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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hoiword2015.06.09 05:26
방언기도에 대하여]

서철민 페북에서

우연히 어떤 여자 목사님의 설교 동영상을 보았는데 그 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방언기도를 강조하는 것,잘 아시죠. 할 수 있는 대로 방언으로 기도하세요. 특히 새벽에 모여 기도할 때 방언으로 기도하시면 좋습니다.” 그 분의 강조점은 방언 기도는 일반 기도보다 하늘의 문을 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기도이며 따라서 공적 모임에서도 방언기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이 어떤 성경, 어느 구절에서 그러한 가르침을 이끌어냈는지 질문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대로라면 성경 어디에서도 ‘방언이 하늘의 문을 여는 특별한 기도’라고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은 강단의 설교가 성경의 궤도를 많이 벗어나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로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귀하게 베풀어 주신 은사를 왜곡하고 거짓으로 사용하는 자들이 생겨납니다.

사실 ‘방언기도’는 성경이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가 아닙니다. 다만 고린도 교회에 ‘방언기도’로 인한 어떤 소요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그에 대해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다른 성경에서도 방언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해 볼만한 여지들이 있지만 핵심적이지는 않습니다. 방언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몇 가지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 하지 말라. 2. 방언하기 보다는 예언을 사모하라. 3. 방언은 영으로 하는 비밀기도여서 알아 듣는 자가 없다. 4. 공동체보다는 개인에게 유익이 있다.

바울은 직접적으로 방언기도가 통역되어지지 않는 이상 교회 앞에서 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금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결코 방언을 보다 특별한 능력의 기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유익이 있으나 개인적이며 교회에 덕을 세우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그 여자 목사님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바울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외에 다른 사변적 논리를 가지고 와서 방언기도를 더욱 부각시키려거나 특별한 은사로 취급하려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반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따를지, 은사를 강조하는 사람의 말을 따를지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합니다. 만약 성경을 따르고자 한다면 방언은 공동체가 함께 기도할 때는 하지 않는 편이 더욱 정당합니다. 특별히 공적인 기도의 제목으로 함께 기도할 때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선은 방언기도는 자신도 알아듣지 못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공적인 기도의 제목에 대해 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가 없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의 기도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후자의 문제가 더욱 큰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기도할 때는 무엇이 실상 중요하겠습니까! 그것은 신비로운 은사나 경험이 아닙니다. 주여 삼창이나 큰 목소리도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한 마음이며 믿음이며 사랑이며 진리입니다. 기도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나 청결한 양심이나 진리나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큰 목소리로 기도하여도 그것은 소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시는 귀한 도구이며 방편입니다. 불순한 마음이나 정욕을 섞지 말고 왜곡하거나 거짓으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대로 기도하는, 진실한 기도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