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무기징역 1심 판결문을 읽으며
법의 언어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낮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내려졌고,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판결의 무게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의 운명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법과 권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이런 순간일수록 우리는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먼저 숨을 고르고 판결문을 조용히 펼쳐 들어야 한다. 중대한 형사판결 앞에서 필요한 것은 뜨거운 구호가 아니라, 차갑고도 정직한 법리의 점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계엄 선포와 내란죄 성립이 법적으로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형법이 말하는 내란죄는 단순한 위헌성이나 권한 남용만으로 쉽게 성립하지 않는다. 국헌문란의 목적, 폭동에 해당하는 실력 행사, 국가기관 기능의 불법적 배제라는 엄격한 문턱을 하나하나 넘어야 한다. 그러므로 계엄이 부당했는지에 대한 판단과, 그것이 곧 내란죄가 되는지는 신중히 구별되어야 한다. 법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좁은 문을 통과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도 바로 이 지점에 놓여 있다. 판결문이 과연 그 좁은 문턱을 충분히, 그리고 설득력 있게 넘어섰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판결문 곳곳에 남겨진 신중한 단서들과 절제된 표현들이다. 그것들은 재판부가 이 사건의 무게를 가볍게 다루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마치 재판부 스스로도 이 판단이 놓인 자리의 깊이를 의식하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 흔적처럼 읽힌다.
재판부는 내란죄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대통령이 당시 마주했던 제도적 제약의 존재를 일정 부분 인정하였다. 또한 ‘소추’의 의미를 공소제기로 한정하여 판시한 부분 역시, 향후 헌법적 논의를 완전히 닫아 두지 않으려는 신중함으로 보인다. 이러한 흔적들은 판결의 결론과는 별개로, 재판부가 사안을 단순한 흑백의 구도로만 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법의 문장은 때로 단정 속에서도 망설임의 여백을 남긴다.
절차적 측면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살펴볼 부분들을 마주한다. 공수처 수사의 적법성 문제는 오래전부터 법조계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제기되어 온 쟁점이다. 수사권의 범위, 절차의 준수, 증거 수집의 적법성은 형사재판의 뿌리와 같다. 뿌리가 흔들리면,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결론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 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 역시 정치적 열기가 아니라, 구체적 사실과 법리 위에서 차분히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헌법 제84조의 불소추특권 해석 역시 쉽게 닫히지 않는 질문으로 남아 있다. ‘소추’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는 여전히 학문적 논쟁의 영역에 속한다. 이번 판결의 해석은 의미 있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법의 길은 대개 한 번의 판결로 완성되지 않고, 여러 층의 숙고를 지나며 서서히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사건을 둘러싼 공적 언어가 너무 쉽게 진영의 언어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형사재판은 본래 증거와 법리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민주주의 안에서 정치적 책임과 형사적 책임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이 경계를 서두르며 무너뜨릴 때, 가장 먼저 상처 입는 것은 법에 대한 공동체의 신뢰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의 속도가 아니라, 판단의 절제다. 아직 재판은 1심에 머물러 있으며, 무죄추정의 원칙은 확정판결 전까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 중대한 헌정 사건일수록 법의 언어는 더 엄격해져야 하고, 우리의 말은 그만큼 더 낮아져야 한다.
사법의 부담 앞에서 더 깊어지는 질문
이제 우리의 시선은 판결의 결론을 넘어, 그 결론에 이르게 한 사법적 여정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편에 서 있는가가 아니라, 법이 과연 자신의 길을 충실히 걸어갔는가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란죄와 같이 국가의 근간을 다루는 범죄에서는, 법의 한 걸음이 평소보다 훨씬 더 무겁다.
정치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사법의 어깨는 자연스레 무거워진다. 그러나 그 무게가 오래 지속되면, 판결은 다시 정치적 갈등의 중심으로 소환된다. 이번 판결 역시 그런 긴장 위에 서 있다.
재판부는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원칙적으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면서도,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목적 아래 군을 투입한 행위가 내란죄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하였다. 그 결론의 엄중함 때문에, 우리는 더욱 조심스럽게 묻게 된다. 그 판단을 떠받치고 있는 증명과 논증의 기둥이 충분히 단단한가 하는 물음이다.
내란죄는 형벌 체계 안에서도 가장 엄격한 해석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국헌문란의 목적과 폭동성에 대한 판단은 가능한 한 좁고 분명한 기준 위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만일 그 문턱이 조금이라도 넓어졌다면, 법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미끄러질 위험도 함께 안게 된다.
판결문이 사용한 역사적 비유와 도덕적 명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신중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동기가 수단의 위법성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원리는 분명 옳다. 그러나 비상계엄이 헌법이 예정한 권한 형식 아래 이루어졌다는 점까지 함께 놓고 볼 때, 형사적 단죄로 이어지는 논증의 연결 고리는 그만큼 더 촘촘해야 한다.
또 하나 조심스럽게 살펴볼 지점은 사실 인정의 방식이다. 판결문에 반복되는 추정적 표현들은 재판의 과정에서 일정 부분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무기징역이 가능한 중죄에서 피고인의 주관적 목적과 인식을 인정하는 기준은 더욱 엄격해야 한다. 법이 마음의 영역을 판단할 때일수록, 우리는 더 많은 증거와 더 깊은 신중함을 요구받는다.
맺음말 — 더디더라도, 법의 길을 따라
이 판결은 단순한 승패의 문장으로 정리되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권력의 긴급권이 결코 무제한이 아님을 분명히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란죄 적용의 문턱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다.
아마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확신이 아니라, 오래 견디는 성찰일 것이다. 상급심의 시간 속에서 사실과 법리가 다시 다듬어질 때, 우리는 조금 더 분명한 윤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우리의 말은 가능하면 낮고, 판단은 가능하면 늦추는 것이 좋겠다. 법의 언어가 그러하듯, 진실에 이르는 길도 대개는 서두르지 않는 이들에게 더 또렷이 열리기 때문이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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