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우리가 그들에게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1 계명] [22주일]
136: 제 일 계명을 말해 보십시오.
: "이스라엘아 들으라,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20:2-3)"
 
137: 그 뜻을 말해 보십시오.
: 하나님께서는 처음 부분을 율법 전체에 대한 서론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영원하신 분 그리고 세상의 창조주라고 부름으로써 당신께서 세상 만물에 대한 명령권이 있음을 주장하십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계명에 대해 친근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을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라면 우리는 마땅히 그분의 말씀에 복종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138: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애굽 땅으로부터의 구원에 관해 하신 말씀은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행하신 것이 아닙니까?
: 단편적으로 볼 때는 그렇게 보여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특성인 영적인 본질로 볼 때 이 말씀은 일반적으로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다 적용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라는 영적 종살이로부터 그리고 악마의 압제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139: 하나님께서는 왜 율법의 처음에 이런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며, 또한 우리가 그 반대되는 일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입니다.
 
140: 제 일 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만 속한 영광을 다른 곳에 옮기지 말고 오직 그분을 위해서만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41: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고유한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그분에게만 간구하고, 그분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에 돌려 드려야 할 모든 것들입니다.
 
142: 왜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며,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은밀한 생각까지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단지 겉으로의 신앙고백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참된 진실성과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사랑 안에서 하나님으로서 인정받으시기를 원하고 계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23: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2 계명] [23주일]
143: 제 이 계명을 말해보십시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그것들에게 영광을 돌리지 말라)(20:4-5)"
 
144: 이 말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형상도(image) 만들지 못하도록 전적으로 금하신 것입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형상화(가시적으로 나타내는 것)할 목적으로 혹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배할 목적으로 우리가 어떤 형상을 만들지 못하도록 금하신 것입니다.
 
145: 왜 우리는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표현하지 말아야 합니까?
: 영이시며 영원하신 알 수 없는 하나님과 생명 없이 썩어질 눈에 보이는 물체 사이에는 그 어떤 일치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15) 여호와께서 호렙산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17: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146: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명예(존귀)를 더럽힌다는 말입니까?
: 분명히 그렇습니다.
 
147: 여기서는 어떤 예배형식이 정죄되고 있는 것입니까?
: 마치 하나님께서 어떤 형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리라 하는 것처럼 그 형상 앞에 나아와 기도를 드린다든지 그 형상 앞에 무릎을 꿇는 다든지 그밖에 다른 어떤 존경의 표시를 행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148: 그러므로 이 계명에서는 모든 조각이나 그림, 즉 예술품들이 금지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단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모든 형상들, 외형적인 형상들 안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 그리고 그것으로 어떤 종교적인 형태들이든지 이 형상들로 우상숭배로 오용하는 것이 정죄되고 있다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149: 이 계명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 제 일 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배해야 될 분은 다른 헛된 신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 뿐이심을 선언하신 것이고, 이제 여기서는 우리를 모든 미신들과 육신적인 예배 방식으로부터 우리를 구해내시기 위해 무엇이 올바르고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예배의 방법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24주일]
150: 다음을 말해 보십시오.
: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에 한 가지 위협의 말씀을 첨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51: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힘에 대해서 말씀하십니까?
: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152: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질투'란 무엇을 말합니까?
: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동등한 그 어떤 신도 참으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전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것이 되어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영혼의 정조(순결 = 정절)는 영혼을 오직 그분에게만 드리는 것이며,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 외의 어떤 다른 미신에 빠지는 것은 우리 영혼의 음행(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153: 아버지의 죄를 자식에게 벌한다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 이 말씀은 우리에게 보다 큰 공포와 두려움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단지 당신 자신에게 죄를 범하는 사람들만을 보복하시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들 이후에 오는 아들의 자손이 저주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54: 그러면 남 때문에 사람을 죄인으로 처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까?
: 만일 우리가 인류의 형편이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이 될 것입니다. 즉 우리는 모든 본성적으로 저주를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설사 하나님께서 우리를 현 상태대로 그냥 내버려 두신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아무런 불평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의 자녀들을 축복하실 때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 대해 은혜와 사랑을 나타내 보여 주신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며, 반면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악인의 자녀들을 저주 가운데 버려두실 때 이것은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의 표시가 되는 것입니다.
 
155: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 하나님은 우리를 부드럽게 격려해 주시기 위해서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56: 이 말은 어느 한 성도의 복종이 그의 모든 자손을 구원할 것이라는 뜻입니까? 비록 그의 자손이 악한자인데도 말입니다.
: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성도들에 대한 자신의 인자하심을 확대시켜 그들의 자손에게까지도 당신의 은혜로우신 분으로 깨닫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신도들의 자손들을 육신적인 것을 따라서만 번영케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자손들을 거룩하게하여 당신의 뜻에 복종하도록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157: 그러나 이것은 영구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악인의 자녀들에게도 긍휼을 베푸실 자유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자녀들 가운데서도 당신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을 선택하시거나 버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유롭게 행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약속이 결코 공허하거나 무효하게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정도 내에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58: 왜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축복하실 때는 천대라고 말씀하시고 위협하실 때는 단지 삼, 사대라고만 말씀하십니까?
: 이는 하나님의 본성이 엄격하거나 가혹하심을 행하시는 것 보다는 인자와 친절을 베푸시는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는 자비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한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103:8)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삼 계명] [25주일]
159: 제 삼 계명을 말해 보십시오.
: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20:7)"
 
160: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 이것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거짓된 맹세뿐만 아니라 필요 이상의 서약이나 무의미한 맹세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을 우리에게 금하시는 것입니다.
 
161: 그러면 우리는 맹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도 괜찮은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진리(말씀)를 잘 보존하기 위해서 입니다. 둘째는 성도 가운데서 사랑과 일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맹세를 할 수 있습니다.
 
162: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맹세를 징계하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습니까?
: 그것은 하나의 실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은 그것을 찬송하기 위하여 두려움과 겸손으로써만 부르는 것이지 그 밖의 방법으로는 결단코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고 또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모욕하거나 혹은 모욕의 원인을 만들어 주는듯한 것들도 삼가고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163: 어떻게 이런 정신과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까?
: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경배와 찬양이외의 목적으로는 하나님과 그의 사역들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164: 이 계명에 첨가된 말씀은 무엇입니까?
: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165: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모든 범죄자들을 벌하시리라고 일반적으로 말씀하고 계신데 이 계명의 심판이 가지는 특별한 뜻과 의미가 있습니까?
: 그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이름의 영광을 특별한 계명으로써 보존하시는지를 선언하고자 원하시는 것이므로 그분의 이름을 모욕하는 자를 하나님이 참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한층 더 신중하게 존경심을 가지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 계명] [26주일]
166: 제 사 계명을 말씀해 보십시오.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20:8-11)"
 
16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제 칠일에 쉬도록 하기 위해 일주일 중 엿새 동안 일하라고 명령하셨습니까?
: 단순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도록 허락을 내리실 때 일곱째 날은 일해서는 안 되는 날로 보류해 놓으신 것입니다.
 
168: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어떤 일도 하지 말도록 금하신 것입니까?
: 이 계명은 몇몇 특수한 특징의 고려를 해야 합니다. 즉 안식일 준수는 고대 이스라엘의 낡은 율법 의식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식적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 계명은 폐지되었습니다.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69: 당신은 이 계명이 본래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구약시대에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그것이 율법의 의식인 한 그렇습니다.
(9:9-10)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70: 뭐라고요? 그러면 이 계명 안에는 의식적 형태 외에 다른 요소가 들어 있다는 말입니까?
: 이 계명에는 세 가지의 내용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171: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 첫째로 성도의 영적인 안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의 질서(규율)를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셋째로 종(아래 사람)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고 위로해 주기 위한 것입니다.
 
172: 영적인 안식이란 무엇입니까?
: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일들을 중지하는 것입니다.
 
173: 이 영적인 안식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통하여 우리를 통치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육체를 억제하고 우리의 본성적 욕구를 포기해야 합니다.
 
174: 이 일은 일 주일 간에 한 번만 행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날 끊임없이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그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전 생애에 걸쳐서 계속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175: 그러면 왜 그것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데 어떤 일정한 날을 설정한 것입니까?
: 상징은 사실과 전적으로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양자 사이에는 어떤 유사한 점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176: 왜 다른 날이 아니고 제 칠일이 이런 상징을 나타내기 위해서 정해졌습니까?
: '7'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완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영원성"을 표현하는데 매우 적합합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영적 안식이 현재 생활에서는 다만 시작한데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결코 완전하게는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27주일]
177: 여기서 우리 주님께서 자신이 쉬신 것처럼 우리도 쉬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떤 근거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은 이 창조물들을 바라보시는 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다 낫게 이 일을 잘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본보기로 제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일치하는 것 이상 더 바람직한 것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178: 우리는 매일같이 하나님의 모든 사역들을 묵상해야 합니까? 아니면 일곱째 나에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 이것은 매일 해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그것을 위한 특정한 날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린 3가지 내용 중에서 '교회의 질서'에 속하는 것입니다.
 
179: 이 날에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일을 무엇입니까?
: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로 교육을 받도록, 공동으로 기도를 드리도록, 그리고 믿음과 경건의 증거를 나타내도록 함께 예배로 모이는 것입니다.
 
180: 이 계명이 종들의 고통 경감과 위로를 위해서도 주어졌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지배 밑에 있는 종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공공질서에도 유익이 됩니다. 왜냐하면 쉬는 날이 하루 있을 때 사람들은 나머지 날 동안엔 일하는 습관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181: 이제 이 계명의 내용을 요약해 봅시다.
: 이 계명이 율법의 의식에 관한 한 이 계명의 이식들은 폐기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의 참된 의미가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182: 어떤 의미에서 그렇습니까?
: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능력을 통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새 생명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183: 이 계명의 내용 중에서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공중기도를 드리며 그리고 성례전에 참여하기 위하여 교회 내에서 제정된 규칙을 준수하고 성도들 사이에 세워진 영적규칙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184: 그러면 이런 형식들은 우리에게 유익이 없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유익이 대단히 큽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진리의 본질에까지 몰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들이 된 이상 우리는 우리를 그분의 통치에 내어 맡기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일을 중지해야 합니다.
 
[오 계명] [28주일]
185: 십계명의 둘째 판으로 넘어가 봅시다.
: "네 부모를 공경하라(20:12)"
 
186: '공경'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에 대해 겸손하고, 그분들에게 순종하며, 그분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 그분들을 도우며, 그분들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187: 계속해 보십시오.
: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에 한 가지 약속을 첨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88: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마땅한 공경을 행하는 자들에게 장수를 허락하시리라는 것입니다.
 
189: 이 세상의 삶은 비참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오래 살게 해 주시는 것을 은혜로 간주하며 이를 사람에게 약속하실 있단 말입니까?
: 이 세상의 삶이 비록 비참한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평생 동안 성도를 보호하고 인도해 주실 때 이것은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나타내 주시는 분명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190: 그러면 일찍 죽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당신께서 매우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이 땅으로부터 가장 빨리 데려가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191: 이렇게 이중적으로 일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약속을 지키실 수 있습니까?
: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상의 행복에 대해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조건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영적 구원을 위해서 유익한 것인 한'이라는 조건을 붙여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사실이 항상 앞서 이해되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은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192: 그러면 부모를 거역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 날에만 이들을 벌하시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삶에서도 그들의 육신에 대해 징벌하실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들을 일찍 죽게 하신다든 지, 수치스럽게 죽게 하신다든 지 또는 그밖에 다른 방법으로 죽게 하신다든 지 한다는 것입니다.
 
193: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에서 특히 가나안 땅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이 계명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관계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말씀은 보다 더 일반적(포괄적)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나라에 가든지 그곳의 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거처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194: 위와 같은 내용이 이 계명의 전부입니까?
: 비록 이 계명이 부모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하더라도 우리는 이것이 모든 연장자(상전=윗분들=지도자)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부모에게 해당되는 똑같은 원리가 이들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195: 어떤 원리입니까?
: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권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권위가 아니면 아버지나 왕이나 그 밖의 어떤 연장자에게도 권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육 계명] [29주일]
196: 제 육 계명을 말해보십시오.
: "살인하지 말지니라(20:13)"
 
197: 이 계명은 단지 외적인 살인 행위에 대해서만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외형적 행위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더 우리의 내적인 마음의 모든 악한 충동을 금하시기 위해서 이 계명을 제정하신 것입니다.
 
198: 그러면 당신은 여기서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어떤 "내면적인 살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미움, 원망, 또한 이웃에게 악을 행하려는 모든 욕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199: 그러면 우리의 이웃에 대해서 단지 미워하지 않는다든가, 아니면 악한 마음을 품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까?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미움을 정죄하실 때 그 분은 우리가 이 죄를 다만 두려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온전한 마음으로 그리고 어떤 거짓도 없이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의 생명의 안전을 돌아보기를 원하시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칠 계명]
200: 제 칠 계명을 말해 보십시오.
: "간음하지 말지니라"(20:14)
 
201: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 이것은 모든 간음은 하나님에 의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지 않으려면 금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 이것은 외적인 간음만을 금지하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이 계명을 정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분은 단지 외적인 행위에만 머물러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성향을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3: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203: 그러면 이 계명은 어떤 의미들을 더 포함하고 있습니까?
: 우리의 몸과 영혼은 성령님의 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아주 단정하게 보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행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마음의 간음에 대한 욕망, 말 그리고 몸짓에 대해서까지도 순수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어떤 부분도 더러움에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전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팔 계명] [30주일]
204: 제 팔 계명을 말해 보십시오.
: "도적질하지 말지니라"(20:15)
 
205: 이 계명은 일반 재판에 의해서 징벌을 받는 그러한 도적질만을 금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 의미에 있어서 더 넓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 여기서 말하는 도적질이란 그것이 폭력을 통해서나, 교활을 통해서건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정치 아니하시는 또 다른 방법을 통해서건 모든 부당한 상거래 및 이웃의 재산을 빼앗는 모든 부정직한 수단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06: 이러한 외적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만 충분합니까? 아니면 내적인 마음 역시 여기에 포함되어야 합니까?
: 우리는 언제나 이 계명을 정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고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영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여기서 단순히 외적인 절도행위에 대해서만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웃을 희생시켜서 부유해 지려는 계획, 의도 그리고 생각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07: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우리는 시민 각자가 자기의 재산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우리에게 부여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6: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6:10-11)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구 계명]
208: 제 구 계명을 말해 보십시오.
: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20:16)
 
209: 이 계명은 재판시 위증하는 것만을 금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웃에 대해 행하는 모든 거짓말을 전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입니까?
: 모든 거짓말을 금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종류를 지적함으로써 우리가 이웃 사람에 대하여 부정하게 욕을 말해서는 안 되며, 또 거짓말을 하거나 이웃 사람의 재산과 명예를 결단코 손상시켜서는 안 되는 것 등등 일반적인 교훈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210: 왜 이계명은 공적인 위증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까?
: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험담과 중상의 악을 몹시 혐오하도록 만들어 주기 위해서 입니다. 즉 거짓되이 이웃을 중상하고, 이웃의 명예를 휘손하는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은 후에 법정에서도 쉽게 위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줌으로 더욱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211: 이 계명은 외적으로 부당하게 말하는 것만을 금하고 있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이것은 앞의 계명들처럼 두 가지를 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외적으로 부당하게 말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악한 의도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212: 그러면 이 계명이 말하는 것을 요약해 보십시오.
: 이 계명은 이웃을 악평한다거나 중상하려는 생각을 갖지 말고 사실과 일치하는 한 이웃을 좋게 평가해 주고 이웃의 좋은 평판을 보전해 주라는 것입니다.
 
[십 계명] [31주일]
213: 마지막 계명을 말해 보십시오.
: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20:17)
 
214: 만일 모든 계명이 당신이 말한 대로 영적인 것이라면, 즉 다른 모든 계명들이 외적 행위들뿐만 아니라 마음의 성향까지도 규제하기 위한 것이라면, 왜 이 계명에서는 특별히 후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까?
: 주님께서는 다른 계명들을 통해서 우리의 외적 행동과 충동, 그리고 의지까지도 다스리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 속에 어떤 욕망이나 탐욕들을 품고 있기는 하나 아직 확정된 의도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우리 마음의 생각에 대해서도 다스리고 계심을 강조해서 말씀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215: 당신은 성도에게 다가오는 아주 작은 욕망까지도 죄라고 생각하십니까? 비록 그가 이것에 대해 저항하고 결코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 비록 그런 유혹에 동의하지 않아도 모든 악한 생각은 우리의 육의 연약함에서 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계명이 아직 확정된 의도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면서도 인간의 마음을 자극하며 괴롭히는 탐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16: 이제 확고한 의지적 결단을 은밀히 갖고 있는 나쁜 충동들이 벌써 앞에서 정죄되었듯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완전한 거룩함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군요. 그리하여 그 어떤 악한 욕망도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와 우리의 마음을 부추기고 움직여 악에로 이끌어가지 못하게 하신다고 말입니다.
: 그렇습니다.
 
[율법의 요약]
217: 이제 우리는 율법 전체를 요약해 볼 수 있습니까?
: ,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그것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온 마음과 온 생명과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2:37-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18: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사랑한다면 이는 우리가 그분을 주님이요, 구주요,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사랑과 더불어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 경외, 신뢰 그리고 복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19: 온 마음과 온 생명과 온 힘을 다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주님을 향한 우리의 열심과 열정이 너무나 커서 이 사랑에 배치되는 그 어떠한 욕망, , 계획 그리고 생각도 우리 안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32주일]
220: 둘째 조항은 무슨 뜻입니까?
: 우리는 본성상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성향이 대단하여 이 감정이 다른 모든 성향들을 제압 해 버립니다. 이처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이끌어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기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21: 그러면 우리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 단순히 우리의 부모, 친척, 친구 그리고 우리와 교제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과 또한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우리의 이웃입니다.
 
222: 이들은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 이런 이웃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지상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 세워주신 인간의 질서로서 신성불가침한 것이며 우리의 죄악으로도 폐기될 수 없는 것입니다.
 
223: 그러면 만일 누군가 우리를 미워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 자신만의 일이어서 위와 같은 하나님의 질서에 의하면 그는 우리의 이웃됨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를 계속 이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율법의 이행]
224: 율법에는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방법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이 율법의 명령에 따라서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 안에는 항상 결함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이 율법을 완전하게 행할 수가 없습니다.
 
225: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에 지나치는 그러한 완전한 기준을 요구하십니까?
: 주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될 의무가 없는 것을 요구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명령되어진 것에 우리의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완전에 이르기엔 먼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부족한 점을 우리의 탓으로 돌리지 않으십니다.
 
226: 당신은 지금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단지 신자들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 성도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에 의해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율법에 있는 가장 사소한 것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설혹 율법의 어느 한 부분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 사람이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하는 의무를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율법의 내용을 완전히 성취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33주일] [율법의 직무]
227: 이로부터 우리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율법도 이중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려야 합니까?
: 그렇습니다. 율법은 불신자들에 대해서는 단지 이들을 논박하여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도록 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대로 율법은 죽음과 정죄의 직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성도들에 대해서는 아주 특별한 다른 용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3: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고후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228: 어떤 것입니까?
: 첫째로, 율법은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즉 그들을 겸손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찾도록 준비시켜 줍니다. 둘째로, 율법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요구함으로써 그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게끔 주님께 간구하도록 권면해 줍니다. 동시에 율법은 그들로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이 불의한 존재임을 항상 자인하게끔 훈계해 줍니다. 셋째로, 율법은 성도들을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두려움 가운데 붙들어 두기 위한 울타리와도 같습니다. 즉 성도들의 삶의 규범으로서의 역할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229: 그러면 이 말은 비록 우리가 이 덧없는 삶의 날 동안 율법을 결코 성취할 수 없다 하더라도 율법이 우리에게 완전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무익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즉 이 율법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제시해 줌으로써 각자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따라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도록 만들어 주며 또 날마다 진보해 나아가도록 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230: 율법에서 우리는 모든 선에 대한 완전한 규범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율법 준수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의 내용 이외에 인간이 행하려고 노력하는 그 어떤 것도 인정치 않으시고 완전히 거부해 버리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복종 이외의 다른 제물을 요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7:23-24)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231: 그렇다면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행한 훈계, 충고, 명령 그리고 권면들은 무엇에 소용되는 것입니까?
: 그것들은 단순히 율법을 해설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를 율법에 대한 복종으로부터 이탈시켜 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율법에로 인도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232: 그러나 율법은 각 개인이 해야 할 사명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 ,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율법에서 각자에게 속하는 것은 각자에게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에 각자가 자기의 입장에서 자기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충분히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또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그 설명을 성경 전체에 걸쳐서 발견합니다. 즉 주님께서는 율법 속에 요약한 것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 성경 도처에서 이를 다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4주일]
 
C. 기도에 관하여.
 
[기도에 관한 일반적 가르침]
233: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 번째 부분인 하나님께 대한 복종에 관해서는 충분히 다루었으므로 이제는 세 번째 부분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 그것은 모든 궁핍 가운데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234: 당신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 한분에게만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하나님 되심에 적합한 영예로써 이를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35: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사람들에게 기도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까?
: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사항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데서는 여하한 좋은 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과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곳에도 근거지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해 주시는 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울 능력과 수단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쳐해 주시는 한 우리는 사람들에게서도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36: 당신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것이 유일하신 하나님께 간구드리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에게 신뢰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그들을 당신의 좋은 것의 대리자요 분배자로 삼으셨다는 전제 하에서만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좋은 것은 다 하나님 자신에게서 오는 것으로 알고 받아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그들의 손을 통하여 그것들을 우리에게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237: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좋은 선한 것에 대해서 그들에게 감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 아닙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단순히 그들의 손을 통하여 그 좋은 것이 우리에게 전달된다 할지라도 그 명예를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러한 모양으로 우리를 그들과 연결시켜서 우리가 그들과 서로 이웃이 되는 것을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238: 여기서 우리는 천사들이나 세상을 떠난 성자(聖者)들에게 기도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자들에게 우리를 도우며 보조해 주는 직책을 부여해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또 천사들에 대하여는,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돕기 위해 그들을 사용하신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들에게 기도한다거나 그들에게 호소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239: 그러면 주님께서 내리신 명령에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주님의 뜻에 위반된다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서 부여해 주신 것으로 만족해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한 불신앙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처하며 그분의 명령을 따르는 대신 그들에게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신뢰의 일부를 둔다면 이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만 남겨두신 것 을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5주일]
240: 이제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기도는 말로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아니면 기도할 때 영과 마음이 같이 요구됩니까?
: 말은 어느 때나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영과 마음은 언제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41: 어떻게 이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문제되는 기도에 있어서는 특히 더 요구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진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에게만 가까이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동반 없이 위선적으로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을 저주 하십니다.
(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29: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242: 그러므로 입으로만 행해지는 기도들은 모두 무익하다는 말이군요?
: 무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입니다.
 
243: 기도할 때 어떤 마음이 있어야 합니까?
: 먼저 우리는 각자 자신의 비참과 궁핍을 느껴야만 합니다. 이 감정은 우리 안에 슬픔과 괴로움을 일으킴니다. 그 다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얻으려는 갈급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마음은 우리의 마음을 불붙게 하며 우리 안에 기도의 열정을 일으켜 줍니다.
 
244: 이것은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 이것은 우리가 너무 어리석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만 합니다. 즉 사도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성령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어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도록 만드시며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 간구하고자 하는 마음과 열정을 만들어 주십니다.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45: 그러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우리 자신을 재촉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우리 안에 그러한 마음의 감동을 느끼지 못할 때 그렇게 만들어 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로 당신께 올바른 기도를 드리기에 적합하도록 만들어 주시기를 간구 한다는 것입니다.
 
246: 그러면 당신은 혀가 기도에 있어서 전적으로 무익하다고는 생각지 않으시는 것이군요?
: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에 혀는 영을 도와주고 또 영을 붙들어 굳게 해 주어서 하나님에게서 쉽게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혀는 다른 모든 지체들 보다 뛰어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창조되었으므로 모든 방법을 다하여 이 목적을 위하여 쓰이는 것은 참으로 합당한 것입니다. 또한 마음의 열정은 그 뜨거움과 격렬함으로 말미암아 종종 혀를 제어하여 본의 아니게 말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247: 그렇다면 방언으로(알지 못하는 말)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며 일종의 사악한 위선입니다.
(고전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고전14: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고전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36주일]
248: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간구한 것을 얻게 될 것인지 못 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면서 기도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때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만 합니까?
: 우리의 기도는 다음과 같은 기초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즉 우리의 기도들은 하나님에 의해 열납되어진다는 것과 그리고 우리의 구하는 바가 합당한 것인 한에서 우리가 그것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올바른 기도란 신앙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지 않을 경우 그분에게 진정으로 기도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249: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지의 여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기도의 응답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 그들의 기도는 아무런 약속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매우 무익한 것이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믿고 구하면 받는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250: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어떤 자격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럴 만한 자격을 도무지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첫째로, 우리는 이에 대한 약속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격을 고려하지 말고 이 약속들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를 이끄시고 다스리셔서 마치 자식이 아버지께로 오듯이 친밀하게 당신께 나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셋째로, 땅에 있는 가련한 벌레요 비참한 죄인들인 우리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중보자로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얻음으로써 우리가 맛볼 은혜에 대해 의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9: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251: 당신은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것에 대하여 분명한 명령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하면 그의 중보에 의하여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실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252: 그러므로 우리가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반기시고 소원을 들어주시도록 그를 우리들 앞에 세우실 것을 조건으로하여 우리가 감히 하나님에게 친히 호소하는 것은 결단코 무모함이나 어리석은 교만이 아니라는 것이군요?
: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나아가 기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음은 물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고로 우리가 마치 그리스도의 입을 통해 기도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36주일] [주기도문]
253: 이제 우리들이 드리는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우리는 머릿속에 생각나는 모든 것에 대해 간구할 수 있는가? 아니면 기도에 대한 어떤 규정이 있는 것입니까?
: 만일 우리가 기도할 때 자신의 생각을 따라서 기도한다면 우리의 기도들은 매우 무질서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무지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잘 간구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욕구들은 매우 난잡하므로 이것들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254: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 바에 따라 우리를 가르쳐 주셔야만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손을 잡고 인도하셔야 하며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255: 하나님께서 기도에 관해 우리에게 주신 규범은 어떤 것입니까?
: 하나님께서는 전체 성경을 통해서 매우 풍성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분명한 목표에 보다 더 잘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본보기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합법적이면서도 우리에게 유익한 기도의 모든 요점들을 간결하게 요약해 주시고 있습니다.
 
256: 그것을 말해 보십시오.
: 이것은 주님께서 기도에 대해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을 받으신 후 그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대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6:9-13)(11:1-4)
 
257: 주기도문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이것이 몇 개의 조항으로 되어 있는지 말해 보십시오.
: 여섯 가지입니다. 이들 중 처음 세 가지는 하나님의 영광에만 관련된 것입니다. 여기서는 우리 자신에 대한 고려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다른 세 가지는 우리들 자신을 위한 것으로 우리의 행복과 유익에 관련됩니다.
 
258: 뭐라고요?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도 돌아오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 참으로 하나님은 그의 무한한 자비로써 그분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하시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도록 모든 것을 섭리로 처리하시고 정하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의 성화로 바꾸어 놓으시며, 그의 나라가 임할 때 우리도 어떤 의미에서 그 나라에 참여 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갈망하며 구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거나 우리 자신의 유익을 구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찾아야 합니다.
 
259: 당신의 말은 이 세 가지 간구들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들이지만 우리가 이 간구를 할 때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갈망하는 이 한 가지 마음만을 가지고 간구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머지 세 간구들이 우리 스스로에게 유익한 것들을 갈망하도록 규정된 것이긴 하나 우리는 이 간구들 안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모든 간구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115: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38주일]
260: 이제 주기도문의 해석으로 들어가 봅시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왜 여기서 다른 이름이 아닌 '우리 아버지'라 불리우고 계십니까?
: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양심이 굳은 확신을 가져야 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라는 한 마디 말로 불리워지실 때 이 말은 아버지와 같은 다정함과 사랑스러움을 뜻하는 것이어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안과 의심과 곤혹스러움을 제거 해 주며 우리로 하여금 친밀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부여 해 주시는 것입니다.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261: 그러면 우리는 어린아이가 그의 아버지에게 나아가듯 감히 친밀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반드시 얻으리라는 큰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한 우리도 자녀들이 빵과 고기를 우리에게 구할 때 이를 거절할 수 없다면 선하실 뿐만 아니라 온갖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간구를 더더욱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262: '우리 아버지'라는 명칭으로부터 기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증거 할 수 있습니까?
: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한에서만 당신의 자녀들이라고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263: 왜 당신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일반적으로 '우리 아버지'라고 부릅니까?
: 성도 각자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자기 자신의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기도의 모범을 통해서 우리에게 공동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는 기도하면서 이웃에 대하여 사랑을 실천할 것과 또 자기의 일만을 걱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264: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그것은 하나님이 지극히 높으시고, 모든 권능이 있으시며, 그분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265: 어째서 이런 표현이 필요한 것입니까?
: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우리의 생각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것을 배움으로써 그분을 육적이거나 지상적인 것으로 상상하지 아니하고, 또 그분을 우리의 뜻에 종속시키지 아니하고 오히려 겸손하게 그분의 영광스러운 위엄을 경배하기 위해서 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 보다 분명한 신뢰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만물의 통치자이시며 주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4:15) 여호와께서 호렙산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115: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39주일]
266: 이제 첫 번째 간구인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에 대해서 말해 보십시오.
: 하나님의 이름이란 그것을 가지고 우리 인간 사이에서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실 그의 명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영광이 모든 곳에서 그리고 모든 일을 통해서 찬양을 받기를 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267: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이 증가되거나 감소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것입니까?
: 그분의 영광 그 자체는 그렇게 변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영광은 영광답게 밖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어떤 일이든지 그분의 모든 사역들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 영광스럽게 나타나 보여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모든 면에서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268: 당신은 두 번째 간구인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까?
: 하나님의 나라는 주로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통해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통치에 복종하기를 원치 않는 버림받은 자들(유기자)은 깊은 구렁에 빠뜨려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세에 저항할 수 있는 세력이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69: 그러면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 이 기도의 의미는 주님께서 당신의 택하신 성도들의 숫자를 날마다 증가시켜 주시라는 것과 그들에게 은혜를 날마다 더하여 주셔서 결국 이들을 모든 은혜로 충만하게 채워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당신의 진리(말씀)를 점점 밝게 해 주시고 당신의 공의를 드러내 주셔서 이를 통해서 사탄과 그의 왕국의 힘이 소멸되고 모든 불의가 파멸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270: 이런 일이 이미 현재에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 부분적으로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계속 성장하여 결국은 완성에 이르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이 완성은 최후의 심판 날에야 비로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날엔 오직 하나님만이 찬양을 받으실 것이며 모든 피조물들은 그분의 위대하심에 눌려 무릎을 꿇게 될 것이고 하나님 자신은 모든 일에 있어서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실 것입니다.
(고전15: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40주일]
271: 셋째 간구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 이것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굴복하여 구분에게 복종하게 되기를 원하며, 또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272: 당신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스려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마음에 정하신대로 이루어지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할 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모든 반역을 심판하셔서 모든 사람들의 의지를 오직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14: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14: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73: 이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거역하는 우리의 모든 욕망들을 꺽어 주셔서 이것들을 전혀 무익하고 무력하게 만들어 주시도록 간구하는 것이며, 또한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새 영과 새 마음을 창조하셔서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는 아무것도 원치 아니하고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과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갖도록 오직 하나님의 성령님만이 우리 안에 계셔서 원하시고 구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74: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니다'라는 말을 첨가한 것은 무슨 때문입니까?
: 하늘에 있는 피조물인 천사들은 어떤 반항도 없이 그저 묵묵히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와 같은 순종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자발적인 복종에로 되돌아오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41주일]
275: 둘째 부분으로 들어가 봅시다. 당신이 구하는 '일용할 양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 일반적으로 우리는 육체의 결핍에 대하여 없어서는 안 되는 일체의 모든 것, 즉 먹는 것과 입는 것에 관해서만 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온하게 우리의 양식을 먹을 수 있기 위하여 적당하고 유익하게 여기시는 모든 일을 말합니다.
 
27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손의 수고를 통해서 양식을 얻으라고 명령하셨는데 어찌하여 당신은 하나님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합니까?
: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로 수고하여 살도록 만들어 놓으셨다 하더라도 우리의 노동, 솜씨 그리고 열심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부양하는 것은 우리의 손과 우리의 노동에 대해 내리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바로 이 축복이 우리의 노동을 번창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가 비록 음식물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를 양육하는 것은 이 음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양육하는 것은 이 음식물을 수단으로써 사용하시는 주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8:17-18)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277: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나의(우리에게) 양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이 양식이 본래 우리에게 속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통하여 우리의 것이 되어진 것입니다. 또한 이 말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양식을 탐내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얻게 될 양식만을 구해야 함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278: '일용할'(필요한) 그리고 '오늘날'(매일)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것은 우리에게 만족하는 법과 또한 우리의 형편에 필요 이상으로 요구하거나 탐내지 않는 것을 가르치 위한 것입니다.
 
279: 이 기도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면 저축이나 노년기를 위하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은 어떻게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습니까?
: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주님께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리고 주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통해 그것이 자신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지 않는다면 결코 그들에게 유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설사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지 않는 한 우리는 사실상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42주일]
280: 다섯 번째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해 주시기 바란다는 것입니다.
 
281: 이 간구가 필요 없을 만큼 완전히 의로운 사람은 없는 것입니까?
: ,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위하여 이 형식을 그의 사도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 기도를 그만 두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를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또 사실 성경이 우리에게 증거하여 주는 것은 가장 완전한 사람이라도 스스로 의롭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한 가지 점을 주장하려고 한다면 많은 점에서 죄 있는 사람으로 발견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우리의 모든 피난처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9:3) 사람이 하나님과 쟁변하려 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282: 왜 이 죄의 용서가 우리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말씀들 자체가 이를 증거해 주십니다. 즉 모든 죄는 우리를 영원한 죽음의 형벌에서 면제를 받지 못하게 하는 부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순전한 은혜만으로써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83: 당신은 우리가 하나님의 값없으신 자비하심으로만 죄의 용서를 받는 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당신의 순전하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범한 아주 사소한 허물에 대해서까지도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284: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해 주실 때 우리에게 돌아오는 열매와 유익이 무엇입니까?
: 죄의 용서를 통해서 우리는 마치 의롭고 죄가 없는 것처럼 인정받아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양심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아버지와 같은 사랑을 확신하게 되는데 바로 이 사랑으로부터 우리의 구원과 생명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285: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들을 용서해 줌과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할 때 당신은 우리가 사람들을 용서해 줌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용서는 더 이상 은혜로운 것이 되지 못할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한 만큼 이루어진 속죄 행위에 기초를 두는 것도 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여러 가지 잘못들을 우리가 용서해 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온화하심과 관대하심을 본받아 따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그분의 자녀들임을 나타내 보여 주는 것이 됩니다. 즉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시켜 주기 위한 징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반대로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이 있는 사람들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을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시에 극도의 엄격함과 준엄함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286: 그러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잘못행한 것을 용서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로 인정해 주시지 않을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 할 기대를 갖지 않도록 하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은 그 이웃에게 행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자신들도 반드시 보응을 받을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43주일]
287: 여섯 번째 기도로서 다음의 뒤따르는 간구는 무엇입니까?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288: 당신은 이것이 다섯 번째 간구와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합니까?
: 그렇습니다. 이것은 다섯 번째 간구의 해석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289: 이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우리로 악에 빠지지 않도록 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며 우리가 악마에 의해 그리고 우리를 거스려 싸우는 육신의 악한 욕심에 의해 쓰러지지 않게 해 주시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고 보호해 주심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290: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통치해 주셔서 우리로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며 당신의 공의를 따르고 죄를 피하도록 만들어 주실 때 그렇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악마와 죄와 육체의 욕심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91: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악마는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기 위해 항상 우리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굳게 해 주셔서 승리하게 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너무나도 약한 존재여서 악마에 의해 넘어뜨림을 당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292: '시험'(유혹)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악마가 우리를 속이기 위해서 사용하는 모든 간계와 기만술입니다. 악마는 우리의 본성이 속기 쉬운 것을 틈타서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유혹을 이용하며,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의지는 선()보다는 악()에 더 빠지기 쉽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293: 그러나 그런 일은 악마의 고유한 일인데 당신은 왜 하나님을 향하여 결코 악에 빠지지 말도록 간구하는 것입니까?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긍휼하심으로써 당신의 성도들을 보호해 주시고 악마가 그들을 유혹하지 못하도록 하시며 죄가 그들을 제압하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벌하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버리실 뿐만 아나리 그들로부터 당신의 은혜을 거두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악마에게 내맡겨 악마의 다스림에 굴복하게 하시며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리고 그들을 타락한 가운데 버려 두시기 때문입니다.
 
294: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라는 첨가 부분은 무슨 뜻입니까?
: 이 부분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 그리고 그분의 선하심 안에 근거되어 있는 것이지 우리 안에 근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알려 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입을 열고 하나님께 간구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부분은 우리의 모든 기도들이 하나님의 찬송으로써 끝낼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295: 주기도문에 언급되어진 것 외의 다른 것을 간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 우리가 기도할 때 다른 말들과 다른 형식 그리고 다른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바른 기도의 유일한 규범인 주기도문과 부합하지 않는 그 어떠한 기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D. 성례전에 관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신앙고백]
[44 주일]
296: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경외의 네 번째 부분을 언급해 봅시다.
: 그것은 우리가 모든 선한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분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며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297: 하나님께서는 이를 행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어떤 규칙을 부여해 주셨습니까?
: 성경 안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찬송들과 감사들은 우리에게 규칙과 기준이며 교훈이 됩니다.
 
298: 그것은 주기도문에서 이미 언급되지 않았습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간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일들이 실제로 그대로 영광스럽게 나타나지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벌하실 때 의로우신 분으로, 또 용서하실 때 긍휼이 많으신 분으로, 당신의 약속들을 성취하실 때는 신실한 분으로 여김을 받으셔야만 합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지 않는 곳은 단 한 부분도 없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비로 이것이 우리가 모든 선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린다는 내용인 것입니다.
 
299: 지금까지 말한 전부에서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진리의 말씀이 증거하는 것인데, 즉 영원한 생명은 참된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분에게 마땅한 영광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와 구주가 되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는 모두 그분의 영광을 위해 바쳐진 그분의 자녀, 종 그리고 그분의 백성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은총의 수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45 주일]
300: 그러한 성도의 참 된 행복에 이르는 방법은 무엇인가?
: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거룩한 말씀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입구와 같습니다.
 
301: 당신은 어디서 그 말씀을 얻습니까?
: 그것은 오직 성경 66권에 있습니다.
 
302: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 하늘에서 온 진리로서 양심이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받아들이고 솔직한 순종으로써 그 말씀에 복종하며 진심으로 이것을 사랑하여 따르며 우리가 그 말씀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이 말씀을 우리 마음 속에 새겨 넣어야 합니다.
 
303: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서 그렇게 되도록 역사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304: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제시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듣기 위해서 그리고 이것을 읽기 위해서 애쓰고 열심을 내야 할 것이 아닙니까?
: 물론입니다. 먼저 성도 각자는 개인적으로 이를 위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특히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되어지는 그리스도의 집회에 가서 자주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305: 교회의 공적 집회에 참석하여 가르침을 받지 않고 집에서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한 수단도 제공해 주셨습니다.
 
306: 교회의 공적집회에 꼭 참석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 안에 이 질서(교회의 정치 질서)를 세워 놓으신 것은 두 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교회의 모든 성도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리스도께서 이것만이 성도를 교육하고 양육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보다 더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이 질서를 고수해야 합니다.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307: 교회에 목사들이 꼭 있어야만 합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잘 귀담아 들어야 하며, 그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주님의 가르침을 겸손히 받아드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들을 경멸하고 그들의 말에 경청하는 것을 거부하면 그 사람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물리치는 것이며 성도들의 공동체로부터 떠나는 것이나 마차가지 입니다.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308: 목사들로부터 한 번 가르침을 받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아니면 그 가르침을 계속적으로 받아야 합니까?
: 만일 열심히 추구하여 항상 끈기 있게 계속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거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끝까지 늘 예수 그리스도의 학생이 되어야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이름으로 우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교회의 목사들을 세워주셨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평생 동안 계속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수단으로서 성례에 관하여]
[46 주일]
309: 말씀 이외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하시는 다른 방도는 없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설교에 성례들을 첨가해 놓으셨습니다.
 
310: 성례란 무엇입니까?
: 성례란 하나님의 은혜를 외적으로 증거하는 것으로써 이 외적인 표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인 은혜들을 제시해 주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당신의 약속들을 보다 강력하게 새겨 넣으시기 위한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이 약속들에 대해서 더 큰 확신을 갖도록 만드시기 위한 것입니다.
 
311: 뭐라고요 외적이고 물질적인 표시가 우리의 양심을 견고하게 해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 성례가 그 자체의 힘으로 그런 능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목적으로 성례를 사용하시기 때문에 그런 힘이 있게 된 것입니다.
 
312: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 마음 속에 새기는 것은 성령님의 교유한 직무인데 어째서 당신은 이를 성례들에게 넘기고 있습니까?
: 이 두 가지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성격인 것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시키시며 우리의 오성(五性)을 조명하시고 또 우리의 양심을 굳게 해 주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 뿐이십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모든 일은 오직 성령님 자신의 사역으로 간주되어야만 하는데 이는 그로 인하여 우리가 성령님께 찬양을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좋다고 생각하시는 데 따라 보다 열등한 방법(낮은 방편)으로써 성례들을 사용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성령님의 능력은 조금도 감소되는 일은 없습니다.
 
313: 당신은 성례들의 효력이 외적인 요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오직 성령님께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능력에 어떠한 손상도 가하심이 없이 당신께서 제정하신 방법들을 통해서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314: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우리들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우리가 천사들처럼 영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들을 바로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육의 몸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로 하나님께서는 천상적이고 영적인 은혜들을 우리에게 제시하기 위해서 외적인 표시들을 사용하실 필요가 있으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이것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모든 약속을 확고하게 믿을 수 있게 우리의 모든 감각이 이 방법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은 우리에게 적당한 일입니다.
 
[47 주일]
315: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필요 때문에 성례들을 제정하신 이상 우리가 이를 불필요하다고 생각함은 오만 불손한 태도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 분명히 그렇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성례들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고의적으로 그 사용을 회피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것이며 그분의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고 또 그분의 성령님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316: 그러나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 실제로 함께 성례를 받고 있는데 성례들이 어떤 은총의 확신을 줄수 있습니까?
: 비록 불신자들과 사악한 사람들이 성례를 통해서 제시되는 은혜를 무효화 시킨다 하더라도 이러한 것 때문에 성례의 고유한 작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317: 그렇다면 성례들은 어떻게 그리고 언제 그 고유한 효력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까?
: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은혜만을 구하면서 믿음으로 이 성례들에 참여할 때 효력을 일으키게 됩니다.
 
318: 왜 우리가 성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까?
: 저는 우리가 성례에서 구원을 찾기 위해 외적인 표시에 집착을 가져야 한다든가 또는 그 자체에 어떤 감추어진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우리는 이 표시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올바로 인도할 수 있는 보조수단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만 구원과 모든 행복을 구하기 위해서 입니다.
 
319: 성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요구되는 것이라면 어째서 당신은 이 성례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고 또 우리 자신의 신앙을 굳게 할 목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말합니까?
: 신앙이란 우리 안에서 한 번 시작되었다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신앙은 계속적인 양육과 공급을 받아야 하며 우리 안에서 매일 성장해야 하고 증가행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앙을 양육하고 견고하게 하며 또한 증가 시키기 위하여 우리에게 성례들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성례들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 마음 속에 확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 의미인 것입니다.
(4: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0: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약속들이 성례들에 의해 우리 안에서 충분히 견고하게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를 위해 별다른 보조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것은 결국 불신앙의 표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 아닙니다. 이것은 다만 성도의 믿음이 작고 연약하다는 표시입니다. 즉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늘 있는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신자들의 자격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자들의 신앙은 완전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의 육 안에는 언제나 어떤 불신의 찌꺼기가 항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성장하며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48 주일]
321: 교회 안에는 몇 개의 성례가 있습니까?
: 예수님께서 모든 성도들의 공동체를 위해서 제정하신 것은 단지 두 가지 입니다.
 
322: 그것이 무엇입니까?
: 세례와 성찬입니다.
 
323: 이 두 가지 성례 사이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까?
: 세례란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입구와도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 관계없던 이방인과 같은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가족의 받아들여 주신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성찬은 우리에게 있어서 마치 어는 가정의 좋은 아버지가 그의 가족을 양육하며 음식물을 공급하는 일에 있어서 힘을 쓰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양육하며 즐기게 하려고 원하신다는 사실을 증거 해 주는 것입니다.
 
[세례]
324: 두 성례들에 대해서 보다 분명한 이해를 얻기 위해 각각에 설명을 더해 봅시다. 우선 세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 세례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먼저 주님은 세례에서 우리에게 우리의 죄의 용서를 나타내시며, 다음으로는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중생을 나타내십니다.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49 주일]
325: 물은 이러한 사실들을 나타내기 위하여 실제적인 사실들과 어떤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 모든 죄의 용서는 마치 씻음과 같습니다. 즉 우리의 외적인 몸이 물로 씻을 때 깨끗하게 되듯이 우리의 영혼이 세례로써 더러움으로부터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326: 세례의 또 다른 의미에 대해서 말해 보십시오.
: 중생의 시작은 인간의 본성이 죽음을 당하는 것이며, 중생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므로 물이 머리 위에 뿌려지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표시로서 우리 머리 위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의 부활이 상징적으로 제시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즉 이것은 물뿌림이 우리가 물 속에 빠져 익사할 정도로 오래 계속 되질 않고 순간적으로 행해진다는 것을 통해서 나타내 줍니다.
 
327: 당신은 물이 우리 영혼을 깨끗이 씻는 다고 생각합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깨끗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것은 우리의 모든 더러움을 깨끗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정결하게 설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힘으로 우리의 양심에 그 피가 부어지는 때 우리에게 완성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실이 성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확증되는 것 뿐입니다.
 
328: 당신은 물이 단지 하나의 상징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진리와 결합(사실과 결합된)되어 있는 상징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느 하나도 헛되이 약속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례 시에 죄의 용서가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주어진다는 것과 우리가 이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329: 이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성취되는 것입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은혜의 작용을 무효화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성도들만이 세례의 유익을 얻는다고 해서 인간의 사악함이 성례로 하여금 나타나지는 그 고유한 효력을 없어지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330: 중생은 어디서 그 능력을 얻는 것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다음과 같은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를 통해서 우리의 옛 사람의 본성은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하며 우리의 죄 된 본성은 장사되어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릴 지배력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를 따라가는 새로운 삶은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331: 세례 시에 이 은혜가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 세례 시 우리에게 주어지는 약속을 받기에 우리가 자세가 바르고 합당할 때 우리는 이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또한 그분의 성령을 받게 됩니다.
 
332: 우리 입장에서 세례 시 갖추어야 할 바르고 합당한 자세는 무엇입니까?
: 그것은 신앙과 회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깨끗함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신뢰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게끔 우리의 육신적인 욕심을 제거하기 위해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내적으로 확신을 가져야 하며 또 우리의 행실을 통해서 이런 삶을 드러내어 알게 해야 합니다.
 
[유아세례] [50 주일]
333: 세례 시에 그런 준비된 자세가 요구된다면 어떻게 우리가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습니까?
: 모든 연령의 계층이 신앙과 회개가 세례 시에 항상 선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다만 이것들을 행할 수 있는 어른들에게 반드시 있어야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성년이 된 후 세례의 열매를 제시해서 나타나면 충분한 것입니다.
 
334: 위에서 연령층을 두 부류로 나누는 것에 어떤 모순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 구약의 할례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말한 것처럼 회개의 표시였으며 또한 바울이 말한 대로 신앙의 표시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할례식에서 어린아이들을 제외시키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4: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35: 우리가 세례 시 어린아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할례 시에 있어서와 똑 같은 근거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 ,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모든 약속을 지금은 세계 전체의 당신의 교회에 확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336: 그러면 이런 구약시대의 일들을 신약시대의 우리가 그 표시들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사용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 성경 전체를 잘 살펴보면 그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었던 은혜에 참여하도록 하시는 것은 그 은혜를 우리 안에서 감소시키시기 위함도 아니요 전에 있었던 은혜보다 더 모호하게 만드시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 은혜를 더욱 분명하게 밝혀 놓으셨고 또한 확실하게 증가 시키셨던 것입니다.
 
337: 만일 우리가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가 오히려 감속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까?
: 물론입니다. 유아세례를 금지 할 경우 우리는 구약시대 사람들이 누렸던 어린아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의 증거를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아세례는 우리의 위로에 크게 소용되며 처음부터 있어 왔던 약속을 더욱 굳게 하는 데에도 크게 효력이 있습니다.
 
338: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옛날에 스스로 어린아이들의 주가 되시는 것을 선언하시고 이 약속이 그들의 몸에 외부적인 표시를 통해서 그들의 육체 안에 새겨 넣으시기를 원하신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도 이 약속이 감소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군요. 즉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한 약속이 계속 남아 있기 때문이고 또한 이 약속이 말씀에 의해 보다 분명하게 더 확증되고 있고 또한 실제적인 사실들로부터 더욱 확증되었다는 말이군요?
: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뿐 아니라 세례의 효력과 본질이 어린아이들에게도 주어지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보다 더 낮은 외적인 표시를 그들에게서 빼앗고 금지시킨다는 것은 부당한 것이며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모욕하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339: 그러면 어떤 거룩한 목적으로 이 유아세례를 행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까?
: 어린아이들이 성도들의 후손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의 상속자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표시와 증거로써 이를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이들이 장성한 후 자신들이 받은 세례의 진리를 인정하고 이 세례로부터 유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시행하는 것입니다.
 
[성찬] [51 주일]
340: 성찬에 관해서 말해봅시다. 먼저 성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찬을 제정하신 것은 우리 영혼이 그분의 실제적인 살과 피와의 연합을 통해서 영생에 대한 소망 가운데서 양육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341: 왜 주님께서는 빵()을 통해서 당신의 몸을 그리고 포도주를 통해서 당신의 피를 나타내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것은 빵()이 우리의 몸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특성은 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 안에서 그것이 몸을 지탱하고 유지하게 하듯이 주님의 몸이 우리의 영혼에 대하여 갖는 특성도 영적으로 우리 영혼을 기르고 유지하며 살리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포도주가 육체적으로는 사람을 강하게 하여 기력을 회복시키고 기쁨을 주듯이 주님의 피는 우리의 기쁨이며 우리의 영적 기력을 회복하는 힘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342: 우리는 실제적으로 주님의 몸과 피에 연합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까?
: 분명히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의 보장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대해 바친 복종에 있으며, 이 복종은 마치 우리의 자신의 것 인양 우리에게 돌려지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분이 주시는 모든 은사들은 그분이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먼저 주시지 않는 한 우리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4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와 화해시키시고 우리를 저주로부터 구원해 내시기 위해 죽음을 당하셨을 때 그분은 이미 그 순간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을 받아들여 우리 자신 안에서 그분의 죽음과 고난의 열매 및 효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충분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344: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오직 신앙이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단순히 그분이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머리가 지체들과 갖는 그러한 불가분리적 연합으로 우리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계셔서 이 결합의 능력으로 우리를 당신의 모든 은혜에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52 주일]
345: 이 연합(교제)은 성찬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복음의 설교를 통해서도 이 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뼈에서 나온 뼈요, 그분의 살에서 나온 살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영혼을 먹이시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시며, 또한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하나이심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하나될 것임을 여러 성경을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346: 우리는 성찬에서 이것 이상으로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즉 성찬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교제가 우리 안에서 보다 충분하게 확증되며 증거된다는 것입니다. 비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와 복음을 통해 우리와 교제를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단지 부분적인 것이지 완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347: 그러면 우리가 빵()의 표시를 통해서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 희생 제물로 바쳐졌던 주 예수님의 몸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우리가 이 화해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기 위한 것입니다.
 
348: 그러면 포도주의 표시를 통해서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 주 예수께서 우리 죄의 대속물로 자기 피를 지금 우리에게 주어 마시게 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고 당신의 피의 열매를 얻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349: 당신의 말은 성찬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난에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는 우리로 그 고난의 열매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유일하고 영원한 효력을 지닌 희생제물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미 바쳐졌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 뿐입니다.
 
350: 그러면 성찬이 제정된 것은 예수님의 몸을 매번 하나님 아버지께 제물로 봉헌(드리기)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이 봉헌의 직무를 가지신 분은 오직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한 분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은 당신 자신의 몸을 봉헌하지 말고 다만 우리는 이를 받기만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5: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26: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52 주일]
351: 왜 두 가지의 표시가 있는 것입니까?
: 주님께서 두 가지의 표시를 주신 것은 우리의 연약함 때문인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의 음료도 되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다른 곳이 아닌 주님 안에서만 충분하고도 완전한 양식을 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352: 모든 사람이 아무런 구분 없이 누구나 두 번째 표시인 잔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 예수님의 명령에 따르면 반드시 참여 할 수 있습니다. 이 명령에 위배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53: 성찬에서 우리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상징만을 가지는 것인가? 아니면 이것들이 실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리이신고로 그분이 성찬에 관해 행하신 약속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즉 그분이 성찬에서 보이시는 표시가 실제적으로 입증되지 않을 것처럼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저는 그리스도께서 한 생명 안에서 우리를 당신과 연합시키기 위해 당신 자신이 약속하시고 제시하신 바에 따라 우리를 당신 자신의 실체(subustance)에 참여케 하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믿습니다.
 
354: 그렇지만 예수님의 실제적인 몸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의 몸은 땅위에서 순례자로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 그것은 성령의 이해하기 어려운 능력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은 장소와 간격을 통해 떨어져 있는 사물들을 서로 잘 결합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55: 당신은 그리스도의 몸이 빵속에 그리고 그 피가 잔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그 정반대 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서 얻게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높여 하늘로 향해 가도록 해야 합니다. 즉 그곳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 중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곳으로부터 우리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썩어 없어질 물질적인 빵과 포도주에서 그리스도를 찾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356: 그러면 당신은 이 성찬에는 두 가지 요소 즉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혀로 맛보아 느낄 수 있는 물질적인 빵()과 포도주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 영혼을 내적으로 먹이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몸이 생명의 표시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성찬에서 우리의 몸의 부활에 대해 담보물처럼 확실한 증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54 주일]
357: 성찬의 올바를 사용 방법은 무엇입니까?
: 이것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각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살펴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전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358: 어떠 부분에 대해서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하는 것입니까?
: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인지 아닌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359: 어떤 증거들을 통해서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
: 회개와 참된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지 아닌지, 그리고 진실한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미움이나 원한 그리고 불화에 결단코 더럽혀지지 않았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360: 믿음과 사랑이 조금의 흠도 없이 완전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 이 두 가지는 모두 순수하고 거짓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의 흠도 없는 완전무결함이란 인간들 가운데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의 흠도 없이 완전무결하게 되지 않고서는 성찬에 참여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성찬은 헛된이 만들어진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361: 그러면 우리의 연약함(불완전함)은 우리가 성찬에 참석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연약하지 않다면 성찬은 우리에게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즉 성찬은 우리의 연약함에 대한 보조수단으로 또한 동시에 위안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362: 이 두 가지 성례들은 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됩니까?
: , 다른 목적이 또 있습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신앙고백의 외적인 표현이며 또한 표시가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에 소속되었다는 것과 또한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363: 성찬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합니까?
: 우리는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려고 하지 않고 침묵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64: 이 두 성례는 한 번 받고 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까?
: 세례는 단 한 번만 받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에 반복해서 받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찬은 계속적으로 받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365: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교회 안으로 인도하여 처음 영접해 주십니다. 그러나 일단 영접해 주신 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를 영적양식으로 먹여 주시겠다는 의도를 성찬을 통해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55 주일]
366: 세례를 베푸는 일과 성찬을 집행하는 일은 누가 행하는 것입니까?
: 그것은 교회 안에서 설교하도록 공적으로 직무를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증거하는 일과 성례를 시행하는 일은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67: 이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까?
: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세례를 베푸는 일과 설교하는 일을 특별히 당신의 사도들에게 위탁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찬도 마찬가지로 사도들에게 예수님 자신의 모범을 따라서 이를 행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2: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368: 그런데 성례를 집행하는 목사들은 아무런 구분도 없이 참석자들 모두에게 성례참여를 허락해야 하는 것입니까?
: 세례는 계층과 관련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른이나 어린이나 구분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성찬에 관해서는 목사는 성찬 받기에 전혀 불합당한 사람에게 성찬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369: 왜 그렇습니까?
: 그것은 성찬을 모독하며 더럽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370: 하지만 가롯유다가 제 아무리 악했다고 해도 우리 주님께서는 성찬 때 그를 참여 하도록 하시지 않았습니까?
: 그이 죄는 아직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비록 우리 주님께서 이를 모두 알고 계셨을지라도 모든 사람에게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71: 그러면 거짓 위선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목사들은 이들을 성찬 받기에 합당치 않은자로 여겨서 성찬시에 금지 시킬 수가 없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이들의 사악함을 외적으로 드러내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372: 그러면 목사가 성찬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을 친히 알고 있다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발을 받았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이 경우에도 충분한 증거나 교회의 공적 재판을 통해서 판결이 없을 때는 이들을 성찬에 금지 시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73: 그렇다면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어떤 규율이나 담당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 교회가 잘 관리되려면 이런 질서와 규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잘못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감독자를 선출해야 합니다. 이들은 교회의 공적 권위를 소유하고 성찬에 전혀 참석할 수 없는 부도덕한 자들과 또한 성찬을 받는 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교우들을 실족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자들은 성찬에 참여 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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