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순교자 전도사 박기천,  아들 목사 박래영


경남 서부 내륙의 젖줄인 황강을 따라 한참 운전하다 가천천과 황강 합수 지점에서 방향을 틀었다. 깊은 계곡길이 이어졌다. 경남 거창군 남하면 가천교회(1906년 설립)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가천교회는 숙성산(907m) 자락 가천마을 입구 왼편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철제 종탑 십자가가 멀리서도 또렷했다. 예배당은 그저 가난한 시골교회였다. 샌드위치판넬 예배당과 추위를 피하기 위해 비닐로 가린 사택이 순례자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예배당 아래 집은 서까래가 무너져 가는 빈집이었다. 한국 농촌교회 현실은 어디나 이와 같다.

가천교회는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순교자 교회다. 청년 전도사 박기천은 6·25전쟁이 한창인 1950년 9월 10일 주일 낮 11시 예배를 마치고 인민군에 끌려갔다. 그리고 9·28서울수복을 앞둔 9월 26일 경남 함양군 함양읍 당그레산 자락에서 양민 200여 명과 함께 집단 학살됐다. 박기천은 1949년 말 가천교회에 부임했다.

덕유산과 지리산 자락인 경남 서부는 험준한 곳이다. 지금이야 중부내륙고속도로와 통영대전고속도로가 남북을 가로질러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나 1980년대까지도 비포장 절벽 길이 흔했다.

박기천은 경남 김해 복음농림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후 거창군청 직원으로 일했다. 성실한 기독 청년이었다. 그는 고향 경북 김천 대덕면 감주교회에서 매 맞고 조롱당해가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 고향의 박해를 떠나 거창읍교회를 섬기면서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가 목회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를 치른 이 교회 주남선(1888~1951·독립운동가) 목사가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매 주일 그는 주 목사로부터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 집사 박기천은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빨치산에게 폭행 당한 사모 숨져

그러나 군청 기수(산업계장)라는 자리는 세상적 유혹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박기천은 주 목사에게 “하루를 살아도 바로 살고 주님을 위해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 무렵 어린 큰아들 성일이 죽었다. 박기천은 더욱 주님께 매달렸다. 거창 가조면 한 부흥회에서 성령의 불을 입기도 했다.

주 목사는 박기천에게 주의 길을 안내했다. 복음농림학교를 졸업해 교역자 자격이 있는 그를 거창 북상교회 전도사로 추천했다. 1948년 1월 그는 덕유산 자락 오지 북상교회 담임 교역자가 됐다. 하지만 그 무렵 산골 마을에는 빨치산이 출몰해 양민을 괴롭혔다. 그런데도 박기천은 기쁨에 넘쳐 교회를 섬겼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 오버코트를 팔아 예배당에 벽시계를 걸어 놓고 주일학교 아이들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젊은 교역자 부부는 다윗 이야기에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아이들과 교회당이 떠나갈 듯 찬송을 부르곤 했다.

지금도 북상면은 백두대간의 오지다. 부임한 해 10월 밤. 그날도 박기천은 산기도를 나가고 없었다. 아내 이진포(1950년 작고)와 아들 박래영(72·부산 성도교회 은퇴목사)만이 사택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밤 공비들은 사택 문을 박차고 들어와 전도사를 찾았다. “미국놈 앞잡이”라며 숨은 곳을 대라고 했다. 살림이 부서지는 가운데서도 이진포는 “어디로 출장 갔는지 모른다”고 했다. 빨치산들은 개머리판으로 이진포의 어깻죽지를 내리쳤다. 이날 충격으로 사모는 점점 야위어 갔다. 빨치산들의 습격에 너무 놀라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 그런데도 유년부 교사 일을 감당했다.

박기천은 아내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되돌아올 생각으로 북상교회를 떠나 공비 출몰이 없는 사역지 가천교회에 부임했다. 몇 년 동안 사역자가 없는 교회였다.

지난 11일. 가천교회 뒤편 산등성이에서 밀짚모자를 쓴 농부가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부직포 농기구하우스 그리고 인디언 천막 모양의 허름한 임시거처가 있었다. 소형 굴착기도 밭 한가운데 있었다. 농부는 다름 아닌 박래영 목사였다. 그는 은퇴 후 아버지의 삶을 기리기 위해 가천교회 마을로 돌아왔다. 기념관을 짓기 위해서다.

박 목사는 2만㎡ 땅 위에 아버지가 지키고자 했던 신앙과 하나님 생명, 예수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가천교회 부임 후 성경읽기와 암송, 가정예배, 전도와 기도의 생활화 등의 목표를 세우고 지역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셨어요. 어린 저와 어느 집사님 딸을 방 한쪽에 세워 놓고 성경암송 시키던 기억이 납니다. 부임 후 이내 주일학교가 부흥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북상교회 습격 사건 후유증으로 6·25전쟁 발발 한 달도 안 돼 소천하셨어요.”

그때 인민군은 인근 합천읍까지 점령했다. 박기천이 교인들과 아내의 상여를 메고 장례 치르러 나가다 인민군 저지로 할 수 없이 김길도 집사의 콩밭에 임시로 매장해야 했다.

다섯 살이던 박래영 목사의 삶도 그해 부모의 잇따른 죽음으로 뿌리째 흔들렸다. 고아가 된 것이다. 보육원을 전전하며 살던 박 목사는 부모의 유업을 힘 삼아 고신대와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걸었다. 고난 가운데 은혜였다.

산골의 해는 짧았다. 백두대간 산들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는데도 박 목사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산등성 잡목을 걷어내고 꽃과 유실수 등을 심어 순교의 정원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인디언 천막에서 앉은뱅이 성경 테이블을 이용해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다.

교인에 대한 보복 염려 탈출 포기

박기천은 예배 후 끌려가 거창읍 내 명덕학교에 갇혔다. 명덕학교는 거창읍교회(현 거창교회) 부설 성경학교였으나 인민군 점령 후 내무서 유치장으로 쓰였다. 내무서장은 인민위원회 행정위원으로 협조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그는 목회자는 양을 돌보는 일 외에는 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그는 지역유지 등과 함께 반동분자로 분류되어 유치장 생활이 길어졌다. 몇 번의 탈출 기회도 있었으나 자신이 탈출할 경우 가족과 교인에 대한 보복이 뻔해 감행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시신은 이듬해 1월 어느 날 사살 현장에서 좀 떨어진 작은 소나무 아래서 발견됐습니다. 두 손 모아 기도하던 모습이었어요. 집단 학살 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우체국장이 아버지가 총상을 입고 비틀거리며 걸어가던 모습을 봤는데 그 후 시신은 찾지 못했었지요.”

장례는 거창읍교회장으로 치러졌다. 입관예배 때 기도하는 모습의 시신 경직이 풀렸다. 장례식은 주남선 목사가 집례했다. 수많은 추모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청년 전도사 박기천. 그 목회의 꿈은 다섯 살이던 아들이 이어갔다. 가천교회 주일예배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거창·김천=글·사진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jhjeo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

  1. No Image

    복음왜곡 14가지 방법

    복음왜곡 14가지 방법 장기영 페이스북에서 옮김 - 복음을 왜곡시키는 14가지 방법 (by 하워드 스나이더) 1. 복음을 주로 로마서를 통해서만 설명하라 바울을 포함하여 성경 저자들은 우리에게 성경 전체를 공부하고 성경을 그 전체의 관점에서 해석하라고 말...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1 Views453
    Read More
  2. No Image

    성찬식 후 남은 빵과 포도주

    성찬식 후 남은 빵과 포도주 “성찬식 후 남은 빵과 포도주를 어떻게 처리 하나요. 교단이 가진 입장이 있나요. 있다면 신학적 근거가 뭔지 알고 싶습니다.” 지난 3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목회자들이 모인 페이스북 페이지에 ‘남은 성물 처리법’을 묻는...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1780
    Read More
  3. No Image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가?

    아래는 박진호 목사의 글이다. 박진호는 미국 남침례교단 목ㅈ사이며 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 www.whyjesusonly.com에 실린 글이고, 크리스천투데이에도 실려 있다. (히10:26,27) 이미 얻은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가? (1) “우...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727
    Read More
  4. No Image

    유다와 유대

    유다와 유대는 같을까, 다를까? 느헤미야 성경을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것이 있습니다. 유대인(יְהוּדִי Jews)와 유다인(וְאִ֣ישׁ יְהוּדָ֔ה men of Judah)을 구분하지 않는 번역 때문입니다. 유다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시피 야곱의 한 아들로서 한 사람...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1662
    Read More
  5. The Origin of the Apostles' Creed

    The Origin of the Apostles' Creed Introduction The Apostles’ Creed is second only to the Nicene Creed in popularity, within Western Christianity. The legend that each of the twelve apostles commented a creedal statement to the Rule of Faith,...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24421 file
    Read More
  6. No Image

    로마가톨릭주의, 로이드존스

    로마가톨릭주의, 로이드존스 박만수 로마카톨릭 사상평가를 펴내며 시작하는 글 I. 로·마·카·톨·릭·체·제 II.로·마·카·톨·릭·의·중·대·한·오·류·들 III.결·론 우리는 왜 로마 카톨릭을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성경이 그녀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454
    Read More
  7. No Image

    종교인소득 세무

    종교인소득 세무 <크리스천투데이> 2019.2.17. 정유진 회계사, 로고스 세미나에서 질의 응답 법무법인 (유)로고스의 교회법센터가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도심공항타워 14층 대회의실에서 ‘종교인 세금 분쟁 예방을 위한 종교인 과세 제도 안내 및 절세 방안...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400
    Read More
  8. 김경수 2년 법정구속 판결문

    김경수 2년 법정구속 판결문 판결 선고 사건번호: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고합823 죄명: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및 공직선거법위반 *판결선고 앞서서 판결을 선고하고 재판부에서 기소된 내용에 대한 유무죄 판단 등에 대해 이유를 말씀 드리려면 상당한 시간...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417 file
    Read More
  9. No Image

    이석기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

    이석기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 법무부장관 황교안 최후 변론 (전문) 법무부장관 황교안입니다. 헌정사상 최초의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맡아 그동안 높은 식견과 혜안으로 심리해 주신 헌법재판관님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울러, 지난 1년간 많은 관심을 ...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325
    Read More
  10. No Image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8장 5항>/ 김병훈 합동신학대학원 교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8장 5항: “주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또한 영원하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께 단번에 자신을 드리신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그의 ...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1081
    Read More
  11. No Image

    개혁주의의 다양성

    개혁주의의 다양성 신원균 박사, 페이스북 글 (2019.1.29.) 뒤늦게 페북을 시작하면서(2018년 1월) 조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개혁주의 하시는 분들의 색깔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 다양한 색깔을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런지 어려움이 있...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511
    Read More
  12. No Image

    사도적 은사 중진론

    사도적 은사 중진론 정이철의 페이스북 글 은사중지론이 뭔지 내용을 모르시면서, 마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나 은사중지론을 믿는 것처럼 말하시는 어떤 분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은사중지론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를 하...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668
    Read More
  13. No Image

    송길원 목사, 브니엘고등학교 교훈

    송길원 목사, 브니엘고등학교 교훈 고등학교 때 나를 잡아준 것은 성경시간, 수업시간 분위기는 안 좋았지만 “뻥이데이” 하면서 성경에 빠져… 이규현 목사 등과 종교부원 돼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1978
    Read More
  14. No Image

    손혜원 의원의 범죄

    손혜원 의원의 범죄 김광일 (조선, 2019.1.23.) 정말 궁금하다. 정말 궁금하다. 손혜원 의원은 왜 아직도 "나는 잘못한 게 없다" "나는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거의 모든 신문이, 거의 모든 방송이 손혜원 의원의 실정법 위반 의혹을 일주일째 터뜨리고 ...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479
    Read More
  15. No Image

    순교자 전도사 박기천, 아들 목사 박래영

    순교자 전도사 박기천, 아들 목사 박래영 경남 서부 내륙의 젖줄인 황강을 따라 한참 운전하다 가천천과 황강 합수 지점에서 방향을 틀었다. 깊은 계곡길이 이어졌다. 경남 거창군 남하면 가천교회(1906년 설립)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가천교회는 숙성산(907m...
    Date2019.12.06 Bydschoiword Reply0 Views679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51 Next
/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