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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김철홍 교수다

“사상적 전향에 대한 그늘”에 대한 비판과 공산주의 이론의 그늘 속에 있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학에 대한 나의 입장

김 철 홍

며칠 전 전주(全州)에 있는 본 교단 소속 한일장신대의 신약학 교수인 차정식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의 글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사상적 전향의 그늘”이란 제목의 이 글을 읽은 나는 응답하기로 결심했다. 처음부터 나는 본교 교회사 교수들 중 누구라도 응답한다면 그 비판에 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고, 이것을 본 차정식 교수는 스스로 ‘구원 등판’을 결심한 듯하다. 이제 곧 논증되겠지만 사실 그의 글은 언급할 가치가 많은 글은 아니다. 그는 1980대초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한 학생치고는 이 역사 교과서 토론에서 실증적(實證的) 자료에 근거한 주장을 성실하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쉽게도 대부분의 지면을 나의 심리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했기 때문에 “남들이 자기의 보수 우파적 전향을 충분히 믿어주지 않을까봐 선명성을 부각시키려 더 길길이 날뛰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나마 그의 글에서 역사교과서 문제와 관련된 실증적 내용은 한국 역사학계에서 근대사 연구의 태두(泰斗)로 여겨지는 김용섭(金容燮) 교수의 “경영형 부농(富農)”에 관한 언급이다. 자, 그럼 그의 목소리를 한 번 직접 들어보자.
“그는 한 역사교과서에 사용된 다양한 용어를 길게 나열하면서 그것이 현재 검인정 교과서가 북한식 유물사관에 오염돼 있다는 증거라고 성토했다. 그 용어의 상당수가 가령 김용섭 교수의 ‘경영형 부농’처럼 역사학자가 해석을 위해 고안한 개념이 아니라 당대의 신문에 나온 사실적 개념들인데 말이다”(차정식 교수의 글에서 발췌).

내가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이 왜 문제인지를 설명한 지난 번 글에는 사실 약간의 미흡함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글에서 현재 역사학계가 왜 좌파 역사이론이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정식 교수가 그의 글에서 김용섭 교수를 언급한 것은 나로서는 ‘안 그래도 울고 싶은데 따귀를 때려준’ 셈이다. 차교수는 이미 나의 따귀를 때렸다.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여하튼 그가 따귀는 때렸으니 이제는 내가 제대로 울어야 할 차례다.

김용섭 교수의 “경영형 부농”에 대한 연구는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우리나라 근대사에 적용한 첫 성공적 사례로 볼 수 있다. 1970년대에 시리즈로 발표된 “한말 일제하 지주제”에 관한 그의 연구들은 당시 지주 중에 단순한 농사꾼이라기보다는, 상당한 토지를 축적하고, 토지에서 창출된 농업 이윤을 다시 재생산에 투입하여 확대재생산을 반복하는, 일종의 농업자본가로의 변신이 충분히 가능한 “경영형 부농”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예를 들어, 1978년 『한국사연구』에 발표된 “高阜 金氏家의 地主經營과 資本轉換”같은 연구가 그런 것이다. 이 논문의 제목이 보여주듯 김용섭은 고부 지역 대지주인 김씨 가문이 자신의 토지를 사용하여 자본가로 변신하는 과정을 묘사하려고 했다. 당시 그의 이런 연구는 국내 역사학계의 대환영을 받았고 이른바, ‘조선 후기 자본주의 맹아론(萌芽論)’이란 이름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즉,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부르주아 계층(자본가 계층)이 자생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만약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지만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도 자본주의의 싹이 이미 텄으므로, 스스로의 힘으로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移行) 할 수 있었는데 일본의 침략으로 그 이행이 저지당했다는 주장이다. 김용섭의 이론이 환영을 받은 기본적인 이유는 그의 이론이 식민사관(일본의 식민지배가 정치, 경제, 문화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주장)을 한국역사 학계가 극복할 수 있는 출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나는 33년 전 1982년 대학 2학년 때 서울대에서 경제학과 안병직 교수의 강의에서 이런 내용들을 배웠을 때의 감동을 아직 기억한다. 도서관에서 구한말, 일제 초기의 토지대장과 소작소출 기록에 대한 분석을 포함한 김용섭 교수의 논문들을 다수 탐독했고, 다른 학생들이 미팅을 하러 나갈 때 나는 그의 글의 각주에 인용된 글까지 찾아 읽으면서 그의 실증적 연구에 탄복했다. 그의 주장은 내가 그 동안 배운 유물론적 역사이론이 단순한 추상적 진리가 아니라 실제 우리 역사에 적용 가능한(applicable) 이론이라는 것은 경험하게 해주었다. 즉, 인류의 역사는 1) 원시공산주의, 2) 고대노예제, 3) 중세봉건제, 4) 근세자본주의, 5) 현대 사회주의, 6) 미래의 공산사회로 단계적으로 발전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유물사관이 그대로 우리나라 역사에 적용된 이론이었다. 김용섭의 연구는 국사학자들이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것을 도와준 것은 사실이지만, 공산주의 경제사 이론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사학계에 큰 해악을 끼치게 되었다. 그의 이론은 절대로 단순한 경제사(經濟史)에 관한 서술이 아니다. 인류 역사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행한다고 보는 이런 이행론(移行論)은 결국 우리나라도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당연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행은 오직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런 유물론적 역사관은 결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이론이 아니며, 산주의 “정치 이념”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다. 그러므로 김용섭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상관없이 그의 연구를 지지하고 따르는 다수의 현대 국사학자들은 스스로 한국근현대사 연구를 공산주의 이론의 틀 안에 가두고, 오직 그 관점에서 서술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차정식 교수가 “그(김철홍)는 한 역사교과서에 사용된 다양한 용어를 길게 나열하면서 그것이 현재 검인정 교과서가 북한식 유물사관에 오염돼 있다는 증거라고 성토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순진무구한 무지를 폭로할 뿐이다. 현재 “역사교과서의 다양한 용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 용어들은 이념적 용어들이다. 설사 차교수의 주장처럼 김용섭의 “경영형 부농” 개념이 김용섭이 만든 것이 아니고 일개 신문사 기자가 고안해 낸 용어라 하더라도(물론 김용섭의 제자들은 차교수의 이 주장에 “길길이 날뛸”지도 모른다), 상관이 없다. 김용섭은 그 용어를 사용하여 자본주의 맹아론을 개발했고, 이 이론을 통해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단계적 이행론을 우리 역사 연구에 적용했다. 신문사 기자가 “경영형 부농”이란 말을 쓸 때 그가 공산주의 이론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김용섭은 유물론적 역사관을 설명하기 위해 그 용어를 사용했다. 같은 용어라도 사용방법이 다르다. 사용방법이 다르면 같은 용어도 다른 뜻을 전달한다. 차정식 교수가 말하듯이 내가 “이념적 이분법에 압도돼 역사해석의 기본인 ‘실증’을 소외”시킨 것이 아니다. 용어가 이념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을 이해 못하는 차교수가 스스로 자신의 무지에 “압도되어” “실증”을 보고도 이해 못하고, 나의 논지로부터 자기 자신을 “소외”시켰을 따름이다.

김용섭의 이론은 이미 오늘 날 역사학계가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규범적 틀(normative frame)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역사 이론은 이념의 실천인 혁명 전략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이론이 어떻게 혁명 전략의 기초가 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김용섭의 연구 뒤에 등장한 안병직의 “식민지반(半)봉건사회론”이다. 이 이론은 원래 중국공산당이 공산혁명 당시 중국사회를 분석한 틀로서,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이행론을 ‘살짝’ 수정한 이론이다. 내용인 즉, 서구 열강의 침략 이전 중국은 농업을 주로 하는 전통적 봉건사회였지만 제국주의가 침략하여 식민 지배를 받게 되면서 지배국가의 자본주의 제도가 식민지에 부분적으로만 이식되었다. 동시에 전통적 봉건사회는 완전히 해체되지 않았고 강제적으로 부분적으로 유지되었다는 주장이다. 제국주의는 중국의 봉건주의와 자본주의 제도를 교묘히 반반(半半)씩 결합시켜 유지함으로, 결국 중국은 지속적으로 후진적인 상태에 머물게 되고, 정상적인 자본주의로의 이행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식민지반봉건사회인 중국에서, 산업 노동자가 절대적으로 그 숫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어떻게 가능한가? 해답은 노동자와 농민이 연합하여 공산혁명을 이루는 방법에 있었다. 어차피 노동자와 농민은 제국주의 수탈의 피해자이므로 두 계급은 함께 연대하여 투쟁할 수 있다. 그래서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단독 혁명이 아니라 노동자와 소농민(peasant)이 연합하고, 기타 제국주의, 대지주, 자본가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총결집한 통일전선을 구축한, 계급간의 유혈 투쟁인, 인민해방전쟁을 수행했다.

현재의 검인정 역사교과서를 집필한 사람들이 역사를 보는 관점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이런 “식민지반(半)봉건사회론”과 동일한 관점에서 일제시대를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금성출판사에서 만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340쪽은 아래와 같이 당시의 상황을 계급투쟁론의 관점에서 묘사한다.

“파업 투쟁과 소작 쟁의가 폭발적으로 고양되자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적 노동조합과 혁명적 농민 조합을 조직하였다. 혁명적 노동조합 운동은 노동자들의 삶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면서 대중적인 기반을 확보하고, 그를 토대로 반일과 같은 정치 투쟁으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미래엔출판사에서 고등학교 교과서인 『한국사』 269쪽은 아래와 같이 저자의 관점을 더욱 더 선명하게 노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1930년대 들어 농민·노동 운동은 급진적인 양산으로 바뀌어 갔다. 일제가 지주와 자본가의 편에서 농민과 노동 운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자, 농민과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세력과 연대하여 혁명적 농민 조합, 혁명적 노동 조합을 만들어 저항하였다. (중략) 이러한 사실은 농민·노동 운동이 단순히 생존권 투쟁이 아니라 계급 해방을 추구하는 혁명 운동이자 반제국주의 항일 투쟁으로 발전하였음을 보여 준다.”

노동자, 농민, 사회주의자들의 연대가 한 편에 있다면, 반대편에는 일본 제국주의, 지주, 자본가가 서있다. 이들 진영의 계급투쟁은 오직 혁명을 통해서 해소되며 그 결과는 단순한 생존권의 확보가 아닌 계급 해방이다. 그 혁명은 곧 공산 혁명이다. 내가 이 글에서 증명하고자 하는 바는 현재 검인정 교과서들이 이런 공산주의 이론을 근거로 해서,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식민지반(半)봉건사회론”에 근거해서 기술되고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식민지반(半)봉건사회론”이 북조선 인민민주의의공화국의 역사학자들이 일제시대를 기술할 때 사용하는 이론적 틀이라는 점이다. 모택동의 이론이 조선공산당에 영향을 주었고 이 전통이 현재 북한에 지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위의 교과서의 내용은 사실상 북한이 근현대사를 보는 관점도 사실상 동일하다(물론 안병직 교수가 북한으로부터 이것을 수입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이론에서 영향을 받아 스스로 이 이론을 세웠다). 차정식 교수는 내가 “한 역사교과서에 사용된 다양한 용어를 길게 나열하면서 그것이 현재 검인정 교과서가 북한식 유물사관에 오염돼 있다는 증거라고 성토했다”고 나를 비판했다. 하지만 그가 모르고 있는 비밀은 검인정 교과서들은 처음부터 이런 “유물사관에 오염”되어 있는 역사관, 즉 “식민지반(半)봉건사회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무지를 여기서 너무 심하게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차교수는 지금 이 교과서 논쟁에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심대한 공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정식 교수는 역사학에 문외한인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생조차 현재 검인정 교과서에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알아보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웅변적으로 잘 보여주는 살아서 걸어 다니는 증거다.

우리는 종종 남한의 역사 교과서 저자들이 북한의 역사 교과서를 보고 베꼈다는 주장을 듣는다. 그 말은 사실 남한의 역사학자들을 우습게보고 모욕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공산주의 이론을 습득하여 역사를 연구하는 남한의 역사학자들이 갖고 있는 학문적 능력을 그렇게 폄하하면 안 된다. 그들은 북한의 역사책을 보지 않고도 북한의 역사책을 능가하는 책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 어떤 면에서 남한의 좌파 역사이론은 북한의 이론을 오래전에 능가하였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남한의 교과서와 북한의 역사교과서 사이에 유사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고 표절로 몰아붙이는 것은 그들의 학문적 역량을 지나치게 과소평가 하는 실례의 말이니 앞으로는 삼가도록 하자.

남한의 좌파 이론이 북한의 수준은 넘어선 것으로 보이는 것은 비단 역사학 분야만이 아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에 반대하는 남한의 정통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수준이 그가 어떤 계열에 서 있건 관계없이,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1980년대 말-90년대 초에 있었던 “사회구성체론 논쟁”에서 이미 증명했다(물론 소련과 동구 공산국가들이 이미 몰락한 상황에서 ‘세계적’이라고 해봐야 별로 세계적이지도 않은 것은 사실이다). 1985년에 『창작과비평』 57호가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밝히기 위한 논쟁을 기획한 이래 9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이 논쟁에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한국의 자본주의를 ‘국가독점자본주의,’ ‘주변부자본주의,’ 혹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등,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게 들리는 각종 이론을 주장하며 논쟁을 벌였다. 물론 여기에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는 참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사파에게 북쪽의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통일전선 형성 시 연대의 대상일 뿐 토론의 상대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토론은 1990년을 지나면서 급격히 동력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한국사회의 각종 경제적 지표들이 이미 이들의 주장을 무효화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그들의 노력이 별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회대학교와 같은 그들의 진영으로 후퇴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라는 다소 모호한 이론이 그들이 떠난 빈 자리 공백을 메우게 되었다.

이런 그간의 사회구성체 논쟁의 내용을 총 정리하여 4권으로 집대성한 책, 『한국사회구성체논쟁』을 편집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현 서울시 교육감 조희연이란 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자유시장 경제제도를 채택한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의 학생교육의 수장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사회구성체논쟁을 집대성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이념적 좌파들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고 깊다. 그들은 이미 고지(高地)를 선점(先占)하였다는 나의 말은 여기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그러므로 교과서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현 검인정 교과서에서 6.25를 남침으로 묘사했느냐 북침으로 묘사했느냐, 그런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6.25를 남침으로 묘사했다고 해서 교과서에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현행 검인정 교과서가 갖고 있는 문제는 이 교과서의 근현대사 부분이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역사관에 의해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그 교과서가 사용되는 한 사회주의에 친화적인 태도(socialism-friendly attitude)를 갖고 있는 젊은 세대를 끊임없이 생산해낸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 범 좌파계열이 모두 한 결같이 입에 거품을 물고 국정화를 반대하는, 그 비밀스러운 이유가 숨겨져 있다. 주사파건, 정통 마르크스주의자건, 새천년민주당이건 일반시민이건, 이들은 한 마음으로 연합하여 국정화를 막아야만 한다. 그것은 그들의 공통의 이익이다. 단지 북쪽의 공화국이 국정화를 반대하라고 공개 지령을 내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정화를 막지 못하면 당장 야당에게 친화적이고, 사회주의 이념에 친화적인, 다음 세대를 만들어 결국 언젠가는 한국사회를 사회주의로 이행시켜야 하는 그들의 역사적 소명을 성취할 가능성은 점점 더 적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차정식 교수가 얼마나 좌파 이론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와 이런 문제로 토론한 적이 없고, 그의 짧은 글을 읽고 그가 갖고 있는 사상의 경향과 깊이를 가늠하기가 나로서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내 눈에 그가 사회주의 이론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차정식 교수와 나 사이에 있는 차이점을 비유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여기에 갈색의 물질이 있다. 그것은 얼핏 보면 된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인분(人糞)처럼 보이기도 한다(편의상 이하에서는 인분대신 영어 알파벳 D를 사용하기로 한다). 차교수는 검인정 역사 교과서는 D가 아니고 된장이라는 것이다. 나의 주장은 그 책들이 된장이 아니고 D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D이므로 어린 학생들에게 먹이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차교수는 이것이 된장이므로 학생들에게 계속 먹이자는 것이다. 차교수는 나에게 “이 갈색의 물질이 D인지 된장인지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 그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먹어봤기 때문에 안다”이다. 차정식 교수는 내가 좌파 이념을 버리고 애국 우파로 전향한 것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정반대의 방향으로 사상적 전향을 한 학자가 그 굴절된 내면의 그늘을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중략). 그러나 그의 사상적 전향에 또 다른 트라우마의 그늘을 대하는 씁쓸한 뒷맛은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사상적 전향에 대해 차정식 교수가 어떤 입맛을 다시는지에 관해 나는 사실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꼭 말해주고 싶다: “정말 이것이 D인지 된장인지 알고 싶으면 직접 한 번 먹어 보라. 내가 먹어봤는데 그 맛은 씁쓸하다.”

그리고 동일한 말을 공산주의 이론의 그늘 속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모든 역사학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물론 그 안에는 그 동안 D를 나보다 더 많이 먹어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먹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무엇인지 모르고 먹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자로서 걸어온 길을 한 번에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이 좌파 이론을 버리고 한국사를 다른 관점에서 보지 않을 것이고,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단숨에 역사를 설명하는 다른 길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사실 나는 그들이 학문의 세계에서 자신들끼리 모여 무슨 말을 하건 큰 관심은 없다. 나는 그들이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 관점을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지만 하면 그들이 그들의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것에 찬성한다.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한 나의 현재 심리상태에 관해 차정식 교수는 내가 “자신의 과거 행적을 얼룩지게 한 좌파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을 더욱 더 신랄하게 씹어대고 가혹하게 공격하지 않으면 과거의 이념적 괴물이 다시 출몰해 자기의 존재에 위해를 가할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고 적었다. 사상적 전향 때문에 내 심리의 이면에는 “배제의 공포심리도 적잖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그는 진단한다. 나의 심리적 상태를 분석하는 그의 삼류 심리학에 나는 별로 감흥이 없다. 하지만 그가 나를 “배신자로 낙인찍힌 사람”에 비유한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왜냐하면 차정식 교수는 내가 사상적으로 전향한 것을 ‘배신’행위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내가 좌파 사상을 버리고 우파로 돌아선 것은 우리 시대에는 ‘용서받지 못한 죄’를 지은 것이고, 나같은 사람을 ‘가롯 유다’와 동급으로 보는 차정식 교수의 관찰은 사실 정확하다. 그는 “정말 이것이 D인지 된장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치고는 매우 예리한 관찰력을 지녔다.

통합진보당 19대 국회의원이었던 임수경 의원이 탈북자 백요셉씨에게 술에 취해 쏟아낸 말, “개념 없는 탈북자 00가 국회의원인 나한테 함부로 개겨?”, “야 이 탈북자 00들아 대한민국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어, 자꾸만 그 북한인권인지 하는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그러다 다친다? 너 몸조심해 이 00야”, 등은 1989년 평양통일대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북한을 방문했던 ‘통일의 꽃’ 임수경의 화장하지 않은 민낯을 그대로 잘 보여준다. 조선인민주의공화국을 버리고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탈북자들이 그들의 눈에는 “개념 없는” 배신자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죄인들이다. 1980년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스스로 폐기하고, 대한민국의 경제를 ‘중진자본주의’로 새롭게 정의하면서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한 안병직 교수에게 ‘사상적 변절자’라는 딱지(label)를 붙이고 공격한 사람들은 누구였나? 그들은 바로 ‘사상의 자유’를 부르짖는 좌파들이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를 수 있어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씀)는 좌파들이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한 사람들을 배신자로 비난한다. 장신대 일반게시판에 일련번호 28330의 글을 쓴 본교 학생 송현석군은 나에게 “역사학과 교수님들이 함께 의견을 낸 모습에 대해 자신의 개인적인 과거사를 들고 반대하고 나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고 점잖게 타이른다. 그렇다, 그 학생에게는 내가 우파로 전향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제 2의 김영환이라도 되어보겠다는 건가?”라고 묻는다. 나이 어린 학생의 질문치곤 제법 무서운(!!!) 질문이다.

언제부터 이 나라가 좌파 이념을 버리면 변절자, 배신자, 부끄러운 자가 되는 나라가 되었는가? 도대체 이 나라에는 내가 나의 사상을 마음대로 선택할 자유도 없는 것인가? 내가 “제 2의 김영환”이 될 수도 있지, 뭐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 내가 사는 대한민국은 이제 내가 나의 사상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도 없는 나라다. 좌파이념을 버리고 우파가 되면 변절자, 배신자 소리를 듣는 나라다. 정말 웃기는 상황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대한민국을 덮고 있는 전체주의의 망령,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인민민주주의(속칭, 민중민주주의)를 꿈꾸는 망상가(妄想家)들이 이 땅의 교육계를 활보하는 한, 나는 차정식 교수가 주는 경고, “저쪽 진영에서 이미 날 배신자로 낙인찍었는데”를 깊이 묵상하면서 몸을 사려야 하는가? 정말 웃긴다.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내가 살던 그 시대의 상황에 최선을 다해 응답했다. 그 말은 내가 뛰어난 이론가였다는 주장도 아니고, 내가 누구보다 더 뛰어난 투쟁을 했다는 뜻도 더 더욱 아니다. 나는 그렇게 좋은 머리를 갖고 태어나지도 않았고, 천성이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겁이 많다. 그런 나를 내가 잘 알기에 나는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자리에서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나의 몸을 던졌다. 과거에 대해 아무런 후회도 없고, 원망도 없다. 난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했고, 그 일로 인해 내가 당했던 약간의 부당한 탄압도 내가 당연히 지불해야 했던 대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내 마음은 항상 평안하다. 차정식 교수가 염려하는 그런 병리적 심리 문제는 아쉽게도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정식 교수처럼 당시 학생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 상태가 더 불안해 보인다. 기왕에 심리분석 문제가 나왔으니 나도 어설픈 삼류 심리분석을 한 번 해보려고 한다. “어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노래를 부르면서 “학우여”라는 외침을 던지며 어떤 학우가 경찰에 끌려가고 있을 때, 그와 함께 하지 못하는 자신의 비겁을 자책하면서, 방과후 학교 앞 선술집에서 막걸리에 취해 군부독재를 욕하던 사람들, 끌려간 친구를 생각하면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들의 내면의 깊은 곳에 ‘죄의식’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 그들을 향한 연민, 그리고 죄책감이 결국 수많은 386, 486 세대들의 마음속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 죄의식은 지금도 이념적 좌파들을 향해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그들이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형무소에 다녀왔으므로 그들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에 자동적으로 면죄부를 주게 하고, 그들이 공산주의 이념에 물들어 있는 것을 뻔히 보고 알고 있으면서도 차마 “그건 안돼”라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 대체 언제까지 그 죄의식에 시달릴 것인가? 좌우 이념적 대립의 문제는 자라나는 세대가 일으킨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사회의 “중견”으로 자리 잡은 세대들이 갖고 있는 문제다. 그런 점에서 차정식 교수가 나를 “중견 교수”라고 부른 것은 적절하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중견 시민이므로 이제 우리 중견 시민들의 선에서 지금 이 문제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균수명이 90가까이 길어질 미래에 386, 486 세대는 죽을 때까지 앞으로 40년 동안 이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정화냐 검인정제도냐 이 선택은 큰 의미가 없다. 지금은 친일청산이 중요한 시점이 아니고, 좌파이념의 청산이 더 절실한 시점이다. 끝으로 차정식 교수의 ‘구원 등판’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2015년 11월 4일 장신대 신약학과 부교수 김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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