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4222.jpg

 

 

 

전영창 교장의 십계명

 

 

전영창 선생(全永昌, 1917~1976)은 거창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사했고예장 고신교회와 관련을 가진 분이며현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설립에 이바지한 분이다전영창의 감동적인 교훈은 '십계명'이다.

 

 

첫째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째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째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째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째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말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째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째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째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째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으니 의심하지 말고 가라.

 

 

열째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전영창에 대한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의 기록은 아래와 같아.

 

 

전영창은 전라북도 무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할아버지는 전치선이다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나라의 독립을 찾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 위하여 일부러 선교사와 만나 기독교를 받아들여 이후 집안사람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었다아버지는 전일봉(全日奉, 1896~?)으로, 1919년 4월 1일 무주읍 장날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체포된 후 8개월 동안 형을 살았다.

 

 

전영창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에서 출생하였다집안은 가난하였으나 아버지 전일봉의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집에서 약 8[20떨어져 있는 안성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선교사의 도움으로 5년제인 전주 신흥학교(新興學校)에 근로 장학생으로 진학하였다. 1936년 신흥학교를 졸업하고 무주의 초등학교 촉탁 선생이 되었으나 조선 역사를 가르친 것이 문제가 되어 학교에서 쫓겨났다.

 

 

1938년 신흥학교 교장 린턴의 배려로 일본 고베신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41년 12월 2일 사상이 불온하여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2년간 징역형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 감옥에서 복역하였다전영창은 복역 1년 만에 고향인 무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주거 제한 처분을 받고 집행 유예 5년으로 풀려나 무주로 돌아왔다.

 

 

광복이 되자 서울로 상경하여 평소에 익혀 온 회화 실력으로 미군 부대 군목인 브라운 소령의 통역관으로 일하였다. 1947년 브라운 소령의 도움으로 한국 최초의 유학생 여권을 들고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웨스턴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이 6·25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학장을 찾아가 즉시 귀국하여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소신을 밝혔다이에 감동한 교장이 귀국 하루 전인 1951년 1월 8일 졸업 시험을 치르지 않았는데도 졸업장을 주어 귀국하였다.

 

 

한국에 돌아온 전영창은 부산에서 전쟁 피란민을 위한 구조 사업을 시작하였다. 1951년 5월 텐트를 치고 시작한 임시 병원에 이어 한상동 목사와 장기려(張起呂박사와 함께 부산 복음 병원(현재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을 설립하는 데 앞장섰다. 1953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콘코디아신학교에 다시 유학을 갔다가 1955년 12월 귀국하였다.

 

 

전영창은 좋은 직장이나 일자리를 마다하고 파산 직전의 거창 고등학교 제3대 교장으로 부임하여 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쏟았다

 

 

1958년 4월 전영창의 노력에도 학교가 빚에 넘어가게 되었는데미국의 한 성도가 보낸 2,050달러로 부채를 갚게 되었다.

 

 

평생을 교육에 바친 전영창은 1976년 네덜란드 교회 연합회의 후원 기금으로 보도관을 건립하던 중 과로로 인한 담석증과 패혈증의 합병증으로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7947_33162_3642.jpg

 

아래는 디지털거창문화대전의 전영창 선생에 대한 기록이다.

 

 

전영창(全永昌)은 경상남도 거창에서 선구적인 기독교 전인 교육을 실천한 교육자이다신사 참배 반대 운동으로 투옥된 적이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유신 체제에 반대한 교육자이다.

 

 

전영창은 1917년 12월 26일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 1594번지에서 태어나 안성 초등학교와 전주 신흥 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3월 신흥 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초등학교 촉탁 교사야학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길러 주다 일제 경찰에게 탄압을 받았다.

 

 

1938년 4월 신흥 학교 교장 린턴의 후원으로 일본 고베 중앙 신학교에 입학한 전영창은 재학 중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아 성경으로써 민족을 구원하겠다고 결심하였다전영창은 한글 신문 폐간신사 참배창씨개명 등을 비판하였으며일제의 패망을 예상하고 독립운동을 준비하다가 1941년 12월 9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2년 10월 10일 기소되어 12월 3일 고베 재판소에서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집행 유예 5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어주거 제한 조건으로 귀향하였다.

 

 

전영창은 1945년 9월 미군 부대 통역관 시험에 합격하여 미군 제24군단 제7사단 군종무실에 근무하던 중 미국인 군목의 도움으로 1947년 4월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하였다이듬해 웨스턴 신학교로 전학하여 수학하던 중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민족을 돕고자 조기 졸업장을 받고 귀국하였다.

 

 

1951년 5월에 부산에서 임시 병원[현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전신]을 설치하여 피난민들을 치료하였다. 1953년 콘코디아 신학대학원에 입학, 1955년 12월 10일에 학업을 마치고 1956년 2월 귀국하였다전영창은 1956년 4월 12일 거창 고등학교 제3대 교장으로 부임학생 8명으로 교육을 시작하였다.

 

 

1961년 교사를 신축하였고학교를 명문으로 성장시키고 지역민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다그 공로로 1967년 10월 18일 경향 신문사 주최 국민이 주는 희망의 상을 수상하였다이 상금으로 샛별 초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69년 6월 19일 거창 고등학교 학생들이 삼선 개헌 반대 시위를 일으켰을 때전영창은 경상남도 교육감의 주동 학생 처벌 요구를 거부하여 교장 승인이 취소되었다.

 

 

1970년 2월 26일 대구 고등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그해 12월 승소하였고, 1971년 4월 28일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승소하여 교장으로 복귀하였다.

 

 

1972년 11월 군내 교사들을 동원한 어용 집회에 연사로 초빙된 전영창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라고 강연하여 박정희 독재 정권을 비판하였다. 1973년 미국의 교회와 친우들의 후원으로 학교 교사를 신축하였고[현 거창 고등학교 교사], 1976년 네덜란드 교회 연합회의 후원으로 직업 보도관을 건축하던 중 1976년 5월 20일 과로와 폐혈증으로 숨졌다.

 

 

전영창은 경향 신문사 주최 국민이 주는 상을 수상했다.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

 

 

?

  1. 성직을 떠난 목사는 목사직을 내려놓아야

        성직을 떠난 목사는 목사직을 내려놓아야   목사(牧師)를 성직자라고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직임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는 이름이나 명칭이 아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약 10년 정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학대학(일반대학 4년)을 졸업하고 신...
    Date2024.01.31 Byreformanda Reply0 Views294 file
    Read More
  2. 변호사 정광진의 인생 이야기

          변호사 정광진의 인생 이야기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굉음을 내던 날은 1995년 6월29일이었다. 당시 정광진(64) 변호사는 네 딸 중 세 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시각장애를 딛고 미국 버클리대를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국립맹학교 교사로 일하던 윤민(당...
    Date2024.01.07 Byreformanda Reply0 Views556 file
    Read More
  3. 전영창 교장의 십계명

          전영창 교장의 십계명     전영창 선생(全永昌, 1917~1976)은 거창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사했고, 예장 고신교회와 관련을 가진 분이며, 현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설립에 이바지한 분이다. 전영창의 감동적인 교훈은 '십계명'이다.     첫째, 월급이 적은 ...
    Date2024.01.04 Byreformanda Reply0 Views206 file
    Read More
  4. [고백록 2.1] 청년기의 죄

        청년기의 죄   이제 나는 지나간 나의 추잡한 잘못들과 육체로 떨어졌던 내 영혼의 타락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오, 하나님, 그것은 내 과거가 좋아서가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서 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사랑하기 위한 자기 성찰의 쓴 괴로움을 지니...
    Date2023.11.16 Byreformanda Reply0 Views221 file
    Read More
  5. [고백록 1.20] 어린 시절에 받은 은혜에 감사하다

        어린 시절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다     오, 주님,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가장 높으시고 선하신 하나님, 내가 당신의 뜻에 따라 소년 시절에 머물러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우리 하나님이 되신 당신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 ...
    Date2023.11.16 Byreformanda Reply0 Views178 file
    Read More
  6. [고백록 1.19] 부패한 행동보다 말 실수를 피하려 하다

        부패한 행동보다 말 실수를 피하려 하다       나는 소년 시절에 가엾게도 부패한 행동보다 말의 실수를 피하려고 열중하는 풍습에 던져져 있었습니다. 그곳은 내 경기장인 학교였습니다. 나는 거기서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게 말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
    Date2023.11.16 Byreformanda Reply0 Views178 file
    Read More
  7. [고백록 1.18] 하나님의 법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교육

        하나님의 법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교육   오, 나의 하나님, 그러므로 내가 당신을 떠나 이렇게 헛된 것을 향해 빠져 들어가게 된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내가 나의 모범으로 삼고 추종했던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동 곧 그다지 나쁘지 않 은...
    Date2023.11.12 Byreformanda Reply0 Views141 file
    Read More
  8. [고백록 1.17] 허망한 교육

          허망한 교육     오, 하나님, 나로 하여금 당신의 선물인 나의 재능과 그것을 쓸모 없는 일에 낭비한 나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잠깐 말하게 허락하여 주소서.     그때 나의 마음을 심히 불안하게 한 과제가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잘하느냐 못하느...
    Date2023.11.12 Byreformanda Reply0 Views217 file
    Read More
  9. [고백록 1.16] 신화에 대하여

        신화에 대하여     아, 화 있을 지어다, 인간 풍습의 급류여! 누가 너의 흐름을 막을 수 있겠느냐? 네가 말라붙을 날이 언제이겠느냐? 언제까지 너는 하와의 자녀들을 저 넓고 무서운 바다로 휘몰아 넣으려고 하느냐? 나무 방주에 오른 자들도 그 바다를 ...
    Date2023.11.11 Byreformanda Reply0 Views172 file
    Read More
  10. [고백록 1.15] 하나님께 기도하다

        하나님께 기도하다     오, 주님,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내 영혼으로 하여금 당신의 징계로 말미암아 실망하지 않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를 찬양하기에 피곤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은 자비로 나를 그릇된 길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이제 당신께서 내...
    Date2023.11.11 Byreformanda Reply0 Views129 file
    Read More
  11. [고백록 1.14] 그리스어와 라틴어 학습담

          그리스어와 라틴어 학습담     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그리스 문학을 싫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호메루스(Homems)는 이야기를 엮어 가는 데 능란했습니다. 그의 글은 흥미로웠지만 허구였습니다. 그래서 소년인 나에게는 맞지 않았습니다.    ...
    Date2023.11.09 Byreformanda Reply0 Views170 file
    Read More
  12. [고백록 1.13] 헛된 공부를 더 좋아하다

        [고백록 1.13] 헛된 공부를 더 좋아하다     어릴 때부터 그리스어(헬라어) 공부했지만 내가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그 까닭을 지금도 모릅니다. 초보 공부인 읽기, 쓰기, 셈하기는 그리스어를 배우는 것에 못지않게 나에게는 무거운 짐이요, 고역이었습니...
    Date2023.11.09 Byreformanda Reply0 Views95 file
    Read More
  13. [참회록 1.12] 억지로 공부를 하다

        억지로 공부를 하다     나는 소년기에 공부하기를 싫어했습니다. 또한 강제로 공부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시기를 청년기보다는 덜 무섭게 생각했지만 말입니다. 나는 억지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공부를 잘하지 않았어도 그...
    Date2023.11.07 Byreformanda Reply0 Views82 file
    Read More
  14. [고백록 1.11] 세례를 연기하다

        세례를 연기하다   아직 소년이었을 때 나는 영생에 대한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 영생이란 교만한 우리들에게 친히 내려오신 우리 주 하나님의 겸손을 통해서 약속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굳게 믿고 있었던 어머니 의 모태에서 태어난 후 바로 십...
    Date2023.11.07 Byreformanda Reply0 Views113 file
    Read More
  15. [고백록 1.10] 놀려고 부모의 말씀을 거역하다

          놀려고 부모의 말씀을 거역하다     내 주 하나님, 당신은 자연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당신이 죄악을 창조하시지 않으셨기에 다만 다스리시기만 하십니다.     내 주 하나님, 그런데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
    Date2023.11.05 Byreformanda Reply0 Views128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1 Next
/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