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2016.10.06 10:51

Pick Me Up

조회 수 110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Pick Me Up


명절 때 TV 프로그램은 정말 볼 것이 없다. 집중해서 보는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TV는 켜놓았다. TV가 뭐라 하든 상관하지 않고 우리는 서로 지나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여행한 이야기, 읽었던 책 이야기, 자신에게 큰 감명을 준 스승 이야기, 조카들 이야기, 주애가 쓴 논문 이야기, 아무 관련 없는 이야기들이 순간순간 주제를 바꿔가며 쏟아져 나와도 아무도 당황하지 않고 웃고 떠든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모두 마음 문 열고 받아주는 것이 가족이다.

“오빠! 저 아이가 우리 반 아이야!”
학교 선생을 하는 동생의 소리에 모두 TV를 보았다. 걸그룹이 되고 싶어 하는 101명의 소녀 연습생들이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소녀들이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과 연습을 하며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다. 사회자는 어린 여학생들에게 냉정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우리 프로그램은 약한 모습, 욕심이 없는 모습, 싸울 의지가 없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럴 거면 빠져라!"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서늘해졌다. 호전적 태도는 경쟁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미덕이다. 일등에서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사회에서는 화합과 협력은 오히려 장애요소가 될 뿐이다. 함께 연습하면서 친구가 얼마나 고민하고 힘들어하는지 다 보았지만, 경쟁 앞에서 그 모든 인간적 감정은 힘겹게 삼켜야 한다. 친한 친구를 밟아야만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이 프로그램은 잔인하다.

동생의 제자는 참 밝은 아이였다. 반에서 모든 학생에게 사랑받는 어여쁜 아이였다. 그 아이가 자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칭찬을 받고 자랐을까? 보지 못했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주변에서 주는 모든 긍정적인 신호가 아이에게는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듯하였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점점 변하여갔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아니 다른 친구와 싸워 이기기 위하여 없던 호전성을 키워야 했다.
니체는 그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다. “적을 갖되, 증오할 가치가 있는 적만을 가져야 한다. 너희들은 너희들에게 걸맞은 적을 찾아내어 일전을 벌여야 한다.” 니체는 치열한 싸움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더욱 강해지라고 권면한다.

몇 년 전 카이스트 학생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교는 학점에 따라 등록금을 다르게 책정하는 징벌적 등록금 제도를 운용하였다. 학생을 절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평가하여 하위권 학생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상대평가에는 반드시 뒤에 서는 학생이 생기기 마련이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줄세우기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현상이다. 집안의 축하와 기대를 받고 입학한 학생에게 이것은 너무나 가혹한 경쟁체제였다. 그러나 총장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였다.
“경쟁 사회는 불필요하고 나약한 자는 걸러내는 법이다." 
"그런 나약한 자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살 수 없다.”

현대 사회는 폭력적 경쟁사회다. 나에게 손해가 되면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원수가 되고,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어제의 원수와도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 이 싸움터에는 도덕도 윤리도 필요 없다. 철저하게 이익 위주의 사회다. 이것이 돈의 논리이고, 경쟁의 논리이고, 적자생존을 말하는 진화론의 논리다.

어린 소녀들이 치열한 경쟁 프로그램에서 힘겹게 버티는 모습이 안쓰럽고 애처로웠다. 소녀는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렸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아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사이 아이는 변하였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도 없이 들어야 했던 사람들의 평가는 잔혹하였고, 그 아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어야 했던 악플은 아이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어린 소녀는 우울증에 빠졌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에서 배웠던 폭력성은 곧 자기 자신에게 독이 되었다. 폭력은 외부로만 향하지 않는다. 폭력은 자기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힌다. 세상이 주는 교훈은 좀 더 강해지라는 의미로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말고 바로 자기 자신에게 찾으라고 말한다. 아이는 자존감에 큰 상처를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평가절하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넌 패배자야!. 넌 실패자야!'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정말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만 있을까? 치열한 경쟁 사회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지혜가 호전성과 폭력성뿐일까? 서로 협력하고 서로 아껴주며 사랑하는 방법으로는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일까? 뛰어난 능력을 갖춘 한 사람보다 못나고 부족하지만, 함께 하는 팀워크가 훨씬 큰 성과를 나타내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남과 싸워 이겨야만 살아남는 세상 같아 보이지만 사실 다른 사람을 품어 안고 보듬어 주는 사람이 승리하는 경우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여기저기 피 튀기는 싸움이 치열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누군가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고 받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있는 모습 그대로, 실패한 모습 그대로, 야단치지 않고 그냥 품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단 한 사람의 독불장군이 세상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가슴으로 품어주는 사람이 세상을 차지하는 지혜도 배워가는 사회였으면 정말 좋겠다.
t1.daumcdn.jpg
?

  1. 영어와 디지털의 만남

        영어와 디지털의 만남   정보통신의 발달로 우리의 삶은 너무 나도 빠르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스템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누구나 간단한 휴대폰 클릭 하나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물건을 살 수 있고, 돈을 보낼 수 있으며, 각종 예약을 하...
    Date2021.05.22 Byreformanda Reply0 Views561 file
    Read More
  2. 교회론 신학자 한스 큉 별세

        교회론 신학자 한스 큉 별세   로마가톨릭교회 신학자 한스 큉 박사(Hans Kung, 1928-2021)가 4월 6일 독일 튀빙겐 자택에서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스위스인 큉은 활발한 저술활동을  해 온 로마가톨릭교회의 비판적 신학자이다.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 ...
    Date2021.04.09 Byreformanda Reply0 Views805 file
    Read More
  3. 성공한 구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

      미얀마 시민/ 사진 An SueYe     성공한 구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    미얀마의 군부가 쿠테타로 정권을 잡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군경은 실탄을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이 지금은 쿠테타 세력으로 불리지만 법개정을 통...
    Date2021.03.03 Byreformanda Reply0 Views620 file
    Read More
  4. 지독한 사랑, 팬데믹 시대에 생각해 본다

        지독한 사랑, 팬데믹 시대에 생각해 본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일 년째 전 세계가 멈춰버린 느낌이다. 정부가 교회의 대면 예배를 규제하고 있다. 예배에 참석을 하려면 눈치를 봐야하는 상태이다. 아스라엘과 터기 여행은커녕 기독인들이 자기 ...
    Date2021.01.29 Byreformanda Reply0 Views630 file
    Read More
  5. 서양 8음계의 기원

    Harpsicod, BREAD CHAPEL   서양 8음계의 기원   우리의 조상들은 5음계를 사용하여 궁 상 각 치 우로 표기하였다. 오늘날 세계인이 사용하는 서양 8음계는 기독교의 유산이다. 10세기 말, 이탈리아의 기독교 성직자이며 음악가인 귀도 다레쵸(Guido d’Arezzo...
    Date2021.01.28 Byreformanda Reply0 Views1721 file
    Read More
  6. 큐알코드와 기독인의 시대분별

      큐알코드와 기독인의 시대분별   핀란드의 헬싱키 공항에 '코로나 19 탐지견'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 탐지견은 코로나 19 양성 환자의 확진 여부를 10초 안에 찾아내는 게 가능하고 특히 무증상 환자까지 찾아내는 능력을 가져 현재 시범 근무 중이라고 한...
    Date2021.01.14 Byreformanda Reply0 Views671 file
    Read More
  7. 박창환 목사의 고별사

        박창환 목시의 고별사   박창환 목사(1924-2020)는 장로회신학교(1948)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1989년까지 41년 동안 헬라어와 신약신학 교수로 봉직했다. 1924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박경구 목사의 장남이며, 한국장로교회 최초 중국 파견 선교...
    Date2020.12.01 Byreformanda Reply0 Views1709 file
    Read More
  8. 캠퍼스 없는 대학교 시대의 개막

          캠퍼스 없는 대학교 시대의 개막   캠퍼스 없는 대학교 시대가 개막했다. 코로나 19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리포르만다>와 BREADTV가 함께 설계 운영하는 BREAD UNIVERSITY는 신학강의 공급선교 플랫폼이다. 동영상 신학강의를 가난한 나라들의 복...
    Date2020.08.09 Byreformanda Reply0 Views655 file
    Read More
  9. 수산나 이야기, 미투 사건의 원형

          수산나 이야기, 미투 사건의 원형   미모의 여인 수산나 이야기는 인류의 오래된 '미투 연루 사건’의 주인공이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구약성경 외경 다니엘서 13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권력 사회가 모함받은 피해자를 억울하게 하는 패턴의 원형이다.  ...
    Date2020.07.11 Byreformanda Reply0 Views1040 file
    Read More
  10. 연리근(連理根)과 단다(單多)

    연리근(連理根)과 단다(單多) 일식이 있던 시간에 등산을 하다가 우연히 위 그림의 나무들을 보았다. 두 나무의 뿌리가 붙어 있다. 연리근(連理根)이라고 한단다. 해발 약 300미터의 높이의 부산지역 장지산 등산로 기슭에 있다. 이 두 나무는 둘이면서 하나...
    Date2020.06.22 Byreformanda Reply0 Views823 file
    Read More
  11. 미국 폭동: 조지 플로이드 신드롬

    Photo: "George Floyd protests" in Wikip미국 dia 미국 폭동: 조지 플로이드 신드롬 미국 폭동, 조지 플로이드 신드롬(George Floyd Syndrome)은 2020년 5월 말에 시작하여 6월 초 현재까지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파괴적인 저항운동이다. 위조 지폐 사용자...
    Date2020.06.06 Byreformanda Reply0 Views1295 file
    Read More
  12. 어린이는 완전한 사람이다

    어린이는 완전한 사람이다 가정의 달 앙코르 글 1. 덜 자란 어른 텔레비전 프로그램 “경찰청 사람들”은 “덜 자란 어른”이라는 제목으로 실제 사건 하나를 극화하여 방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6년간 대학과 대학원을 다닌 사람이 귀국하여 편의...
    Date2020.05.25 Byreformanda Reply0 Views770 file
    Read More
  13. 올랍 라첼: 용감하게 싸우는 독일 목사

    올랍 라첼: 용감하게 싸우는 독일교회 목사   소년 시절에 내가 본 드라큘라 영화 가운데 주인공의 의사 할아버지가 칼을 들고 드라큘라와 용감하게 싸우는 장면이 있었다. 매우 감동적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리라 결심했다. 5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지...
    Date2020.05.13 Byreformanda Reply0 Views1342 file
    Read More
  14. 왜 동성애는 하나님의 형상됨을 가로막는가?

    왜 동성애는 하나님의 형상됨을 가로막는가?   하나님 형상’이란 말을 ‘있는 모습 그대로’ 혹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덕담처럼 쓰는데 잘 알고 써야 한다. 호모, ‘호모’란 말은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게이, 레즈비언 등 모든 유형의 동성애자를 비하...
    Date2020.05.05 Byreformanda Reply0 Views1011 file
    Read More
  15. 희망이라는 축복

    희망이라는 축복 희망은 우리의 영혼 속에 살짝 걸터 앉아 있는 한 마리 새와 같습니다 행복하고 기쁠때는 잊고 살지만 마음이 아플때 절망할 때 어느덧 곁에 와 손을 잡습니다 희망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거나 간절히 원해서 생기는게 아닙니다 상처에 새살이...
    Date2020.05.05 By123123 Reply0 Views654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Nex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