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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리어 리오.jpg

 

 

셰익스피어의 분노의 변증법: 분노 1

 

― 시기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10)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 왕(King Lear)은 인간의 분노가 어떻게 영혼의 심연을 흔들고, 사랑과 진리를 삼켜버리는지를 보여주는 장엄한 서사시와도 같다. 그 안에서 분노는 단지 한 인간의 격정이 아니라, 신의 자리를 넘보는 인간의 교만이 구체적 형체를 얻은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왕의 옥좌 위에서 시작된 작은 불꽃이 어떻게 온 나라를 집어삼키는 불길로 번지는지를, 그리고 그 불길이 결국 한 인간의 가면을 태워버리고 벌거벗은 영혼을 드러내는지를 보여준다.

 

리어 왕은 세 딸에게 왕국을 나누어주며 사랑의 증명을 요구한다.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지 말하라. 말로써 사랑을 증명하라.” 그는 사랑을 말의 수사로 환산하고, 사랑을 권력의 단위로 측량하려 든다.

 

그러나 막내딸 코델리아가 저는 아버지를 제 의무만큼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자, 그 진솔한 언어는 리어의 귀에 모욕처럼 들린다. 그 순간, 그의 왕관 아래에서 교만이 불붙는다. “그녀는 내 눈에 다시는 보이지 않게 하라!” 그는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신처럼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 분노는 단순한 성미의 폭발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을 통제하려는 욕망, 곧 자아를 신격화한 인간의 오만한 분노다. 그는 딸의 침묵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실보다 아부를 택하며, 사랑을 받아내기 위해 사랑을 파괴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흩어지고, 왕국은 갈라지고, 한 인간의 마음속 질서가 무너진다. 셰익스피어는 이 순간을 통해 보여준다. 인간의 분노는 외부의 폭력보다 더 무서운 내면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리어의 분노는 그를 광기로 몰아넣는다. 왕좌에서 쫓겨난 그는 폭풍이 몰아치는 황야로 나간다. 그 장면에서 하늘은 갈라지고, 천둥이 울리고,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찢는다. 그는 절규한다. “폭풍이여, 불어라! 번개여, 찢어라! 세상을 찢어라!”

 

이 외침은 하늘을 향한 저주이자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심판이다. 그가 외부 세계의 폭풍 속에 서 있을 때, 실제로는 그 안에서 더 큰 폭풍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권력과 교만이 무너져 내리며 생겨난 공허, 그리고 그 공허 속에서 피어오르는 자기 인식의 불꽃이다.

 

리어는 점차 깨닫는다. 자신이 왕이라 믿었던 자리에는 허상만이 남아 있었음을. 세상은 자신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만 지탱되는 세계였음을. 광기 속에서 그는 비로소 인간이란 존재의 연약함과, 사랑의 신비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코델리아와 재회한 순간, 그의 분노는 눈물로 녹아내린다. “우리는 감옥에서도 노래하리라, 새처럼 함께그 말은 사랑의 회복이자, 분노의 참회다. 셰익스피어는 분노의 불길 속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회개의 능력을 지닌 존재임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가 리어 왕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분명하다. 분노는 인간의 왕관을 녹이는 불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을 신으로 착각할 때 타오르는 불길이며, 관계를 태우고 질서를 무너뜨리고 영혼의 거울을 깨뜨린다. 리어의 분노는 정의를 향한 분노가 아니다. 그것은 상처받은 자아의 울부짖음이다. 사랑을 잃은 교만의 비명이다. 그러나 그 불길은 결국 정화의 불이 되어, 한 인간을 비워내고, 그 빈자리에서 사랑과 겸손이 다시 피어난다.

 

성경은 말한다. “사람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느니라”(1:20). 리어의 분노는 바로 그 진리를 체현한다. 그는 자기 의를 이루려다 하나님의 의를 잃는다. 하지만 폭풍 속에서 무릎 꿇은 그 순간, 그는 다시금 인간이 되며, 하나님의 의에 다가간다. 그의 분노는 심판이면서 동시에 은혜의 통로였다.

 

리어 왕은 분노라는 죄를 탁월하게 설명한다. 분노가 죄의 한 형태로 어떻게 성장하고, 인간을 파멸시키며, 결국 회개로 인도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리어의 분노는 단순히 한 왕의 실패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영혼에 내재한 교만의 불길이다. 우리는 그의 외침 속에서 자신을 본다. 사랑을 오해하고, 관계를 무너뜨리며, 상처받을 때 분노로 응답하는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하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리어가 모든 것을 잃은 자리, 죽음과 침묵의 끝에서 오히려 사랑과 겸손의 진리가 드러난다. 셰익스피어는 분노의 불길 너머, 사랑의 빛을 본다. 분노는 인간을 벌거벗기되, 그 벌거벗음 속에서 진리가 드러난다.

 

이 작품은 읽는 설교자는 리어의 폭풍 속에서 인간의 내면 폭풍을 읽어낼 수 있다.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리어의 분노는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는 시도이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다라는 고백의 비극적 결과이다. 리어의 광기와 몰락은 창세기의 교만한 바벨탑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폭풍 속에서 깨달은 겸손은 십자가 앞에서의 회개를 떠올리게 한다.

 

설교자는 강단에서 리어 왕을 인용하여 말할 수 있다. “분노는 영혼의 폭풍이다. 그것은 왕좌 위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들판의 무릎 위에서 끝난다. 그러나 그 무릎 위에서 인간은 다시 하나님을 배운다.” 리어 왕의 분노는 비극의 서사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죄의 불길을 지나 사랑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인간 구원의 드라마이다.

 

리어의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메아리친다. 사랑을 잃고 분노에 사로잡힌 영혼들이여, 폭풍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 폭풍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는 소리이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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